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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58 (9/17-10/11) <1> Smooth Talk(1985) ★★★★

로라 던 첫 주연작...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조이스 캐롤 오츠 원작, 제임스 테일러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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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oth Talk(1985) by Joyce Chopra

'기생충(Parasite)'의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5월 칸영화제를 시작으로 올 2월 아카데미영화제 4관왕까지 각종 영화상 시상식을 종횡무진했다. 그중 골든글로브상과 아카데미상의 남녀주연상과 남녀조연상은 약속이라도 했듯이 호아퀸 피닉스(조커), 르네 젤위거(주디), 브래드 핏(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로라 던(결혼 이야기)의 4인방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53세의 중년, 로라 던(Laura Dern)은 지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에서 이혼 변호사 역을 감칠맛있게 소화한 로라 던은 골든글로브와 오스카 외에도 미 영화배우조합(SAG)상, 영국 아카데미상, 뉴욕을 비롯 각 대도시 비평가상 등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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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로 2020 골든글로브상,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로라 던.

올해로 제 58회를 맞은 뉴욕영화제(New York Film Festival, 9/17-10/11) 리바이벌 섹션에선 로라 던의 1985년 첫 주연작 '스무스 토크'(Smooth Talk)를 4K 복원판으로 상영한다. 올 NYFF58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버추얼 상영회와 드라이브 인 시어터 상영회로 진행된다. '스무스 토크'는 19일 오후 8시 브루클린 아미 터미널에 마련된 Brooklyn Drive-In에서 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보았던 낭만적인 드라이브-인 시어터를 2020년 체험할 수 있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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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oth Talk(1985) by Joyce Chopra

로라 던은 1967년 할리우드 명배우 브루스 던(Bruce Dern, 네브라스카)과 다이앤 래드(Diane Ladd) 사이에 태어났다. 두살 때 부모 이혼했으며, 어릴 적에 다발성경화증을 겪었다. 훗날 데이빗 린치 감독의 '블루 벨벳'(Blue Velvet, 1986)'과 '와일드 엣 하트'(Wild at Heart, 1990)에서 보여준 근육경련 제스추어가 사실은 병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991년 마사 쿨리지 감독의 '램블링 로즈'(Rambling Rose)에 엄마 다이안 래드와 출연해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던), 조연상(래드)에 올랐다. 2020 아카데미상 시상식에는 엄마를 동반해 오스카 트로피와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로라 던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다. 2000년 자신과 약혼했던 배우 빌리 밥 손톤이 어느날 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결혼하며 공적으로 차였다. 이때의 심정을 그녀는 훗날 한 인터뷰에서 '급사(sudden death)'한 느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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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 at Heart'(1990) by David Lynch/ Laura Dern and Diane Ladd in 'Rambling Rose'(1991) by Martha Coolidge

배우 가문의 딸인 덕에 아역 배우로 간간이 출연하던 로라 던이 처음 주연을 맡은 영화가 조이스 초프라(Joyce Chopra) 감독의 '스무스 토크'다. 그녀 나이 18세에 맡은 낯설은 감독의, 낯설은 이 영화는 모래 속의 진주같은 발견이다. '스무스 토크'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온 미국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Joyce Carol Oates)의 1966년 단편소설 'Where Are You Going, Where Have You Been?'을 원작으로 초프라 감독의 남편 톰 콜(Tom Cole)이 각색했다. 여기에 인기 가수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가 음악감독을 맡았으며, 그의 히트곡 '핸디맨(Handy Man)'이 피날레에 흐른다. 흥행엔 실패했지만, 1986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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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oth Talk(1985) by Joyce Chopra

영화는 여름날 오후 북부 캘리포니아의 교회 해변가에 누워있는 세 소녀의 모습으로 나른하게 시작된다. 소녀들은 트럭을 히치하이킹해서 시내로 들어간다. 성에 눈을 뜨고 있는 15살 소녀 코니(로라 던 분)는 제임스 딘 대형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여놓고, 여자 친구들과 백화점 등지를 다니며 남자들과 사귀어보려 안간힘을 쓴다. 모범생인 언니 준(June)과는 달리 엄마(메리 케이 플레이스 분)와 사사건건 부딪히는 반항아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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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oth Talk(1985) by Joyce Chopra

어느날 엄마는 코니와 언쟁하다가 그녀의 뺨까지 때린다. 그날 부모와 언니가 바비큐 피크닉을 간 사이 혼자 집에 남아있던 코니에게 남자가 찾아온다. 아놀드 프렌드(Arnold Friend)라는 이름의 청년은 제임스 딘을 흉내내며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코니를 유혹한다. 그리고, 코니는 예기치 못한 상황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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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oth Talk(1985) by Joyce Chopra

영화 '스무스 토크'는 처음 1시간, 영화(92분)의 2/3까지 사춘기 소녀의 성적인 깨어남과 방황을 다룬 평범한 TV 드라마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나 홀로 집을 지키던 코니가 빈티지 컨버터블을 타고 A. Friend를 만나면서 성적인 공포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 

로라 던의 섬세한 연기에 두 인물의 팽팽한 관계를 극적으로 담은 화면구도와 음악이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조이스 초프라 감독은 프렌드를 따라 들판으로 간 코니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관객의 상상에 맡기도록 처리했다. 자동차가 서있는 들판의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풀잎들이 속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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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oth Talk(1985) by Joyce Chopra

코니는 자신을 뺀 가족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던 순간, 빈 집에서 악몽같은 현실과 부딪힌다. 자신의 아이돌 제임스 딘 흉내를 내는 프렌드를 공포에 질려 거부하지만, 집에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에 따라 나선다. 얼마 후 코니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더 이상 반항적인 사춘기 소녀가 아니었다. 

가족을 대신한 희생이었을까? 코니 자신의 억압된 성충동을 해방시킨 것일까? 프렌드와의 만남으로 코니는 소녀에서 여인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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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oth Talk(1985) by Joyce Chopra

미스테리 남자 'A. 프렌드'는 우리의 일상에서 '친구'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 감언이설로 유혹하는 악마의 한 모습일 수도 있다. 사춘기 소녀 코니의 연약함은 우리들의 아킬레스 건과 같은 약점일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코니는 언니 준과 춤을 춘다. 여기에 포근한 목소리로 제임스 테일러가 부르는 '핸디맨(Handy Man)'이 카세트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Hey girls, gather round/ Because of what I'm puttin' down/ Oh, baby, I'm your handy man/I'm not the kind that uses pencil or rule/ I'm handy with the love and I'm no fool/ I fix broken hearts, I know I really can/ If your broken heart needs repair/ I'm the man to see. I whisper sweet things/ You tell all your friends, and they'll come running to me..." 
https://youtu.be/dXI43zGey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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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OTH TALK
https://www.filmlinc.org/nyff2020/films/smooth-talk

SATURDAY, SEPTEMBER 19 8 PM
Brooklyn Drive-In(Brooklyn Army Terminal, 140 58th St, Brooklyn, NY 11220)
https://purchase.filmlinc.org/56145/56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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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0.09.18 20:32
    '기생충'을 본 후로 영화관에 안간지도 꽤 오래됐습니다. 여러 분야에 걸쳐서 글을 올려주시는 컬빗에 감사합니다. 영화 기사를 잘읽었습니다. 삶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입니다. 코로나가 사라지면 컬빗이 준 예술계의 지식을 갖고 하나씩 찾아서 볼 예정입니다. 나의 '걸어서 행복찾기'를 할려고 합니다. 선댄스 영화제를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laine-
  • sukie 2020.09.18 20:32
    Elaine 선생님, 영화 글도 흥미롭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은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등 3인이 1978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시작했습니다. 할리우드의 상업영화와 달리 저예산의 독립영화(Indie Films)을 장려하기 위한 영화제이지요. 선댄스 영화제는 신인감독들의 재능을 발굴하는 등용문이기도 하며, 수상작은 아카데미상이나 골든 글로브상 수상작보다 작가 정신이 뛰어난 작품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선댄스'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폴 뉴만과 출연했던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선댄스 협회는 신인감독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아카데미영화제가 미국 영화인들의 축제라면, 뉴욕영화제는 유럽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 수상작을 비롯 우수작품들을 소개하는 권위있는 영화제인데요, 수상작을 선정하지는 않는 비경쟁 영화제입니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가장 좋은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영화제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2002년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주도로 시작된 뉴욕의 트라이베카 영화제는 선댄스처럼 독립영화를 장려하는 것이 취지인 영화제입니다. 트라이베카 영화제는 4월, 뉴욕영화제는 9월-10월에 열립니다.

    2019년 4월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김보라 감독의 '벌새(House of Hummingbird)'가 최우수 국제 극영화상, 여우주연상, 촬영상을 수상했습니다. 2020년 1월 선댄스영화제에선 코리안 아메리칸 리 아이삭 정(Lee Issac Chung) 감독이 '미나리(Minari)'로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받았고, 2월 아카데미영화제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극영화상까지 4관왕을 차지했지요. 미 메이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한국영화가 휩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