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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리버' 저편으로 떠나간 앤디 윌리엄스


'러브 스토리’ ‘로미오와 줄리엣’ ‘닥터 지바고’ ‘티파니에서 아침을’ ‘피서지에서 생긴 일’ ‘대부’…
 
감미로운 목소리로 할리우드 명작 영화의 주제가를 불러온 가수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가 9월 25일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오드리 헵번 주연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의 주제가 “Moon River”의 오리지널 싱어. 앤디 윌리엄스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데뷔한 1956년 ‘캐나다의 석양(Canadian Sunset)’으로 데뷔했다. 프랭크 시나트라를 연상시키는 부드럽고, 고혹적인 음성으로 할리우드 영화음악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목소리가 됐다.
 
윌리엄스는 1971년 제 1회 그래미상의 사회를 맡았으니, 그래미 라이브 호스트의 원조다. 후보엔 5차례 올랐지만, 그래미상을 품에 안지는 못했다.  
 
 
114554160.jpg 제 2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앤디 윌리엄스. 
  
곱상한 미남 스타에게 오늘 날이라면, 타블로이드를 연일 장식할 드라마도 있었다.
 
1976년 라스베가스 쇼걸 출신인 전처 클로딘 롱제가 애인인 스키 챔피온 스파이더 사비치를 총을 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롱제는 총격을 사고라고 변명했으며, 윌리엄스는 전처를 위해 법정에 출두해 유리한 증언하는 의리를 과시했다. 결국 롱제는 단 1주일 수감된 후 풀려났다. 이들 사이엔 세 자녀가 있다.
 
윌리엄스는 케네디 가문과 커넥션이 있었다.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가족과 친분을 나누었던 윌리엄스는 미망인 에델과 연애설을 부인했다. 또한, 비틀즈의 팬이었던 윌리엄스는 존 레논이 추방위기에 처했을 때 닉슨 정부를 비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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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전에 은퇴는 없었다. 지난해 11월 방광암 진단을 받은 윌리엄스는 투병생활 1년을 못 넘기고 눈을 감았다. 그는 2001년 AP와의 인터뷰에서 “무대에 설 수 없는 시점이 올 때까지 계속 공연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주제가의 황제' 앤디 윌리엄스와 함께 추억의 영화음악을 감상해본다.
 
 

앤디 윌리엄스 Cinema Music Paradiso                                 

 
 
*앤디 윌리엄스의 주제가를 들으시려면, 빨간 제목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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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Moon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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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토리 (1970)  Where Do I Be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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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1968)   A Time For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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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1965)  Somewhere M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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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부르의 우산(1964)   I Will Wait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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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1972)   Speak Softl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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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지에서 생긴 일(1959)  A Summer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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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엘자(1966)  Born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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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장미의 나날들  Days of Wine and R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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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의 일기  Can't take my eyes off you
 
Fee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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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illiams


1927년 12월 3일 아이오와주 월레이크에서 태어났다. 수줍음이 많았던 소년은 형 딕, 밥, 돈과 동네 장로교회의 성가대에서 활동했다. 우체국 직원이자 보험 판매원이었던 아버지가 성가대 지휘자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앤디가 여덟살이 되자 아버지는 4형제로 윌리엄스 브라더스를 결성, 데스모이네스 라디오방송국 오디션에 데려갔다. 라디오 출연을 계기로 시카고, 신시내티, 할리우드까지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당시 이 방송국의 스포츠 중계자가 배우이자 훗날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이다. 레이건은 앤디 윌리엄스를 ‘국보(national treasure)’라고 추켜세웠다고 한다.

윌리엄스 브라더스는 빙 크로스비의 영화 ‘Going My Way’(1944)의 사운드트랙 앨범 ‘Swing on a Star’ 녹음에 참가했다. 이후 MGM영화사에서 주디 갈란드, 준 앨리슨과 함께 노래하면서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쇼로 기립박수를 받으며, 뉴욕과 LA를 비롯 전국에 이름이 알려진다. 윌리엄스 브라더스는 당시 주당 2500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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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여행에 이골이 난 형들은 각자 결혼과 함께 가정을 꾸리며 밴드가 해체된다. 막내 윌리엄스에겐 단 한가지의 선택만이 남아 있었다. 솔로로 전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솔로 데뷔는 화려하지 않았다. 신통치 않은 솔로 가수로 한때 개 음식(dog food)를 먹기까지 했다.  훗날 그는 "사실 먹을 만 했다"고 술회했다. 이후 TV ‘투나잇 쇼’에 2년간 출연하면서 카덴스레코드사와 계약한 윌리엄스는 차츰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60년대 CBS-TV에서 버라이어티 쇼 '앤디 윌리엄스 쇼'를 진행한 후엔 1971년 제 1회 그래미상의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어느덧 전국 투어 콘서트에 지친 윌리엄스는 1992년 컨추리뮤직이 지배하고 있는 미조리주 브랜슨에 정착, 1300만 달러를 들여 극장을 세웠다. 이름은 그의 히트곡에서 따온 ‘문 리버’. 

윌리엄스는 하루 2회씩 일주일에 12회씩 공연하는 열정으로 보이다가 최근에 들어서야 하루 1회 공연으로 제한했다. 그는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인기를 얻었다. 열정적인 골퍼였던 윌리엄스는 말년에도 겨울이면 플로리다 팜스프링스에서 골프를 즐기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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