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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전기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The Path to Paradise)'이 하퍼 콜린스에서 출간됐다. 샘 왓슨(Sam Wasson)이 저술한 이 전기는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의 명장이자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아버지 코폴라의 영광과 좌절, 유토피아적 이상을 탐구했다.  
 
THE PATH TO PARADISE: A Francis Ford Coppola Story 
By Sam Wasson | Harper | 385 pp. | $32.99
 
he New York Times bestselling author of Fifth Avenue, Five A.M. and The Big Goodbye returns with the definitive account of Academy Award-winning director Francis Ford Coppola’s decades-long dream to reinvent American filmmaking, if not the entire world, through his production company American Zoetrope.
 
 Francis Ford Coppola is one of the great American dreamers, and his most magnificent dream is American Zoetrope, the production company he founded in San Francisco years before his gargantuan success, when he was only thirty. Through Zoetrope’s experimental, communal utopia, Coppola attempted to reimagine the entire pursuit of moviemaking. Now, more than fifty years later, despite myriad setbacks, the visionary filmmaker’s dream persists, most notably in the production of his decades in the making film and the culmination of his utopian ideals, Megalopolis.
 
Granted total and unprecedented access to Coppola’s archives, conducting hundreds of interviews with the artist and those who have worked closely with him, Sam Wasson weaves together an extraordinary portrait. Here is Coppola, charming, brilliant, given to seeing life and art in terms of family and community, but also plagued by restlessness, recklessness and a desire to operate perpetually at the extremes.
 
As Wasson makes clear, the story of Zoetrope is also the story of Coppola’s wife, Eleanor Coppola, and their children, and of personal lives inseparable from artistic passion. It is a story that charts the divergent paths of Coppola and his co-founder and onetime apprentice, George Lucas, and of their very different visions of art and commerce. And it is a story inextricably bound up in the making of one of the greatest, quixotic masterpieces ever attempted, Apocalypse Now, and of what Coppola found in the jungles of the Philippines when he walked the razor’s edge. That story, already the stuff of legend, has never been fully told, until this extraordinary book.
https://www.amazon.com/Path-Paradise-Francis-Coppola-Apocalypse/dp/006303784X
 
 
와인메이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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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폴라 와인을 소개합니다

 
“와인으로 버는 돈이 어떤 영화로 번 돈 보다 많다!”
영화 '대부(The Godfather)'의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는 할리우드에 살지 않는다. 
그는 캘리포니아 나파밸리(Napa Valley)의 샤토에 살면서 포도주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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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영화보다 와인에 빠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Photo: Russell Yip, The Chronicle / SF
 
코폴라는 사실 뉴요커였다.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지만, 뉴욕으로 이주해 퀸즈 우드사이드에 살면서 그레이트넥노스고교와 롱아일랜드의 호프스트라대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감독이 되기위해 할리우드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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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My World! 코폴라 와이너리의 입구. 시음회를 열며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있다.  
 
2004년 9월 캘리포니아의 와인산지 나파(Napa)/소노마밸리(Sonoma Valley)를 여행하면서 니바움-코폴라 와이너리에도 들렀다. 
 
와이너리 소유주는 보통 농장주와는 달리 ‘샤토(성)’의 영주처럼 대우받는다. 오퍼스(Opus)나 BV(Beaulieu Vineyard), 케익브레드(Cakebread), 플럼프잭(Plumpjack), 한젤(Hansel), 레드슨(Ledson) 등 유명 와이너리와 코폴라의 와이너리가 구별되는 것은 영화감독으로서의 명성을 ‘프리미엄’으로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점이었다. 그의 화려한 할리우드 경력을 과시하면서 또한 ‘대부’같은 가족애를 보여준다. ‘대부 3’(90)에 출연시킨 후 혹평을 받았던 딸 소피아의 이름을 딴 스파클링 와인과 로제도 출시했다.
 
코폴라 와이너리에선 카버네 소비뇽 진판델, 카버네 프랑, 멀로, 쉬라, 스파클링 와인 등을 생산한다. 몇가지 시음을 해보았는데, 
캘리포니아의 컬트 와인급의 명품와인은 아니지만, 테이블 와인으로는 준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캘리포니아의 보르도'를 꿈꾸는 '대부' 코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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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에서 코폴라 감독. 베레모와 스카프가 그의 트레이드마크. 딸 소피아 코폴라도 감독이다.
 
이탈리아는 푸드와 와인, 오페라의 나라다.
이탈리아계 작곡가의 아들 코폴라 감독이 본격적으로 와인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72년 ‘대부’가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면서.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빅토리안 양식의 맨션에서 살고 있던 코폴라 패밀리는 나파밸리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는 별장으로 오두막집을 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동산업자는 니바움 맨션(Niebaum mansion)을 보여준 것. 정원이 세 개나 딸린 아름다운 맨션에 반해버린 코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에 굴복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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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폴라가 거부할 수 없었던 니바움 맨션. '대부'의 성공 이후 맨션을 별장용으로 사들였다. 사진은 '대부'에서 마론 브란도.
 
1079년 지안-카를로, 로만, 소피아 등 세 아이들을 필리핀까지 데리고 ‘지옥의 묵시록’을 찍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지만, 미국 내에서는 혹평이 쏟아졌다. 당시 코폴라 가족은 재정적으로 위기에 빠졌다. 코폴라는 묵시록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아내 엘리노아에게 “우리에겐 포도가 있으니, 포도주를 만들어볼까?”라고 제안했던 것.
 
1977년 아내, 아이들과 함께 맨발로 포도를 밟으면서 니바움-코폴라 와이너리의 첫 와인이 출시됐다. 
 
Post-Francis-Ford-Coppola-Wines-at-Heinens.jpg 코폴라 와인
이후 조에트로프 영화사를 만들어 제작을 겸해 영화를 만들었지만, 연달아 흥행에 실패했다. 근 20여년간 흥행 가뭄 끝에 대박이 났다. 1992년 ‘브람스토커의 드라큐라’가 비로소 성공을 거두면서 코폴라는 번 돈을 와이너리에 쏟기 시작한다.
 
1995년 잉글누크(Inglenook) 와이너리를 구입했지만, 이름을 쓸 수는 없었다. 코폴라는 루비콘 에스테이트 와이너리로 이름짓고, 와인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한 해에 900만불을 벌어들였고, 4년 후엔 6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코폴라는 고백한다. “난 영화보다 와인으로 더 잘 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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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소노마/나파밸리를 여행하면서 니바움코폴라 와이너리에 들렀다.  사진은 포도를 짜는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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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엔 코폴라의 오스카와 골든글로브상 트로피와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SP
 
잉글누크(Inglenook)는 1879년 핀란드 출신 선장 구스타브 니바움이 시작한 와이너리. 1889년 와인 역사가 리온 D. 아담스는 “프랑스의 샤토 마고에 비견할만한 캘리포니아 와인”이라고 평했다. 잉글누크의 샤블리(Chablis)는 미 레스토랑에서 5대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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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폴라의 와인 레이블엔 때때로 그림도 등장한다.(왼쪽). 오른쪽은 로제 와인 소피아.
 
코폴라가 잉글누크의 트레이드마크를 사들이는데는 꼬박 16년이 걸렸다. 2012년 4월 마침내 거액을 들여 ‘잉글누크’의 이름을 갖게 된다. 
 
그리고, 프랑스 보르도의 전설적인 샤토 마고에서 21년간 와인을 만들어온 필립 바스콜레스를 와인메이커 겸 매니저로 스카웃했다. 이전까지 코폴라의 와인 브랜드는 잉글누크 산하로 들어간다. 루비콘은 보르도 스타일의 블렌드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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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포드코폴라 와이너리: 캘리포니아 게이서빌에 소재한 이 와이너리엔 수영장, 레스토랑이 있는 코펜하겐의 티볼리가든을 본따 조성됐다. 이 와이너리엔 코폴라가 수상한 오스카 트로피, 골든글로브 트로피와 영화 ‘대부’ 촬영에 사용된 책상, 자동차 등 수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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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프리젠츠 라이프스타일: 대가족의 코폴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과테말라, 벨리즈공화국등지에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sf-old&new2-best.jpg 샌프란시스코 금융가에 자리한 니바움-코폴라 카페. 
 
▶카페& 레스토랑: 나파밸리에서 가까운 샌프란시스코에 자신의 영화사 이름을 딴 카페 니바움-코폴라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와인을 제공한다. 배우 로버트 드 니로, 로빈 윌리엄스와 공동으로 운영해오던 루비콘 레스토랑은 2008년 문을 닫았다.
http://www.franciscoppolawinery.com
 
628x471CA8LEZMW.jpg 코폴라(오른쪽)와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Photo: AP
☞Francis Ford Coppola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자동차왕 헨리 포드를 따서 미들네임을 포드로 지었다. 이탈리아계 아버지 카마인은 디트로이트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플루트 연주자로 지냈다. 
 
아버지가 NBC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수석 플루티스트로 발탁되면서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퀸즈의 우드사이드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인형극이 취미였던 코폴라는 15살 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은 후 연극과 영화에 관심을 갖고 8mm 홈 무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레이트넥노스 고등학교 졸업 후 롱아일랜드의 호프스트라 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세르게이 에이젠쉬타인의 ‘10월: 세상을 흔든 10일’을 본 후엔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하고, 할리우드로 갔다. 
 
1970년 ‘패튼 대전차군단’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써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후 ‘대부’(70)로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각색상, 남우주연상(마론 브란도)을 수상한다. 2년 후 나온 ‘대부 2’도 작품상, 각색상, 감독상을 석권했다. 같은 해 ‘도청(The Conversation)’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5년 후 ‘지옥의 묵시록’으로 다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이후 코폴라는 ‘원 프롬더 하트’(82) ‘아웃사이더’(83) ’코튼 클럽’(84) ‘터커’(88) ‘대부 3’(90) ‘프랑켄쉬타인’(94) ‘레인메이커’(97) 등을 연출했지만, 92년 ‘브람 스토커의 드라큐라’를 제외하곤 흥행에서 부진했다.
 
아버지 카마인은 '대부''대부2''지옥의 묵시록'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여동생 탈리아 셔는 ‘록키’의 애인으로 출연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는 그의 조카다.
1963년 결혼한 아내 엘리노어는 다큐멘터리 감독. 장남 지안 카를로는 스피드보트 사고로 22세에 사망했다. 차남 로만 코폴라와 외동딸 소피아 코폴라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으로 찬사를 받은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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