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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58 (9/17-10/11) <4> 노매드랜드 ★★★★★ 
클로이 자오 감독: "노인을 위한 땅은 있다"
오스카 작품, 감독, 여우주연상/ 베니스영화제 황금곰상/ 골든글로브 작품, 감독상
2020 코로나 팬데믹으로 5월 칸영화제 행사는 취소됐지만, 9월 베니스영화제는 오프라인으로 진행됐다. 호주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제 77회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사자상(Golden Lion)은 중국 출신 여성감독 클로이 자오(Chloé Zhao)의 '노매드랜드(Nomadland, 유목민의 땅)'에 돌아갔다. 
 
'노매드랜드'가 온라인과 드라이브인 시어터 상영으로 진행되는 제 58회 뉴욕영화제의 센터피스로 초청됐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2015년 데뷔작 '오빠가 내게 가르쳐준 노래들(Songs My Brothers Taught Me)'로 선댄스와 칸영화제에, 2017년엔 칸영화제를 거쳐 뉴욕영화제에서 카우보이 영화 '라이더(The Rider, 로데오 카우보이)'로 재능이 공인된 인물이다. 그리고, 자오는 세번째 영화로 다시 찾아왔다. 38세의 베이징 출신 클로이 자오 감독은 단 세 작품으로 벌써 거장 대열에 올랐다. 아마도 중국에서 배출한 최고의 여성감독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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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é Zhao(left)/ Joshua James Richards
 
클로이 자오(Zhao Ting, 赵婷) 감독은 1982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영국 기숙사학교를 거쳐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자오는 자신이 아웃사이더로서 독특하게도 황량한 서부에서 소외된 미국인들의 삶을 서정적으로 포착하는 것에 열정을 보여왔다. 또한, 아마추어 배우들을 기용해 연기를 끌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여성으로서, 아시안으로서 자오 감독이 미국인들을 보는 시선은 날카로우면서도, 따사롭고,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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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포스터
 
'오빠가 내게 가르쳐준 노래들'에선 사우스다코타주 인디언 보호구역의 원주민들 이야기를 그렸으며, '라이더'는 사우스다코타의 카우보이와 말의 관계를 멜란콜리하게 포착했다. 그리고, '노매드랜드'에선 집 없이 서부에서 캠핑카로 떠돌며 살아가는 백인 중년여성 펀(Fern, 프란시스 맥도만드)의 고단하고, 고독한 여정을 보여준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제시카 브루더(Jessica Bruder)의 넌픽션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2017)이 원작이다. 컬럼비아대 언론학과 출신 브루더는 노스다코타의 밭에서 서부의 국립공원 캠프그라운드까지 일자리를 찾아서 멕시코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캠핑카로 이동하며 살아가는 노동자(workampers)들을 취재했다. 이 노매드들 중에는 교수, 목사, 맥도날드 간부, 대학교 관리직, 칵테일 웨이트레스, 만성병자, 그리고 2008년 증시 폭락으로 무일푼이 된 소프트웨어 간부까지 직업도, 사연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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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sica Bruder/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
 
제시카 브루더는 3년간 1만 5천마일에 거쳐 서부를 돌면서 사탕무 가공 공장, 아마존 창고 등지에서 캠퍼들과 함께 일하며 생생하게 그들의 삶을 체험했다. 이 책에서 브루더는 "난 불황 후 피난민 수용소를 배회하는 느낌이었다.... 어떤 때는 감옥의 수감자들과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었다. 유쾌한 이야기로 말을 돌리며 '무슨 일로 들어왔나요?'하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수많은 캠퍼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노년층을 25-40% 임금으로 고용하면 연방세금 혜택을 받기 때문에 특히 할러데이 시즌에 대규모로 일자리를 제공해왔다는 것. 이들은 아마존 창고에 비치된 무료 진통제(이부프로펜)를 먹으면서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있었다. 한 걸프전쟁 참전용사는 "난 군대에서 살아났았다. 아마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클로이 자오 감독과 제작팀은 아마존 창고에서 촬영할 수 있었지만, 원작에서 폭로한 아마존의 진통제 이야기는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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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land by Chloé Zhao. NYFF58
 
프로듀서 피터 스피어스(Peter Spears)는 이 책을 배우 프란시스 맥도만드(Frances McDormand)에게 추천했다. 맥도만드는  토론토영화제에서 만났던 클로이 자오를 감독으로 지목했다. 1997년 '파고(Fargo)'에서 만삭의 경찰서장 마지 건더슨 역, 2018년 '쓰리 빌보드(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에선 강간피살된 딸의 범인을 찾아나선 밀드레드 헤이스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차례 수상한 연기파 맥도만드는 '노매드랜드'에선 제작자로 물러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클로이 자오가 각색한 시나리오에서 맥도만드는 주인공 펀(Fern) 역으로 일생일대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오스카의 3회 수상의 기록을 세울지 주목되고 있다.  
 
프란시스 맥도만드는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지 1년만에 입양되어 자랐다. 예일대학원에서 연기를 전공으며, 뉴욕에서 무명 시절 배우 홀리 헌터가 룸메이트였다. 1984년 조엘 코엔(Joel Coen)과 결혼해 파라과이 출신 남아를 입양했다. 코엔 감독은  동생 에단 코엔(Ethan Coen)과 '블러드 심플(Blood Simple)' '레이징 아리조나(Rasing Arizona)' '파고' '바톤 핑크(Barton Fink)'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an)' 등을 연출한 거장이다.   
 
 
노매드랜드 NOMADLAND
 
미국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대륙횡단 여행이나 캠핑카(RV) 국립공원을 누비는 여행을 꿈꾸어봤을 것이다. '노매드랜드'의 펀은 이처럼 로맨틱한 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캠핑카에서 살게된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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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land by Chloé Zhao. NYFF58
 
"2011년 1월 31일 US 집섬(US Gypsum) 회사는 석고보드 수요의 감소로 인해 네바다주 엠파이어의 공장을 설립 88년만에 폐쇄했다. 7월 엠파이어의 우편번호 89405는 제거됐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평생을 일해왔던 공장마저 폐쇄되자 60대의 강인한 여성 펀(프란시스 맥도만드 분)은 유령도시가 된 엠파이어를 떠난다. 흰색 밴에 살림을 싣고, 일자리를 찾아나서면서 아마존 창고, 식당 키친, 비트(beet) 농장, 화장실 청소일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캠퍼 노동자들을 만나게 된다. 
 
들판에서 용변을 보고, 혹한 속에서 덜덜 떨며 외롭게 잠을 청해야하는 비참한 삶이지만, 정착민의 속박 대신 자유가 있다. 펀은 살 곳을 제안하는 친구에게 "나는 홈리스(homeless)가 아니라, 단시 하우스리스(houseless)다. 같지 않아. 걱정하지마"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하지만, 차가 고장났을 때는 생존이 위협된다. 그녀에게 정착인의 삶을 제안하는 캠퍼 데이빗이 나타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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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land by Chloé Zhao. NYFF58
 
서부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펀의 유목민같은 여정을 담은 로드 무비 '노매드랜드'는 물질과 부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게 만든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미니멀리스트가 된 오늘 우리의 일상에서 펀이 선택한 삶은 주목을 끈다. 실제 캠퍼인 밥 웰스가 아들의 죽음을 언급하며 "길 아래에 만나자"는 말은 뭉클하게 남는다. 결국 우리가 타고 있는 유형, 무형의 밴이 폐차가 되듯이 우리의 종착역은 죽음이며, 곧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주인공의 이름 펀(Fern)은 꽃이 피지않는 고사리류 양치식물(羊齒植物, Pteridophytes)이라는 뜻으로  배우체가 포자체와 독립하여 생활한다. 클로이 자오 감독이 의도적으로 명명했다면, 펀의 독립적인 삶과 데이빗이 선물한 화석같은 조각은 고생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자연 속 인간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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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land by Chloé Zhao. NYFF58
 
누군가는 프란시스 맥도만드의 생얼굴이야말로 미 국립공원같다고 말했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의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맥도만드는 고집불통의 독립 여인이지만 생활고와 외로움에 찌든 펀을 화장끼 없는 얼굴과 과감한 몸 연기로 열연했다. 펀은 맥도만드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준 '파고'나 '쓰리 빌보드'의 코믹하게 과장된 캐릭터가 아니라 실존 위기에 놓인 리얼리스틱한 인물이다. 연극 무대 경험이 풍부한 맥도만드는 펀을 절제된 연기로 소화했다. 
 
배드랜드 국립공원(Badlands National Park) 등 펀이 누비는 광활한 서부의 풍광은 마치 동양화 속의 자그마한 인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제작팀은 4개월간 네브라스카, 사우스다코타, 네바다, 아리조나, 캘리포니아에서 캠핑을 하며 촬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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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ing Nomadland 
 
클로이 자오 감독과 뉴욕대 시절 만나 콤비 겸 연인이 된 촬영기사  조슈아 제임스 리처즈(Joshua James Richards)의 수채화풍 카메라가 따사롭다. 테렌스 말릭(Terrence Malick) 감독의 '배드랜즈(Badlands)'와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에 대한 오마쥬처럼 보인다. 루도비코 아이노디(Ludovico Einaudi)의 피아노 솔로와 첼로 듀오가 흐르면서 무겁게 걷는 펀의 뒷 모습, 그녀의 밴이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멜란콜리하게 아름답다. 미국 감독이라면 이런 감성이 나오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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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land by Chloé Zhao. NYFF58
 
클로이 자오 감독은 시나리오, 연출 뿐 아니라 제작, 편집까지 맡았다.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영화관이 6개월 이상 봉쇄됐다. 백신 생산의 불투명으로 아카데미상 시상식 여부도 불확실해졌다. 내년 아카데미상이 열리게 된다면, '노매드랜드'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촬영상까지 기대해봄직 하다. 그렇다면, 클로이 자오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깔아놓은 레드카펫을 밟으며, 오스카 역사상 최고의 성과를 거둔 아시아계 여성감독으로 기록될 것이다.  
 
독립영화의 가도를 도도하게 걸어온 클로이 자오는 할리우드의 콜을 받아 네번째 작품을 연출했다. 마블 만화를 원작으로 안젤리나 졸리, 셀마 헤이약, 돈 리(마동석) 등이 출연하는 수퍼히어로 영화 '이터널스(Eternals)'. 올 할러데이 시즌 개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내년 11월로 미루어졌다. 할리우드가 귀한 재능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노매드랜드'는 뉴욕영화제 상영을 거쳐 12월 4일 개봉된다. 108분. 
 
Nomadland
September 26 at 8pm ET in a four-hour window. 
Brooklyn Drive-In - Queens Drive-In
https://www.filmlinc.org/nyff2020/films/nomad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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