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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브래너가 상상한 셰익스피어의 말년

'모두가 진실(All is True)' ★★★

 

5월 10일 안젤리카필름센터, 파리시어터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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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Is True" directed by Kenneth Branagh

 

*All Is True 예고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영국은 넘길 수 있어도 셰익스피어는 못 넘긴다"고 공언했고, 사상가 토마스 카알라일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랑과 욕망과 질투와 배신, 야망과 운명과 죽음까지 인생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이 담긴 인간군상의 희로애락을 농밀하게 집약한 극작술과 그 황홀한 대사들. 고등교육을 받지 않고, 성서와 고전으로 독학했던 셰익스피어의 사생활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가 가상인물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연극 무대, 영화 스크린에, TV 브라운관, 그리고 학교와 공원, 주차장에까지 수없이 올려졌지만, 정작 그가 누구인지를 탐구한 작품은 미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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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Is True" directed by Kenneth Branagh

 

이에 영국의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가 메거폰을 잡고, 셰익스피어의 말년에 촛점을 맞춘 영화 '모두가 진실(All is True)'를 연출했다. 브래너는 '햄릿' '리어왕' '오델로'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뜻대로 하세요' '한여름밤의 꿈' 등 픽션(허구)의 작가로서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간 평범한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셰익스피어를 탐구했다. 그리고, 자신이 코를 덧붙이고, 이마를 드러내는 분장으로 몸소 셰익스피어를 연기했다. 

 

런던 '글로브 시어터'의 극장주였던 셰익스피어는 1613년 '헨리 8세'를 공연 중이던 극장이 화재로 불타오르자 은퇴를 선언하고 고향 스트랫포드로 귀향했다.  20여년만에 돌아가 아내 앤 해서웨이(주디 덴치 분)와 두명의 딸 수잔나와 주디스가 사는 고향에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정원을 가꾸는 보통 남자로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모습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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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Is True" directed by Kenneth Branagh

 

벤 엘튼(Ben Elton)의 시나리오는 셰익스피어의 쌍둥이 아들 햄넷(Hamnet)을 극의 중심에 두었다. 셰익스피어는 8세 연상의 여인 앤과 속도위반 결혼 후 장녀 수잔나, 쌍둥이 주디스와 햄넷을 낳았다. 그리고, 그는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런던의 극장가에 투신, 배우로 무대에 오르다가 극작가로 성공한다. 그와중 외아들 햄넷은 11살 때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햄넷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시를 써서 보냈었다. 특별히 햄넷을 사랑했던 만큼 상실감과 죄책감이 컸다. 

 

한편, 주디스는 아들을 편애하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 살아남은 쌍둥이로서의 죄의식으로 반항하는 딸이 되었다.  큰 딸 수잔나는 의사와 결혼했지만, 바람나서 동네의 가십거리가 된 상태다. 아내 앤 해서웨이는 무학인데다가 자신을 내동댕이쳤던 남편에 대한 적개심을 피할 수 없다. 무대라는 허구의 세계에서 일상이라는 현실로 돌아간 셰익스피어에게 가족과의 화해는 험난했다. 여기에 어느날 딸 주디스가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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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Is True" directed by Kenneth Branagh

 

최근 여러 영화에서 불타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고, 실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도 불에 타올랐다. '모두가 진실'의 오프닝은 셰익스피어가 글로브 시어터가 불타는 장면을 보는 뒷모습인데, 우연히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Burning, 2018)'의 마지막 화재 장면에서 유가인의 뒷모습을 연상시킨다. 실제 셰익스피어는 1613년 은퇴 후 한 작품도 쓰지 않았다. 작가로서의 삶은 소진한 후 고향 땅으로 돌아가 남편과 아버지로 귀환하는 새로운 삶의 챕터를 상징한다. 

 

케네스 브래너는 분장의 도움으로 셰익스피어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주디 덴치는 8살 연상의 아내 역으로는 너무 늙어 보인다. 실제 브래너와 덴치의 나이는 26살이다. 역시 셰익스피어 배우 출신인 덴치는 어머니로 보일 뿐이다. 영화의 배경은 17세기 요하네스 베르미르(Johannes Vermeer)의 네덜란드 장르 회화에서 친숙한 세트이지만, 두 딸 수잔나(리디아 윌슨 분)와 주디스(캐스린 와일더)는 가부장적인 환경에 반항하는 오늘의 젊은이들처럼 모던한 대사를 내뱉는다.  때문에 분장과 대사의 불협화음으로 셰익스피어 가정의 갈등에 몰두하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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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Is True" directed by Kenneth Branagh

 

반면, 셰익스피어의 후견인이었던 사우스햄턴 백작으로 분한 셰익스피어 배우 이안 맥켈런은 단 두 장면 카메오로 등장하지만,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셰익스피어와 염문설이 있었던 백작과의 대화에서는 야릇한 성적 긴장감이 흐른다. 셰익스피어가 양성애자였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실제 동성연애자인 이안 맥켈런은 브래너보다 21세 연상이며, 사우스햄턴 백작은 셰익스피어보다 9살이 어렸다.

 

그러면, 케네스 브래너는 의도적으로 주디 덴치와 이안 맥켈런을 캐스팅함으로써 셰익스피어 전기영화에 허구성을 명백히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 제목 '모두가 진실'은 '헨리 8세'에 나오는 대사이지만, 브래너는 아이러니하게도 허구라는 영화의 게임의 규칙을 조리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벤 엘튼과 케네스 브래너가 상상한 셰익스피어의 말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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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Is True" directed by Kenneth Branagh

 

'모두가 진실'은 셰익스피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 언어의 마술사 셰익스피어와는 동떨어진 진부한 대사들이 이어지며, 인물들이 상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강점은 셰익스피어가 살던 촛불 시대의 풍경을 포착한 잭 니콜슨(Zac Nicholson)의 반짝이는 촬영과 패트릭 도일(Patrick Doyle)의 멜란콜리한 음악이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의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의 인물화를 연상시키는 클로즈업과 프랑스 화가 조르쥬 라투르(Georges de La Tour, 1593 –1652)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촛불 배경 장면들이 오히려 셰익스피어의 심상을 대변하는듯 하다. 주디 덴치와 이안 맥켈런은 배역보다 나이가 많지만, 연륜이 담긴 얼굴 자체가 카메라를 매혹시키는 풍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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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Is True" directed by Kenneth Branagh

 

또한, 패트릭 도일의 솔로 피아노와 하프가 자아내는 멜로디는 영화의 암울한 톤을 깔아준다. 엔딩 타이틀에 흐르는 "Fear No More"는 셰익스피어의 '심벨린' 대사에 작곡한 노래로 패트릭 도일의 딸 아비게일이 발랄하게 불러 셰익스피어와 딸들의 갈등이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는 여운을 남긴다. 

 

마침내 반항하던 딸 주디스가 결혼하는 날 사위의 스캔달이 터졌다. 셰익스피어는 피로연에서 폭주를 했고, 시름시름 앓다가 1616년 4월 23일 자신의 52세 생일날 눈을 감았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 5월 10일 뉴욕, LA 개봉. 러닝타임 101분.

 

ALL IS TRUE 

ANGELIKA FILM CENTER(18 West Houston St.) https://www.angelikafilmcenter.com/nyc

CITY CINEMAS PARIS THEATRE(4 West 58th St.) https://www.citycinemas.com/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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