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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지구상의 낙원 찾아 타히티 가다

영화 '고갱: 타히티로의 여정(Gauguin: Voyage to Tahi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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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uguin: Voyage to Tahiti    *Gaugin: Voyage to Tahiti 예고편



"여기(*파리)엔 그릴 가치가 있는 얼굴도, 풍경도 더 이상 없다." 

-폴 고갱-


증권 거래인으로 일하며,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주말화가' 폴 고갱(Paul Gauguin, 1948-1903)은 회사를 그만 두고, 전업 화가가 됐다. 그리고, 43세에 파리의 화단에 대해 이렇게 죽음을 선언하더니 부인과 다섯아이를 버리고 태평양 한가운데 섬 타히티(Tahiti)로 갔다. 인공적이며, 문명화한 유럽을 탈출해 원시 낙원을 찾아 타히티로 간 고갱의 여정은 아마도 이 세상 중년 남성들의 판타지가 아닐까? 


안소니 퀸이 고갱으로, 커크 더글라스가 고흐로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Lust for Life'(1956)는 안소니 퀸에게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안겨주었다. 어디까지나 반 고흐의 전기 영화였다. 도날드 서덜랜드가 고갱으로 분한 영화 '문앞의 늑대(The Wolf at the Door, 1986)'도 나왔다. 이번엔 고갱의 조국 프랑스에서 제작된 고갱 영화 '고갱: 타히티로의 여정(Gauguin: Voyage to Tahiti)'이 제작, 개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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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uguin: Voyage to Tahiti


에두아르드 들뤽(Edouard Deluc)이 메거폰을 잡고, 뱅상 카셀(Vincent Cassel)이 고갱으로 분한 이 영화는 1891년부터 1893년까지 고갱의 타히티 시절에 촛점을 맞추었다. 시나리오는 고갱이 쓴 여행일기 '노아노아(Noa Noa, 향기)'에서 영감을 받아 허구를 가미했다. 하지만, 에세이 자체는 자존심이 강했던 고갱이 다소 과장한 부분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갱이 미지의 낙원을 찾아 1만 마일, 63일간 항해 끝에 도달한 프렌치 폴리네시아(French Polynesia)는 이미 프랑스 제국의 문명에 오염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갱은 더 깊숙히 정글 속으로 들어갔고, 타히티에 정착하게 된다.  


영화 '고갱'은 타히티섬의 풍광 속에서 원주민들의 일상과 고갱을 사로 잡은 소녀 테후라과 살며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는 고갱의 치열한 삶을 그린다. 고갱은 처자식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에덴 동산을 찾아 현실을 도피한 이기주의자이며, 화가로서 성공을 꿈꾸었던 이상주의자다. '블랙 스완(Black Swan)'의 뱅쌍 카셀은 고갱 내면의 갈등을 포착하려고 하지만, 그의 클로즈업 위로 흐르는 워렌 윌리스(Warren Ellis)의 센티멘탈한 솔로 바이올린이 연기를 압도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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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이 첫번째 타히티 거주 시절 그린 회화들.


게다가 허구적인 스토리로 고갱의 뮤즈이자 아내였던 10대 소녀 테후라(투헤이 아담스 분)와 동네 원주민 총각의 삼각관계가 영화를 신파조로 만든다. 고갱이 프랑스에 두고 온 다섯아이와 가족에 대한 감정이 말살되어 있다. 감독은 고갱만큼이나 이기적인 것일까? 아니면, 게으른 것일까?


들뤽 감독은 고갱이 새로운 화풍을 찾아 나서는 의지보다 로맨스와 타히티의 풍광에 더 집착한듯 하다. 때문에 지금은 유명 관광지가 된 타히티 섬과 정글, 교회를 오가는 원주민들, 물놀이를 즐기며, 낚시를 하는 고갱과 어린이의 모습이 다분히 식민지 제국의 시선이며, 현대적 감각이다. 1890년대 초 고갱 시대의 풍광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를 탓해야할 지, 연출가를 탓해야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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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uguin: Voyage to Tahiti


고갱의 팬들이 원하는 것은 타히티 시절 제작한 그림과 조각들일 것이다. 테후라를 모델로 그리는 과정과 목조각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깊이가 없다. 고갱 영화로는 갈증이 날 정도로 부족하다. 마지막 엔딩 타이틀에서 타히티 그림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완되지 않는다. 


고갱이 파리의 화가 거주지역 몽마르트를 버리고, 굳이 타히티로 간 이유는 정신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고갱은 엄마가 페루계였고, 프랑스 출신 기자였던 아버지는 고갱, 아내와 함께 페루로 가는 배에서 사망하고 만다. 그후 어린 고갱은 어머니와 리마에서 6세까지 산다. 또한, 청년 고갱은 17세에 선원이 되어 7년간 바다를 떠돌았다. 


페루의 잉카 문명은 고갱에게 뿌리였을 터이고, 그는 유랑자였으며, 타히티는 그 이상향이었을 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때문에 고군분투 연기하는 뱅상 카셀의 연속적인 클로즈업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카셀에게서 고갱이 보이지 않고, 카셀만 보인다고나 할까.


또한, 들뤽 감독은 고갱의 제 2 타히티 시대와 그의 말년을 과감하게 생략해버렸다. 고갱은 1893년 파리로 돌아갔다가 2년 후 타히티로 다시 돌아가 1901년 북쪽 마르퀘사스섬에서 여생을 보내다 2년 후, 54세에 사망한다. 그래서 영화 '고갱'은 미완성의 회화처럼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감독 자신을 비롯, 4명이나 되는 시나리오 작가들(Edouard Deluc, Etienne Comar, Thomas Lilti, Sarah Kaminsky)로 배가 산으로 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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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1897, Museum of Fine Arts, Boston


서머셋 모옴의 소설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 Penses, 1919)'의 모델이었던 고갱의 삶은 우리가 '달'이라는 이상향과 '6펜스'라는 현실에서 늘 갈등하게 되는 일상에서 드라마틱한 소재인데, 영화는 아쉽기만 하다. 1시간 41분.


고갱의 타히티 섬 시대에 대해서는 1967년 CBS-TV 다큐멘터리 'Gauguin In Tahiti: Search For Paradise 1967'가 깊이있게 고갱의 작품과 내면 세계를 다루고 있다. 나레이션을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아버지, 나타샤 리차드슨의 외할아버지인 명배우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경이 맡아 품위있게 해설한다.


"밖에서 본 것을 작업실에 와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것을 상상력으로 그렸다. 완전한 자유로, 의미없는 디테일을 제거하고 나의 색깔로 칠했다." -고갱-


이때부터 모던 아트는 시작됐다. 고갱은 아방가르드, 표현주의와 상징주의에 영향을 끼쳤으며, 피카소와 마티스도 영향을 받게 된다.



*Gauguin: Voyage to Tahiti' 상영관

@콰드 시네마, 파리 시어터

https://quadcinema.com/film/gauguin

https://www.citycinemas.com/paris/film/gauguin-voyage-de-tahiti



delfini2-small.jpg *고갱이 타히티로 간 까닭은 MoMA 특별전 'Gauguin: Metamorphose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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