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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잠에서 깨어난 러시아 걸작

나는 쿠바다 I am Cuba ★★★★★ 

 

"내가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보았더라면, 나의 영화 경력은 훨씬 쉬웠을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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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Cuba/Ja Kuba/Soy Cuba, 1964

 

도날드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이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오늘, 1960년대 미소의 냉전은 빛바랜 역사다.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을 거친 쿠바는 1991년 소련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반세기 이상의 적국 관계였다. 플로리다 키웨스트에서 보이는 쿠바섬은 미국과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그리고, 2015년 버락 오바마와 라울 카스트로의 국교 정상화가 됐다. 우리는 국제 사회에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우방도 없는 이데올로기의 종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1962년 존 F. 케네디의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던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사이에 미사일 위기로 제 3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갔다. 그 냉전의 절정기에 만들어진 러시아와 쿠바 합작영화 '나는 쿠바다(I am Cuba/Ja Kuba/Soy Cuba, 1964)'가 2월 15일 맨해튼 필름 포럼(Film Forum)에서 1주일간 상영된다. 쿠바 개봉 후 30여년간 방치되었다가 발굴되어 '택시 드라이버'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대부'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후원 하에 4K로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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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Cuba/Ja Kuba/Soy Cuba, 1964

 

1950년대 말 하바나를 배경으로 한 흑백영화 '나는 쿠바다'는 공산주의 선전영화다. 하지만, 이념 전쟁이 끝난 지금 이 영화는그 자체로 아름다운 영상시(Cine Poem)이다. 독재 치하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황홀한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는 촬영의 마술, 시적으로 아름다운 해설과 대사로 영화사상 위대한 걸작으로 만든다. 테마는 무겁지만, 스크린은 춤을 추듯 유려하게 흐른다.  

  

'나는 쿠바다'는 '학은 날아가고(The Cranes Are Flying, 1958 )'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마하일 칼라토조프(Mikhail Kalatozov) 감독이 메거폰을 잡고, 러시아 시인 예브게니 예브투첸코(Yevgeny Yevtushenko)와 쿠바 시인 겸 감독 엔리케 피네다 바넷(Enrique Pineda Barnet)이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썼으며, 촬영은 칼라토조프 감독의 콤비인 세르게이 우르세프스키(Sergei Urusevsky)가 맡았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배역을 갖고 있는 등장인물처럼 존재감이 있다. 관객으로 하여금 묘기를 부리는 카메라의 시선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하며, 그것은 당시 사회주의 신봉자들의 수호신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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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Cuba/Ja Kuba/Soy Cuba, 1964

 

화가 출신 세르게이 우르세프스키의 헬리콥터에 매달린 카메라는 검푸른 바닷가에서 하이얀 비치를 거쳐 야자수 열대 섬의 십자가로 이동하며 영화를 시작한다. 

 

"나는 쿠바다. 한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곳에 발을 디뎠다. 그는 일기장에 썼다. "이곳은 인간의 눈으로 본 가장 아름다운 땅이다." ... 당신에게 나는 카지노, 바, 호텔이다. 나는 땅을 팔았다. 당신의 집은 이제 당신 것이 아니다. 나는 피델이다." 

 

영화는 네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첫 챕터는 하바나의 클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국 자본주의, 매춘, 범죄, 그리고 빈곤의 문제를 보여주며, 두번째는 시골 사탕수수 소작농이 거대 자본에 농지가 팔리면서 겪는 비극, 세번째는 바티스타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대학생들의 항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스트로가 게릴라로 활동하는 깊은 산 속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칼라토조프 감독과 두 나라의 시인 출신 시나리오 작가들(예브투첸코, 바넷)은 혁명전야 쿠바의 비참한 모습을 한편의 거대한 서사시처럼 들려준다. 각 챕터를 이어주는 나레이션에는 쿠바를 의인화한 여성의 시적인 해설이 들려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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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Cuba/Ja Kuba/Soy Cuba, 1964

 

-바티스타 정권으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었고, 하바나는 미국 자본의 침투로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여인들은 미국인들에게 몸을 팔며 살아간다. 클럽에선 폴 앵카의 노래 'Crazy Love'가 흑인 가수의 멜란콜리안 스페인어 버전 'Loco Amor'를 노래한다. 혁명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꽃장수 청년의 애인 마리아는 '베티'라는 이름으로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접대부다. 어느날 마리아는 유대계 남자를 꼬방동네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시골의 사탕수수밭, 주름진 늙은 아버지 페드로가 밭을 일구며 오누이를 키우고 있다. 어느날 땅이 거대한 외국 자본에 팔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비는 자식들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고, 분노의 불을 지른다.(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자본주의 사회 속의 분노다.) 오누이는 아버지의 결단을 모른 채 마을에서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주크박스에서 미국 팝송을 들으며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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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Cuba/Ja Kuba/Soy Cuba, 1964

 

-하바나의 드라이브인 극장.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독재자 바티스타의 선전영화가 돌아가고 있다. 이에 분노한 청년들이 소동을 일으킨다. 한편, 쇼핑가에 미 해군들이 떼를 지어 쿠바 여인을 희롱한다. 여기에 대학생 청년 엔리케가 나타나 그녀를 도와준다. 그는 경찰간부 암살 업무를 맡은 혁명 조직단의 일원이다. 건물 옥상에서 암살을 시도하려다가 가족의 단란한 모습에 포기하고 만다. 때문에 조직단의 비판을 받지만, 시위에 전방에 나서다가 경찰과 대치하던 중 숨을 거둔다. 순교한 엔리케의 장례식이 성대하게 펼쳐진다.

 

-바티스타 정권이 퍼트린 카스트로 사망설은 거짓임이 드러났고, 혁명군은 산속에서 게릴라전 중이다. 카스트로가 숨어있는 산으로 알려진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부인, 아이들과 소박하게 살고 있는 마리아노의 집에 게릴라군이 찾아온다. 마리아노는 더 나은 생활을 위해 혁명군에 가담하라는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얼마 후 정부군이 산을 폭파하며 마리아노는 집과 아들까지 잃는다. 이제 깨어난 마리아노는 혁명군의 리더가 되어 희망을 품고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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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Cuba/Ja Kuba/Soy Cuba, 1964 

 

우르세프스키의 핸드헬드 카메라와 트래킹 숏, 크레인 숏은 하바나의 호텔 옥상의 풀장 속으로, 꼬방동네 징검다리를 건너며, 사탕수수 속으로, 최루탄 터지는 시위대 속으로, 시가 공장 안으로, 건물 밖 고공을 종횡무진 비상한다. 그의 와이드 앵글 숏은 쿠바의 비참한 서민, 농부, 저항군들의 시름과 주름까지 포착한다. 그러면서 1917년 레닌이 이루었던 러시아 혁명처럼 쿠바혁명의 당위성을 호소하고 있다. 챕터간 브리지에 쿠바로 의인화한 여성의 시적인 나레이션이 깔린다.

 

'나는 쿠바다'가 선전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이유는 지난날 한국의 친미, 빈곤과 독재의 역사와 오버랩되기 때문일 것이다. 공산주의는 이미 패망했으며, 쿠바는 빈티지 문화를 보존한 여행지로 이제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이념을 거세하고 볼 필요가 있는 아름다운 영화다. 1950년대 미지의 하바나, 그 아름다운 풍광과 인간들의 삶을 서정적으로 마술적으로 유려하게 포착한 위대한 시네마다. 최면에 빠지게 만드는 위대한 영상시 '나는 쿠바다'를 놓쳤다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처럼 후회했을 것이다. 필자가 영화학도였던 시절 보았더라면, 감독이 되고싶어 영화가를 서성거렸을 것이다. 1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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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Cuba, 1964

A MILESTONE FILMS RELEASE

Presented by Francis Ford Coppola and Martin Scorsese

Film Forum: 209 West Houston St. 

https://filmforum.org/film/i-am-cu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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