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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 2019 (9/27-10/13) 

<7> 에로스와 학살 Eros + Massac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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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인 성(sex)과 폭력(violence)은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두 기둥이다. 뉴욕영화제 메인 프로그램 부문에 초대된 29편의 영화 중 두편은 성과 폭력의 극단을 보여주는 문제작이다. '에로스(Eros)와 학살(Massacre)'이라고나 할까. 


스페인 감독 알버트 세라(Albert Serra)의 시대극 '자유(Liberté/ Freedom)'는 귀족들이 한밤중 숲속에서 벌이는 정사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특R 등급 영화이며, 포르투갈 출신 클레버 멘도사 필로(Kleber Mendonça Filho) 감독의 '바쿠라우(Bacurau)'는 '폭력의 명장' 퀜틴 타란티노 감독을 무색케할 정도로 피가 낭자하는 복수극이다.


'자유'는 올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부문에서 심사위원특별상(Prix spécial du jury)을 수상했으며, '바쿠라우'는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상(Prix du Jury)을 공동으로 수상한 작품이다. 두 감독 모두 전작으로 2016 뉴욕 영화제에 초대된 바 있다. 이 두 영화는 관객의 취향과 인내심에 따라 흥미진진한 작품일수도, 혹은 역겨운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유 Liberté ★★★☆

원초적 본능, 데카당트, 엑스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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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té/ Freedom by Albert Serra


알버트 세라 감독은 2016 뉴욕영화제에 초대됐던 '루이 14세의 죽음(The Death of Louis XIV)'에서 루이 14세의 최후를 3대의 카메라로 밀도높고, 디테일하게 포착했다. 조르쥬 드라 투르와 토마스 잇킨스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이었다. '자유'에서도 회화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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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té/ Freedom by Albert Serra


1774년 프랑스 궁정에서 쫓겨난 귀족들이 보름달 밤 하늘 아래 숲속에서 벌이는 방탕한 정사가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영화는 한 귀족이 루이 15세의 암살 미수범이 네마리의 말에 사지가 묶인 채 갈기갈기 찢겨 살해당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한다. 인간의 잔인한 폭력성이 섹스와 결합해 새디즘(sadisom, 가학증), 마조히즘(masochism, 피학증)이 된다. 


알버트 세라의 카메라는 피핑 톰(peeping Tom)이 되어 귀족들의 성적인 욕망을 낱낱이 포착한다. 성기, 엉덩이, 항문 클로즈업에서 자위, 소변, 학대, 동성애, 집단 성교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성행위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일본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충격적인 영화 '감각의 제국(In the Realm of the Senses/ 愛のコリーダ, 1976)'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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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té/ Freedom by Albert Serra


영화 '자유'는 132분이라는 러닝타임(물리적 시간)과 영화적 시간(한밤중에서 동트기 전까지)이 일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감독은 배경 음악을 완전히 배제하고, 숲속의 귀뚜라미 등 곤충의 소리와 귀족들의 속삭임, 성교와 자학 행위에서 나오는 동물적인 괴성과 신음소리를 음악으로 양념하지 않은 채 날것으로 들려준다. 마지막, 날이 밝아오면서 엔딩 타이틀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아이러니하게 안도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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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té/ Freedom by Albert Serra


'자유'의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미술관에서 보아온 로코코 회화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나 프랑소아 부셰(François Boucher)의 회화에 등장하는 로맨틱하고, 달콤한 '낮의 귀족'이 아니다. 귀족들의 '밤의 세계'는 본능을 이성을 장악하는 방탕한, 데카당트한 세상이다. 숲속의 귀족들에게 자유는 폭력과 성이 억제되지 않는 동물의 왕국이다. 


근래 #MeToo로 추락한 미국의 엘리트들, 부와 명예, 파워를 지닌 현대의 귀족들이다. 할리우드 프로듀서 하비 와인스틴, 감독 브라이언 싱거, 배우 케빈 스페이시를 비롯, CBS 회장 레슬리 문베스, TV 호스트 맷 라우어와 찰리 로즈, 뉴욕시티발레의 단장 피터 마틴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제임스 리바인과 수퍼스타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 화가 척 클로즈,  스타 셰프 마리오 바탈리까지 성욕으로 추락한 인물들이다. 영화 '자유'의 귀족들과 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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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té/ Freedom by Albert Serra


알버트 세라 감독은 이 원초적인 충동과 본능을 집요하게, 관음적으로 보여준다. 슬픈 육체,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영화 '자유'는 포르노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의 심사위원들은 특별상을 헌사했다. 그리고, 알버트 세라는 이 시대 가장 도발적이며, 혁명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132분.  9월 28일 오후 9시, 29일 오후 8시 30분, 10월 13일 오후 7시 30분. https://www.filmlinc.org/nyff2019/films/liberte



바쿠라우 Bacurau ★★★

브라질 부족 마을, 황야의 무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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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urau by Kleber Mendonça Filho


2016 뉴욕영화제에서 상영된 클레버 멘도사 필로 감독의 '아쿠아리스(Aquaris)'는 브라질의 부동산 개발문제를 비판했다. 신작 '바쿠라우(Bacurau)'는 브라질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서부극(western)이다. 상상의 지명인 바쿠라우는 포르투갈어로 올빼미쏙독새(Nightjars/ Nighthawks)라는 뜻이라는데, 포르투갈의 국가 대표 음식인 소금에 절여서 말린 대구 바칼라우(bacalao)와 유사한 발음이다. 시나리오도 쓴 공동 감독 클레버 멘도사 필로와 훌리아노 도르넬레스(Juliano Dornelles)가 의도적으로 정한 이름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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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urau by Kleber Mendonça Filho


영화는 시대 배경을 가까운 미래로 설정했지만, 빈티지 화면처럼 보이는 외딴 시골이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듯한 느낌은 바쿠라우가 보잘 것 없는 마을이기 때문일 것이다. 빈곤, 식수문제와 의료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젊은 여성 바바라는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 바쿠라우로 가는 중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94세 할머니는 모계사회 바쿠라우의 어머니였다. 그 옆의 트럭은 관을 가득 싣고 있다. 이것이 후반에 벌어질 활극을 예고한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축제에 가깝다. 소박한 마을이지만, 방문객은 거의 없지만, 뮤지엄까지 갖출 정도로 주민들의 자부심은 강하다. 마을 사람들은 야만스럽고, 부패한 시장 후보자 토니 주니어의 가짜 선심에 일치단결해 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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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urau by Kleber Mendonça Filho


어느날 혈연, 지연으로 결속된 바쿠라우에 위기가 찾아온다. 바쿠라우 마을이 구글 지도에서 사라져버린다. 또한, 총격이 시작되며, 주민들이 하나 둘씩 죽어간다. 비행접시 모양의 드론이 날면서 무고한 주민들을 살해하는 집단은 중무기로 무장한 미국인들이다. 마이클(우도 키어 분)이 지휘하는 그들에게 살인은 컴퓨터 게임, 오락에 가깝다. 


지도에서 조차 없어진 바쿠라우 주민은 본능적으로 생존의 위험을 느낀다. 이들에겐 복수극의 영광과 상처를 담은 과거가 뮤지엄에 남아있다. 주민들은 레지스탕스 청년대 룽가 일당을 소환하고, 바카라우 주민들은 뭉쳐서 마이클 일당의 디지털 전쟁에 아날로그로 대항한다. 그리고, 피의 학살극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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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urau by Kleber Mendonça Filho


'바쿠라우'는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의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7)'와 퀜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 2012)'를 무색케하는 브라질 서부극이다. 여기에 브라질의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총기규제 문제까지 경고한다. 독일 출신 컬트 배우 우도 키어(Udo Kier)가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아쿠아리스'에서 열연했던 '거미 여인의 키스'의 전설 소냐 브라가(Sônia Braga)가 알콜중독 의사로 중후한 연기를 보여준다. 130분. 10월 1일 오후 8시 45분, 10월 2일 오후 6시. https://www.filmlinc.org/nyff2019/films/bacurau



delfini2-small.jpg *2016 뉴욕영화제, '아쿠아리스(Aquaris)' 

*2016 뉴욕영화제, '루이 14세의 죽음(The Death of Louis X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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