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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


칼라스에 의한 마리아: 그녀 자신의 말

Maria by Callas: In Her Own Wor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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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by Callas: In Her Own Words 


누군가는 오페라 역사는 BC/AC로 나뉘어진다고 말했다. Before Callas/ After Callas.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가 오페라 역사를 바꾼 성악가라는 것. 지휘자이며 작곡가인 레오나드 번스타인은 마리아 칼라스를 "오페라의 성서(The Bible of Opera)"라고 극찬했다.


'20세기 오페라의 여신' 마리아 칼라스는 자신이 출연했던 오페라 속의 여주인공들만큼이나 비극적인 삶을 살다갔다. 그녀가 사망한 지 근 40년 마리아 칼라스에 관한 도서와 영화도 무수히 나왔다. 최근 개봉된 톰 볼프(Tom Volf) 감독의 다큐멘터리 '칼라스에 의한 마리아(Maria by Callas)'는 칼라스 지인들의 증언이 아니라 마리아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그녀에 충실한 영화다.  


*Maris by Callas 예고편


002.jpgMaria by Callas: In Her Own Words 


'칼라스에 의한 마리아'는 일기, 편지, 사진, TV 인터뷰, 미출판 회고록, 이제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16밀리 홈무비, 그리고 칼라스의 공연을 통해 마리아 칼라스는 누구인가를 집중 조명했다. 편지와 일기의 해설은 칼라스와 유사한 음색의 메조 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Joyce DiDonato)의 음성으로 들려준다. 


덕분에 '칼라스에 의한 마리아'는 "변덕스러운 디바"라는 언론의 혹평에 시달렸던 칼라스 자신의 변론처럼 보인다. '세기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평판도 성차별주의의 소산일 가능성이 크다. 칼라스 시대 공연계, 언론계가 남성들의 서클이 아니었나?    


"내 안에는 두 사람이 있어요. 나는 마리아가 되고 싶지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칼라스가 있지요." 


톰 볼프의 다큐멘터리는 칼라스의 TV 인터뷰로 이렇게 시작한다. 때문에 '칼라스에 의한 마리아'는 공적인 오페라 가수와 평범하게 사랑하며 살고 싶어하던 사적인 마리아의 적나라한 모습을 고스란히 담는다. 대신 그녀의 삶에서 중요한 미운 오리새끼같던 어린시절, 엄마와의 관계, 체중 감량, 첫남편 등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한편, 칼라스의 연인이었던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 그가 재혼한 재클린 케네디 스토리를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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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by Callas: In Her Own Words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큐멘터리는 마리아 칼라스 자신의 내면을 가장 충실하게 담은 영화로, 마치 자화상처럼 느꺼진다. 오페라팬들은 그녀의 대표 아리아 5곡을 전곡 들으면서 보다 친밀하게 전설이 된 아티스트 마리아 칼라스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특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단장 루돌프 빙과의 불화로 인해 해고되었다가 1965년 7년만에 메트에 '토스카'로 복귀했을 때 오페라하우스 앞에 4일간 입석표를 사기위해 줄선 뉴요커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전날 오후 4시부터 줄 선 청년, '마리아'이기에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청년, 당시엔 젊은이들이 오페라를 즐겼고, 칼라스는 수퍼스타였다. 


다큐멘터리는 마리아 칼라스의 명 아리아 5곡을 콘서트 영화처럼 전곡 들려주어 팬들에겐 청량제다. 오프닝은 로마에서 이탈리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막 후 취소한 악명높은 공연, 벨리니 작곡 오페라 '노르마(Norma)' 중 아리아 "정결한 여신(Casta Diva)"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언론과 여론의 비난 속에서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중 비올레타의 "지난날이여 안녕(Addio del passato)”, 오나시스와의 사랑이 싹틀 때는 비제의 '카르멘(Carmen)' 중 "사랑은 반항하는 새(L'amour est un oiseau rebelle)"가 흐른다. 그리고, 오나시스에게 실연당하고, 말련의 외로운 칼라스의 모습은 푸치니의 '토스카(Tosca)' 중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를 보여준다. 마지막 피날레엔 지아니 스키키의 3부작 오페라(Il Trittico)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가 자막과 함께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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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by Callas: In Her Own Words 


마리아 칼라스는 집안의 미운 오리새끼에서 오페라계의 백조로 환생한 여인이었다. 끊임없는 지적인 탐구력으로 성악을 목소리를 수련했으며, 체중을 80파운드나 줄이며 환골탈태(換骨奪胎) 해 무대 위의 카리스마와 함께 바그너와 벨칸토를 종횡무진하는 전무후무한 프리마 돈나로 자리매김했다. 

   

칼라스는 그리스 출신 소프라노로 알려졌지만, 뉴욕에서 태어났다. 1923년 뉴욕의 그리스계 이민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리아 안나 세칠리아 소피아 칼로거로풀러스(Maria Anna Cecilia Sofia Kalogeropoulos). 하지만, 뉴욕 출생증명서엔 소피 세칠리아 칼로스로 되어 있다. 이후 성을 부르기 쉽도록 칼라스(Callas)로 바꾸게 된다.


부모 사이가 나빴고, 마리아는 원치 않던 아이였기에 사랑받지 못했다. 엄마는 마리아의 노래 재능을 일찌기 알아보고, 마리아가 13살 때 아테네로 이주해 성악 교육을 시켰다. 하지만, 가난에 시달렸던 엄마는 전쟁 중 마리아에게 병사들을 만나서 돈을 벌어올 것을 부추긴 비정한 여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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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Callas and Audrey Hepburn on the set of How to Steal a Million, 1966


20대에 칼라스의 몸무게는 200파운드(91kg)에 육박했다.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를 촬영하던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모델이었다. 칼라스는 1년 사이 무려 80파운드(36kg)를 감량하는데 성공한다. 한때 칼라스를 '괴물처럼 뚱뚱하다'라 표현했던 메트오페라의 루돌프 빙 단장은 "놀랍게 날씬하고, 눈부신 여성"이라고 극찬했다. 


아버지뻘의 백만장장 남편 지오바니 바티스타 메네기니(Giovanni Battista Meneghini)와의 관계는 아리스토틀 오나시스를 만나며 깨진다. 오페라계의 오드리 헵번으로 환생한 칼라스는 바람둥이 오나시스에게서 '평생의 사랑'을 찾았지만, 재클린 오나시스를 선택한 그로부터 버림받게 된다. 하지만, 오나시스는 말년에 "결혼은 실수였다'며 칼라스의 품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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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by Callas: In Her Own Words 


말년에 성대가 급격히 감퇴한 칼라스는 줄리아드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하고, 세계 투어 콘서트도 열었다. 1974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당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선사했고, 그해 삿포로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열었다. 마리아 칼라스는 오페라 '토스카(Tosca)'의 명 아리아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다"처럼 살다가 1977년 심근경색으로 파리에서 눈을 감았고, 유해는 에개해에 뿌려졌다. 그녀나이 53세였다. 러닝타임 113분. 맨해튼 플라자 호텔 인근 파리 시어터(Paris Theater)에서 상영한다.

https://www.citycinemas.com/paris/showtimes-and-tickets/now-playing


 *Callas (1988), a documentary by Tony Pal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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