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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DOC NYC (11/6-15)

카포티 테이프 The Capote Tapes ★★★★

수퍼스타 소설가 트루만 카포티는 왜 추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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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pote Tapes by Ebs Burnough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에드워드 불워-리튼(Edward Bulwer-Lytton)-


20세기 미국의 위대한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Truman Capote, 1924-1984)는 펜으로 돈과 명예를 얻었고, 펜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그의 극적인 삶은 2005년 베네트 밀러 감독의 전기 영화 카포티(Capote)'로 제작됐으며, 주인공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Philip Seymour Hoffman, 1967-2014)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등 연기상을 휩쓸었지만, 46세에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카포티의 저주일까?


카포티는 오드리 헵번 주연 영화로 더 유명한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과 걸작 범죄소설 '인 콜드 블러드(In Cold Blood)'로 한 세대를 풍미하며, 뉴욕 상류사회의 스타로 군림했었다. 하지만, 60세 생일 한달 전에 약물 중독으로 인한 간질환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말년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처럼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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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pote Tapes by Ebs Burnough


트루만 카포티의 영화같은 삶을 탐구하는 엡스 버나프(Ebs Burnough) 감독의 다큐멘터리 '카포티 테이프(The Capote Tapes)'가 2019 뉴욕 다큐멘터리 영화제 폐막작 (11/14, 7 PM @SVA Theatre)으로 상영된다. 사실 트루만 카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 이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글쓰기보다는 파티와 방송 출연을 즐기며 살았다. 동성연애가 터부시 되었던 그 시절 자그마한 체구, 솜사탕같은 목소리와 독특한 제스추어와 유머로 뉴욕 사교계와 TV 토크쇼를 누볐다.


엡스 버나프 감독은 널리 알려진 트루만 카포티를 색다른 앵글로 조명하기 위해 새로 발견된 그의 녹음 테이프를 다큐멘터리의 큰 뼈대로 사용했다. 문예지 '파리 리뷰(The Paris Review)'의 창립자 조지 플림튼(George Plimpton)이 카포티 사망 이후 카포티의 친구들과 행한 인터뷰 테이프를 통해 카포티를 그려나간다. 조지 플림턴은 1997년 출간하게될 카포티 전기 'Truman Capote: In Which Various Friends, Enemies, Acquaintances, and Detractors Recall His Turbulent Career' 자료 수집차 인터뷰를 진행했고, 버너프 감독은 그의 미망인으로부터 사용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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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카포티의 소년 시절과 길러준 이모 수크(Sook).


다큐멘터리 '카포티 테이프'에서 주목을 끄는 인물은 카포티가 입양한 딸 케이트 해링턴(Kate Harrington)의 인터뷰다. 해링턴의 아버지는 은행 매니저로 카포티의 애인이기도 했다. 그의 가정이 파탄에 이르자 카포티는 케이트를 입양했다. 카포티는 해링턴과 맨해튼에서 함께 살면서 일기를 꼬박꼬박 쓰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리고, 상류사회의 문을 하나씩 열어주게 된다. 할리우드 의상디자이너이기도 했던 해링턴은 가족으로서 카포티의 일상과 목격담을 들려준다. 


엡스 버나프 감독은 카포티의 말년에 영향을 준 미완성 소설 '응답받은 기도(Answered Prayers)'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춘다. 젊은 게이 작가 트루만 카포티는 뉴욕 상류사회 여인들의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던 파티 보이였다. 카포티는 그 여인들은 '백조'라고 부르며, 절친이 됐고, 그들의 사생활과 푸념에 귀를 기울였다. CBS 사장 부인 베이브 페일리, 재클린 케네디의 동생 리 래지윌, 윈스턴 처칠의 며느리 파멜라 처칠, 배우 미아 패로 등 뉴욕의 백조들은 카포티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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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카포티의 흑백 무도회에 대해 보그지에 기고했다.  Vogue, January 1967, courtesy Yale Library


1966년 11월 28일 카포티는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성대한 흑백 무도회(Black and White Ball)을 열어 화제가 된다.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 케서린 그레이함을 위해 미국과 유럽의 상류사회 인사 540명을 초청한 전설적인 파티였다. 뉴욕타임스는 이 무도회 참석자들의 명단까지 실었다.


그러나, 유명세를 누리던 카포티는 한동안 작가로서 도착상태에 빠졌다. 그는 캔사스주 가족 집단 살해사건 취재 후 쓴 넌픽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로 백만장자가 됐듯이, 이번엔 뉴욕 상류사회의 스캔달을 소설에 쓸 요량이었다. 출판사로부터 거액의 선금도 받고, 뉴욕 백조들로부터 전해들은 추문을 소설로 써나갔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걸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얻은 새 소설의 제목이 '응답받은 기도'였다. 그리고, 이 소설을 악마와의 결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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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pote Tapes by Ebs Burnough


카포티는 마감을 지연하고 지연하다가 마침내 1975년 잡지 '에스콰이어(Esquire)'지에 완성된 한 챕터 '라 코테 바스크(La Côte Basque, 1965)'를 발표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누군지 알만한 뉴욕 귀족들의 정사, 살인, 스캔달... 작가 트루만 카포티는 그가 연모했던 백조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며 펜으로 무참히 난자했다. 누구라도 아리스토틀 오나시스가 재키 케네디의 여동생과 연애하다 차버린 후 언니와 결혼한 것을 알 수 있었다. JFK의 아버지에 의해 강간당한 후 사교계의 명사가 된 슬림, 롱아일랜드 별장 목욕탕에서 남편을 총살한 앤 우드워드... 카포티는 그들의 '판도라의 박스'를 열어버린 것이다. 


결국 '응답받은 기도'로 카포티는 상류사회에서 추방된다. 백조들은 배반한 카포니를 용서하지 않았다. 카포티를 구제해준 이는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rhol)이었고, 카포티는 우아한 상류사회 파티에서 나이트 클럽 '스튜디오 54'를 드나들며, 알콜중독과 약물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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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pote Tapes by Ebs Burnough


카포티는 3개의 챕터만을 '에스콰이어'에 발표했을 뿐, 소설 '응답받은 기도'는 끝내 출간하지 않았다. 과연 카포티는 그 소설을 완성했을까? 추측이 난무하다. 완성된 원고를 금고에 보관했고, 열쇠를 누군가 갖고 있을  가능성, 발표된 3편이 모두일 것이라는 설, 그리고 카포티가 원고를 소각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부와 명예, 권력을 쥔 이들을 둘러싼 음모론도 상상할 수 있다.  


결국 트루먼 카포티는 작가다. 그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자신의 상처입은 어린시절을 바탕으로 '크리스마스의 추억(Christmas Memories)'를 썼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뉴욕에서 새 삶을 찾아가 쿠바 출신 부호를 만났지만, 끝내 자살해야했던 친엄마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인공 홀리 고라이틀리의 영감이 됐다. 


또한, '인 콜드 블러드'는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 Bird)'의 작가 하퍼 리(Harper Lee)와 함께 캔사스주의 가족 살해 사건을 취재한 후 쓴 넌픽션 소설이었다. 취재 와중에 카포티는 어두운 과거를 지닌 살인범 페리 스미스와 동병상련에 빠져들었다. 결국 두 살인범이 교수형이 집행되는 과정까지 지켜봤고, 소설을 완성했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카포티의 성공 뒤에는 연민과 트라우마와 죄책감이 깃들여져 있다.      



perry-smith.jpeg 사형수 페리 스미스와 트루먼 카포티.


'카포티 테이프'는 트루만 카포티의 삶을 입체적으로 접근한다. 카포티가 상류사회의 나비로 누빈 것, 사형수 페리 스미스에 대한 연민, 애인의 딸을 입양한 것도 어찌 보면 어린 시절의 외로움, 엄마가 끝내 인정하지 않았던 자신의 성정체성이라는 트라우마의 슬픔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영화는 마지막 카포티가 애지중지했던 과자통을 보여준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후 친척 숙(Sook)과 보내던 시절 그녀가 늘 만들어주던 진저쿠키다. 오손 웰즈(Orson Wells) 감독의 걸작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에서 신문왕 찰스 포스터 케인의 삶을 지배했던 화두는 'Rosebud'였다. 케인이 어릴 적 타고 놀았던 썰매의 이름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상징한다. '카포티 테이프'의 진저 쿠키 역시 카포티의 어린시절에 대한 메타포다. 엡스 버나프 감독이 선택한 '시민 케인'식 결말이다.


엡스 버나프 감독은 백악관에서 미셸 오바마의 비서와 브랜드 전략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를 지낸 후 첫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백악관 직원으로서 관찰한 워싱턴 상류사회가 카포티의 삶을 조명하는 프리즘이 되었을 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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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POTE TAPES

Nov 14, 2019, 7:00 PM | SVA Theatre

https://www.docnyc.net/film/the-capote-ta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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