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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 조셉 퓰리처의 영광과 비극 다큐멘터리

Joseph Pulitzer: Voice of the Peop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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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퓰리처는 헝가리 출신 뉴욕 이민자로 발행부수 최고의 신문사를 경영하며 파워를 누렸지만, 말년엔 맹인이 된 불우한 남자였다. 프랑스로부터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받은 뉴욕에 받침대를 건축할 자금이 없을 때 모금운동을 벌여 뉴욕 항구에 세웠고, 브루클린 브리지의 통행료를 무료로 해야 한다는 사설로 오늘도 우리는 공짜로 다리를 건너고 있다. 퓰리처의 진실 추구는 1908년 데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파나마 운하 스캔달를 폭로하면서 정점에 이르렀다. 퓰리처는 루즈벨트의 명예훼손 기소 협박에도 굴하지 않으며 '표현의 자유'의 근간이 되는 사건으로 민주주의 저널리즘의 본보기가 됐다. '대통령도 법 아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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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에서 조셉 퓰리처 역을 맡은 아마추어 배우. 2017년 8월 조셉 퓰리처 역 배우 공모 캐스팅 광고(backstage)에 따르면, 대사는 없으며, 얼굴이 유사해야 하며, 메인주 아일보로 해안에서 촬영하고, 배멀미를 하지 않는 58-65세 백인으로 출연료는 1천달러(여행 숙박비 제공)로 나와있다. Joseph Pulitzer: Voice of the People


종이 신문이 버림받고, 가짜 뉴스가 소셜미디어로 확산되는 오늘날, 퓰리처(Pulitzer)라는 이름은 고색창연하면서도 숭고하게 들린다. 퓰리처상은 친숙해도 정작 '신문왕' 조셉 퓰리처(Joseph Pulitser, 1847-1911)는 저널리즘을 전공한 필자도 막연하게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선정적인 언론,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와의 치열한 경쟁에 대해서만 들었을 뿐이다. 매년 4월 컬럼비아대학원 저널리즘학과에서 발표하는 퓰리처상에 대해 언론이 들썩거리지만, 정작 조셉 퓰리처가 누구였는지 잘 몰랐다.  


오렌 루다프스키(Oren Rudavsky) 감독의 다큐멘터리 '조셉 퓰리처: 인민의 목소리(Joseph Pulitzer: Voice of the People, 2018)'는 언론의 권위가 낭떠러지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질 위기에 있는 오늘, 퓰리처가 누구인지, 왜 그의 철학을 되새겨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다.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Film Society of Lincoln Center, 1/9-22)의 유대인 영화제(Jewish Film Festival)에서 상영된 이 영화는 혼란의 시대에 다수의 선을 위해 진실을 추구했던 치열한 언론인의 초상을 그려낸다.  

https://www.filmlinc.org/festivals/new-york-jewish-film-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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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아담 드라이버와 리브 슈라이버가 목소리로 등장한다.


다큐멘터리는 1908년 메인주의 바 하버의 배 안에서 상념에 잠긴 퓰리처로에서 시작해 19011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배 안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끝난다. 바다와 배와 독서는 조셉 퓰리처의 치열한 신문사업과는 대조적인 평화로운 정경이다. 그의 삶 자체는 롤러코스터처럼, 복싱처럼, 파란만장했다. 영화 '패터슨(Patterson)'의 버스 운전사 시인 아담 드라이버(Adam Driver)가 해설하고, TV 다큐의 해설가로 정평이 난 배우 리에브 슈라이버(Liev Schreiber)가 퓰리처의 목소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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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Pulitzer: Voice of the People


조셉 퓰리처는 헝가리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17살에 보스턴을 통해 미국으로 이주한 퓰리처는 독일어엔 능했지만, 영어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외다시피 하며 배웠다. 이민자임에도 불구하고, 세인트루이스에서 폭로 전문기자로 시작, 25세에 주식을 샀고, 1878년 31세에 두 신문사를 매입 '세인트 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St. Louise Post-Dispatch)로 합병했다. 명문가의 케이트 데이비스와 결혼, 뉴욕으로 신혼여행 왔다가 거주지를 '세계의 중심'으로 옮기며 1883년 적자에 시달리던 '뉴욕 월드(New York World)'를 인수한다. 당시 뉴욕 시민들은 아침에 커피보다 신문을 먼저 집어들었다. 조간, 석간, 속보까지 12종의 신문이 발행됐고, 뮤지컬 '뉴시즈(Newsies)'에 나오는 신문배달 소년들이 활보하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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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월드'의 일요판엔 패션, 게임, 인형까지 뉴요커들이 즐길 수 있는 정보를 제공했다.


'뉴욕 월드' 인수 직후인 5월 퓰리처는 브루클린 브리지 개통 통행료(사람 1센트, 마차 10센트)를 무료로 해야한다 사설로 실었으며, 1886년 프랑스가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을 받침대 기금 조성 캠페인을 벌이며 12만명을 '애국시민'으로 참가시켜 뉴욕 항구에 세울 수 있었다. 또한, 여성기자 넬리 블라이(Nellie Bly)를 72일간 세계일주 특파원으로 고용했고, 리처드 F. 아우콜트의 만화 '황색 소년(Yellow Kid)'를 연재하는가 하면, 일요판에 유행 패션, 옷 만드는 패턴, 악보, 종이 인형 등까지 실으면서 영어를 모르는 이민자들에게도 인기있는 신문이 됐다. 


한편, '뉴욕 월드'의 포커스는 범죄, 비리, 살인, 치정 등 선정적인 소재들이었다. '뉴욕 월드'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퓰리처 동생 알버트로부터 '뉴욕 저널(New York Journal)을 매입하며 시작된 경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며 황색 언론의 오명을 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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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뉴욕 데일리 뉴스와 뉴욕 포스트의 라이벌 관계처럼 조셉 퓰리처의 뉴욕 월드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저널은 치열한 이전투구를 벌였다. 오른쪽은 두 신문 모두에 실리게 된 만화 '옐로 키드'.


'신문왕' 조셉 퓰리처는 1884년 경부터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시력 약해지며 맹인이 됐다. 자신의 신문을 읽어주는 비서가 필요했다. 케이트 퓰리처와 사이에 7자녀를 두었지만, 두 딸이 성홍렬과 폐렴으로 10대에 사망했으며, 신문사를 운영했던 동생 알버트는 1909년 비엔나에서 자살했다. 퓰리처는 2년 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 하버 위의 요트에서 64세의 생을 마쳤다. 


퓰리처는 유언에 컬럼비아 대학교에 세계 최초의 저널리즘 학과 창설 기금으로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의 사망 1년 후인 1912년 컬럼비아대학원에 저널리즘학과가 생겼으며, 미조리대학교도 퓰리처의 촉구로 저널리즘학과를 창설하게 된다. 그리고, 컬럼비아대는 1917년부터 '언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우는 퓰리처상을 수상해오고 있다. 퓰리처상은 언론 뿐만 아니라 소설, 시, 넌픽션, 역사, 음악, 희곡 등에 수여한다. 


퓰리처는 당대 최고 건축가 스탠포드 화이트가 베니스 궁전을 모델로 설계한 5층짜리 석회암 맨션(11 East 73rd St.)에서 8년간 살았다. 1890년 조지 브라운 포스트가 설계한 로어맨해튼의 '뉴욕 월드' 본사 건물(20층)은 5년간 뉴욕시 최고층 빌딩이었다가 1955년 도시 개발업자 로버트 모세즈에 의해 철거됐다.



존 싱거 사전트의 조셉 퓰리처 초상화(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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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싱거 사전트(오른쪽)가 그린 초상화 케이트 퓰리처(왼쪽)와 조셉 퓰리처(가운데).


영화 속에 인물화의 대가 존 싱거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가 그린 조셉 퓰리처 초상화가 흥미롭다.

1905년 사전트는 퓰리처 부인 케이트 데이비스 퓰리처의 초상화를 5천달러(현화 약 14만 달러)에 위임받아 그렸다. 다음은 조셉 퓰리처의 초상화 차례였다.


런던의 사전트 스튜디오에 나타난 퓰리처는 화가에게 어떻게 그릴 것이냐고 물었다. 9살 어린 사전트는 "나는 내가 보는대로 그립니다.  때때로 좋은 초상화가 되기도, 그래서 모델보다 훨씬 낫기도 하지요. 때때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 나쁘지요. 하지만, 저는 제 눈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의 표면 아래로 파고들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시력을 잃어가며 요양 중이던 퓰리처의 초상화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같았다. 반쪽은 자애로운 중년의 신사, 반쪽은 사악하고 잔인한 메피스토 타입이었다. 그것이 사전트가 본 퓰리처였다.  이 그림은 퓰리처의 손자 조셉 퓰리처 주니어의 부인 에밀리 퓰리처(Emily Rauh Pulitzer)의 소장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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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유대인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상영 후 감독 오렌 루다프스키와 스탭이 토론하고 있다.


'조셉 퓰리처: 인민의 목소리'는 3월 39일 오후 7시 모건 라이브러리(The Morgan Library & Museum)에서 상영되며, 4월 중 PBS-TV의 미국 거장들(American Masters)' 시리즈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상영시간 84분. https://www.themorgan.org/programs/joseph-pulitzer-voice-people



Pulitzer Pr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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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퓰리처의 유언으로 1917년 창설되어 컬럼비아대학원 언론학과 주최하는 퓰리처상은 언론/출판-희곡-음악으로 나뉘어져 21개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 각 수상자에겐 상장과 1만5000달러를 부상으로 주며, 언론 부문의 공공 서비스 부문 수상자는 금메달을 수여한다.  


퓰리처상 시상 부문 


<언론(Journalism)> 

# 보도(Reporting): 속보(Breaking News)/탐사보도(Investigative)/해설보도(Explanatory)/ 지역(Local)/ 전국(National)/ 국제(International)

# 기사(Writing): 기획(Feature)/ 사설(Editorial)

# 사진(Photography): 속보(Breaking News)/ 기획(Feature)

# 기타(Other): 논평(Commentary)/ 비평(Criticism)/ 만평(Editorial Cartooning)/ 공익(Public Service)


<출판/ 희곡/ 음악(Letters/ Drama/ Music)>

전기(Biography) / 자서전(Autobiography)/ 소설(Fiction)/ 일반 넌픽션(General Nonfiction)/ 역사(History)/ 시(Poetry)/ 희곡( Drama)/ 음악(Music)


퓰리처상 수상 한인 기자들 


# 1993년 강형원 기자(LA타임스): 취재 부문 (Spot News Reporting: The staff of the Los Angeles Times) 공동 수상-LA 폭동

# 1999년 강형원 사진기자(AP통신): 기획사진 부문(Feature Photography: The staff of the Associated Press) 공동 수상-빌 클린턴 섹스 스캔달

# 2000년 최상훈 기자(AP 통신 서울지국 기자): 2000년 탐사보도 부문(Investigative Reporting: Sang-Hun Choe, Charles J. Hanley and Martha Mendoza) 공동 수상-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 2002년 이장욱 기자(뉴욕타임스 사진기자): 속보 사진 부문(Breaking News Photography: The staff of The New York Times) 공동 수상-9.11 테러 공격과 여파

# 2002년 이장욱 기자(뉴욕타임스 사진기자): 기획사진 부문(Feature Photography: The staff of The New York Times) 뉴욕타임스 사진 스탭 공동 수상-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현장 사진 시리즈

# 2011년 존 김/김주호(시카고 선타임스 사진기자): 지역보도 부문(Local Reporting to Frank Main, Mark Konkol, and John J. Kim (Chicago Sun-Times) 공동 수상

 

*퓰리처상 2관왕 이장욱 뉴욕타임스 사진기자 인터뷰

https://news.joins.com/article/4383105



000.jpg *존 싱거 사전트와 친구들@메트뮤지엄 

*누구의 손일까? 존 싱거 사전트와 친구들@메트뮤지엄

*존 싱거 사전트의 세계@브루클린 뮤지엄 & 메트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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