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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 안데르센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Documentary "The Most Beautiful Boy In The World"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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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st Beautiful Boy In The World, 2021/ Death in Venice, 1971

 

1980년 서울 숭의음악당에서 콘서트를 열었던(필자도 갔음) "I Was Made for Dancing"의 아이돌 스타 레이프 가렛(Leif Garrett, 59)은 약물중독과 법률 소송으로 얼굴도 피폐해졌고, 스타덤에서 추락했다. 영화 '나인 앤 하프 위크(Nine and Half Weeks)'에서 킴 베신저와 공연한 섹시스타 미키 루크(Mickey Rouke, 68)는 권투선수로 전향했다가 부상으로 얼굴이 망가졌다. 하지만, 그들의 수려한 외모와 이미지는 영원히 대중의 가슴 속에 새겨진다. 영화라는 허구와 현실의 차이,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법칙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스웨덴 출신의 미소년 비욘 안데르센(Björn Andrésen)은 1971년 15살 때 이탈리아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1906-1976) 감독의 걸작 '베니스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에 출연한 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으로 이름을 날렸다. 영화 역사가 로렌스 J. 쿼크는 '위대한 로맨스 영화(The Great Romantic Films, 1974)'에서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안데르센 몇 장면을 추출해서 루브르 박물관이나 바티칸 박물관에 걸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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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in Venice, 1971 

 

미켈란젤로의 조각 '다비드상'을 떠올리는 배우, 완벽하게 아름다운 소년 타치오를 재현한 비욘 안데르센은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후 사실 자신의 청춘과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제작 50년 후 그 타치오는 스톡홀름 거리를 배회하는 66세, 백발의 수척한 노인이 되어 있다.   

 

크리스티나 린드스트롬과 크리스티앙 페트르 감독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The Most Beautiful Boy In The World, 2021)'는 비욘 안데르센의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올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며, 오는 9월 3일 맨해튼 콰드 시네마(Quad Cinema)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The Most Beautiful Boy In The World" 예고편 

https://youtu.be/movf4weZq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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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에서의 죽음' 촬영장에서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과 비욘 안데르센 

 

비욘 안데르센은 1970년 '베니스에서 죽음'의 오디션에 참가했을 때 스웨덴 영화 단 한편에 출연한 신인이었다. 11살 때 엄마가 자살한 후 비욘은 할머니가 키웠고, 피아노 교습을 받았다. 어느날 배우 오디션에 보내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촬영은 스웨덴 소년에게 멋진 여름 일자리였다. 오디션에서 비스콘티 감독은 비욘에게 웃도리를 벗고 걸어보라는 주문을 받는다. 수영복을 입고, 누드 사진도 찍었다.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Thomas Mann)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베니스로 요양 간 음악가 아셴바하(더크 보가드 분)는 베니스의 리도섬 호텔에 머물면서 미소년 타치오(비욘 안데르센 분)을 보고 절망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는 전염병이 퍼지고 있는 리도의 해변가에서 아셴바흐는 최후를 맞는다. 

 

토마스 만은 1911년 베니스를 여행 중 만난 폴란드계 소년(타데우츠, Tadeusz)에서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썼다. 부인 카티아의 회고에 따르면, 휴가 첫날 호텔 식당에서 폴란드 가족 중 세일러복 차림을 한 13살 가량의 미소년을 남편이 발견하고, 해변에서도 항상 소년을 지켜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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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작곡가 구스타프 역의 연기파 더크 보가드는 자서전 'An Orderly Man'(1983)에서 안데르센에 대해 "그는 거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소유했다. (영화 촬영 중) 그는 햇빛을 쏘이거나, 동료들과 축구공을 차는 것, 오염된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 어떤 쾌락도 허락되지 않았다.(창백한 안색과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고 썼다. 비스콘티 감독은 촬영 중엔 안데르센을 과보호했지만, 촬영 후엔 위풍당당하게 게이 클럽으로 끌고가는 인물이었다. 칸 영화제에서도 비스콘티는 그를 강제로 게이 바로 데려갔다. 

 

'베니스에서 죽음' 런던 갈라 시사회에서 안데르센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앤 공주를 만났고, 칸 영화제에서는 그에게 몰려드는 인파가 살인적이었다. 안데르센은 늘 팬들이 자물쇠를 부수고 집으로 들어오는 두려움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주변에 박쥐 떼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살아있는 악몽이었다"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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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in Venice, 1971 

 

영화가 개봉된 후 타치오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가는 곳마다 군중이 몰려들었다. 일본에서는 비욘 안데르센이 첫 서양 10대 아이돌이었다. 그가 도쿄에 도착했을 때 팬들의 반응은 미국에 비틀즈가 방문했을 때와 유사한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떤 팬은 가위를 들고 나타났다(머리를 자르려고). 그는 존 콜트레인, 키스 자렛 등 재즈에 심취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일본 가요를 녹음했고, TV 광고에도 출연했다. 안데르센은 일본에서의 빽빽한 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약을 복용할 정도였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음악가 구스타프는 사망했지만, 타치오는 영원히 살아 있었다. 안데르센은 풍성한 금발 머리조차 자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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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örn Andrésen in 2020/ Björn Andrésen in "Death in Venice"

 

안데르센은 이후 스웨덴 영화 20여편에 출연했다. 그러나, 내세울만한 작품은 없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 코펜하겐의 유치원에서 일했고, 스톡홀름의 감옥의 간수, 가게 점원, 교사 직을 거쳤다. 

 

2019년 출연한 호러영화 '한여름(Midsommar)'에서는 이교도 의식 중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노인 역을 맡았다. 그가 죽지 않자 후 구경꾼들은 망치로 그의 머리를 두들긴다. 안데르센은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호러영화에서 살해당하는 것은 모든 소년들의 꿈이다"라며 껄껄 웃었다. 그에게 미소년 타치오의 악령을 떨쳐버리려듯이.  

  

시인 수잔나 로만과 결혼 1남 1녀를 두었지만, 아들이 9개월만에 돌연사 증후군으로 사망했다. 그후 오랜 우울증과 알콜 중독에 빠졌다. 안데르센은 2020년 한 인터뷰에서 "내세에 아들을 다시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그의 트라우마로 남았던 자살한 엄마와도 재회할 것이다. 

https://quadcinem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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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in Venice, 1971 

 

*구스타프 말러 심포니 5번과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639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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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7.29 23:44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를 비욘 안데르센을 보니까 더욱 느껴집니다. '베니스에서 죽음'의 주인공 타치오로 나온 비욘 안데르센은 성별을 떠나서 외모가 여자이면 절세미인이고, 남자면 천하미남입니다. 어느 쪽이든 신이 빚은 최고의 얼굴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천하에 제일가는 그 얼굴도 세월앞에서는 어찌 할 도리가 없음을 절감했습니다. 15세때의 사진과 지금 66세의 사진을 보니 딴 사람이네요. 미와는 동떨어진 추한 모습조차 느껴집니다. 몇백년 전의 그림이나 예술품들은 현재도 고고한 빛을 발하고 있는데 육체는 그 빛이 너무 짧습니다.
    토마스 만, 루키노 비스콘티, 구스타프 말러-서로 다른 분야지만 예술이란 테두리안에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힘은 같은가 봅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