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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Film Festival 2022 (9/30-10/16) 

'소설가의 영화(The Novelist's Film) ★★★★☆

 

영화감독의 펜은 카메라(Camera Stylo) 

"소설은 산문, 영화는 시(Fiction is Prose, Film is Poetry)"

 

*The Novelist's Film review <English version>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408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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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영화 예고편 The Novelist's Film trailer 

 

홍상수(Hong Sangsoo) 감독의 흑백영화 '소설가의 영화(The Novelist's Film)'와 '탑(Walk Up)'이 제2022 뉴욕영화제(9/30-10/16)에 초대됐다. 홍 감독은 올해로 60회를 맞은 뉴욕영화제 사상 19편이 상영되는 최다 초청감독으로 기록됐다. 

 

저예산 영화의 거장 홍상수는 시네마 미니멀리스트(Cinema Minimalist)다. 최소한의 배우들(홍사단)과 작업하며, 제작, 각본, 감독뿐만 아니라 촬영, 편집, 음악까지 맡고 있다. 그의 주제는 몇년 전까지만해도 연애 스토리로 남자들의 욕망, 지식인/예술가의 속물근성을 드러냈다. '한국의 에릭 로메르(Eric Rhomer)'로 불리우던 홍상수가 진화했다. 신작 '소설가의 영화'와 '탑'은 로메르를 넘어섰다. 실패한 연애담을 넘어서 "영화란 무엇인가" "인간은 누구인가"를 탐구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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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velist's Film

 

올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은곰상) 수상작인 '소설가의 영화'는 만남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전개된다. 슬럼프에 빠진 인기 소설가 준희(이혜영 분)가 후배(서영화 분)가 운영하는 서울 근교(하남)의 책방을 찾아갔다가 근처 타워(하남 유니온타워)에 전망대에서 잘 알던 영화감독 부부(권해효, 조윤희)를 만나고, 이들과 공원을 산책하던 중 영화배우 길수(김민희 분)를 만나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많은 영화감독은 소설을 원작으로 연출하지만, 소설가 출신 영화감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창동, 프랑스의 마거리트 뒤라(Margerite Duras), 세네갈의 우수만 셈벤(Ousmane Sembène)을 들 수 있다. 홍상수는 감독 데뷔 전 SBS-TV '작가와 화제작'의 PD로 한국의 소설가들을 집중 탐구한 바 있다. 그리고, 1996년 구효서의 장편소설 '낯선 여름'을 각색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했다. 3류 소설가의 이야기를 다룬 '낯선 여름'을 대폭 각색하면서 사실상 스토리를 새로 썼다. '돼지...'는 그의 유일한 소설 원작 영화다. 그의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종종 영화감독이거나 소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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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velist's Film

 

'소설가의 영화'는 소설가가 영화를 연출하는 이야기다. 홍상수는 '소설의 영화화'라는 흔한 관습을 전복시키며, 소설가에게 영화를 만들어보게 시나리오를 썼다. 그는 소설과 영화라는 매체를 팽팽하게 대립시킨다.

 

배경을 보자. 소설가 이혜영은 후배의 책방, 영화감독과 만나는 타워 전망대, 여배우를 만나는 공원과 식당, 모든 이들이 만나 막걸리를 마시는 책방, 마지막으로 시사실(영화관) 시사회장 순으로 스토리를 이동한다. 이혜영은 책방의 점원으로부터 수화를 배운다. "날은 아직 밝지만, 날은 곧 저문다. 날이 좋을 때 실컷 다녀보자." 소설가의 어휘는 수화에서 어떻게 표현될까? 수화의 제스추어 언어는 무성영화를 연상시킨다. 소설가는 영화적인 언어를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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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velist's Film

 

이혜영은 타워 전망대에서 우연히 영화감독 부부를 만난다. 소설가는 망원경으로 공원의 사람들을 응시한다. 소설은 글쓰기(writing)와 글치기(typing)라는 손가락의 행위를 통해 완성되는 직접성이 있지만, 영화는 카메라를 수단으로 피사체를 잡는 예술이다. 즉,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의 거리가 필요하다. 소설가가 전망대에서 줌(zoom)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다분히 영화적이다. 이제 소설가는 카메라의 기능을 터득했다고 생각한다.  

 

소설가와 영화감독 부부는 어휘 사용을 두고 충돌한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소설가가) 카리스마적이다" "(영화배우가) 아깝다(waste)"는 단어에 대해 소설가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마치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변질되는 것에 대한 히스테리같다. 프랑스 영화평론가 알렉상드르 아스트뤽(Alexandre Astruc, 1923-2016)은 영화감독에겐 카메라가 만년필이라는 '카메라 스틸로(Camera Stylo)'라는 말을 썼다. 펜(타자기)과 카메라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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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velist's Film

 

영화감독 부부가 "아깝다" 언쟁으로 무안해져서 가버린 후 소설가 이혜영은 배우 김민희에게 자신이 영화를 만들테니 출연해달라고 제안한다. 아직 시나리오도 없는 상태다. 소설가와 배우가 식당에서 각각 라면과 비빔밥을 먹는 장면도 흥미롭다. 라면(밀가루-국수-젓가락)과 비빔밥(쌀-나물-고추장-숟가락)이라는 음식처럼 1인의 산물인 소설과 종합예술인 영화는 본질이 다르다.

 

식당 통유리 밖에서 한 소녀가 김민희를 한참 바라보다가 사라진 후 다시 나타난다. 창 밖의 소녀는 마치 스크린 저편의 인물같다. 배우는 잠깐 우연한 소녀를 만나러 나가고, 소설가는 배우의 비빔밥을 한술 먹는다. 배우는 행동하지만, 소설가는 밥상머리(책상)를 지킨다. 소설가가 영화인의 밥그릇을 넘보는 것에 대한 메타포일까? 소설가가 늘 장갑을 끼고 있는 것도 자신의 손(작품)을 보호하려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듯 하다. 

 

소설가는 배우와 카메라맨(배우의 조카)을 설득해 영화를 만들게 된다. 만드는 과정은 생략되고, 김민희는 시사회장에 나타난다. 배우가 혼자 영화를 보러왔다. 소설가가 만든 영화는 컬러다. 김민희가 들꽃을 들고 "딴따다단~"하며 흐드러지게 웃는 모습을 찍었다. 김민희 옆에는 평범한 중년 여인이 눈에 거슬리게 보인다.

 

소설가의 카메라는 현실처럼 컬러로 찍고, 중년 여인을 프레임 속에 넣는 '산문적'인 연출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운문(시)에 가깝다. 흑백영화는 더우기 시적이다. 중년 여인은 소설가에게는 필요하지만, 영화감독에겐 삭제되어야 하는 인물(이미지)다.  이 영화의 오프닝에서 소설가가 책방에 들어갔을 때 주인과 점원이 말싸움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것 역시 제거되어야할, 불필요한 산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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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velist's Film

 

'소설가의 영화'는 소설가들, 원작자들, 그리고 비평가들과 관객들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소설과 어떻게 다른가를 가르쳐준다. 흑백은 리얼리티성을 결여하지만, 시적이다. 하지만, 홍상수 카메라의 롱테이크는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영화 매체가 얼마나 리얼리티를 반영할 수 있나를 질문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슬럼프(writer's block)에 빠졌다가 영화에 눈뜨는 소설가 역을 맡은 이혜영은 그야말로  '카리스마' 배우로 섬세한 연기가 영화에 중량감을 준다. 이혜영은 2021년 '당신얼굴 앞에서(In Front of Your Face)'로 홍상수 사단에 들어갔고, 신작 '탑'에도 출연했다. 홍상수의 파트너로 제작부장 일까지 맡은 김민희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싱그럽다. 

 

홍상수 감독은 이제까지 28편을 연출했지만,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영화는 10만 관객을 넘기기조차 힘들다. 김상경, 추상미 주연 '생활의 발견'(On the Occasion of Remembering the Turning Gate, 2002) 12만명, 성현아, 유지태 주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Woman is the Future of Man, 2004) 28만명, 고현정, 김승우 주연 '해변의 여인'(Woman on the Beach, 2003) 23만명을 넘겼을 뿐이다. 최근 몇년엔 1만명조차 들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베를린 영화제는 3년 연속 홍상수 영화에 은곰상을 헌사했다. 2020년 감독상(도망친 여자), 2021년 각본상(인트로덕션), 그리고 2022년 심사위원대상(소설가의 영화)를 석권했다.

 

홍상수는 국제영화제와 비평가들을 위해서, 혹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일까? 대중의 취향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일까? 홍상수는 허구의 스토리텔러가 아니라, 현실적인 인간의 조건과 영화라는 매체를 탐구하는 작가로 보인다. 그에겐 할리우드영화가 아까울 것(waste)이다. 거장 미니멀리스트 홍상수 자체가 작가(auteur)이자, 장르(genre)가 된듯하다. Nobody Does It Better.

 

'소설가의 영화'는 뉴욕영화제 상영(10/7. 10) 후 10월 28일 링컨센터에서 개봉된다. 9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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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velist’s Film by Hong Sangsoo

FRIDAY, OCTOBER 7 9:00 PM @Walter Reade Theater/ MONDAY, OCTOBER 10 3:30 PM @Howard Gilman Theater

*Opening OCTOBER 28 @Film at Lincoln Center

https://www.filmlinc.org/nyff2022/films/the-novelists-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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