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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 59 (9/24-10/10) <3> Il Buco ★★★★☆

 

2021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일 부코(Il Buco)': 동굴의 끝, 양치기 노인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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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Buco by Michelangelo Frammartino, NYFF59

https://www.filmlinc.org/nyff2021/films/il-buco

 

이탈리아 영화 '일 부코(Il Buco, The Hole)'는 구멍, 지하 동굴에 관한 이야기다. 할리우드 시스템에서라면, 아마존 동굴에 갖힌 학자들을 구조하는 구조대의 영웅담과 해피 엔딩이 연상될 것이다.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Michelangelo Frammartino) 감독의 '일 부코'는 1960년대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지역에서 발굴된 687미터(2,254 피트), 세계에서 가장 깊은 동굴 중 하나를 탐험하는 젊은 학자 팀의 여정과 언덕의 양치기 노인의 삶을 담았다. 

 

'일 부코'는 떠들썩한 할리우드식 내러티브가 아니라 마치 무성영화처럼 고요하다. 바람 소리, 양떼와 소들의 워낭소리, 염소와 닭 울음, 새와 귀뚜라미 소리, 그리고 양치기 노인의 "워~허" "땍땍!" 정도의 미니멀한 음향이 흐를 뿐이다.  음악과 대사가 배제된 '일 부코'는 관객을 자연 속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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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Buco by Michelangelo Frammartino, NYFF59

 

계곡에선 아낙네들이 빨래하고, 밤이면 마을 어른과 아이들이 거리에 모여 TV를 보고 있다. 전기보다는 모닥불에 의존하는 시골 사람들...존 F. 케네디와 소피아 로렌이 잡지 표지를 장식하던 시기였다. 언덕 위에선 주름이 깊은 양치기 노인이 나무를 하고, 당나귀를 이끌고, 양떼를 몬다. 스위스 출신 촬영감독 레나토 베르타(Renato Berta)는 마치 동양화의 한폭 한폭처럼 롱 쇼트로 대자연 속의 미미한 인간을 담아냈다. 덕분에 '일 부코'는 한편의 시네 포엠(Cine Poem, 영상시)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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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Buco by Michelangelo Frammartino, NYFF59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이탈리아 남부(*지도에서 장화 앞굽) 칼라브리아에서 동굴학자들이 지하로 내려가던 무렵, 북부 밀라노에는 이탈리아 최고층인 타이어 회사 건물 피렐리 타워(Grattacielo Pirelli)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고 있었다. 이탈리아가 제 2차 세계대전의 악몽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빌딩이었다. 

 

센트럴파크 남쪽, 억만장자의 길(Billionaire's Row)에 하늘 높이 올라간 럭셔리 콘도가 바벨탑같은 인간의 욕망의 상징이라면, 지하 동굴로의 탐험은 인간과 자연의 기원을 찾으려는 순수한 욕망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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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Buco by Michelangelo Frammartino, NYFF59

 

혈기왕성한 동굴학자들은 전등이 달린 헬멧과 장비를 갖추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동굴 속의 희미한 빛과 어둠, 탐험대의 발자국과 물 떨어지는 소리들이 긴박감을 준다.

 

한편, 빛의 세계, 산에서 동물들과 어우러졌던 양치기 노인네는 쓰러지고, 동굴처럼 어두운 집에서 서서히 숨을 거둔다. 동굴학자들은 어둠의 저편으로 내려가 막바지에 다다르게 된다. 687미터가 끝이다. 노인네도 어둠의 세계로 들어갔다. 동굴 탐험의 종말과 인간의 죽음이 병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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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Buco by Michelangelo Frammartino, NYFF59

 

맨해튼 미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의 로고는 사람이 원 둘레를 향해 두 팔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인간과 자연의 기원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과 여전이 미지로 남아 있는 세계를 함축한 이미지다. 그 열린 '미지의 세계' 중 하나는 이 동굴, '구멍(Il Buco)'이기도 하다.  '일 부코'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명상하게 만드는 영화다. 

 

'일 부코'는 오래 전에 보았던 신도 가네토(新藤 兼人) 감독의 '벌거벗은 섬(Naked Island, 裸の島, Hadaka no Shima, 1960)'을 연상시킨다. 일본의 자그마한 섬에서 농사짓고 사는 한 가족의  반복적인 노동을 묘사한 작품으로, 대사가 거의 없는 흑백영화였다. '벌거벗은 섬'은 모스크바 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일 부코'는 2021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이다. 9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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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BUCO

SUNDAY, SEPTEMBER 26 8:45 PM

TUESDAY, SEPTEMBER 28 6:00 PM 

https://www.filmlinc.org/nyff2021/films/il-bu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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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10.01 23:39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일 부코와 양치는 노인네의 삶을 대조하면서 이 어마어마한 우주적 문제를 다루었네요. 678미터의 깊은 동굴을 탐험하는 젊은이들과 들에서 양치기를 일생업으로 사는 노인의 삶이 다른 것같지만 어디로 가는 종착역은 같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죽음이라는 사실에 도달하니까 쓴웃음이 나옵니다. 불로초를 구하다가 먹고 천년을 살려고 몸부림을 처봤자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걸보면 어디로 가나는 분명해집니다.그러나 우리는 어디서 왔지?는 해답이 없네요.
    좋은 영화를 소개해주신 컬빗에 감사를 드립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