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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 59 (9/24-10/10) <5> Drive My Car ★★★★

 

히로시마의 가푸쿠: 진실 찾기와 자아성찰

칸영화제 각본상, 국제비평가상 수상 '드라이브 마이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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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예고편

https://youtu.be/DTg-p9tfcnY

 

 

글로벌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72)는 그 인기에 비해 영화화된 작품이 많은 편은 아니다. 하루키는 예전에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것을 대부분 거절했었다고 한다. 일본 내에서 제작된 영화를 제외하고 베트남 출신 트란 안 홍(그린 파파야 향기)이 연출한 '상실의 시대(Norweian Wood, 2010)'와 이창동 감독의 '버닝(Burning, 2018)'이 널리 알려졌다. 장편을 스크린에 옮긴 '상실의 시대'는 함량미달의 실망작이었지만, 단편을 각색한 파워풀한 걸작 '버닝'은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상(EIPRESCI, International Federation of Film Critics)을 수상했다.    

 

올 칸영화제 각본상과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한 하마구치 류스케(濱口竜介, Ryusuke Hamaguchi)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는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Men Without Women, 2014)에 수록된 '드라이브 마이 카'를 각색한 작품이다. 한때 재즈 카페를 운영했던 음악광 하루키는 비틀즈 노래 'Drive My Car'에서 제목을 따왔고, 단편집 제목 'Men Without Women'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집(1927)에서 빌려왔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는 비틀즈 노래를 제목으로 한 또 한편의 단편 '예스터데이(Yesterday)'가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예스터데이'를 더 재미있게 읽었지만, 장편영화감은 아닌듯 하다.   

 

스릴러의 명장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ke) 감독은 무명의 단편을 영화로 옮기는 것을 즐겼다. 장편 소설은 영화로 각색할 때 많은 디테일을 제거해야 하므로 소설보다 못한 작품이 되기 쉽다. 하지만, 단편은 배경, 등장인물, 테마를 취해서 시나리오 작가가 디테일을 보탤 수 있기 때문에 더 스토리가 풍부해질 수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하루키 단편보다 풍요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하루키의 단편 소설과 하마구치의 각색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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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e My Car by Ryusuke Hamaguchi, NYFF59

 

하루키 단편(38 페이지, 영문판)은 도쿄에 사는 중년의 남자 배우 가푸쿠가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공연하면서 젊은 여자를 전속 운전수를 고용하게 되고, 바람을 피우던 배우 아내가 사망한 후 아내의 애인인 배우와 친구가 된 과거를 고백하는 내용이다. 즉 플래시백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마구치 감독의 2시간 59분 짜리 영화에선 배우이자 연극 연출가인 가푸쿠와 드라마 작가인 아내의 섹스 라이프와 죽음까지 40분간 현재 진행형으로 그려진 후(프롤로그)에야 오프닝 크레딧 타이틀이 나온다. 이어 가푸쿠는 히로시마에서 '바냐 삼촌'을 제작하며 전속 운전수에게 심중을 고백하게 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 원작은 배경이 도쿄와 자동차 안이지만, 영화에선 로케이션이 도쿄에서 히로시마로 이어진다. 원작에선 가푸쿠가 경미한 교통사고로 운전면허가 정지되어 운전수를 고용하지만, 영화에선 히로시마 연극제 주최측에서 연출가의 안전을 고려해 취한 조치다. 원작에선 자동차가 500 Saab 노란색이지만, 영화에선 Saab 900 빨간색이며, 원작에서 아내는 자궁암으로, 영화에선 뇌출혈로 죽인다.

 

영화에선 운전수 미사키의 과거가 강화되고, '바냐 삼촌'의 국제 배우 오디션에서 리허설까지 제작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진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드라이브 마이 카) + 안톤 체홉(Anton Chekhov, 바냐 삼촌)의 혼합 각색으로 보아도 좋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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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e My Car by Ryusuke Hamaguchi, NYFF59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로 들어간다. 다언어 실험연극 연출가로 명성을 얻은 가푸쿠(니시지마 히데요시 분)는 20년 동안 아내 오토(키리시마 레이카)와 행복하게 살아왔다. 아내는 섹스 도중 창작의 영감을 받는 각본가다. 어느날 가푸쿠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아내는 곧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아내의 연인이었던 젊은 배우 코지(오카다 마사키 분)가 장례식에 찾아온다. 2년 후 히로시마 연극제에 초청된 가푸쿠는 다국적 배우들을 캐스팅한 연극 '바냐 삼촌(Uncle Vanya)'를 무대에 올리게 된다. 주최측은 가푸쿠의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전속 운전수 미사키(미우라 토코 분)를 고용한다. 가푸쿠는 코지를 엉클 바냐 역으로 캐스팅하며, 그와 친해지는데... 

 

극작가 아내는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10대 소녀가 소년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성생활은 창작의 원천이었다. 가푸쿠는 20년간 행복했는데, 아내가 왜 자신을 배신했는지, 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는지 도무지 알수 없다. 상실감, 배신감, 분노와 복수심까지 생긴 가푸쿠는 진실을 찾기 위해 코지를 바냐 삼촌 역에 캐스팅한다. 바냐는 원래 베테랑 배우 가푸쿠가 맡아야하는 배역이지만, 가푸쿠는 젊은 코지에게 맡김으로써 함정을 만든다. 체홉의 '바냐 삼촌'에서 시골의 저택을 관리하며 살아온 바냐는 매형에 대한 배신감, 그의 두번째 옐레나에 대한 짝사랑, 삶에 대한 온갖 후회와 절망에 가득해 자살충동에 빠진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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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e My Car by Ryusuke Hamaguchi, NYFF59

 

주인공 이름 가푸쿠(Kafuku, 家福, house of good fortunes)은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를 연상시킨다.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2002)를 출간한 적이 있다. 가푸쿠는 녹내장(glaucoma) 진단을 받았다. 시신경이 부분적으로 손상되어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질환인 글로코마는 우리의 시 체계에서 '맹점(blind spot)'이 된다. 가푸쿠는 아내와의 삶이 완전한 행복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몇차례 바람을 피웠다. 그들에겐 딸이 태어난지 몇개월 후 사망한 슬픈 과거도 있다. 그 딸이 살아 있다면, 운전수 미사코와 같은 23세일 것이다. 그에게 아내의 비밀은 '맹점'인 것이다. 

 

배우와 연출가로서 '연극 무대'가 아닌 가장 사적인 공간인 자동차 안에서 가푸쿠는 무뚝뚝한 미사코에게 과거를 고백한다. 딸과 아내를 잃은 중년 연출가 가푸쿠와 집과 엄마를 잃은 운전수 미사코는 자동차 안에서 자신의 껍질을 벗고, 내면을 응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푸쿠와 미사코는 서로에게 테라피스트처럼 되었고, 자동차 안은 고해성사의 자리가 되었다. 무대가 '광장'이라면, 자동차 안은 '밀실'이다. 무대가 분장하는 허구의 공간이라면, 자동차 안은 맨 얼굴로 현실에 직면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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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e My Car by Ryusuke Hamaguchi, NYFF59

 

 

'상실의 시대' 가푸쿠, '절망의 시대' 바냐 삼촌

 

한편, 가푸쿠는 '바냐 삼촌'에 일본, 한국인 수화 배우, 중국, 태국 배우들을 캐스팅해 공연할 계획이다. 체홉의 대사를 하는 배우들은 각자의 언어로 연기한다. 무대에 대사가 자막으로 번역되지만, 완벽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같은 언어를 사용할지라도 어쩌면 오역과 오해가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사람들마다 비밀이 있고, 어두운 구석, 맹점이 있다. 인간은 모순투성이, 우리 모두는 연기자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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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e My Car by Ryusuke Hamaguchi, NYFF59

 

체홉의 '바냐 삼촌'에서 소냐는 "(진실은) 모르는 편이 낫다.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하지만, 교수의 두번째 부인 옐레나는 "진실은 모르는 것보다 덜 무섭다.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이 희망을 태우더라도,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냐는 마지막 장면에서 '바냐 삼촌에게 말한다.

"마침내 우리는 쉴 것입니다. 우리는 천사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석처럼 빛나는 천국을 보게될 것입니다. 우리는 악과 우리의 고통이 세상을 둘러싼 큰 연민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애무처럼 평화롭고, 부드럽고, 달콤할 것입니다. 저에게는 믿음이 있어요, 믿음이요.(눈물을 닦으면서) 불쌍한 바냐 삼촌, 당신은 울고 있네요! (울면서) 삼촌은 행복이 무언지 결코 몰랐지만, 기다리세요. 우리는 쉬게될 거예요. 우리는 쉴 것입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하루키와 체홉, 그리고 하마구치의 트리오가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만들어주는 걸작이다. 179 minutes, 11월 24일 링컨센터 /필름포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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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e My Car

SUNDAY, OCTOBER 3 2:30 PM 

MONDAY, OCTOBER 4 8:15 PM 

@Alice Tully Hall - Walter Reade Theater

https://www.filmlinc.org/nyff2021/films/drive-my-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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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10.06 20:43
    하루키, 체홉, 하마구치 류스케, 이들 3명의 트리오가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만들러 주는 걸작을 관람하고 싶습니다. 무려 179분이나 상영을 하는 영화니까 삶의 성찰뿐만아니라 내가 살아온 과정도 돌아보게할 것같습니다. 3명의 천재들의 작품을 잘 엮어서 설명해주신 컬빗에 감사를 드립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