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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New Directors /New Films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Hot in Day, Cold at Night ★★★★☆

절망 끝에서도 넘지 말아야할 '도덕적 선'

 

박송열 제작, 감독, 각본, 주연, 촬영, 조명, 편집,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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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n Day, Cold at Night  directed by Park Song-yeol, 2022 New Directors /New Films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Hot in Day, 예고편

 

"가난이 대문(大門)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창문(窓門)으로 나간다.(When poverty comes in at the door, love flies out of the window.)"는 속담이 있다. 2022 뉴디렉터/뉴필름에 초대된 박송열(Park Song-yeol) 감독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Hot in Day, Cold at Night)'은 실직한 젊은 부부가 생활고를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첫 장면에서 영태(박송열 분)와 정희(원향라 분) 부부는 주방 바닥에 신문지 깔고 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집주인이 전세값을 올릴까 걱정하고 있다. 부부는 둘다 실직상태로 이리저리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냉동창고, 공사장, 택배, 대리운전을 거친 배달 다니다가 오토바이에 넘어져 다쳐 쉬고 있는 영태는 선배 명수에게 비싼 장비 카메라(아마도 재산 1호일듯)를 빌려준다. 교사 자격증이 있는 정희는 마트, 식당, 결혼식 뷔페에서 일하다가 백수가 됐다. 

 

영태는 명수 추천으로 직장 면접에 갔지만 엉뚱한 질문을 당한 후 포기하고, 빈티지 유럽가구 사업 제안하는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지만 다단계 영업이라는 걸 알게된다. 영태는 장모 생신날 동서들과 달리 돈봉투 선물을 못하는 형편에 절망한다. 한편, 선배는 영태의 카메라를 팔아버리고, 콜택시를 운전하던 중 고객은 영태를 모욕한다. 생활고에 찌들은 정희는 마침내 사채까지 쓰게 되고, 이자를 연체하자 사채업자들이 친정 엄마 집에 들이닥친다. 그리고, 부부는 점점 더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 어느날 영태는 인스태그램에서 선배 명수가 새차를 구입했다고 올린 사진을 보고, 맨발로 집안을 걸으며 분노를 삭힌다. 그는 새벽에 명수 동네로 찾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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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n Day, Cold at Night  directed by Park Song-yeol2022 New Directors /New Films 

 

로베르 브레쏭(Robert Bresson, 1901-1999) 감독의 걸작 '돈, 라르장(L'Argent/ Money)'은 위조지폐로 인해 살인자가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 2019)'는 백수 가족이 부자집에 기생하면서 벌어지는 빈부격차, 계층갈등의 비극이다. 반면, 박송열 감독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강남의 고층 아파트나 부자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태와 정희 부부의 생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궁핍한 생활에 절망스러운 환경의 소시민이지만, 영태는 부자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없다, 그에겐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와 믿음이 있다. 그것이 봉준호 감독의 계층을 상징하는 '물질적 선'과는 다른 '정신적, 도덕적 선'이다. 반면, 선배는 영태의 카메라로 돈을 벌고, 약속도 지키지 않으며, 팔아먹기까지 한다. 고교동창은 다단계 영업으로 영태를 유혹한다. 이들은 영태의 신뢰를 배신으로 갚았고, 거짓말로 도덕심을 잃었다.

 

그러나, 가난이 대문을 두드리고, 방 안까지 들어왔을지라도 영태와 정희는 인간의 도를 지킨다. 그들의 사랑도 변하지않은 것 같다. 정희는 '오빠'라 부르는 남편과 악수를 하며 말싸움도 없이 의리적 동반자로 살아간다. 정희는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말한다. "이달 생활비 부족할 거 같아. 보일러를 좀 아껴 쓸까?  영태는 "아냐, 삶의 질도 중요하니깐. 그래도 우리가 사채까지 쓰진 않았잖아. 사채까지 썼다간 구원받을 수 없어."라고 대답한다. 이들에게 마지 노선은 사채다. 정희의 후배 교사 미선도 사채를 써야할 정도로 삶이 각박하다. 모두들 실업난으로 생존을 위해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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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n Day, Cold at Night  directed by Park Song-yeol2022 New Directors /New Films 

 

박송열 감독의 인간을 보는 시선은 따스하다. "이 영화에서 악한은 없다. 부유층에 대한 분노도 없다. 정희는 특활교사 수업에 늦은 후 8만원을 번 후 지쳐서 "돈 버는게 너무 무서워"라며 독백을 할 뿐이다. 영태 선배 명수는 최소한 카메라 대여비를 주었고, 그에게 직장 면접을 추천했다. 사정으로 카메라를 판 후 영태가 분노하자 명수는 현금인출기에서 300만원을 뽑아 카메라값으로 줄 정도로 양심은 있다. 

 

그후 영태는 카메라값 300만원을 바가지 씌웠다고 죄책감("불명예")을 느끼고, 100만원을 돌려주기까지 한다. 전화기 건너편의 미선은 정희에게 돈을 빌려주고, 하루 특활 선생으로 소개하는 좋은 후배다. 사채업자들도 악한이라기보다는 본업에 충실한 인물들처럼 보인다. '실태조사'라며 정희 친정엄마 집에 찾아간 후 이자 빼고 원금을 갚으라고 말한다. 친정엄마는 정희의 빚을 갚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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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n Day, Cold at Night  directed by Park Song-yeol2022 New Directors /New Films 

 

영화는 백수 부부에게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첫장면에서는 영태와 정희는 주방 바닥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전세 인상 걱정을 하며, 영태가 면접한 후엔 좌식 밥상에서 추리닝 바지를 입고 쌈과 소주를 먹는다. 그리고, 중국화폐를 환전해 돈이 생긴 정희와 영태는 개울가에서 데이트하며 스무디를 먹은 후 저녁엔 식탁에서 특별히 생선회를 먹는다. 이처럼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부부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친다.

 

정희가 친정 엄마 집에서 낮잠을 잘 때 TV 화면에선 "밥도둑 간장게장 흰밥에 비벼서 침 넘어간다"는 내용이 들린다. 홍상수(Hong Sangsoo) 감독의 영화에서 남녀의 연애와 대화에 등장하는 소주와 달리 영태와 정희가 기울이는 소주잔은이 비참한 생활고를 잊으려는 치유의 술일 것이다.   

 

음악도 없다. 거리의 차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새 소리, 냉장고 소음 소리, 스마트폰 소리... 일상의 음향을 그대로 담고, 음악으로 장면을 미화하거나, 극적으로 감정을 고조시키지 않는다. 유일한 음악은 정희 엄마의 생일날 가족이 부르는 축하곡이다. 대사 역시 미니멀이다. "저녁은?" "밥" "갈께" "그래 가" 등 군더더기가 없는 리얼한 대사들이다.  우리는 대부분 음악 없이 소음들 속에서 생활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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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n Day, Cold at Night  directed by Park Song-yeol2022 New Directors /New Films 

 

영태와 정희가 사는 동네엔 개울이 흐르고, 오리들이 살고 있다. 개울의 난간은 이 부부를 가난의 감옥에 갇힌 인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정희가 걷고 있는 거리의 장미도 선 너머에 있다. 물리적으로 가깝지만, 심리적으로 먼 냇물과 장미다. 

 

그러나, 부부가 최소한으로 지키는 인간성과 도덕성은 개울 저편의 먼산과 영태가 걷는 새벽길의 가로등처럼 이들을 따사롭게 지켜보고 있는듯 하다. 그것은 박송열 감독이 인간을 보는 시선일 것이다. 러시아 시인 알렉산더 푸쉬킨(Alexander Pushkin, 1799-1837)의 시처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What though life conspire to cheat you, Do not sorrow or complain...)"라고 나직하게 말하고 있는듯 하다.  

  

실제 부부라는 박송열 감독과 원향라 배우는 시나리오를 함께 썼고, 영태와 정희로 오버액션 없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박송열 감독은 연출, 연기, 촬영, 조명, 편집, 녹음까지 맡아 독립영화의 귀재임을 입증했다. 카메라를 세워두고, 연기하는 셀프 카메라(self-camera) 촬영이다. 그래서 카메라 앞에 인물들이 이동하고, 로베로 브레송의 카메라처럼 여백이 생긴다.  

 

이 영화는 2021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장편), 부산국제영화제 KBS독립영화상과 크리틱b상을 수상했다. 상영시간 90분. 박송열 감독은 25일과 27일 두 상영회에서 관객과 대화의 시간을 연다. 

 

Hot in Day, Cold at Night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Park Song-yeol, 2021, South Korea, 90m

Monday, April 25, 6pm, FLC Walter Reade Theater (Q&A with Park Song-yeol)

Wednesday, April 27, 6pm, MoMA T2 (Q&A with Park Song-yeol)

https://www.newdirectors.org/2022/films/hot-in-day-cold-at-night

  

*2022 뉴디렉터/뉴필름 라인업 

http://www.nyculturebeat.com/?mid=Film2&document_srl=4062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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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2.04.21 08:46
    젊은 백수부부의 얘기를 실감나게 읽었습니다. 부엌에서 신문지를 깔고 삼겹살을 구워먹는다든가 전세비를 올릴까봐 걱정하는 모습 등등이 가난을 잘 나타냈네요. 백수지만 부부싸움 한번없이 처해진 상황을 조용히 헤쳐나가는 게 잔잔한 감동을 일렁이게 합니다. 가난은 거의 모든 것을 뺏어간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여기 등장하는 백수부부는 부부애도 있고 희망도 보입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