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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DOCNYC <1> Come Back Anytime 

'언제든지 다시 오세요(またいらっしゃい)'

도쿄 라멘집 명인은 무엇으로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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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Back Anytime' 예고편

https://youtu.be/qAv6dAr62oA

 

일본 라멘(ramen)이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게된 배경에는 뉴욕의 한인 2세 셰프 데이빗 장(David Chang, 장석호)의 공이 크다. 데이빗 장은 2004년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의 허름한 곳에 모모푸쿠(Momofuku Noodle Bar)를 열고 일본식 라면을 주 메뉴로 선보였다. 그의 히트작은 사실 라면보다 중국식 삼겹살 샌드위치 포크 번(pork bun)이었다. 뉴욕의 식도락가들을 매료시킨 데이빗 장은 스타덤에 올랐고, 2010년 '타임(TIME)'지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이후 이스트빌리지뿐만 아니라 뉴욕시 5개 보로에 라멘집이 속속 문을 열었다. 스시와 사시미를 넘어서 라멘이 일본의 간판 음식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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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본토 라멘집에 관한 영화는 오래 전에 나왔다. 1985년 이타미 주조 감독의 코미디 '담뽀뽀(タンポポ, Tampopo)'는 최고의 라멘을 만들고 싶어하는 미망인(담뽀뽀)과 그녀를 돕는 카우보이 모자 남자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 명인이 어떻게 라멘을 먹는 것인지 가르치는 Tampopo - Ramen Eating Instructions장면이 나온다.

 

2011년 메트오페라 피터 겔브 단장의 아들 데이빗 겔브(David Gelb)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Jiro Dream of Sushi'는 도쿄의 미슐랭 3스타 테이스팅 메뉴($270) 레스토랑 스키야바시 지로(Sukiyabashi Jiro)를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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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Back Anytime/またいらっしゃい, 2021' by John Daschbach. 2021 DOCNYC

 

올 뉴욕 다큐멘터리 영화제(DOCNYC, 11/10-28)에 초청된 존 다쉬바흐(John Daschbach) 감독의 '언제든지 다시 오세요(Come Back Anytime/またいらっしゃい)'는 삶의 향기가 풍겨나는 진지하고 소박한 식당 이야기다. 도쿄의 한적한 거리에 있는 라멘집 비젠테이(Bizentei/ びぜん亭) 주인 마사모투 우에다(Masamoto Udeda)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연로한 우에다씨가 비젠테이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는 어두운 식당 안에서 우에다씨가 (아마도 입간판을 밖에 세워놓고, '오픈' 배너를 걸고) 들어오는 모습을 자연광과 함께 포착한다. 그리고, 돼지고기 뼈와 닭고기 비계, 마늘, 양파 등 각종 야채를 넣고 라멘 국물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역을 썰고, 죽순을 준비하고, 부인은 묵묵히 만두(교자)를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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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comebackanytimedoc

'Come Back Anytime/またいらっしゃい, 2021' by John Daschbach. 2021 DOCNYC

 

어느덧 40년 째 부인 가즈코(Kazuko Udeda) 여사와 함께 라멘집을 운영해온 그는 고객에게 '맛있는 라멘'을 제공하기 위해 최고의 식재료를 써서 열심히 일한다. 여기에 마음을 담아 준다. 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하루 번돈을 세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맛있다~"고 말할 때다. 국물을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들이키며 젓가락까지 빨게 만드는 그 라멘, 국물의 맛은 중독적이다. 담백하면서도 진한 국물의 맛,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 도쿄 라멘은 간장을 쓰고, 중국 라면은 소금을 쓴다. 우에다씨에게 조리법의 멘토는 책이었다. 여러차례 실험으로 우에다 라멘 국물이 나왔다. 그의 한결같은 정성과 맛에 반한 단골 손님들도 부지기수다. 그들은 우에다씨를 '마스터(Master)'라고 부른다. 

 

비젠테이는 단순히 한끼를 때우는 식당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 비젠테이에서 일했던 종업원은 단골 손님과 결혼했고, 부모의 별세로 우울증에 빠졌던 동네 여인은 우에다씨의 위로를 받았다. 근처 인쇄공장 영업사원이었던 남자는 배 농장 주인이 되어 우에다씨와 우정을 지속하고 있다. 그 손님은 비젠테이가 철거됐을 때 상심했다가 이주한 곳을 찾아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는 최고의 라멘을 만들고, 나는 최고의 배를 재배한다"는 이심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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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Back Anytime/またいらっしゃい, 2021' by John Daschbach. 2021 DOCNYC

 

존 다쉬바프 감독은 마스터 우에다 부부의 삶을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 속에 담았다. 벗꽃이 만발한 봄부터 우에다의 삶을 회고한다. 시골 오카야마에서 태어난 우에다씨는 질풍노노의 청년기를 보냈다. 고등학교를 갓졸업한 가즈코씨와 결혼했다. 이와 함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 입에서 녹는 라멘 토핑 차쥬(돼지고기 간장조림)의 맛을 들려준다. 가게가 쉬는 날, 우에다씨는 시골로 가서 농장을 직접 가꾼다. 인근 대나무숲에서 죽순을 캐다가 죽순 밥을 짓고, 식당에서 튀김으로 내놓기도 한다. 최불암씨의 TV 다큐멘터리 '한국인의 밥상'같은 장면이다.   

   

가게 앞에 자전거 탄 이가 지나가는 여름, 우에다씨는 청년시절 나이트클럽 바텐더로 일하면서 야구 도박에 빠져 큰 빚을 지게 됐다. 삼촌이 빚을 갚아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깡패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와 부인은 도쿄로 이주해 허름한 곳에 라멘집을 열며 새출발을 하게된다. 우에다씨는 휴일에는 좁은 식당 주방에서 벗어나 시골로 가서 유기농으로 채소를 재배한다. 살충제도 고추, 식초 등으로 만들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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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Back Anytime/またいらっしゃい, 2021' by John Daschbach. 2021 DOCNYC

 

가을 편은 1991년 식당이 철거되고, 공원 수도를 사용하며 라멘집을 운영했던 고단한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게다가 우에다씨는 위궤양까지 얻었다. 동네 손님은 부모를 잃었고, 우에다씨는 그녀를 "우리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라며 위로한다. 우에다 부인은 더 이상 남편의 농장에 동행하지 않는다. 60세가 되면서 손주들에게 당당해지기 위해 '식당 아줌마'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편, 우에다씨는 단풍이 무르익은 산에서 야생마(mountain yam)를 캐서 갈아 일본에서 가장 맛있다는 쌀 '니가타 고시히카리'로 밥을 지어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 

 

겨울은 식당 앞에 자전거 대신 트럭이 지나가며 시작된다. 시골에서 쌀을 갈아 동네사람들이 돌아가며 떡방아질을 한다. 네모난 찰떡은 또한 비젠테이 라멘의 토핑으로 제공되기도 한다.

 

일본에선 식당을 대대손손 물려주는 것이 전통다. 하지만, 'MY WAY'로 살아온 라멘 장인 우에다씨는 후계자도 상속자도 없다. 그는 자신의 삶이 끝나면, 비젠테이 라멘도 끝이라고 말한다. 그의 정성과 손맛을 누가 베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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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Back Anytime/またいらっしゃい, 2021' by John Daschbach. 2021 DOCNYC

 

카메라는 늦은 밤 우에다씨가 식당 밖의 입간판을 안으로 들여가면서 페이드아웃된다. 영화 제목은 '마다 이랏샤이!(언제든지 다시 오세요)'지만, 우리는 언젠가 우에다씨와 비젠테이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안다. 가족같은 식당 주인, 한결같은 맛,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지만, 우리의 삶처럼 유한하다. 

 

'Come Back Anytime'은 온 정성을 담은 한 그릇의 라멘이 주는 요리사와 손님의 행복 뿐만 아니라 황혼의 나이에 시골에서 자연을 섬기며, 균형있는 삶을 찾아 충전하는 우에다씨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스타 요리사들이 스타덤과 돈방석에 올라 키친을 떠나고, 지점 오픈에 혈안이 되는 오늘의 요식업계에서 우에다씨와 비젠테이는 잔잔한 교훈을 남겨준다.        

 

존 다쉬바흐 감독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우에다씨의 인생 4계를 담았고, 편집까지 맡았다. 바흐, 슈만, 멘델스존, 모차르트, 드뷔시 등의 클래식을 재즈로 편곡한 음악으로 라멘집 이야기는 더욱 담백하고, 맛깔스럽다. 81분.

 

Bizentei | びぜん亭

1 Chome-7-10 Fujimi, Chiyoda City, Tokyo

 +81 3-5276-2339

 

 

DOCNYC 2021

11월 12일 오후 7시 30분 @IFC센터(323 6th Ave., 지하철 West 4)

온라인 상영(11월 13일-28일) 

https://www.docnyc.net/film/come-back-anytime

 

 

*모모푸쿠 데이빗 장 인터뷰, 2010

https://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046189&mid=People2

 

*뉴욕의 일본라멘 베스트 <상> 1-5위

http://www.nyculturebeat.com/index.php?document_srl=2871918

 

*뉴욕의 일본라멘 베스트 <하> 6-10위

http://www.nyculturebeat.com/?mid=FoodDrink2&document_srl=3524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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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11.04 20:38
    동경의 라면집 비젠테이를 읽었습니다. 잔잔한 감동이 흘렀습니다. 40년동안 한우물을 파서 드디어 손님이 맛있다는 말을 하는 데까지 이끌어 온 주인 마사모토 우에다씨와 부인 가즈꼬씨의 노력과 끈기에 존경이 갑니다. 이런 훌륭한 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맛이 더욱 더 나는가 봅니다. "Come Back Anytime-마다 이랏사이"가 손짓하네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