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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 61 (9/29-10/15)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 ★★★★★

'살인의 해부(Anantomy of a Murder, 1959)'의 오마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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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omy of a Fall/ Anatonie d'une Chute by Justine Triet

*예고편 Trailer  https://youtu.be/FUXawkH-ONM?si=-kNxVAPki4KPV0_j

 

2023 뉴욕영화제에 초대된 쥐스틴 트리에(Justine Triet) 감독 작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 Anatonie d'une Chute)'는 얼핏 오토 프레민저(Otto Preminger) 감독의 할리우드 법정 드라마 '살인의 해부(Anatomy of a Murder, 1959)'를 떠올린다. '살인의 해부'는 미시간주 작은 마을 변호사(존 스튜어트)가 부인(리 레믹)을 성폭행한 바텐더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현역 중위(벤 가자라)의 변호를 맡아 펼치는 법정 드라마다. 사울 바스(Saul Bass)가 디자인한 '살인의 해부' 포스터(샌프란시스코미술관 소장)는 '낙하의 해부'의 메인 키아트와 흡사하다. 그리고, 부인이 추락사한 남편의 살인 혐의를 받는다는 줄거리는 박찬욱 감독의 지난해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을 연상시킨다. 

 

뿐만 아니라 '추락의 해부'는 1952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羅生門, Rashomon, 1950)'에서도 영감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숲속에서 사무라이의 시체가 발견되고 각 목격자(나무꾼, 도적, 부인, 사무라이-무녀 빙의)들이 자신의 기억과 인식에 의존해 진술한다. 진실은 어디에? 쥐스틴 트리에가 남편 아서 하라리(Arthur Harari)와 함께 시나리오를 쓴 '추락의 해부'는 어쩌면 이들 영화에 대한 오마쥬일지도 모른다. 2023 칸영화제는 '추락의 해부'에 황금종려상(Palme d'Or)을 헌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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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플레민저 감독의 '살인의 해부' (1959)/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 (2023) 포스터

 

백설이 자욱한 알프스산의 자그마한 산장, 영화는 애견 보더 콜리 스눕(Snoop)이 나무 계단을 내려오는 것으로 불안하게 시작한다. 스눕은 테니스 공이 아래층으로 떨어지자 공을 잡은 후 2층으로 올라간다. 한편, 주인공인 작가 산드라(산드라 휠러 분)이 여자 대학원생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터뷰라기 보다는 블라인드 데이트에서 만난 것처럼 두 여자의 대화는 때때로 유혹적이다. 갑자기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랩가수 50센츠의 'P.I.M.P'다. 2층의 남편이 트는 음악이다. 

 

대학원생이 떠난지 얼마 후 산드라는 아들 다니엘과 남편 사무엘(사무엘 테이스 분)의 시체를 발견한다. 사무엘은 다락방에서 떨어져 자살한 것일까? 누군가 밀어서 살해당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사고였을까? 산드라는 곧 남편의 살해 용의자로 기소되고 그녀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드러내며 자신을 변호해야 한다. 유일한 목격자는 11살 짜리 아들 다니엘, 그는 사고로 시력을 잃은 상태다. 

 

재판에 들어가면서 검사는 무자비하게 산드라의 사생활을 파헤친다. 다니엘조차 몰랐던 부모의 관계가 폭로된다. 영화는 차라리 '결혼의 해부(Anatomy of a Marriage)'같다. 존 그레이(John Gray)의 책 '남자는 화성에서,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 1992)'가 있듯이 산드라는 독일, 사무엘은 프랑스 출신이다. 부부는 영어로 소통한다. 그래서 오해를 종종 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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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omy of a Fall/ Anatonie d'une Chute by Justine Triet

 

사무엘과 산드라는 겉으론 행복해보이는 커플이었다. 그러나, 재판으로 까발려진 부부의 실상은 달랐다. 작가 지망생이었던 사무엘은 교사였고, 생활이 궁핍해지자 프랑스 알프스산의 작은 집으로 이주했다. 오랫동안 우울증약을 복용해온 사무엘은 다니엘을 홈스쿨링하며, 집을 보수해 에어비앤비로 돈을 벌 작정이었다.

 

한편, 산드라는 남편의 소설 아이디어를 갖고 소설을 출간해 성공했다. 작가라는 이유로 집안 살림은 도외시해왔다. 살짝 바람도 피웠다. 수년 전 아들이 교통사고로 시력 장애가 된 후 산드라는 남편을 원망한다. 그후로 이들의 관계는 냉각되어 부부 싸움에 폭력까지 오갔다. 

 

재판 과정에서 산드라는 검사의 공세와 부부싸움 녹음, 증인들의 진술로 인해 자존심이 산산이 부서지고, 살인자로 판결될 위기에 빠진다. 마지막 희망은 아들 다니엘의 증언이다. 다니엘은 재판에 참석하면서 아빠가 자살을 시도했었고, 엄마가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까지 엄마와 아빠의 불행한 관계를 낱낱이 들으면서 트라우마에 빠져있다. 다니엘의 증언이 산드라를 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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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omy of a Fall/ Anatonie d'une Chute by Justine Triet

 

2023년 영화 '추락의 해부'는 사적인 삶과 공적인 이미지, 현실과 허구, 기억과 진실에 대해 탐구한다. 영화 속 산드라와 사무엘의 행복했던 시절에 박제된 사진들에는 행복이 만연하지만, 녹음된 테이프엔 불행한 무덤에 갖힌 부부처럼 들린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오프닝에서 견공 스눕이 내려오는 나무 계단을 보여주며 우리 인식의 프레임에 경고하는듯 하다. 각 계단의 프레임에 따라 우리의 기억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트리에 감독은 다니엘이 견공 스눕이 아팠을 때 아빠 사무엘과 차 안에서 나누었던 죽음에 대한 대화를 증언하는 장면에서 사무엘의 말하는 모습에 다니엘의 음성으로 들려준다. 우리는 어떻게 기억과 언어를 통해서 진실을 얼마나 진실답게 전달할 수 있을까? 

 

'추락의 해부'는 예기치 못한 과거들이 드러나면서 소설가 산드라를 입체적으로 그려나간다. 관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산드라의 초상화가 스케치에서 데생, 유화로 전이되는 것을 보듯 캐릭터를 메꾸어나간다. 그러면서 관객은 산드라가 결함이 많은 인물임을 알게되며 더 의심을 갖기 시작한다. 동시에 사무엘이 누구인가를 점점 알아나가며, 그에게 동정과 연민도 생겨난다. 또한, 아빠의 죽음, 엄마의 배신, 부모의 비밀에 압도된 다니엘에 대해 측은지심을 갖게 된다. 

   

진실에 대해 탐구한 '라쇼몽'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연출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얘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하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죄악이다"라고 말했다. 

 

 

An Anatomy of "Anatomy of a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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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omy of a Murder, 1959, by Otto Prem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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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omy of a Fall, 2023, by Justine Triet

 

'살인의 해부'에선 벤 가자라가 부인 리 레믹을 성폭행한 것으로 의심되는 바텐더를 질투심에 권총으로 살해한다. 1959년 가부장적인 남편 용의자에 아내는 욕망의 대상으로 나온다. 2023년 '추락의 해부'에선 작가 지망생인 남편이 작가로 성공한 부인을 대신해 집안 살림을 하고, 아들을 홈스쿨링하다가 우울증에 빠진다. 남녀의 역할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역전된 것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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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스튜어트와 재즈 거장 듀크 엘링턴의 피아노 듀엣. Anatomy of a Murder, 1959, by Otto Prem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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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omy of a Fall, 2023, by Justine Triet

 

'살인의 해부'에선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이 제임스 스튜어트와 함께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나오며 엘링턴의 재즈 음악이 전편에 흐른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추락의 해부'에서 배경 음악을 딱 5곡만 썼다. 각각 사무엘, 산드라, 다니엘의 심경을 대변하는 곡처럼 들린다. 영화 도입부에서 산드라가 인터뷰할 때 시끄럽게 흐르는 음악은 래퍼 50센트(50 Cent)의 "P.I.M.P."의 스틸밴드 연주곡 버전이다. 분노의 함성이 담긴 곡으로 들린다. 스패니시 기타 연주곡으로도 유명한 이삭 알베니즈(Isaac Albéniz) 작곡 '아스투리아스(Asturias/ Leyenda'는 아들 다니엘이 난폭하게 치는 버전과 미구엘 바셀가(Miguel Baselga)의 피아노 버전 두가지로 들려준다. 이 곡은 산드라의 불안한 심경을 표현하는 음악같다. 한편, 아들 다니엘이 난폭하게 치는 쇼팽의 'Prelude Op. 28, No. 4’는 제인 버킨이 'Jane B'로 노래했던 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베누아 다이넬의 '쇼팽의 프렐루드 변주곡'이 삽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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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uffy the dog in Anatomy of a Murder, 1959, by Otto Prem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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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op the dog in Anatomy of a Fall, 2023, by Justine Triet

 

'살인의 해부'에선 리 레믹의 테리어종 견공 스너피(Snuffy)가 법정에 증인(!)으로 등장하며, '추락의 해부'에선 산드라, 사무엘, 다니엘에 이은 제 4의 캐릭터가 보더 콜리 견공 스눕(Snoop)이다. 다니엘과 산책을 다니는 메씨는 이 가족을 객관적으로 목격한 증인(!)일 것이다. 마지막에 무죄로 판결된 산드라가 기진맥진해 소파에 누웠을 때 옆에 눕는 스눕은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발타자르(Au Hasard Bathazar, 1966)'의 당나귀 발타자르처럼 신(God)의 메타포일까? 본명이 메씨(Messi)인 이 견공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견공 배우들을 대상으로 하는 견공종려상(Palme Dog Award)을 받았다. 견공종려상은 2001년 비평가들이 시작한 칸영화제의 비공식 상이다. 

 

산드라 휠러는 올해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추락의 해부' 뿐만 아니라 칸 그랑프리(심사위윈대상)을 수상한 조나단 글레이저(Jonathan Glazer) 감독의 '용의 지역 The Zone of Interest)'에서 나치군의 부인 역을 맡았다. 휠러는 '레퀴엠'(Requiem)으로 2006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연기파로 2016년 뉴욕영화제에 '토니 에드만(Toni Erdmann, 2016)'이 상영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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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omy of a Fall/ Anatonie d'une Chute

OCTOBER 7, 5:30 PM/ OCTOBER 8, 8:15 PM/ OCTOBER 11, 2:15 PM.

Q&A with Justine Triet on Oct. 7 & 8

https://www.filmlinc.org/nyff2023/films/anatomy-of-a-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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