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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센터 '한국 영화 황금기 1960년대' (9/1-17) 추천작 

<5> 안개 Mist (1967)  

 

김승옥 원작, 박찬욱 '헤어질 결심'의 영감  

한국판 '잃어버린 세대' 고뇌 그린 김수용 감독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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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t, 1967

 

*'안개 (Mist, 1967)' Korean Classic Film <YouTube>

https://youtu.be/GppVzuwaK-Y?si=joTsfiFr6r8X007N

 

'문예영화(문학작품 원작 영화)의 대가' 김수용(1929-  ) 감독의 '안개(Mist, 1967)'는 1964년 감수성이 풍부한 감각적인 문체로 한국문학계를 흔든 김승옥(1941- )의 단편소설 '무진기행 (霧津紀行)'이 원작이다. 작곡가 이봉조의 주제가 '안개'는 박찬욱 감독의 걸작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2023)'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안개'의 무진과 '헤어진 결심'의 이포는 가상의 도시다. 그런 의미에서 무진은 주인공의 잠재의식일지도 모른다.  

장인이 운영하는 제약회사의 간부 윤기준(신성일 분) 승진을 앞두고 부인의 권유로 고향 무진으로 내려간다. 바닷가 마을 무진에서 내세울 것이라곤 짙은 안개뿐이다. 기준은 동창인 세무서장 조한수(이낙훈 분), 후배 박선생 등이 모인 화투판에서 음악선생 하인숙(윤정희 분)을 만난다. 서울에서 음대 성악과를 나온 인숙은 술상에서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 박선생과 조한수는 인숙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만, 인숙은 기준에게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달라고 간청한다. 기준과 인숙은 예전에 기준이 살던 방에서 사랑을 나눈다. 다음날 부인으로부터 상경하라는 전보를 받은 기준은 인숙에게 편지를 썼다가 찢어버리고 무진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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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t, 1967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듯이 당신을 햇볕 속으로 끌어놓기 위하여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대로 소식을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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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t, 1967


윤기준의 출세는 자신의 실력보다 부잣집 데릴사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곧 전무로 승진할 테지만, 마음은 착잡하다. 그래서 고향을 찾으며 자신의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무진은 기준에게 가난했고, 무기력하고, 불확실했던 젊은 날의 고뇌가 담긴 공간이다. 그곳에서 문학청년의 순수성을 간직하고, 인숙을 사랑하는 박선생과 속물형 인간 조한수를 만난다. 마을에선 상여가 지나가고, 미친 매춘부가 자살을 했다. 그곳에 표류해있는 인숙은 대학시절 부르던 오페라(나비부인)의 아리아 '어떤 개인 날(Un bel di vedremo)' 대신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 심심한(쓸쓸한, 외로운) 인숙의 유일한 탈출구는 기준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서울은 기준에게도, 인숙에게도 무진과 비교해서 '맑은 날'이 많은 도시다. 서울에서 책임이 막중하지만, 적어도 미쳐버릴 것 같은 안개마을은 아니다. 기준은 인숙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사랑을 느낀다. 그것은 연민일까? 아니면, 자기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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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t, 1967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바람은 무수히 작은 입자로 되어 있고, 그 입자들은 할 수 있는 한 욕심껏 수면제를 품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그 바람 속에는, 신선한 햇볕과 아직 사람들의 땀이 밴 살갗을 스쳐보지 않았다는 천진스러운 저온, 그리고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길을 에워싸며 버스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산줄기의 저편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소금끼, 그런 것들이 이상스레 한데 얼리면서 녹아 있었다."
-소설 '무진기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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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기준 사무실엔 광고가, 고향 무진에는 영화 간판이 걸려있다.  이 두 장면은 김수용 감독이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사이에서 겪는 갈등의 메타포일까? Mist, 1967

제약회사 상무로 출세했지만, 기준의 마음은 병이 들어 있다. 전후 한국의 청춘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를 상징하는 기준은 고향 무진을 방문하면서 '젊은 날의 초상'을 회고한다. 전쟁과 가난, 절망과 분노를 감쌌던 곳, 탈출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던 고향 무진에서 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여자, 인숙을 만난다.  

그러나, 안개 낀 무진에서 기준의 일탈은 돌아가야할 현실(서울, 아내, 회사) 앞에서 잊어버려야할, 안개로 덮어야할 관계였을 뿐이다. 기준은 그 순수의 시대, 감성의 공간을 떠나간다. 그러면서 서울로 상징되는 햇볕과 속물의 세계로 통합하려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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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소설에서 나무들에 대한 묘사는 김수용 감독의 영화에서 이미지로 대치된다. Mist, 1967


"다리를 건널 때 나는 냇가의 나무들이 어슴프레하게 비치는 것을 보았다. 옛날 언젠가 역시 이 다리를 밤중에 건너면서 나는 저 시커멓게 웅크리고 있는 나무들을 저주했었다. 금방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듯한 모습으로 나무들은 서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나무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햇빛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과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있는 정도의 소금끼, 이 세가지를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잘들고 싶어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 '무진기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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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준은 청년시절의 자신과 대화를 한다. Mist, 1967


김수용 감독은 기준이 절망적이었던 청년시절을 회고하는 장면(flashbacks)을 삽입하면서 내면의 갈등을 시각화한다. 플래시백을 많이 사용한 유럽 영화로 스웨덴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의 '산딸기(Wild Strawberries, 1957)'와  알랭 레네(Alain Resnais)의 '히로시마 내 사랑(Hiroshima, mon amour, 1959)'를 연상시킨다. '산딸기'는 의사생활 50년 후 명예학위를 받으러 가는 교수가 유년시절을 보낸 별장에 들렀다가 만난 젊은이들과 여행 중 사고로 환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이야기다. '히로시마 내 사랑'은 촬영차 히로시마에 온 프랑스 여배우가 일본인 건축가를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누며 2차대전 때 겪은 전쟁의 트라우마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안개'의 시나리오는 김승옥이 직접 썼다. 원작자가 각색하면서의 잇점이라면, 소설의 의도를 최대한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상예술인 영화에서 해설은 너무 문학적이다. 그러나, 윤기준(원작에선 윤희중)의 나레이션은 김승옥의 사색적이며, 고혹적인 문체에 김수용 감독의 서정적인 영상미, 그리고 이봉조의 멜랑콜리한 색소폰/기타/하모니카 연주로 시너지를 품어 낸다. 재즈의 영향을 받은 이봉조(1931-1987)가 작곡한 '안개'의 테마가 기타, 색소폰, 하모니카 그리고 하인숙의 노래(정훈희)로 변주되면서 멜란콜리한 안개도시의 우울한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1962년 가수 현미의 ‘밤안개’도 이봉조 작곡이니 안개와 여러모로 인연이 많은 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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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t, 1967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다. 꼭 한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 손가락을 내밀어라. 나는 거기에 내 새끼 손가락을 걸어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소설 '무진기행' 중에서-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1925)'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를 연상시킨다. 원작에서 희중은 소년시절 독서광이었으며, 후배 박선생이 좋아하는 작가가 피츠제럴드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기준이 인숙과 정사 후 이모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박선생이 주고간 책도 피츠제럴드의 소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도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으로 보면 제목이 보일 것 같다.) 기준은 잠자리에서 와인을 병째 마시다가 책 옆으로 흘려버린다.  

피츠제럴드도 할리우드로 가서 시나리오를 썼다. 김승옥은 '안개' 이듬해인 1968년 이어령 소설 '장군의 수염'을 시나리오로 각색했으며, 연출은 이성구 감독('하녀' 이은심의 남편)이 맡았다. 같은해 김승옥은 김동인 원작 '감자'를 직접 각색하고, 감독까지 했다. 윤정희가 복녀, 허장강이 장서방 역을 맡았으며, 음악은 이봉조가 작곡했다.


*책읽는밤 '무진기행' 낭독-권도일
https://youtu.be/VZdbF4U7bSU?si=IAC77gADOtCvZb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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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Mist / Angae

김수용 감독 Kim Soo-yong, 1967, South Korea, 78m

Korean with English subtitles. 김승옥 단편 '무진기행' 원작, 신성일, 윤정희 주연. 

 

An atmospheric work by an immensely talented filmmaker, Mist has taken its place as one of the high points of 1960s South Korean cinema. Based on a famous 1964 modernist novel by Kim Seung-ok titled Journey to Mujin, Kim Soo-yong’s film tells the story of a middle-class office worker in Seoul who takes a trip to his rural hometown. As he revisits the place of his youth, familiar locations and people trigger flashbacks of his troubled past. At the same time, he meets a young schoolteacher who yearns to escape from the confines of her everyday life. Powered by magnetic performances from Shin Sung-il (the most prolific actor in Korean film history) and Yoon Jeong-hee (who years later would play the lead in Lee Chang-dong’s Poetry), Mist offers experimental blurring of past and present that captures the restlessness and disappointment of an entire generation of dreamers. Restored in 2011 by the Korean Film Archive.

Friday, September 1 at 8:45pm/ Sunday, September 10 at 4:00pm 

 

 

Walter Reade Theater: 165 West 65th St. 

Tickets: $17(일반), $14(학생, 노인, 장애인), $12(필름소사이어티 회원) *$5 할인코드 KOREANYC

https://www.filmlinc.org/series/korean-cinemas-golden-decade-the-1960s/#films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을 넘어서 

#5 한(恨)과 한국영화 르네상스 Country of Trauma, Culture of Drama  

Koreans have a unique sentiment of 'han'. The ethnic trauma of Koreans, such as separated families due to the division of the two Koreas after the war and the Ferry Sewol disaster, were more dramatic reality than the movies. Koreans who share their national sad feelings want more dramatic narratives and unforgettable characters. We are hungry for that. It is also the reason why Korean directors such as Park Chan-wook, Bong Joon-ho and Hwang Dong-hyeok have developed brutal aesthetics.

http://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Zoom&document_srl=4072876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 1930-90년대 한국 고전영화 100여편 무료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Film2&document_srl=410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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