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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ita Yoshimitsu Retrospective 

 

'화양연화' '헤어질 결심' 이전에 '소레카라'가 있었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계 배우 마츠다 유사쿠(김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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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소레카라(Sorekara, 1985)'에서 마츠다 유사쿠와 후치타니 미와코/ TV 시리즈 '탐정 스토리'(1979-80)에서 마츠다 유사쿠(김우작),

 

구글, 유튜브도 없었던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 화질 나쁜 비디오테이프로 외국 영화를 하루에도 몇편씩 보고 있었다. 어느날 비평가 정성일씨가 비디오 한편을 보라며 빌려주었다. 레이저디스크(LD)를 복사한 테이프라 화질이 상당히 좋은 일본영화였다. 모리타 요시미츠(森田芳光, Morita Yoshimitsu, 1950-2011) 감독의  '소레카라/ 그후 (Sorekara/ それから/ And Then, 1985)'였는데, 안타까운 러브 스토리에 벚꽃이 흩날리는 다리 위의 등장인물들과 테마 음악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 2000)',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2022)' 만큼이나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고, 며칠간 앓게 되는 영화다. 

 

'소레카라'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베니스에서 죽음(Death in Venice, 1970)'처럼 뉴욕에 온 후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다. '베니스에서 죽음'은 MoMA에서 보고, TV TCM 채널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20년이 지나도록 링컨센터나 필름포럼같은 예술영화관이나 크라이테리온(Criterion) 채널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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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실낙원(Lost Paradise, 1997)' 상영에 앞서 프로듀서 미사와 가즈코(Kazuko Misawa)씨와 작곡가 오시마 미치루(Michiru Oshima)씨가 회고전에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마침내, 링컨센터필름소사이어티(Film Society of Lincoln Center)에서 12월 2일부터 11일까지 일본 감독 모리타 요시미츠 회고전이 열렸다. 그의 영화 12편이 상영된 이번 회고전에선 물론 '소레카라'를 놓칠 수 없었다. 그리고, 쇼킹한 러브 스토리 '실낙원(Lost Paradise, 1997)'과 바나나 요시모토의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키친(Kitchen, 1989)'을 보았다.  https://www.filmlinc.org/series/yoshimitsu-morita-retrospective

 

모리타 요시미츠는 1983년 우등생과 문제아 아들을 둔 부모가 가정교사를 고용하며 벌어지는 블랙코미디 '가족 게임(The Family Game/ 家族ゲーム)'으로 일본사회의 명성을 얻었다.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 준보'가 1980년대 일본영화 중 1위로 선정한 작품이다. 그는 코미디, 멜로드라마, 형사물에서 포르노에 가까운 핑크영화, 공포영화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대담한 카메라워크와 참신한 영상미에 미묘한 인간의 심리와 사회비판의식을 가미했던 요시미츠는 2011년 61세로 세상을 떠났다.    

 

 

#'소레카라'와 '화양연화' 'Sorekara' and 'In the Mood fo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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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레카라(Sorekara/ And Then, 1985)' 예고편 

https://youtu.be/FKNuUPT1e8o

 

일본 지폐에도 등장한 소설가 나스메 소세키(夏目漱石/ Natsume Sōseki, 1867-1916)가 1909년 발표한 동명 소설(한국어 번역판 '그 후' 2003 민음사 출간)을 스크린에 옮긴 '소레카라'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무위도식하고 있는 부잣집 청년 다이스케(마츠다 유사쿠 분)의 이야기다. 어느날 다이스케에게 재정난에 시달리는 옛 친구 츠네지로가 찾아와 생활기반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한다. 다이스케는 친구의 부인 미치요를 잊지 못하고 결혼도 포기한 상태였다. 다이스케는 미치요와 상봉한 후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었던 사랑이 활활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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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ekara/ And Then" by Morita Yoshimitsu 

 

다시 본 '소레카라'에서 압권이었던 장면은 다이스케가 백합꽃 사이에서 미치요에게 옛일을 고백하는 씬이다. 카메라가 하이 앵글로 백합 사이로 두 남녀를 잡은 후 다다미 숏(*돗자리에 앉은 눈 높이로 카메라를 설정하는 촬영기법)으로 내려와서 이들이 나누는 회한의 대화를 응시한다. 또, 다이스케가 연정을 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친구 츠네이로와 대화 장면에서 카메라는 배신감과 질투심에 불타오른 츠네지로의 등을 보여주고, 무릎을 끓고, 미치요를 소유하게 해달라는 다이스케의 옆 모습을 포착한다. 모리다 요시미츠 감독은 다다미 숏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Yasujirō Ozu/ 小津 安二郎, 1903-1963) 감독의 콤비 배우 류 치슈(Chishū Ryū)를 다이스케의 사업가 아버지로 캐스팅해 오즈에 이중으로 오마쥬를 표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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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ekara/ And Then by Morita Yoshimitsu 

 

탐미적인 모리타 요시미츠의 영상을 완성하는 것은 우메바야시 시게루(Shigeru Umebayashi/ 梅林茂)의 멜란콜리한 메인 테마곡이다. 홍콩 감독 왕가위는 '화양연화'에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유메지(Yumeji, 1991)'에 흘렀던 시게루 작곡 '유메지의 테마'를 빌려 썼다. 양조위와 장만옥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더 애절하게 만든 것은 그 테마곡이기도 했다. 왕가위는 모리타 요시미츠에 오마쥬를 표한 것일까?     

 

 

#일본영화 사상 위대한 배우 6위 마츠다 유사쿠(김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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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10 Movies of Yūsaku Matsuda

https://youtu.be/Q_DGWCvTx7k

 

'소레카라'에서 우수에 찬 부르주아 청년 다이스케 역을 맡은 배우는 마츠다 유사쿠(松田優作/ Matsuda Yusaku)다. 브루스 리(이소룡)과 홍콩배우 양가휘를 연상시키는 외모의 배우이자, 가수 김현식의 절규하는 목소리를 떠올리는 블루스 가수, 그는 한국계 일본인이다.  

 

1949년 시노모세키에서 태어난 마츠다 유사쿠의 본명은 김우작(金優作). 북한계 재일 한국인 어머니와 유부남이었던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엄마의 성을 따랐다. 도쿄 신주쿠에서 바텐더로 일하면서 배우들과 친분이 생겨 연기에 입문했다. 1973년 TV 형사 드라마 시리즈 '태양을 향해 외쳐라(太陽にほえろ!)'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일본 국적을 취득, 마츠다 유사쿠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8년 TV물 '탐정 이야기(探偵物語)'의 멋쟁이 탐정 역으로 액션스타로 공인되었다.

 

1983년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영화 '가족 게임'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40세 생애 일본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4회 석권하게 된다. 2년 후 모리타 감독의 러브 스토리 '소레카라/그후'로 액션 뿐 아니라 멜로의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다큐멘터리 해설을 할 정도로 좋은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블루스에 심취한 가수로 'Yokohama Honky Tonk Blues' 등 총 6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3곡은 영화의 주제곡으로 쓰이기도 했다.

 

1986년엔 기억상실증에 걸린 홈리스가 야쿠자에 연루되는 이야기를 그린 '호만수(A Homansu, ア・ホーマンス)'의 감독과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1989년 할리우드에 진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레인(Black Rain, 1989)'에서 마이클 더글라스, 앤디 가르시아와 함께 출연했다. 마츠다 유사쿠는 '블랙 레인' 촬영을 마친 후 방광암으로 나이 마흔살에 세상을 떠났다. 액션에서 코미디, 멜로까지 와이드 스펙트럼으로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준보(キネマ旬報) 선정 역사상 최고의 일본 남자배우 6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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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ke was based on Yusaku Matsuda" Jen Bartel @heyjenbartel

 

모델을 방불케하는 183cm의 장신의 더벅머리 배우 마츠다 유사쿠는 수트에 중절모와 선글래스 차림의 패셔니스타 형사의 아이콘이 되어 만화, 비디오 게임의 모티프가 되었다. '북극성의 주먹(Fist of the North Star)'의 켄시로, '카우보이 비밥(Cowboy Bebop)'의 스파이크 스피겔, '시티 헌터(City Hunter)'의 사에바 료, '가면라이더 W'의 히다리 쇼타로, '명탐정 코난'의 쿠도 유사쿠, 'One Piece'의 아오키지, '오니무샤 2(Onimusha 2)'의 주베이 야규가 마츠다 유사쿠의 분신들이다. 아마존에선 '탐정 스토리'의 슌사쿠 쿠도로 분한 모습의 인형(Detective Story: Matsuda Yusaku as Shunsaku Kudou, Black Suit ver)도 판매중이다. 

 

배우 마츠다 미유키와 사이에 낳은 아들 마츠다 류헤이(松田龍平/ Ryuhei Matsuda)와 마츠다 쇼타(松田翔太/Shota Matsuda)가 배우로, 딸 마츠다 유키는 일렉트로닉 그룹의 보컬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아들 쇼타는 일본 TV에서 "김치, 상추쌈을 좋아한다",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나에게도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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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suda Yusaku in "Sorekara/ And Then" by Morita Yoshimit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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