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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회고록 'My Name Is Barbra'의 하이라이트
코, 궁핍했던 소녀시절, 마론 브란도, 워렌 비티, 스티븐 손하임, 제임스 브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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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Name Is Barbra. Barbra Streisand"

가수/영화배우/감독 바브라 스트라이샌드(81)의 회고록 '내 이름은 바브라(My Name Is Barbra, 992p, $47, 바이킹)'가 11월 7일 출간됐다. 뉴욕타임스LA타임스플레이빌이 새 회고록의 하이라이트를 소개했다. 

 

#브루클린 소녀: 어린 시절 브루클린 플랫부시의 빈민자 아파트에서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궁핍하게 자랐다. 바브라는 인형 대신 뜨거운 물병을 들고 다녔다. 차가운 인형보다 진짜 아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웃이 분홍색 모자와 스웨터를 떠서 그녀에게 주었다. <NY Times>

 

#아버지의 사망: 정통 유대교도 출신 교사였던 아버지는 35세에 머리 부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바브라가 생후 15개월 때였다. 아직도 아버지의 책 '셰익스피어 이야기(Tales from Shakepeare)'를 보관하고 있다. 아마도 아버지가 바브라에게 읽어주려고 했던 책인듯 하다. <NY Times>

 

#무명시절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게이바 봉수아(Bon Soir)에서 노래 부르며 스포트라이트가 뜨스하고, 편한 것을 느꼈다. 본명(Barbara)에서 a를 제거하고, Barbra가 됐다. <NY Times>  

 

#코(nose): 언론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코에 대해 공격적(배멀미하는 족제비-seasick ferret)이었으며, 사람들은 계속 성형수술을 하라고 조언했다. 자신보다 코가 더 언론에 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1974년 로버트 레드포드와 공연한 영화 주제가 "The Way We Were"가 실린 레코드 커버의 사진에서 코의 돌기가 제거됐다. 본인도 수술을 생각했던 적이 있지만, 목소리에 영향을 줄 것이 두려웠으며, 그녀의 코는 상징이 됐다. <LA Times>

 

#애인들: 스트라이샌드는 '퍼니 걸(Funny Girl)'에서 공연한 오마 샤리프, 시드니 채플린과 잠시 연애를 했지만, 배우 엘리엇 굴드와 결혼했다. 배우 제임스 브롤린과 결혼한 이유는 그의 이빨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총리, 테니스 스타 안드레 아가씨,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와 워렌 비티와도 연애했다고 고백한다.  <LA Times>

 

#말론 브란도: 잘 수도 있었지만, 대신 평생 친구가 됐다. 브란도는 대화도 시작하기 전 스트라이샌드의 등에 키스를 했다. 1년쯤 후에 워렌 비티의 애인이 주최한 파티에서 다시 만났다. 브란도는 스트라이샌드에게 '지루해 보인다'며 옆방으로 가서 4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3시간쯤 후에 브란도가 섹스하고 싶다고 말하자 스트라이샌드는 "끔찍한 소리네"하고 답했다. 브루클린 출신의 유대인 소녀로서 자유로운 사랑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브란도와는 이후 불행했던 가정과 정치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 우정을 나누게 된다. <LA Times>

 

#스티븐 손하임과 '집시': 뮤지컬 작곡가 스티븐 손하임은 생전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뮤지컬 버전 영화 '집시(Gypsy)'의 주연과 감독을 맡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스트라이샌드는 마마 로즈 역과 연출을 한 후 은퇴하고 싶었지만, 손하임은 두 역할을 하는 것은 어렵다며 반대했다. 그녀는 "인생에서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내게 매우 슬프다"며 "다시는 대중 앞에서 노래하거나, 영화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 머리와 화장을 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밝혔다. <Playbill> 

 

My Name Is Barbra

By Barbra Streisand

 

The long-awaited memoir by the superstar of stage, screen, recordings, and television

 

Barbra Streisand is by any account a living legend, a woman who in a career spanning six decades has excelled in every area of entertainment. She is among the handful of EGOT winners (Emmy, Grammy, Oscar, and Tony) and has one of the greatest and most recognizable voices in the history of popular music. She has been nominated for a Grammy 46 times, and with Yentl she became the first woman to write, produce, direct, and star in a major motion picture. In My Name Is Barbra, she tells her own story about her life and extraordinary career, from growing up in Brooklyn to her first star-making appearances in New York nightclubs to her breakout performance in Funny Girl on stage and winning the Oscar for that performance on film. Then came a long string of successes in every medium in the years that followed. The book is, like Barbra herself, frank, funny, opinionated, and charming. She recounts her early struggles to become an actress, eventually turning to singing to earn a living; the recording of some of her acclaimed albums; the years of effort involved in making Yentl; her direction of The Prince of Tides; her friendships with figures ranging from Marlon Brando to Madeleine Albright; her political advocacy; and the fulfillment she’s found in her marriage to James Brolin.

 

No entertainer’s memoir has been more anticipated than Barbra Streisand’s, and this engrossing and delightful book will be eagerly welcomed by her millions of fans.

https://www.penguinrandomhouse.com/books/318615/my-name-is-barbra-by-barbra-streisand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브루클린에서 브로드웨이, 할리우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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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작곡, 연기, 감독...르네상스 여인

▶영화=1968년 영화 ’퍼니 걸(Funny Girl)’로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 1976년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공연한 ‘스타 탄생(A Star is Born)’의 주제가 ‘에버그린(Evergreen)’으로 최우수 오리지널곡상을 받으며, 최초의 오스카 수상 여성 작곡가가 됐다. 

 

*Ever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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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 샤리프와 공연한 '퍼니 걸'에서. 

1973년 로버트 레드포드와 공연한 ‘추억(The Way We Were)’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자신이 주연, 연출, 제작까지 맡은 영화 ‘옌틀(Yentle, 1984)’로 아카데미 5개 후보에 오르며, 골든글로브 감독, 작품상 수상했다.

 

*The Way We W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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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와.
 

 

닉 놀테와 공연한 ‘프린스 오브 타이드(The Prince of Tides, 1991)로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 그리고 제프 브리지스와 공연한 ‘거울엔 

두개의 얼굴이 있다(The Mirror Has Two Faces, 1996)’로 아카데미 2개 후보에 지명된다.  그리고, TV 스페셜 시리즈와 콘서트 영화로 에미상을 5회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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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출시한 앨범 'Release Me' . 

▶음악=그래미상 8회 수상. 골드앨범 51장, 플래티넘 앨범 30장, 멀티 플래티넘 앨범 18장로 엘비스 프레슬리 다음으로 골드앨범이 많은 가수로 기록됨. 빌보드 톱 10에 31곡으로 비틀즈를 능가하며, 롤링 스톤즈와 프랭크 시나트라에 이어 3위에 기록됐다. 미국에서만 총 7150만장 이상의 레코드를 판매했으며 세계에서 1억4000여만장을 팔았다.

 

*Woman in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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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 사진, 디자인=스트라이샌드가 사진을 찍고, 디자인하고, 글을 쓴 ‘My Passion For Design’(책 커버 사진 위)은 2010년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인형 컬렉션=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인형 컬렉터다. 태평양 파도가 밀려오는 말리부의 저택엔 그녀가 모아온 인형들이 진열되어 있다. 브루클린의 가난한 집에서 맨해튼의 옷장만한 아파트에서 룸메이트와 살면서 성공을 꿈꾸던 스트라이샌드. 인형들은 소녀 바바라가 잃어버린 소녀시대의 분신들일지도 모른다.

 

*You Don't Bring Me Flowers(닐 다이아몬드와 듀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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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투어=스트라이샌드는 기금 조성 콘서트를 종종 했지만, 1966년 이래 좀처럼 퍼블릭 콘서트를 잘 하지 않는 가수로 알려져 있다. 1994년, 오랜만에 연 유료 콘서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뉴욕 매지슨스퀘어가든까지 26개 장소에서 열렸다. 이 콘서트 즉각 매진되며, 1025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스트라이샌드는 AIDS 연구에 30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후 2006년 북미지역, 그리고 이듬해 유럽 9개 도시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이번 콘서트는 근 6년만의 공연이다.

 

*No More Tears(도나 섬머와 듀엣) 

 

 

From Brooklyn Girl to the Diva of Broadway and Holly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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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신을, 자신이 하는 일을 발견하고, 믿어야 한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아빠의 부재(不在): 바바라 조안 스트라이샌드는 1942년 4월 24일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바바라 조안 스트라이샌드(Barbara Joan Streisand). 훗날 이름에서 r을 제거하며 바브라(Barbra)가 된다. 아버지 에마누엘 스트라이샌드는 교사였고, 어머니 다이애나는 가수 지망생이었다. 바바라가 16개월 됐을 때 아버지는 간질성 발작으로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의 돌연사로 집안은 가난에 쪼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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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소녀 바바라.

▶귀울림증: 스트라이샌드의 목소리는 비음이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귀울림증을 겪었다. 그녀는 유대인 캠프에서 돌아오는 날 밤 귀울림증이 시작됐다고 회고하고 있다. 캠프에서 외로움에 시달렸던 그녀가 돌아와보니, 새 집과 새 아빠, 그리고 어머니 배에서 자라고 있는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부 탈출: 바바라는 새 아빠 루이스 킨드를 좋아하지 않았다. 친부는 우아하고, 학구적인 아빠였지만, 계부는 권투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바바라는 새 아빠의 사랑을 받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브루클린을 탈출할 꿈을 꾸기 시작한다.

 

▶매니저 어머니: 가수로 성공하기를 꿈꾸었던 어머니 다이애나는 아홉살 된 바바라를 뉴욕의 MGM 레코드사로 데려가 오디션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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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가 되고 싶었던 엄마와 바바라.

▶10대 소녀 클럽 공연: 바바라는 노래도, 공부도 잘했다. 어머니의 치맛바람으로 맨해튼의 클럽 봉 스와(Bon Soir)와 블루 앤젤(Blue Angel)에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난 노래하는 걸 싫어했다.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성공했을 것 같지는 않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레코딩: 1955년 놀라 레코딩스튜디오에서 엄마와 바브라는 함께 노래를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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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괴짜 모범생: 에라스무스교 재학시절 성적이 늘 좋았고, 말썽도 피우지 않았지만 연예인의 소질이 있었다.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이상한 색깔의 립스틱과 아이섀도우를 바르고 다녔다.

 

“난 내 한계에 방해받고 싶지 않을 뿐이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1976년 영화 ‘스타 탄생’ 시사회에서 재결합한 중국식당 주인과 스트라이샌드.

▶중국식당 웨이트레스: 바바라는 어릴 적부터 일을 했다. 열두살 때부터 4년간 학교를 파한 후엔 동네 중국식당 초이(Choy’s)에서 웨이트레스와 캐셔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중국집 주인 뮤리엘 초이는 사랑, 인생과 섹스에 대해 가르쳐주곤 했다. 

 

▶첫 브로드웨이: 바바라가 본 첫 연극은 ‘안네 프랭크의 일기’였다. 1956년 브로드웨이에 공연된 이 연극을 보면서 안네 프랭크에 감정이입을 했다. 둘 다 유대인 소녀였고, 열네살이었다. 언젠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리라는 꿈이 실현했다. 안네 프랭크의 연출자 가손 카닌이 ‘퍼니 걸’의 연출을 맡게 된다.

  

“마론 브란도.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다. 그는 열세살 때 나의 아이돌이었다. 브란도는 인생을 두번 살 법한 작품을 했다.

무엇을 하던간에 난 생각한다. 브란도가 이것 나와 연기할 수 있을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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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연기 공부: 195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바바라는 맨해튼을 드나들며 연기를 공부했다. 열다섯살 때 배우 아니타와 연기를 가르치는 알란 밀러를 만나 웨스트빌리지의 체리레인시어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무대 세트를 날르고, 페인트 칠하는 일을 하면서 이들의 아기를 돌보는 베이비시터 노릇도 했다. 대신 알란 밀러가 장학금을 주었고, 그들의 집 도서실에서 찰스 디킨스, 에드가 알란 포우를 읽기도 했다.

 

‘안젤리나 스카란젤라’라는 가명을 쓰며 연기학교도 두곳에 다녔다. 브루클린에서 맨해튼까지 지하철 안에서 액터즈 스튜디오의 전설적인 연기교수 리 스트라스버그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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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으로: 에라스무스 홀 고교 졸업 후 바바라는 브루클린을 탈출할 수 있었다. 배우가 되기위해선 맨해튼으로 가야했다. 낮엔 사환으로 일하면서, 밤엔 연기학교를 다녔다. 1960년경 10애브뉴의 시어터스튜디오에서 같은 유대인 더스틴 호프만과 연기를 공부했다

 

▶낭랑 18세: 인쇄회사에서 사원으로 일하면서 연기 공부를 했다. 당시 수잔 드와코비츠라는 여자친구와 룸메이트로 살았다. 스트라이샌드는 “주급을 받으면, 전화비로 5불, 세탁비로 10불, 식대로 20불, 렌트로 25불을 낸 후 5불이 용돈으로 남았다. 그 때 택시를 타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때 바바라는 바브라가 된다.

▶해고된 배우 지망생: 그러나 인쇄회사에서 쫓겨난 스트라이샌드는 실업 수당을 받게 된다.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자 웨스트빌리지의 바에서 열린 재능 경연대회에 나가 노래를 했다.

 

*Get Happy(주디 갈란드와 듀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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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사와 계약: 1962년 스무살 때 컬럼비아 레코드사와 계약하며 미국 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여성 가수가 된다. 

  

▶브로드웨이 데뷔: 오프브로드웨이 ‘당신을 위해 그걸 도매점에서 살 수 있어(I Can Get It For You Wholesale)’에서 데뷔한 후 브로드웨이 ‘퍼니 걸(Funny Girl)’에서 주인공 파니 브라이스로 캐스팅된다. ‘퍼니 걸’은 1964년 3월 지금 ‘맘마 미아’가 공연 중인 윈터가든 시어터에서 개막됐다. 스물세살의 스트라이샌드는 ‘피플(People)’과 ‘내 행진에 비를 내리지 말아요(Don't Rain on My Parade)”을 불러 히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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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니 걸'의 스트라이샌드.
 

▶TV 스페셜: CBS-TV와 10년 계약 후 특집 시리즈 ‘내 이름은 바브라(My Name is Barbra)’에 출연해 에미상 5개를 품에 안는다.


▶할리우드: 1968년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 ‘퍼니 레이디’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진다. 스트라이샌드는 오마 샤리프와 공연하면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후 ‘헬로 달리(Hell, Dolly!), ‘화창한 날엔 영원히 볼 수 있어(On a Clear Day You Can See Forever)’와 ‘부엉이와 푸시캣(The Owl and the Pussycat), ‘의사 선생님, 무슨일이지요?(What's Up Doc?)’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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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와 푸시캣'에서 스트라이샌드.

가장 기억할만한 작품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공연한 ‘추억(The Way We Were, 1973)’과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공연한 ‘스타 탄생(A Star is Born, 1976)’이다.  2000년 할리우드 외신클럽은 그녀에게 골든글로브 세실 B 드밀 평생공로상을 헌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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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그린'이 감미로운 '스타탄생'에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코믹 연기: 2004년, 2010년 블록버스터 코미디 ‘포커 가족을 만나라(Meet The Fockers)’에서 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드니로, 벤 스틸러와 공연했다. 스트라이샌드는 뮤지컬 영화 ‘집시’에 캐스팅되어 있다. 이 영화는 내년 말 개봉될 예정이다.

 

*Memory(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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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법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톱 법률회사에서 파트너가 된 남자는 존경된다. 투자를 잘 한 남자도 찬미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것을 성취한 여성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노래 DNA: 스트라이샌드의 엄마는 가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1949년 재혼해서 낳은 로즐린 킨드(Roslyn Kind)도 가수. 스트라이샌드가 배우 엘리엇 굴드와 결혼해 낳은 제이슨 굴드(45)도 가수가 됐으며, 이번 투어 콘서트에서 엄마 바브라의 무대에서 함께 노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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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부부와 스트라이샌드 부부.

▶배우 남편: 스트라이샌드의 첫 남편(1963-71)은 배우 엘리엇 굴드, 1998년 역시 배우 제임스 브롤린과 재혼했다. 굴드와 사이에 낳은 아들 제이슨은 가수로 ‘프린스 오브 타이드’에 자신의 아들로 출연했다. 제임스 브롤린은 배우 조쉬 브롤린이다.  엘리엇 굴드와 제임스 브롤린은 1978년 영화 ‘캐프리콘 원’에서 공연한 사이다.

 

“나도 코 수술을 할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난 아무도 충분히 믿을 수 없었다. 만일 내가 거울을 보고 수술할 수 있다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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