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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 From A to B and Back Again

휘트니뮤지엄 앤디 워홀 회고전

 

Nov 12, 2018–Mar 31, 2019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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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휘트니뮤지엄(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회고전 '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을 11월 12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연다. 이 특별전은 1989년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의 워홀 회고전(Andy Warhol: A Retrospective, February 6–May 2, 1989) 이후 근 30년만의 회고전이다. 

 

휘트니의 워홀 회고전에는 그의 40년 작가 생활을 요약한 작품 350여점이 소개되고 있다.  워홀을 생전에 만났던 워홀 전문가 도나 드 살보(Donna De Salvo) 휘트니 부관장이 기획 지휘한 전시로 샌프란시스코 MoMA(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와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로 순회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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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오늘 우리가 보는 앤디 워홀 작품은 너무도 친숙하지만, 발표 당시엔 미술계를 경악시켰다. 워홀은 이전 잭슨 폴락(Jackson Pollock)과 드 쿠닝, 클라인 등으로 대표되는 마초 추상표현주의에 반기를 들고, 대중 소비사회 일상의 물건과 대중매체로 친숙한 유명인사들을 오브제로 반복, 왜곡, 위장, 비관습적인 컬러로 제작하면서 미술계를 급선회시켰다. 

 

앤디 워홀의 세계는 훗날 디지털 시대를 예고한 것처럼 보인다. 휘트니뮤지엄의 앤디 워홀 회고전은 2018년에도 프레시한 워홀의 이미지와 철학을 새로 음미하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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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1928-1987) 

A Life: Star, Money, Mass Culture & Death

                   

▶앤드류 워홀라: 1928년 펜실베니아 피츠버그에서 러시아(슬로바키아) 이민자의 가정에서 3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안드레이 바촐라 주니어(Andrej Varchola Jr.), 세례명은 앤드류 워홀라(Andrew Warhola). 1949년 글래머(Glamor) 잡지의 기사 '뉴욕에서 성공은 직업(Success is a Job in New York)'이라는 기사의 삽화에 이름을 올리면서 성에서 마지막 철자 a를 떼어내면서 앤디 워홀(Andy Warhol)로 쓰기 시작했다. 

 

▶피부병과 고독: 초등학교 시절 성홍열의 후유증으로 인한 신경증로 인해 피부병이 생겼다. 이와 함께 소년기 우울증으로 병원과 의사를 기피했고, 학교에서도 왕따 당해 엄마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광부였던 아버지는 워홀이 13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아들의 미술 재능을 알아보고 대학 등록금을 저축했다. 소년 앤디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라디오를 들으면서 영화배우 사진을 수집해 방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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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그래픽 디자인: 10대 때 난독증으로 공부보다 미술에 관심을 가진 후 미술교사가 되기 위해 카네기인스티튜트오브테크놀로지(현 카네기멜론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래픽디자인(Pictorial Design)을 전공하면서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했다.

 

“아티스트란 사람들이 소유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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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오다: 1949년, 스물한살의 소심한 청년 워홀은 뉴욕에 왔다. 잡지 삽화가와 광고 디자이너로 일한 후 구두 잡지에 그린 잉크 드로잉으로 유명해진다. RCA 레코드사에 취직해서 앨범 커버와 판촉물을 디자인하면서 실크 스크린 판화법을 배웠다.

 

 “당신이 무언가를 정말 잘못하면, 당신은 항상 대단한 것이 된다.”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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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스타 메이킹: 1960년대 초 워홀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비스 프레슬리, 재키 케네디 등 유명인사들의 사진을 실크스크린 판화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1962년 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가 사망했을 때 워홀은 즉각 먼로 시리즈를 시작한다. 사진은 1953년 영화 '나이애가라' 광고용으로 진 콘맨(Gene Kornman)이 촬영한 것을 사용했다. 

 

1970년대는 믹 재거, 라이자 미넬리, 존 레논, 브리짓 바르도, 마이클 잭슨, 다이애나 로스, 마오 저뚱 등의 초상화 작업을 했다. 유명인사들과 신문에서 소재를 구하며 작업하던 워홀은 작업실 ‘팩토리(The Factory)’를 설립하고, 화가, 작가, 뮤지션, 언더그라운드 유명인사들과 교제했다.  

 

“다시 태어나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손가락에 낀 위대한 반지가 된다면 황홀하겠다.” 

“난 LA를 사랑한다. 할리우드도 사랑한다. 그들은 아름답다. 모두가 성형적이지만, 난 성형을 좋아한다. 나도 성형하고 싶다."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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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진이란, 초점이 맞아야 하며, 유명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15분간 유명해질 것이다.” 

“인생이란, 각자가 반복하면서 변화하는 이미지의 시리즈가 아니던가?”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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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캠벨 수프 회화(Campbell’s soup can): 1961년 12월 워홀은 갤러리 주인 뮤리엘 래토우(Muriel Latow)에게 아이디어 비용으로 50달러를 주었다. 래토우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무엇을 찾아야 한다. 캠벨 수프 깡통같은 것"이라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팝아트 시대의 개막: 1962년 뉴욕 보들리갤러리에서 데뷔 개인전을 열었으며, 같은 해 11월 스테이블갤러리에서 팝아트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에서 마릴린 먼로, 100개의 캠벨수프 캔, 100개의 코카콜라병, 100개의 달러화를 선보였다. 1962년 MoMA에서 팝아트에 관한 심포지엄을 주관했다. 

 

"미국의 위대한 점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도 가장 가난한 사람과 기본적으로 같은 것을 산다는 것에 있다. 당신은 TV를 보면서 코카콜라를 본다. 이 나라의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코카콜라를 마시는 것을 안다. 그리고, 생각해보라. 콜라는 콜라이며, 아무리 돈을 더 준다고 해도 거리 구석에서 거지가 마시는 콜라보다 더 좋은 콜라를 살 수는 없다. 모든 콜라는 같고, 모든 콜라는 좋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대통령도, 거지도, 당신도 그것을 안다.”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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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갤러리 수퍼마켓: 1964년 워홀은 5명의 팝아티스트들과 함께 ‘미국의 수퍼마켓(The American Supermarket)’라는 타이틀의 그룹전에서, 식료품, 깡통 식품, 육류, 포스터 등 전형적인 미국의 작은 수퍼마켓 물품을 갤러리에 설치했다. 워홀은 이 전시에서 캠벨 토마토 수프 그림을 전시했다. 이 전시는 ‘무엇이 미술이며, 무엇이 미술이 아닌가’의 논쟁을 촉발시킨다. 

 

▶시간 & 영화감독: 워홀은 회화가 할 수 없는 '시간'에 집착했다. 1963년엔 시인 존 조르노(John Giorno)의 잠자는 모습을 담은 영화 ‘잠(Sleep)’과 3시간 5분 동안 빌딩을 보여준 '엠파이어(Empire)'를 만들었다. 1963년부터 1968년 사이 '첼시 걸즈(Chelsea Girls)'를 비롯 극영화, 다큐멘터리, 스크린 테스트, 일상생활, 인터뷰 등을 무려 650여편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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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I LOVE MONEY: 1962년 워홀은 1달러 지폐로 192달러 실크스크린 작품을 시작했다.  그리고, 1981년 다시 달러 사진과 함께 지폐 드로잉을 제작하게 된다. 

 

“난 10-15명의 사람들에게 무언가 제안하라고 물었다. 마침내 한 나이 든 여성이 바른 질문을 했다. “당신은 무엇을 가장 사랑하지요?” 그래서 난 돈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업 수완이 좋다는 것은 가장 매혹적인 종류의 예술이다. 돈 버는 것은 예술이며,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사업 잘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다.”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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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살해 미수: 1968년 팩토리에 드나들던 무명의 페미니스트 작가 발레리 솔라나스가 워홀과 큐레이터 마리오 아마야를 총으로 쏘았다. 워홀은 부상을 입었지만, 죽을 때까지 살해미수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을 옮긴 영화가 마리 헤론 감독, 릴리 테일러 주연의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I Shot Andy Warhol, 1996)'이다.

 

▶출판: 1973년엔 잡지 ‘인터뷰’를 창간했으며, 2년 후엔 ‘앤디 워홀의 철학(The Philosophy of Andy Warhol)’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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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동성애 아티스트: 80년대 장 미셸 바스퀴아, 줄리안 슈나벨 등 신추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면서 워홀의 인기는 다시 정점에 이른다. 수수께끼적인 인상의 워홀은 동성애자였고, 그 시대 이미 카밍아웃한 상태였다. 그는 1980년(52세)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총각(virgin)이라고 밝혔다. 파티광이었던  워홀은 특히 장 미셸 바스 퀴아의 멘토이자 절친한 사이였다.

 

“난 항상 나 자신의 묘비에 아무 것도 써있지 않기를 바랬다. 이름 조차도. 아, 사실, 난 ‘허구’라고 남기고 싶다.”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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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마지막 숨결: 워홀은 1987년 2월 22일 쓸개 수술 후유증으로 수면 도중 사망했다. 

피츠버그의 카톨릭교회 묘지에 잠들어 있는 워홀의 마지막 모습은 검은색 캐쉬미어 수트에 페이슬리 무늬 넥타이, 가발, 선글래스 차림에 기도문과 빨간 장미를 든 모습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덤에는 그가 창간한 잡지 ‘인터뷰’, 인터뷰 T셔츠, 그리고 에스테로더 향수(Beautiful)도 함께 묻혔다. 그해 4월 1일 맨해튼 세인트 패트릭 처치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유언: 워홀은 자신의 재산을 ‘시각미술의 발전’에 기여할 재단 설립에 쓰라고 유언을 남겼다. 소더비는 무려 9일에 걸쳐서 그의 소장품을 경매해서 총 2000만 달러를 올렸다. 1991년 고향 피츠버그에 개인 뮤지엄으로서는 미 최대 규모인 앤디 워홀 뮤지엄(The Andy Warhol Museum)이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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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워홀 영화: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1966)이외에 워홀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있었다, 같은 해 화가이자 워홀의 친구였던 줄리안 슈나벨은 요절한 화가 장 미셸 바스퀴아의 삶을 그린 영화 '바스퀴아(Basquiat, 1996)'를 연출했다. 이때 바스퀴아의 멘토였던 워홀 역은 가수 데이빗 보위, 바스퀴아 역은 제프리 라이트가 맡았다. 

 

▶경매: 2006년 ‘8명의 엘비스(Eight Elvises, 1963)’가 개인 소장가에게 1억달러에 팔렸다. 2013년 소더비에서 'Silver Car Crash (Double Disaster)'가 1억5천400만 달러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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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99 Gansevoort Street, New York
개관 시간: 일, 월, 수, 목요일 오전 10시 30분-오후 6시, 금, 토요일 오전 10시 30분-오후 10시, *화요일 휴관 
입장료: $25(성인) $18(노인/학생) 무료(18세 이하), *맘대로 내세요(금요일 오후 7-10시) http://whitne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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