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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맨해튼 가정집서 발굴된 제이콥 로렌스 연작 두점(#16, #28)

'미국의 투쟁' 오리지널 30점... #14, #20, #29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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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 가정집 두곳에서 발굴된 Jacob Lawrence의 'The American Struggle' 시리즈 30 중 #16(좌)과 #28(우)

 

벼락 부자가 되는 방식엔 여러가지가 있다. 누구는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트리고, 누구는 복권을 사서 거액에 당첨되고, 어떤 이는 코네티컷 벼룩시장에서 35불 주고 산 중국 찻잔이 최고 50만 달러 가치로 감정되고, 어떤 이는 지하실에서 렘브란트가 10대에 그린 회화를 발견했다. 최근엔 뉴요커들이 집에 수십년간 걸어놓았던 그림 두점이 한 위대한 화가의 실종됐던 연작 그림이라는 걸 알게됐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문화계가 꽁꽁 얼어붙은 뉴욕 미술계에 훈훈한 이야기가 주목을 끌었다.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흑인 화가 제이콥 로렌스(Jacob Lawrence, 1917-2000)의  잃어버린 회화 두점이 연달아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의 가정집 두곳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0월 1점 발굴 소식에 이어 3월 1일 두번째 실종 그림이 깜짝 등장한 이야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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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 Lawrence: The American Struggle@Metropolitan Museum of Art, August 29-November 1, 2020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은 코로나 팬데믹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여름 제이콥 로렌스 특별전 '미국의 투쟁(The American Struggle, 8/29-11/1)'을 열었다. 제이콥 로렌스는 미국이 조셉 맥카시의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매카시즘)으로 달아올랐던 1954년부터 1956년 사이에 30개(12x16인치) 연작 '투쟁: 미국인들의 역사로부터(Struggle: From the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 시리즈를 그렸다. 1775년 미국의 건국부터 1817년까지, 여성과 유색인종의 경험까지 미국의 정치, 사회문제 전반에 걸쳐 다루었다. 이 시리즈 오리지널 30점 중에서 5점은 행방불명이었다. 

 

제이콥 로렌스 특별전은 2020년 1월 18일 매사추세츠 세일럼의 피바디에섹스뮤지엄에서 5점 없이 불완전하게 시작됐다. #BlackLivesMatter를 즈음해서 메트뮤지엄을 거쳐 버밍햄미술관, 시애틀미술관, 그리고 워싱턴 DC 필립스 컬렉션으로 올 9월 10일까지 순회 전시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메트뮤지엄 전시 중 실종됐던 5점 중 2점이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두 아파트에서 발굴됐다. 

 

 

'미국의 투쟁' #16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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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 Lawrence, "There are combustibles in every State, which a spark might set fire to.- Washington, 26 December 1786." 

 

어느날 메트뮤지엄으로 제이콥 로렌스의 전시를 보러갔던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사는 한 여성은 깜짝 놀랐다.  자기 이웃집  아파트 거실에 수십년간 걸렸던 작은 그림 한점이 '미국의 투쟁' 시리즈와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웃에게 "전시작품 사이에 빈 공간이 있었으며, 아마도 당신들이 갖고 있는 그림이 걸려야할 것 같다"면서 메트뮤지엄에 연락해보라고 부추겼다. 

 

그녀의 이웃에 걸린 그림은 청색 제복의 군인들 궁핍한 농부들의 대결을 입체파 스타일로 묘사한 작품이다. 얼마 후 그 그림은 제이콥 로렌스의 시리즈 30점 중 실종됐던 #16으로 판명이 났다. 로렌스가 1786년 매사추세츠에서 일어난 농민 무장봉기 셰이즈의 반란(Shay's Rebellion)'을 묘사한 #16에는 "각 주마다 불이 붙을 수 있는 가연성 물질이 있다. 1786년 12월 26일 워싱턴"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그리고, #16은 10월 중순 센트럴 파크를 지나 메트뮤지엄의 갤러리에서 시리즈 25점과 60여년만에 재회했다. 다행히 그림 주인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림은 클리닝할 필요도 없었다. #16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부부가 1960년 한 음악학교의 기금 마련을 위한 크리스마스 자선 미술 경매에서 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부부는 사우스 브롱스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라틴어와 미술을 공부했으며, 딸과 손녀도 화가다.   

 

 

'미국의 투쟁' #28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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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 Lawrence, “Immigrants admitted from all countries: 1820-1840—115,773,”(좌)/ 액자 뒤에 첨부된 뉴욕타임스 1996년 제이콥 로렌스 기사.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후 다시 제이콥 로렌스의 잃어버린 그림 또 한점이 나타났다. 역시 어퍼웨스트에 살고 있는 한 이민자의 집에서 나왔다. 

 

40대 후반의 여간호원은 지난 가을 patch.com 앱의 어퍼웨스트사이드 섹션에서 #16 그림 발굴에 관한 글을 읽었다. 제이콥 로렌스라는 이름이 낯익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 다이닝룸에 20여년간 걸려있는 자그마한 그림을 자세히 보았다. 폴란드에서 이민온 시어머니가 오래 전 그녀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림에 작가 서명은 흐릿했다. 하지만, 그림 뒤에 1996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제이콥 로렌스 기사가 붙어 있었다. 그녀가 읽은 앱을 통해 로렌스가 20세기의 주요한 흑인 모더니스트 화가라고 알게됐다.  

 

우쿠라이나에서 18세에 이민온 그녀는 미대에 다니는 스무살짜리 아들에게 그림 이야기를 해주었고, 아들은 구글 검색을 통해 메트뮤지엄의 특별전을 찾아봤다. 그리고, 흑백사진으로 대치된 #28(제목: 1820년부터 1840년 사이 이민자들은 모든 국가들로부터 받아들여졌다-11만5천 773명, 장소는 알 수 없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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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이 #28을 발견하기 전 웹사이트에 기술한 페이지

 

흥분한 간호원은 메트뮤지엄에 전화해 메시지를 남겼지만, 콜백이 없었다. 사흘 후엔 아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메트뮤지엄으로 찾아갔다. 로비의 안내 데스크에서 젊은 이에게 "이 그림을 갖고 있는데, 누구와 말해야 할까?"라 물어물었더니 결국 근현대미술부에서 한 직원이 내려왔다. 그 직원은 작품 사진을 이메일로 담당자에게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간호원은 그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바로 찍어 이메일로 보냈다.    

    

얼마 후 제이콥 로렌스 전시를 기획한 메트뮤지엄의 큐레이터 랜달 그리피와 실비아 욘트, 회화 복원가 이자벨 뒤베누아가 진위를 감정하기 위해 그녀의 아파트를 두차례 방문했다. 제이콥 로렌스의 잃어버린 그림 #28임이 틀림 없었다.  

 

이전에 발굴된 #16의 상태가 좋은 반면, #28은 곳곳에 물감이 벗겨져 복원 과정을 거치게 된다. '미국의 투쟁' #28은 3월 5일 시애틀뮤지엄으로 순회 전시되는 제이콥 로렌스 특별전에서 데뷔하게 된다. 

 

#28은 선명한 빨강, 황금, 갈색 템페라화로 숄을 두르고 고개를 숙인 두 여인(한 여인은 아기를 안고 있다)과 중앙에 챙 넓은 모자를 쓴 차림에 빨간 장미를 든 남자의 모습을 묘사했다. 이민자들의 설움이 담긴 그림이다.  제이콥 로렌스는 1953년 출간된 미국역사 백과사전(by 리처드 B. 모리스) 통계에서 영감을 받았다. 

 

간호원 역시 귀중한 그림을 소장한 이상 가족의 안전을 위해 익명을 요구했다. 그녀의 시어머니가 #16을 구입한 커플과 같은 자선 경매에서 구입했을 가능성도 있을 법하다. 이들은 모두 로렌스의 그림을 팔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도 오리무중 '미국의 투쟁'  3점: #14, #2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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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Peace, 1955/ #20 Spindles, 1956/ #29 Old America seems to be breaking up and moving Westward... - An English immigrant, 1817, 1956

 

제이콥 로렌스의 '미국의 투쟁' 시리즈 중 #14, #20, #29는 아직도 행방불명이다.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사는 뉴요커들은 다시 한번 집안의 오래된 그림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나머지 어디선가 세점이 나올 가능성도 있으므로. 유사한 그림을 갖고 있다면 피바디에섹스뮤지엄으로 연락해 보시라. 연락처 missingpanels@pe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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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Jacob Lawrence: The American Struggle"

 

제이콥 로렌스 특별전은 2020년 1월 18일 매사추세츠 세일럼의 피바디에섹스뮤지엄에서 시작되어 메트뮤지엄을 거쳐 버밍햄미술관, 시애틀미술관, 그리고 워싱턴 DC 필립스 컬렉션으로 올 9월 10일까지 순회 전시된다. 

 

-Jacob Lawrence: The American Struggle@Peabody Essex Museum, MA(January 18 - August 9, 2020) https://www.pem.org

-Jacob Lawrence: The American Struggle@Metropolitan Museum of Art, NYC(August 29-November 1, 2020) https://www.metmuseum.org

-Jacob Lawrence: The American Struggle@Birmingham Museum of Art, AL(November 20-February 7, 2021) https://www.artsbma.org 

-Jacob Lawrence: The American Struggle@Seattle Art Museum, WA(Mar 5-May 23, 2021) https://www.seattleartmuseum.org 

-Jacob Lawrence: The American Struggle@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June 26-September 10, 2021) https://www.phillipscollection.org 

 

*Jacob Lawrence: The American Struggle@Met Museum 작품 보기 

 

 

제이콥 로렌스(Jacob Lawrence, 19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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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뉴저지주 아틀란틱 시티에서 태어났다. 7살 때 부모가 이혼하자 엄마는 세자녀를 필라델피아의 양육원에 맡겼다. 제이콥이 13살 때 형제들과 뉴욕 할렘으로 이주해 엄마와 함께 살게 됐다. 엄마가 등록해준 할렘의 방과후 교실에서 미술과 공예를 배우면서 집안의 카페트 무늬를 크레용으로 베끼곤 했다. 

 

16살 때 학교를 중퇴한 후 세탁소와 인쇄공장에서 일하면서 할렘아트워크숍에 다니며 흑인화가 찰스 알스턴(Charles Alston), 할렘 커뮤니티아트센터(Haelem Community Art Center)에서 조각가 오거스타 사비지(Augusta Savage)를 사사했다. 사비지의 도움으로 아메리칸아티스트스쿨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으며, 대공황 때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시행한 WPA 프로그램에서 일했다.   

 

1940년 23살 때 남부 시골 흑인 100여만명이 북부 도시로 대규모 이주(Great Migration)한 것을 주제로 한 60개 판넬 시리즈 'The Migration Series'를 완성했다. 이 시리즈는 뉴욕의 MoMA와 워싱턴 D.C.의 필립스컬렉션이 절반씩 구매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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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Way Ticket: Jacob Lawrence's Migration Series and Other Works, MoMA, 2015 

 

1943년 제 2차 세계대전 중 해안경비대로 징집되어 복무 중 48점을 완성했지만, 모두 분실됐다. 1945년엔 구겐하임 펠로우로 선정됐으며, 이듬해 화가 조셉 알버스(Josef Albers)가 노스캐롤라이나 블랙마운틴대학교의 강사로 초빙했다. 

 

1949년 뉴욕으로 돌아온 후 우울증으로 11개월간 퀸즈의 힐사이드병원에 입원 중엔 병원 시리즈(Hospital Series)'를 작업했다. 1954년부터 1956년 사이엔 '투쟁: 미국인들의 역사로부터(Struggle: From the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 시리즈를 30개의 판넬로 완성했다. 

 

제이콥 로렌스는 뉴스쿨, 아트스튜던트리그, 프랫인스티튜트와 스코웨건회화조각학교에서 강의했으며, 1971년부터 시에틀의 워싱턴대 교수로 재직했다. 1999년 화가 부인 그웬돌린 나이트(Gwendolyn Knight, 1913-2005) 와 흑인미술가를 알리기 위해 재단(Jacob and Gwendolyn Lawrence Foundation)을 설립했다. 2000년 6월 9일 82세에 폐암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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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 Lawrence, The Businessman, 1947/ Times Square-42nd St., New York in Transit, 2001

 

1974년 휘트니뮤지엄에서, 1986년 시애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1990년 화가 재스퍼 존스, 무용가 머스 커닝햄 등과 함께 국가공훈메달(National Medal of Arts)를 받았다. 

 

2018년 '미국의 투쟁' 시리즈 중 판넬 #19 'Tensions on High Seas, 1956'은 스완 옥션 갤러리에서 41만3천 달러에 팔렸다. 예상가는 10만 달러였다. 이제까지 제이콥 로렌스 작품의 최고 경매가는 2018년 610만 달러에 팔린 '사업가(The Businessman, 1947)'이다. 

 

*제이콥 로렌스 'One-Way Ticket'@MoMA,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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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3.09 17:11
    제이콥 로렌스의 기사를 읽으면서 일확천금이란 단어를 떠 올려봤습니다.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푼돈 정도로산 그림이나 작은 물품이 몇십만불, 몇백만불을 호가하는 예술품이란 걸 알면 그게 바로 일확천금이 아닐까 합니다. 화랑을 운영하던 지인이 물건이 50년이 지나면 골동품이라고 할 수있으니까 감정울 받아보라고 했던적이 생각납니다. 1948년에 주조한 미국 1cent와 5cent 은전이 있고 어머님이 내가 시집올 때 방에 웃풍이 심해서 추울테니까 바람막이로 벽에 둘르라고 주신 8쪽짜리 사군자를 수놓은 60년이 넘는 병풍이 있음을 새삼 상기했습니다.
    재이콥 로렌스란 흑인 화가를 처음 접해보면서 느끼는 소감은 핵폭탄같은 대단한 힘이 그림에서 발산함을 알았습니다. 로랜스 화가와 그의 작품을 자세히 소개해 주신 컬빗에 감사를 드립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