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초기 여성사진작가전 

The New Woman Behind the Camera 

 

00001.jpg

Dorothea Lange, Migrant Mother, Nipomo, California, 1936/ Dorothea Lange, 1936

 

#4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1895-1965) 

대공황기 시련 포착한 다큐멘터리 사진가  

 

1936년 대공황기 한장의 사진이 미국을 뒤흔들었다. 도로시아 랭이 포착한 이민자 어머니의 고뇌를 담은 'Migration Mother'는 소설가 존 스타인벡에게 영감을 주었다.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할리우드에서 존 포드 감독, 헨리 폰다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세월이 흘러 사진 속의 여인은 이민자가 아니라 체로키 인디언이며, 엄지 손가락이 포도숍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소아마비로 무거운 장비를 들고 대공황기의 '레 미제라블'을 기록한 도로시아 랭은 MoMA에서 첫 회고전(1965)이 열린 여성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002.jpg

Dorothea Lange, Drought Refugees, from Oklahoma Camping by Roadside, Waiting for Cotton Picking, 1936. The New Woman Behind the Camera,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도로시아 랭은 1895년 뉴저지주 호보켄의 독일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자랐다. 7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와 발이 평생 기형으로 남았다. 이 때문에 여생을 약간 절뚝거리면서 걸었다. 이런 신체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랭은 훗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들고 다니며 대공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포착하게 된다.  

 

12살 때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자 엄마의 성 Lange을 쓰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 컬럼비아대에서 클라렌스 H. 화이트에게 사진을 배웠다. 이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화가 메이나드 딕슨(Maynard Dixon)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다. 

 

 

004.jpg

Dorothea Lange, White Angel Breadline, San Francisco, 1933/ A family in Pittsburg County, Oklahoma, are forced to leave their home during the Great Depression, 1938

 

작가 생활 초기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초상화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부유층과 보헤미안 엘리트들의 사진을 촬영했다. 랭의 스튜디오는 샌프란시스코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사진작가 이모젠 커닝햄 (Imogen Cunningham),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그리고 안셀 아담스(Ansel Adams)가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경제 대공황이 닥친 후인 1930년대에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 실업자와 홈리스, 극빈자 음식 배급소를 담았다.  F.D. 루즈벨트 대통령 행정부에서 시행하던 농장안전국(FSA, Farm Security Administration)에 고용되어 5년간 농촌 빈민의 상황과 이민 노동자들을 담기 시작했다. 1935년 이혼 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제과 교수 폴 슈스터 테일러와 결혼했다. 테일러는 농업노동 연구가 전문이었으며,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는 둘다 기혼자였다.  

 

 

001.jpg

샌프란시스코 뉴스에 실린 도로시아 랭의 사진/ Dorothea Lange, Migrant Mother, Nipomo, California, 1936. "Dorothea Lange: Words & Pictures", 2020, MoMA

 

도로시아 랭은 1936년 '이민자 어머니(Migrant Mother)'가 샌프란시스코 뉴스지에 실리며 여성 사진작가로 유명해졌다. 대공황의 비극과 이민자의 삶이 절절하게 드러난 이 사진은 캘리포니아 니포모 농장의 완두콩 수확 캠프에서 찍었다. 이곳에서 얼어붙은 채소에 연명해 천막에서 살고 있는 주름이 가득한 32세의 노동자 여성(Florence Owens Thompson)과 자식들이 엄마에게 얼굴을 파묻고 있는 비참한 모습을 봤다. 랭은 이를 포착해 공황기 미국 농촌의 현황을 전국에 알리게 된다. 그리고, 이 한장의 사진은 미 대공황기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됐다.  

 

당시 이 사진을 두고 랭은 농장안전국(FSA)의 사진 프로젝트 책임자 로이 스트라이커(Roy Stryker)와 부딪혔다. 랭이 1939년 보관소에 있는 네거티브 필름의 반환을 요청한 후 사진에서 엄마 톰슨이 왼쪽 손으로 천막 기둥을 쥐고 있는 엄지 손가락을 제거했던 것이다. 이에 스트라이커는 보관소의 사진이 연출되거나, 수정된다는 사실에 격노했다. 랭이 왜 엄지손가락을 지웠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Poor mother and children, Oklahoma, 1936.jpg

Dorothea Lange, Poor mother and children, Oklahoma, 1936

 

2018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사진 큐레이터 사라 마이스터(Sarah Meister)는 'Dorothea Lange: Migrant Mother'에서 이 사실을 폭로했다. '이민자 어머니'의 모델이었던 플로렌스 오웬스 톰슨은 사실 유럽 이민자가 아니라 오클라호마 출신 체로키 인디언이며, 모델료를 한푼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분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다큐멘터리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도로시아 랭은 사진 속 오른쪽 코너의 엄지 손가락을 제거하는 '포토숍'을 한 것도 폭로됐다.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이 하루 아침에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MoMA에선 도로시아 랭의 특별전 'Dorothea Lange: Words & Pictures'(2/9-5/9, 2020)이 열렸다. 

 

 

00book-firstedition.jpg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1939) 초판/ 존 포드 감독, 헨리 포드 주연 '분노의 포도'(1940) 포스터.

 

어쨋거나 도로시아 랭의 공황기 사진은 당시 미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소설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은 이 사진에서 영감을 받고, 랭과 갤리포니아 이주자 노동 캠프를 방문했다. 그리고, 쓴 소설이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1939)'다. 존 포드 감독, 헨리 폰다 주연의 영화(1940)로도 제작된 '분노의 포도'는 오클라호마의 한 가족이 대공황 당시 은행에 토지를 빼앗긴 후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착취를 당하는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당시 소작인, 지주, 이주 노동자, 자본가, 행정당국 등 미국의 치부가 낱낱이 고발됐다. 스타인벡은 이 소설로 퓰리처상과 미도서상을 수상했지만, 반골분자로 낙인 찍혀 FBI(존 에드가 후버 국장)로부터 평생 감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분노의 포도' 중에서 

 

1941년 진주만 습격 후 F. D. 루즈벨트 대통령은 서부 해안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 12만명을 격리 캠프에 강제 수용했다. 이후 도로시아 랭은 일본계 미국인들을 주제로 작업했다. 1945년엔 서부 사진자 안셀 아담스(Ansel Adams)의 초대로 캘리포니아미술대(SFAI)에서 이모젠 커닝햄, 마이너 화이트와 함께 강의했다. 

 

랭과 아담스는 평생 우정을 나누며 사진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랭이 1936년과 1938년 남부에서 촬영할 때 네거티브가 손상될까봐 요세미티에서 작업하는 아담스에게 정기적으로 보냈다. 1944년엔 '포춘'지의 위임으로 캘리포니아주 리치몬드의 전쟁중 조선소 프로젝트,에서 함께'라이프'지의 위임으로 유타주의 모르몬 타운의 포토 에세이 작업도 함께 했다. 그리고, 1952년엔 사진잡지 '아퍼처(Aperture)'를 공동 창간했다. 

 

 

zzz.jpg

Dorothea Lange, Tractored Out, Childress County, Texas, 1938

 

그녀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 1950년대 캘리포니아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자연 훼손에 우려했으며, 식용 저수지를 위한 대규모 댐 건설을 위해 샌프란시스코 북부 메리예사 밸리가 파괴되는 것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1960년 '아파처' 잡지에는 퍼클 존스와 공동으로 작업한 캘리포니아의 자연 경관과 전통적인 생활방식의 보존을 위한 사진 프로젝트가 실렸다.

 

도로시아 랭은 1965년 10월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당시 랭은 두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농장안전국(FSA)의 프로젝트를 모델로 독립적인 소셜다큐멘터리 기구를 설립해 도시의 생활을 기록할 신세대 작가를 발굴할 계획이었다. 또 하나는 보스턴의 케네디 도서관에 통합될 국립사진센터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도로시아 랭은 "카메라는 있던 없던간에 모든 사람들에게 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독특한 도구"라고 믿었다. 두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3개월 후 MoMA에서 여성 사진작가로서는 최초로, 사진작가 회고전으로는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폴 스트랜드(Paul Strand), 에드워드 웨스턴, 그리고 앙리 카르티에-브레쏭(Henri Cartier-Bresson)에 이어 다섯번째로 기록됐다.  

 

 

IMG_9292.jpg

The New Woman Behind the Camera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July 2–October 3, 2021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October 31, 2021–January 30, 2022

https://www.metmuseum.org

 

*메트뮤지엄 초기 여성 사진작가전 <1> 마가렛 버크-화이트

*메트뮤지엄 초기 여성 사진작가전 <2> 레니 리펜슈탈 

*메트뮤지엄 초기 여성 사진작가전 <3> 리 밀러

 

?
  • sukie 2021.09.25 17:22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을 알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에 대해 역동감을 느꼈습니다.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시진을 찍기위해 그 무거운 장비를 들고다닌 불굴의 의지와 예술혼이 감동을 줍니다. 30년대의 대공황을 글로 읽고 건성으로 넘어갔는데 랭이 찍은 사진으로 보니까 실감이 납니다. 사진의 위력을 재차 느꼈습니다. 굶주림과 가난을 여러 장의사진을 통해 공감하게 했습니다. 마치 내가 배고픔을 느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엄마와 엄마등에 기댄 두 소녀의 사진이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가난에 찌든 엄마의 얼굴에서 희망이란 찾아 볼 수가 없네요. 우리나라도 한때 그런 때가 있었기에 더욱 가슴이 아픔니다. 6.25전란 때는 미국의 경제공황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헐벗었지 않았나 합니다.
    랭의 사진에 거짓이 끼여있었다는 사실이 옥에 티네요. 사실을 왜곡해서 사진을 보여주다니 안타깝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