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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Modern/Contemporary Artists
2021.06.27 18:42

음악광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바이올린과 재즈

조회 수 2864 댓글 1

Henri Matisse: Violin & Jazz 

 

앙리 마티스, 음악적 열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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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Music, 1939/ Odalisque on the Terrace,1922

 

"음악과 색깔은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둘다 평행적인 경로를 따른다.

7개의 음표는 약간의 수정으로 어떤 작곡도 가능해진다.

시각예술도 마찬가지 아닐까?

-앙리 마티스-

 

 

바이올리니스트 앙리 마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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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Self-Portrait,1918/ The Violinist at the Window, 1918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Émile Benoît Matisse,1869-1954)는 색의 마술사였을 뿐만 아니라 음악광이었다. 마티스는 누드 여인/오달리스크, 정물, 창밖의 풍경으로 유명하지만, 바이올린, 피아노, 만돌린, 기타, 파이프, 피리 등 악기가 나오는 그림도 상당수 남겼다. 또한, '재즈(Jazz)'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고, 아트북을 출간했다. 모델 앙리에타(Henrietta)는 종종 피아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실, 마티스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1918년 49세의 마티스는 바이올린을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시력을 잃어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맹인은 그림을 포기해도, 음악은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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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The Music Lesson, 1917, Barnes Foundation/  The Piano Lesson, 1916, MoMA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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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The Music Lesson, 1917, Barnes Foundation

 

그는 그림 그리는 틈틈히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작업에서 도피하고, 영감을 찾았다. 1917년 프랑스 니스의 보 리바쥬 호텔의 객실에서 몇개월간 보낸 마티스는 바이올린과 빈 바이올린 케이스를 그렸다. 이즈음 그린 '창가의 바이올리니스트(Violinist at the Window, 1918)'는 자화상인듯 하다.

 

필라델피아의 반즈 파운데이션(Barnes Foundation)이 소장한 '음악 수업'은 마티스 가족이 모델이다. 큰 아들 장(Jean)은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책을 읽고 있으며, 큰 딸 마거리트(Marguerite)는 검은 목밴드를 한 채 동생 피에르(Pierre)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있다. 바이올린과 케이스는 피아노 위에 놓여있고, 그 옆에는 하이든의 악보가 보인다. 부인 아멜리 마티스(Amelie Matisse)는 정원에서 뜨개질 중이다. 바이올린은 마티스의 자화상인 셈이다. 

 

한편, MoMA가 소장한 '피아노 레슨(The Piano Lesson, 1919)'는 아들 피에르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묘사했다. 피에르의 표정은 어둡고, 회색빛 배경과 뒤의 엄마인지 음악교사인지 불분명한 여인 모습이 위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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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Music(sketch), 1907, MoMA/ Music, 1910. The Hermitage, St. Petersburg 

 

마티스가 숍 판매원이자 모델이었던 캐롤라인 조블로 사이에서 낳은 외동딸 마거리트는 아버지 작품 40여점의 모델이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고문당했다. 독일의 포로수용소로 향하는 기차에서 도피해 살아남아 1982년 82세로 사망했다. 

 

장남 장 마티스(1899-1976)은 첼로를 배웠으나, 훗날 조각가가 되었다. 막내 아들 피에르(1900-1989)는 뉴욕(맨해튼 57스트릿 풀러빌딩 피에르마티스 갤러리)를 오픈 아트딜러로 활동했다. 피에르 마티스는 알렉시아 새틀러(이혼 후 마르셀 뒤샹과 재혼)과 결혼했다. 이후 초현실주의 화가 로베르토 마타의 부인 패트리샤 케인 마타와 재혼, 이어 독일 외교관 칼 폰 스프레티의 딸 마리아-가애타나와 세번째 결혼했다.  

 

 

마티스 컷아웃과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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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Jazz, 1947,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미티스는 1941년부터 장암 수술에다가 관절염이 악화되며 복부 근육 손상으로 휠체어에 앉아 색종이 컷아웃 콜라쥬에 주력했다. 이즈음 마티스는 '가위는 연필보다 더 감각적이다"라고 말했다. 

 

재즈는 미국에서 탄생했지만, 제 1-2차 세계대전 사이 미국의 재즈 연주자들은 자유를 찾아 파리로 이주해 활동했다. 마티스는 이즈음 파리에서 라디오와 축음기로 이국적인 재즈를 즐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게 매혹적이었던 것은 특히 흑인 소울 음악과 스윙이었다. 모든 장르의 재즈 음악을 들었고, 탱고를 들으면서 춤도 춘 것으로 알려졌다. 

 

1947년 재즈광 마티스는 74세였다. 그는 출판사 테리아드(Tériade)와 '재즈(Jazz)"를 주제로 한 컷아웃 콜라쥬 아트북을 출간한다. 마티스는 재즈가 "리듬과 의미"라고 말했으며, 그 영감의 원천이었다. 여기에 서커스, 광대, 코끼리, 모로코와 타히티 여행의 기억, 자연 모티프, 즉흥 연주 등이 녹아 들면서 컬러풀하고, 리드미컬한 컷아웃 이미지가 제작됐다.  

 

 

렘브란트 오마쥬, 마티스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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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슬픔(La tristesse du roi), 1952, Pompidou Center, Paris/ Rembrandt van Rijn, David Playing Harp before Saul, 1655. Mauritshuis, Netherlands

 

'왕의 슬픔'(1952)은 앙리 마티스 최후의 자화상이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회화 '사울 앞에서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왕(David Playing Harp before Saul, 1655)'에서 영감을 받았다. 안락의자 위에 앉은 자신의 두 손과 바이올린, 리드미컬한 노란잎, 녹색의 여인, 그리고 무용수가 등장한다. 다윗왕은 사울왕의 광기를 다스릴 정도로 하프 연주가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 작곡가 피터 시본(Peter Seabourne, 1960- )은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7중주곡 '왕의 슬픔'(2007)을 작곡했다.

*Peter Seabourne - The Sadness of the King (septet) - Palomar Ensemble <YouTube>

https://youtu.be/EbedL09Xq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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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The Lute, 1943, Private Collection/ Woman with Mandolin, 1922, Musée de l'Orangerie

 

*앙리 마티스와 북 아트(Book Art)@모간 라이브러리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339388&mid=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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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6.29 23:26
    화가 겸 악기를 다루는 인물은 없는 걸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앙리 마티스가 있음을 컬빗을 통해 알았습니다.
    앙리 마티스를 고등학교때 미술시간에 미술교사께서 미술책에 수록된 그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색채가 화려하다는 설명은 기억이 나는데 음악광이었고 바이올린을 했다는 얘기는 없었습니다. 마티스가 49세에 바이올린을 배웠으니까 그당시 그는 초보자였을 가능성이 있어서 바이올린 연주자란 경력을 넣지않았을가 합니다. 1950년대였으니까요. 미술을 좋아했고 그림도 제법 잘그려서 가끔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제 그림을 반에서 애들에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백문기(그당시 몇 안되는 조각가였음. 이대 미대에 재직하셨음. 몇 년전에 작고하셨음) 선생님을 학교 졸업후에는 못 찾아뵙습니다. 현실에 부딪쳐서 사느라 각박했기 때문이지요.
    앙리의 바이올린 소리는 그의 그림의 색채만큼이나 화려했을 것 같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