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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장 미셸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1> His Works & Words on Art 


March 6–May 15, 2019

Brant Foundation, N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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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Brant Foundation, NYC


이스트빌리지의 브랜트 파운데이션(Brant Foundation)에서 3월 15일 시작되어 오는 5월 15일까지 계속되는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 회고전은 무료이지만, 티켓은 이미 매진된 상태다. 


브랜트 파운데이션은 당초 티켓 5만매를 온라인 예약자들에게 배부한 후 쇄도하는 티켓 요청에 추가로 발행했지만, 역시 순식간에 매진됐다. 뉴욕컬처비트가 담은 바스키아 회고전 작품과 그의 명언을 함께 소개한다.


*Waitlist Admission ticket

https://brantfoundation.org/basquiat-tick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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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Brant Foundation, NYC


이 회고전은 지난해 10월 3일부터 올 1월 14일까지 파리의 루이뷔통 파운데이션(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열렸던 120점의 바스키아 회고전을 70점으로 축소한 전시다. 바스키아는 1988년 헤로인 남용으로 27세에 요절했지만, 왕성한 창작욕으로 회화 1천여점, 드로잉 2천여점에 앤디 워홀과의 합작 150여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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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Boy and Dong in a Johnnypump,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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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Untitled, 1986


바스키아의 화풍은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다. 1970년대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에 대한 반발로 생생한 컬러를 동반한 구상미술, 독일 표현주의의 복귀였다. 그래피티 아티스트였던 바스키아의 다이나믹한 캔버스와 벽화는 수수께끼같은 텍스트로 가득하다. 재즈의 즉흥주의와 힙합 스타일의 언어가 시각적으로 표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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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Untitled, 1981. Photo: Bic Banana


그는 포스트모던 아티스트였다. 아이티계 아버지(Gerard Basquiat)와 푸에르토 리코계 어머니(Matilde Andradas) 사이에서 태어난 장 미셸은 영어, 스페인어, 불어책을 탐독했다. 패션디자인에 관심있던 엄마의 영향으로 브루클린뮤지엄의 아동회원이 되었고 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MoMA 등 뉴욕의 미술관들을 섭렵하며 아프리카 미술, 피카소, 장 뒤뷔페 등을 흡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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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Cassius Clay, 1982  카씨우스 클레이는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1942-2016)의 본명이다.


또한, 흑인 스포츠 선수 재키 로빈슨(야구), 무하마드 알리(복싱),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 흑인 재즈 뮤지션(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 등이 작품에 모티프로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수수께끼의 텍스트는 재즈처럼 즉흥적이며 힙합과 펑크 뮤직처럼 다이나믹하다.    



# 바스키아 명언: Art에 대하여 Basquiat O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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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Cars/Teepees, 1981


"나는 어릴 적에 참으로 형편없는 아티스트였다. 너무 추상 표현주의자였던가, 커다란 양의 머리를 그렸는데, 정말 지저분했다. 난 그림 경연대회에서 한번도 상을 받은 적이 없다. 한번은 완벽한 스파이더맨을 그린 남자한테 졌다."


"미술학교에 가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수강할 수 있는 미술 코스에서도 낙방했다. 그저 세상 주변의 것들을 보러다니면서 미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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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Per Capita, 1981


"난 엄마로부터 기본적인 것을 모두 이어받았다. 미술은 엄마의 유전자다."

 

"어릴 적엔 만화가를 꿈꾸었다."


"난 내 그림을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보이도록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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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Untitled (Tenant) *Detail, 1982. 


"모든 선에는 의미가 있다."


"난 작품의 문구를 지워서 관람객이 더 관심있게 보도록 유도한다. 불분명하게 만들면 그것을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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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Untitled, 1982(left)/ Irony of a Negro Policeman, 1982. Photo: Bic Banana


"내 그림의 대부분은 흑인이 주인공이다. 흑인이 들어가 있는 그림을 별로 보지 못했다."


"나는 흑인작가가 아니라 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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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 Twombly, Apollo & the Artist, 1975(left)/ Peter Max, EXPO stamp, 1974 & NYC Skyline, 2017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 1928-2011) 그림은 큰 글씨로 'Apollo'라 써있고, 지워진 '아폴로와 아티스트(Apollo and the Artist, 1975)'다."


"내 기본적인 영향은 아마도 피터 막스(Peter Max, 1937- 팝아티스트)일 것이다."


"내가 초상화를 그린 것은 딱 두번이다. 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 1952- 이탈리아 출신 화가)와 앤디 워홀이다."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1943- 영국의 아트딜러)는 내 작품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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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Arroz con Pollo(치킨 라이스), 1981 


"내게는 어떤 이가 닭고기를 들고, 그 아래는 누군가의 머리가 있는 그림이 있다."


"그림을 그리면, 그릴 수록, 모든 것을 더 좋아하게 된다."


"그림을 일주일만 안그려도 난 지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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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Untitled(Self-Portrait), 1982


JEAN-MICHEL BASQUIAT

March 6 – May 15, 2019

Brant Foundation, East Village

421 East 6th St. New York

https://brantfounda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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