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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세대를 앞선 20세기 천재 예술가 

백남준: 시간의 마에스트로(Nam June Paik: The Maestro of Time)

 

2019년 12월 6일-2020년 1월 31일

뉴욕한국문화원 갤러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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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 June Paik, M200 / Video Wall, 1991, Television monitors, 118 1/16 x 377 15/16 x 19 ⅝ in.

 

 

백남준,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2013년 여름, 영국의 에딘버러 국제 축제(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는 두명의 위대한 아티스트에 촛점을 맞추었다. '르네상스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와 '비디오 아트의 대부' 백남준(白南準, Nam June Paik, 1932-2006)이었다. 

 

화가이자 발명가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 해부학 드로잉을 집중 소개하는 특별전 'Leonardo da Vinci-The Anatomist'와 비디오 아트의 탄생을 알린 백남준의 독일 개인전 '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 5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Transmitted Live: Nam June Paik'이었다. 다빈치는 미술과 자연을 연계했으며, 백남준은 미술과 기술을 통합하며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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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루브르뮤지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특별전(왼쪽)과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백남준 특별전. Art: NYCultureBeat

 

2019년 가을, 유럽에서는 두 천재를 다시 조명하게 된다. 10월 12일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특별전 'NAM JUNE PAIK'(10.12-2/9, 2020)을 시작했다. 12일 후 파리의 루브르 뮤지엄(Louvre Museum)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사망 5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Leonardo da Vinci'(10/24-2/24, 2020)을 개막했다.  

 

뉴욕타임스는 11월 1일 'Standing Up for Humanity in a World of Screens'에서 테이트 모던의 백남준 회고전을 이렇게 소개했다.

 

"유럽을 선도하는 뮤지엄 중 한곳에서 이번 시즌 당대 누구보다도 더 명확하게 미래를 보았던 어떤 이에 헌사하는 전시를 열고 있다. 그는 휴식없는 여행자였으며,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춤추었던 날카로운 해부학 학생이었다. 그는 고대 종교를 새로운 형태의 표현방식으로 혼합했으며, 그의 죽음 뒤에 실현될 이상한 기계를 스케치했다. 당신은 내가 루브르뮤지엄의 왼손잡이를 의미했다고 생각했나? 레오나르도는 잊어버리라. 나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 열리는 광범위한 회고전에서 선구자로 나타나는 그리고, 기술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인간의 삶의 수호자로서 더욱 중요한 코리안 아메리칸 마법사 백남준(1932-2006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테이트 모던의 백남준 회고전은 내년 암스테르담, 시카고를 거쳐 2021년엔 샌프란시스코와 싱가포르로 3년간 순회 전시된다.

 

 

Nam June Paik: The Maestro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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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 June Paik: The Maestro of Time, Korean Cultural Center, New York

 

한편, 뉴욕한국문화원(Korean Cultural Center, New York)에선 개원 40주년 기념으로 12월 5일부터 '백남준: 시간의 마에스트로(Nam June Paik: The Maestro of Time)'(12/6-1/31, 2020)가 열리고 있다. 

 

오늘 우리는 모두 백남준의 영향권 아래서 살고 있다. 도처에서 백남준의 자취를 만난다. 그는 "비디오 아트(Video Art)가 인포 아트(Info Art, 정보예술)가 될 것이며 컴퓨터와 정보를 결합한 통신이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새로운 예술을 가능하게할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스마트폰, 인터넷, 유튜브, 소셜미디어, Skype로 지구촌이 연결되는 시대를 예측한 것이다. 

 

백남준은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Big Brother)'를 배격했다. 인간이 대중매체에 의해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활용되며 풍요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비디오 아트에 자신의 유년기 사진, 생일 날짜 등을 삽입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표현의 수단으로 각자 자신의 TV 채널을 갖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The Future is Now" -Nam June Paik-

 

1983임영균.jpg 백남준(1983) 사진: 임영균

 

백남준은 예술적 통찰력이 뛰어난 선지자였다. 1974년 그가 록펠러재단에 제출한 프로포절 '후기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21세기는 지금으로부터 단 26년 후(Media Planning for the Postindustrial Society-The 21st Century is now only 26 years away'에서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 highway)'라는 용어를 고안해 세계인들이 미디어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텔레커뮤니케이션(telecommunication) 시대를 예견했다. 그는 미디어가 현대인의 삶을 변형시키리라는 것을 알았다. 1993년 알 고어(Al Gore) 부통령은 여기서 영감을 받아 영화, TV쇼, 쇼핑, 이메일, 데이타 컬렉션 등이 연결되는 정보초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를 추진하게 된다. 

 

 

모차르트를 위하여 M200/ Video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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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 June Paik, M200 / Video Wall, 1991, Television monitors, 118 1/16 x 377 15/16 x 19 ⅝ in.

 

"TV 모니터 캔버스를

 

레오나르도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누아르처럼 컬러풀하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폴락처럼 난폭하게,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백남준-

 

뉴욕한국문화원의 조희성 큐레이터와 문인희 FAZI 디렉터가 기획한 '백남준: 시간의 마에스트로(Nam June Paik: The Maestro of Time)'는 오늘 백남준의 영향력에 다시 주목하게 만드는 기회다. 전시의 센터피스 'M200/ Video Wall'(1991)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사망 200주기를 기념해 제작된 작품. 86개의 TV 모니터가 16개 그룹으로 나뉘어 이미지를 쏘아대는 비디오 심포니(Video Symphony)다.  

 

백남준은 원래 작곡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 신재덕으로부터 피아노를 공부했고, 이건우와 김순남으로부터 작곡을 배웠다. 그리고, 도쿄대 미학과 졸업논문으로 '현대음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의 음악을 분석한 논문을 썼다. 1956년 독일 뮌헨대학원에서 음악사를 전공하다가 '전위음악의 메카' 프라이부르크로 이주해 다시 작곡을 전공하게 된다. 이즈음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를 만나 소음조차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감흥된다. 그는 피아노를 부수거나,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질질 끄는 퍼포먼스,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Charlotte Moorman)과의 'TV 첼로' 퍼포먼스 등으로 비주얼아트와 음악을 결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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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스 포만 감독의 모차르트 전기 영화 '아마데우스'(1984)의 장면도 나온다. Nam June Paik, M200 / Video Wall(detail), 1991

 

'M200'에는 모차르트의 '레퀴엠(Requiem in D단조, K. 626)'을 비롯, 백남준이 편곡한 데이빗 보위(David Bowie)와 사포(Sapho) 등 팝가수의 노래와 연주곡을이 흘러나온다. '레퀴엠'은 모차르트가 죽기 직전까지 작곡했던 미완성의 진혼곡이다. 모차르트는 1791년 여름 검은 옷 차림의 정체불명(저승사자같은) 남자로부터 작곡을 의뢰받았다. 오페라 '마술피리'와 '티토왕의 자비' 작곡까지 병행하면서 건강이 쇠약해졌던 모차르트는 "이것은 내 죽음의 노래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해 12월 5일, 35세에 세상을 떠났다. '레퀴엠'은 그의 제자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Franz Xaver Süssmayr)에 의해 완성된다. 

 

'레퀴엠'의 제 1곡은 "영원한 안식을 저들에게 주소서, 주님(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끝없는 빛을 저들에게 비추소서(et lux perpetua luceat eis)..."로 시작된다. 빛은 삶이며, 빛은 백남준 예술의 에센스다. 86개의 모니터에서 끊임없이 명멸하는 빛, 삶과 죽음을 은유하는듯 하다. 비디오는 그에게 캔버스였고, 빛은 그의 붓이었다. 이로써 백남준의 캔버스는 끝임없이 움직이는 벽화이자 뮤직 비디오이며, 비디오 심포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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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00'에 등장하는 백남준의 예술가 친구들. 조셉 보이스(위로부터),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그리고 포르노.

 

이미 세상을 떠난 아티스트 조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 뇌졸중으로 사망하게 될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 그리고, 파트너 케이지보다 17년 장수한 무용가 머스 커닝햄(1919-2009) 등의 동료 예술가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비디오 아트의 한계는 캔버스 유화와는 달리 브라운관의 수명이 7년-8년에 머문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처럼 유한한 예술인 셈이다.    

 

한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의 1003개 모니터 영상탑 '다다익선'(The More, The Better, 1988)은 노후화로 2018년 2월부터 가동이 중단됐다가 최근 복원이 결정됐다. 휘트니뮤지엄이 소장한 207개 모니터 설치작 '세기말2'(Fin de Siècle II, 1989)도 최근 복원을 거친 후 전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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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 June Paik, Video Chandelier No.4, 1990-91, 57 x 43 in, Mixed media showing 2 channel video(front)/ M200 / Video Wall, 1991, Television monitors, 118 1/16 x 377 15/16 x 19 ⅝ in.

 

 

백남준은 TV 스크린을 캔버스로 전환했을 뿐 아니라 악기, 의상, 가구, 로보트, 정원, 침대, 물고기, 로보트, 사람으로 변신시켰다. '비디오 샹들리에 No. 4(1991)'는 천장에 화려한 조명기구에 불꺼진 초가 꽂혀있고, 나뭇잎이 주렁주렁 달린 공중 정원에 TV 모니터 11개가 달려 있다. 'TV 정원(TV Garden, 1974)'이 천장으로 올라간 것. 

 

촛불과 전깃불(샹들리에)가 상징하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복수의 모니터로 은유되는 디지털 시대, 스마트폰이 일상화한 오늘을 예고한듯 하다. 우리는 누워서도 스마트폰을 즐기고 있다. 천장의 비디오 아트는 정원의 화초들처럼 생명력이 있지만,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양초는 불빛을 잃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백남준이 디지털 정보화 시대를 직감한 예고탄이다. 복수의 모니터는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신조를 반영한다.    

 

 

백남준의 굿 퍼포먼스,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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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 Young Choi, From the Nam June Paik Gut Series, 1990/2019

 

이 전시에는 동아일보, 중앙일보 사진기자 출신 최재영씨의 '백남준 굿' 흑백 사진 21점도 함께 소개되고 있다. 백남준은 1990년 7월 20일 자신의 58세 생일날 서울 현대화랑 마당에서 굿 퍼포먼스를 펼쳤다. 자신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독일 아티스트 조셉 보이스를 기리는 진혼굿이다. 

 

태창방직 사장의 막내 아들이었던 남준은 어머니가 무당을 불러다가 굿하는 것을 종종 구경했다고 한다. 한국의 무속문화는 백남준 뿌리가 됐고, 독일의 샤만 조셉 보이스를 만나 예술로서 꽃을 피웠다. 이들은 서울 올림픽에서 함께 퍼포먼스할 계획이었지만, 1986년 보이스의 죽음으로 무산됐다. 그날 백남준은 두루마기 차림에 갓을 쓰고 그날 박수무당이 됐다. 그는 TV 모니터와 피아노 옆에서 조셉 보이스의 혼을 달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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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이 무당 차림으로 조셉 보이스의 사진 앞에서 퍼포먼스 중이다. 그는 보이스에게 한자 이름 '보이수(普夷壽)'를 지어주었다. Young Choi, From the Nam June Paik Gut Series, 1990/2019

 

한국의 굿과 서양의 해프닝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무당은 이승과 저승 사이를 매개한다. 굿판에서 칼날 위를 맨발로 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사설을 내뱉는 무당과 구경꾼들은 즉흥적인 퍼포먼스 현장을 연상시킨다.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전위그룹 플럭서스(Fluxus)에서 활동했던 백남준은 1963년 3월 11일 독일의 소도시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연 첫 개인전에서 '비디오 아트'를 소개하게 된다. 갤러리 입구에는 피가 떨어지는 황소머리를 달았고, 조셉 보이스는 피아노를 도끼로 부수는 굿같은 퍼포먼스를 벌였다. 조셉 보이스는 이어 죽은 토끼를 데리고 연 퍼포먼스(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 1965)를 펼친 '독일의 샤만'이었다. 백남준은 그날 샤만이 되어 보이스를 추모했다. 그날의 굿 퍼포먼스를 담은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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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of the catalogue for Nam June Paik’s Beuys Vox 1961–1986, Peter Wenzel © The Estate of Nam June Paik(left)/ NAM JUNE PAIK, Beuys Voice, 1990 Two channel color video on laser discs, antique television cabinets, felt, mixed media sculpture 104 3/8 x 74 x 37 3/8 in. Photo: James Cohan Gallery, NYC

 

백남준과 11세 연상의 조셉 보이스는 1961년 뒤셀도르프의 제로 그룹(Zero Group) 전시장에서 만났다. 보이스가 "Mr. Paik!"하고 부르며 백남준에게 다가왔다. 백남준은 보이스와의 첫 만남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샤머니즘에 있어서 모든 요소들은 매우 강하다. 보이스에게 타타르족은 큰 영향을 끼쳤다.(*주: 제2차 세계대전 중 비행기에서 추락, 의식을 잃었을 때  타타르족이 발견하고 동물의 지방과 펠트 천으로 그를 치료해주었다. 이후 지방과 펠트는 보이스의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아마 그는 나를 '존 케이지에게 경배를(Hommage à John Cage)"에서 (피아노를 부수는 것을) 보았고, 1961년 날 "헤이여 백"이라고 부른 건 내가 아직 별로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는 몽골의 샤마니즘을 알고 있었고, '존 케이지에게 경배를'이 유사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첫 만남 이후 백남준과 조셉 보이스는'유라시아(EURASIA)' 등 다수의 프로젝트에서 협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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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박수무당 드로잉 '애꾸무당'은 TV와 안테나를 연상시킨다. 

 

 

"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시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백남준-

 

한국이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기 전, 국가적 자존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시절 백남준(Nam June Paik), 그의 이름은 2천 500만명의 시청자들에게 알려졌다. 1984년 1월 1일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으로 뉴욕과 파리를 연결했던 TV 프로그램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로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인간이 TV같은 빅 브라더(Big Brother)에 의해 지배당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거부하는 풍요의 정보사회, 유토피아의 세계를 펼쳐보였다. 백남준은 TV라는 대중매체에 살바도르 달리,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조셉 보이스, 로리 앤더슨, 알렌 긴스버그, 조지 플림턴 등 고급예술가들을 초대해서 브라운관 심포니를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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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 June Paik, Good Morning, Mr. Orwell, 1984

 

 

"아시아에서 온 문화의 테러리스트"

 

백남준은 비빔밥의 미학을 일찌기 깨달았다. 그는 TV에 다각의 비디오 소스로 편집, 왜곡, 채색을 하고 실제 시간으로 블렌딩했다. 그 비디오 콜라쥬의 정신은 비빔밥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홍콩, 일본을 거쳐 독일에서 플럭서스라는 옷을 입고 뉴욕으로 이주한 코스모폴리탄 아티스트. 백남준은 동서고금의 전통과 미술, 그리고 TV라는 테크놀로지를 하이브리드(hybrid)한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창조한 것이다.  

 

 

백남준은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을 뿐만 아니라 한류(Korean Wave)의 원조이기도 하다. 지금 K-Pop, 영화, 드라마, 미술, 클래식 음악, 오페라 등 예술계 전반에서 눈부신 재능과 혁혁한 활동을 보여주는 한인 예술가들을 비롯 한민족의 DNA에 백남준의 'Think Different'하는 아방가르드 정신이 흐르고 있는듯 하다. 

 

뉴욕한국문화원의 개원 40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백남준 특별전은 한때 '아시아에서 온 문화의 테러리스트'로 불리웠던 혁명아,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20세기의 천재'였던 백남준의 영향력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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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 June Paik: The Maestro of Time, Korean Cultural Center, New York

 

백남준: 시간의 마에스트로(Nam June Paik: The Maestro of Time)

2019년 12월 6일-2020년 1월 31일

갤러리코리아, 뉴욕한국문화원 (460 Park Ave. 6th Fl.)

https://www.koreanculture.org

 

 

*뉴욕영화제 2019: 머스 커닝햄 3D 다큐멘터리 'Cunning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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