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



조회 수 1934 댓글 2
이중섭, 잭슨 폴락, 마티스, 조지아 오키프 드로잉전
Degree Zero: Drawing at Midcentury
 
Museum of Modern Art
Nov. 1, 2020-Feb. 6, 2021
 
lee-moma.jpg

Degree Zero: Drawing at Midcentury, Museum of Modern Art

 
 
2020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잔인한 한 해였다. 숨가쁜 리듬의 도시, 세계 문화의 메카 뉴욕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황량하고 메마른 타운이 되었다. 브로드웨이 불빛도 사라지고, 링컨센터와 카네기홀도 고요하다.
 
하지만, 미술관은 오랜 휴지기를 거친 후 숨을 쉬고 있다. 여행자들이 거의 사라진 뮤지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작품과 관람객의 친밀한 소통의 여백을 찾았을 것 같다.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간 대 인간 사이에 선 긋기가 일상화됐지만, 미술품들과는 심리적으로 더욱 가까워지지 않을까? 
 
한산하리라는 추측은 빗나갔다. 1월 2일 토요일 오후 MoMA 몇몇 갤러리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관람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아마도 미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애호가들이 신년 벽두부터 몰려든 것 같다. MoMA 측은 시간제 티켓을 발매해 수용인원을 통제하고, 방문객들에게 6피트 거리 두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관람객들로 넘치는 갤러리에서는 조심스럽게 발길을 움직여야 했다.
 
 
IMG_1815.jpg

Degree Zero: Drawing at Midcentury, Museum of Modern Art

 
2019년 10월 더 많은 관람객들은 수용하기 위해 확장 공사 후 재개관한 뉴욕현대미술관(MoMA)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팬데닉으로 인해 한동안 방문객을 받을 수 없었다. 팬데믹 재개관 후인 11월 1일부터 시작된  특별전 'Degree Zero: Drawing at Midcentury'(2020. 11/1-2021. 2/6)은 제 2차 세계 대전 후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개발하려는 욕구가 담긴 드로잉을 모은 전시다. 
 
앙리 마티스,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지아 오키프, 노만 루이스, 잭슨 폴락, 윌렘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장 뒤뷔페, 데이빗 스미스, 클라에스 올덴버그,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재스퍼 존스, 사이 트웜블리, 루이스 부르조아, 조안 미첼, 엘스워스 켈리, 야요이 쿠사마...그리고 이중섭까지 80여점의 드로잉이 소개되고 있다. 
 
 
이중섭과 잭슨 폴락
 
000lee-jp.jpg

이중섭(1916-1956)/ 잭슨 폴락(1912-1956)

 

이중섭은 1950년대 담뱃갑의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 'Fairyland' 'Family in Paradise' 'People Reading the Newspaper' 3점 이 걸려있다. 잭슨 폴락(Jackson Pollock, 1912-1956)의 드로잉 '무제(Untitled, 1953-1954)' 옆이다. 이중섭과 잭슨 폴락, 이들이 1956년 한달 사이로 40대에 요절한 화가라는 것은 우연일까? 
 
이중섭은 평남 평원에서 지주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를 잃은 후 부자 외갓집에서 성장했다. 도쿄에서 미술을 전공한 유학파였지만, 한국전쟁의 발발로 제주도에서 부산, 서울 등지로 피난생활을 하며 가난에 시달렸다. 이중섭은 우직한 소의 눈망울에서 한민족성을 발견하고, 소에 집착했다. 전쟁 중 일본인 부인과 두 아들과 생이별한 후에는 가족을 늘 그리워하며 병마와 싸우게 된다. 
 
그가 미술재료 살 돈이 없어서 고안한 것이 담뱃갑 속의 은박지였다. 못이나 뾰족한 꼬챙이로 부인과 아이들, 자연과 꿈을 그려내며 외로움을 달랬다. 1956년 9월 6일 개인전 실패 후 정신이상으로 떠돌다가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무연고 처리되어 3일 동안 방치되었다가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000moma-pollock-she-wolf.jpg

Jackson Pollock, The She-Wolf, 1943. MoMA Collection/ 이중섭, 흰 소, 1952

 
한편, 잭슨 폴락은 와이오밍주의 코디에서 태어나 조실부모로 입양되었다. 알콜 중독자였던 양아버지로 인해 불행한 소년기를 보냈고, 고등학교 때 폭력으로 퇴학당했다. 화가 지망생이던 형을 따라 뉴욕으로 이주, 아트스튜던트리그에 다니며 내니, 구겐하임뮤지엄의 목수로도 일했다. 공황기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벽화 작업에 가담하며 돈을 벌었다. 
 
알콜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946년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물감을 떨어트리며 작업하는 액션 페인팅으로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폴락은 이후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생존 화가'로 명성을 누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가 리 크래스너와 결혼한 상태에서 1956년 26세의 무명화가 루스 클리그만과 바람을 피우다가 롱아일랜드에서 음주운전으로 숨을 거두었다. 1956년 8월 11일 그의 나이 44세였다.     
 
 
이중섭과 아서 맥타가트
 
lee-arthur.jpg

이중섭(1916-1956)/ 아서 맥타가트(1915-2003)

 
이중섭은 40세 생애에 은지화를 300여점 남겼다. 그가 은지화를 시작한 것은 시인 김소월과 독립투사를 배출한 오산학교 시절부터로 알려졌다. 그림 재료비가 없어서 담뱃갑 속의 은박지에 못이나 꼬챙이로 새긴 후 고려청자 상감기법처럼 미세한 음각에 물감을 발라 완성했다. 1955년 서울 미도파 화랑에서 열린 이중섭의 첫 개인전에서 은지화가 전시됐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전시에 걸린 은지화 50여점을 철거했다. 그림 속의 어른과 아이, 남녀 보두 알몸이라 음란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중섭의 은지화는 어떻게 MoMA로 들어갔을까? 미국인 아서 맥타가트(Arthur McTaggart, 1915-2003)에 의해서다. 
 
 
moma-Family in Paradise.jpg

Joong Seop Lee, 낙원의 가족-도원/ Family in Paradise (Number 50), 1950–52, Incising and oil on metal foil on paper, 8.3 x 15.4 cm, Gift of Arthur McTaggart, MoMA Collection

 
미 대공황기 인디애나주 로간스포트에서 태어난 맥카가트는 고교 졸업 후 기계공으로 일했다. 이후 인디애나주 퍼듀대 산업교육과를 거쳐 코넬대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1943년 제 2차 대전 중 이탈리아에서 복무했다가 귀환한 후 스탠포드대 교육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1953년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을 즈음해 주한 미재무관으로 임명되어 부산으로 갔다. 
 
이중섭과의 인연은 1955년 1월 서울 미도파 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였다. 맥타가트는 동아일보에 전시평을 기고한 것. 그때 맥타가트는 이중섭에게 "당신의 황소는 스페인의 투우처럼 무섭다"고 말했다. 이에 이중섭은 화를 내면서 "내 소는 싸우는 소가 아니라 고생하는 소, 소 중에서도 한국의 소다"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4개월 후 대구 미공보원에서 전시를 열었으나 잘 팔리지 않았다. 이중섭은 남은 그림을 전시장 인근 경복여관의 아궁이에 태워버렸다고 전해진다. 당시 맥타가트는 대구의 미공보원장이었다.  
 
 
moma-fairyland.jpg

Joong Seop Lee, Fairyland (Number 57), 1950–52, Incising and oil on metal foil on paper, 8.3 x 15.4 cm, Gift of Arthur McTaggart, MoMA Collection

 
하지만, 이중섭의 팬이 된 맥타가트는 은지화 3점을 구입해 MoMA에 기증했다. MoMA는 1956년 공식 소장품으로 발표했다. MoMA의 첫 한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중섭은 이 사실을 모른 채 1956년 9월 쓸쓸히 눈을 감았다. 
 
맥타가트는 훗날 귀국할 때 이중섭 그림 10점을 더 구입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재에도 매료되어 안동 하회탈을 세계에 알렸다. 또한, 고려청자, 조선백자, 분청사기 등을 비롯 평생 수집했던 유물 482점을 기록해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 위탁했다. 이 컬렉션은 2000년 대구박물관으로 이관됐다. 
 
 
People Reading the Newspaper, Number 84 by Lee Jung-seop (Gift of Arthur McTaggart-The Museum of Modern Art).jpg

Joong Seop Lee, People Reading the Newspaper (Number 84), 1950–52, Incising and oil on metal foil on paper, 10.1 x 15 cm, Gift of Arthur McTaggart, MoMA Collection

 
1964년엔 워싱턴 DC의 'Voice of America'의 한국어판 감독을 지냈으며 이듬해 베트남 미국공보원 자문관으로 발령됐다. 맥타가트는 1976년 대구로 돌아가 영남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20여년간 재직했다. 1997년 은퇴한 후 40여년의 한국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했다. 2003년 워싱턴 근교 양로원에서 89세로 별세했다. 2012년 영남대에서는 맥타가트의 흉상을 설치했다. 
 
MoMA의 'Degree Zero: Drawing at Midcentury'전은 2021년 2월 6일까지 2층 갤러리(Paul J. Sachs Galleries, 2 South)에서 계속된다.  
 
 
IMG_1835.jpg
Degree Zero: Drawing at Midcentury, Museum of Modern Art
 

MoMA Museum of Modern Art

11 West 53 St.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폐관. 10:30 AM-5:30 PM

티켓: $25(성인), 노인(65세 이상, $18), 학생(풀타임, $14), 16세 이하, 회원(무료)/ *코로나 펜데믹 기간 중 시간제 예약 필수. https://www.moma.org

 
 

*2021 신축년, 이중섭은 왜 소에 매료됐나?

*현대미술의 시작과 끝: MoMA 하이라이트

*MoMA 재개관 <1> 더 크게, 더 많이 The Bigger, The More

*MoMA 재개관 <2> 소장품 디스플레이: Themes & Variations 

*MoMA 재개관 <3> 특별전: 여성, 흑인, 남미작가 오마쥬

*MoMA 개개관 <4> 여성작가들의 재발견 Feminists/ Humanists

*MoMA 재개관 <5> 흑인작가 전성시대 #BlackArtistsMatters

*양혜규: 핸들(Haegue Yang: Handles)@MoMA

*쿠바 작가 카르멘 헤레라(Carmen Herrera) 첫 뮤지엄 회고전@휘트니, 2016

*서사적 추상화 여성작가 열전 <5> 카르멘 헤레라(Carmen Herrera), 메트뮤지엄

*엘리오 오이티시카(Hélio Oiticica)@휘트니 뮤지엄, 2017

*메트뮤지엄 루프 가든 아드리안 빌라 로하스(Adrián Villar Rojas), 2017

*브라질 구체미술의 기수 리지아 파페(Lygia Pape) 회고전@메트 브로이어, 2017

*프리다 칼로의 옷장@브루클린 뮤지엄, 2019

*MoMA, Making Space: Women Artists and Postwar Abstraction, 2017

*MoMA Modern 바룸 일요일 BYOB 디너 

 

 

?
  • sukie 2021.01.06 11:41
    이중섭 화가의 담배갑 은지화를 잘읽었습니다. 저는 이중섭 화가가 폴락보다는 반 고흐의 생애를 닮은 것 같습니다. 39살에 요절한 고흐와 40살에 요절한 이중섭 화가, 그리고 극한의 가난과 배고픔, 생전에 그림이 안팔렸던 점, 자기의 그림을 아궁이에 넣어 불살랐던 일, 사후에 두 화가의 천재성이 알려져서 두 화가의 그림이 천정부지의 고가를 형성하고 있는 점 등등이 이중섭과 고흐가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50년대 한국화단은 어떤 화풍이 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이중섭 같은 천재화가를 홀대한 그당시 화단의 흐름이 무엇인가가 사뭇 궁금하네요.
    -Elaine-
  • sukie 2021.01.06 11:48
    저도 이중섭과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MoMA 전시에서 이중섭 은지화 바로 옆에 잭슨 폴락이 걸린 것을 보니 1956년 8월과 9월 40대에 요절한 두 골초 화가의 삶이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50년대 한국 미술 화풍에 대해서는 홍선표님의 논문 1950년대의 한국미술(1) 제1공화국 미술의 태동과 진통 http://www.casasia.org/file/digest/40_1%20hong.pdf
    경향신문 보고 ‘서양화 동인’을 통해 본 50~60년대 한국미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612261805311
    를 참조해보세요. 피드백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