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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독감과 화가들 (1)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격리, 나약, 고통, 고독, 절망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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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vard Munch, Self-Portrait after the Spanish Flu, 1919(cover, left)/ Self-Portrait after Spanish Influenza, 1919. National Gallery, Oslo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19(COVID-19)가 세계적인 유행병이 되면서 경제와 사회는 휘청거리고, 문화 활동도 정지됐다. 집콕(Stay at Home) 생활에 익숙한 직업인 아티스트들은 또한 가장 세상의 변화에 민감한 이들이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엔 스페인 독감(Spanish Flu Pandemic)이 3년여간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1918년 1월 시작되어 1920년 12월까지 세계 5억여명을 감염시켰다.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다. 그리고, 5천만여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에 앞선 1347-1351년의 흑사병으로는 2천500여만명이 사망했다. 스페인은 억울하게 '스페인 독감'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에서는 국왕 알폰소 13세까지 독감에 걸렸고, 참전국들과는 달리 검열 없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스페인 독감'으로 굳어지게 된다.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가 살아남은 유명인으로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 마하트마 간디, 월트 디즈니를 비롯, 영화배우 릴리언 기쉬, 메리 픽포드, 화가 조지아 오키프, 에드바르트 뭉크,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D. H. 로렌스, 시인 TS 엘리엇, 작곡가 벨라 바톡,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등이 있다. 한편,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는 스페인 독감으로 1918년 목숨을 잃었다. 



스페인 독감과 화가들 (1)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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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vard Munch, Self-Portrait after the Spanish Flu, 1919. The Munch Museum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80세로 비교적 장수한 편이지만, 평생 가족의 질병과 사망, 자신은 스페인 독감을 비롯, 우울증과 신경증에 시달렸다.   


뭉크는 노르웨이의 로이텐에서 2남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목사의 아들이었던 뭉크의 아버지는 시골 의사였고, 어머니는 아버지 나이보다 절반의 어린 아내였다. 어머니는 뭉크가 5살 때(1868년) 결핵으로 별세했으며, 14살 때는 누이 소피(15)도 결핵으로 사망했다. 뭉크는 소피 사망 9년 후 '아픈 아이(The Sick Child, 1896)' 'Death in the Sickroom, 1896)'에서 누이의 생전 모습을 그리면서 기술적, 개인적으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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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vard Munch, The Sick Child I, 1896(left)/ Death in the Sickroom, 1896, Art Institute of Chicago  


뭉크 자신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쇠약했다. 신경증에 강박적으로 종교적이었던 아버지 영향으로 스스로 광기의 씨앗을 물려받았으며, 태어날 때부터 옆에 공포, 슬픔과 죽음의 천사가 곁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잘못된 행동을 하늘의 어머니가 지켜보며 슬퍼하고 있다면서 혼내주었다. 


아버지의 종교적인 압제로 인해 뭉크는 쇠약했고, 생활이 된 귀신 이야기는 그를 악몽과 환상에 시달리게 했다. 결국 여동생 로라는 어릴 적 정신병 진단을 받았고, 유일하게 결혼한 안드레아스는 결혼 몇개월 후 사망한다. 뭉크는 훗날 "인간의 가장 두려운 적인 페병과 광기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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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ck Child, 1907, Tate Modern, London(left)/ The Sick Child, 1896, Göteborgs Konstmuseum

  

1908년경 뭉크는 음주벽과 싸움으로 불안감에 시달렸으며, 광기로 치달았다. 환각과 피해망상증으로 덴마크 병원에 입원해 8개월간 전기요법도 받았다. 퇴원 후 증세가 나아졌고, 1912년엔 뉴욕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뭉크는 평생 퇴폐와 악, 사랑과 죽음에 대해 사로잡혔다. 어두움과 공포가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가족의 죽음, 자신의 신경증과 육체적 질환은 문화적 불안의식으로 작품에 표현됐다. 베개 밑의 절망적인 표정, 침대 옆의 절망한 어머니, 희미한 불빛, 헝클어진 머리카락 등으로 묘사됐다. 그의 걸작 '비명'에 괴물과 환영, 비자연스러운 색채와 내적인 리듬, 물결치는 선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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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vard Munch, Self Portrait with the Spanish Flu, 1919.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미 질병통제예방국(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서 발행하는 간행물 2003년 제 9권 '신종 전염병(Emerging Infectious Disease)'에는 에드바르트 뭉크의 '스페인 독감 후 자화상'에 대한 설명이 있다.


"중년에 뭉크가 앓았던 결핵 형태의 전염병은 그의 전 생애를 지배했으며, 그의 작품 세계의 연료가 됐다. '스페인 독감 후의 자화상'에는 고통받은 화가 자신이 유행성 살인범인 독감의 판사이자 희생자로 나타난다. 간결하면서도 불안정함, 푹신한 변색의 빛깔, 열과 오한의 떨리는 선들은  환자의 절망, 격리, 나약함, 질병,부족한 공기, 무감각과 절망을 강조할 뿐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서 폭발한 세계적인 대유행병, 스페인 독감은 당대의 허무주의와 묵시적인 세계관을 강화하게 된다. 뭉크의 독감에 대한 망상은 현재에도 실감되는 부분이다. 순환 바이러스의 감시가 증가했고, 독감 예방접종이 주류에 진입했지만, 전염병은 아직도 빈번하게 발병하며, 항원의 이동으로 발생하는 균주는 다음 유행병으로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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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vard Munch, The Magic Forest, 1919. Munch Museum, Oslo


뭉크는 1919년 스페인 독감을 앓고 있던 중 자화상을 여러 점 그렸다. 오슬로 국립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이 소장한 자화상에서 뭉크는 가운과 이불로 몸을 감싼 채 고리버들 의자에 '절규'(The Scream)'의 주인공처럼 앉아 있으며, 엉크러진 침대가 보인다. 창백한 노란색 배경과 시체처럼 열린 입이 스페인 독감의 공포감과 고독감을 드러낸다. 


그해 말에 그린 자화상(뭉크 뮤지엄 소장)은 관람객을 향해 응시하는 클로즈업에서 물감의 소용돌이로 묘사된 눈 주위의 원들과 붉으스레한 색깔로 착색된 자화상이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지만, 뭉크는 생존했다. 살아 남은 자로서 뭉크는 질병과 고통, 절망과 고독과 싸우며 화폭에 담았던 것이다.  



delfina.jpg *스페인 독감과 화가들 <2> 구스타프 클림트

*스페인 독감과 화가들 <3> 에곤 쉴레 

*에드바르트 뭉크 사진전@스칸디나비아 하우스 

*절망과 고통의 캔버스@메트 브로이어 

*에드바르트 뭉크 판화전@내셔널갤러리, 워싱턴 D.C. 

*뭉크는 '절규'를 어떻게 그렸나?

*에드워드 호퍼는 에드바르트 뭉크의 영향을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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