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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몬 스톤의 '벚꽃동산(The Cherry Orchard)'

 

투명한 집에 갇힌 사람들 

리얼리즘과 상징주의의 랑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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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erry Orchard, Park Avenue Armory, NYC, 2026.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 2019)에서 김씨 가족은 점차 박 사장 가족에게 빌붙어 기생충처럼 먹고살다가, 그들이 휴가를 떠난 사이 저택을 점유한다. 사이먼 스톤의 '벚꽃동산'에선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둔 운전기사 출신 황두식이 사업에 성공해 ‘불도저’처럼 재벌 3세의 기업과 저택을 밀어붙이며 철거하려 한다. 김씨네는 박사장네 집안으로 들어갔고, 황두식은 송도영의 집과 벚꽃동산을 없애버리려 한다. 

 

사울 김(Saul Kim)이 디자인한 통유리 저택에서 9명의 배우는 거실(1층), 침실(2층), 옥상과 계단, 앞마당, 그리고 정원처럼 둘러싸인 객석까지 종횡무진하며 연기한다. 이들은 때로 동시에 대사를 하고, 이야기의 중심은 계속 이동한다. 관객은 연출자가 편집해준 시선 없이, 수족관 같은 집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사건 가운데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선택해 보고 듣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무대는 오히려 리얼리스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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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erry Orchard (*Intermission), Park Avenue Armory, NYC, 2026.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그러나, 이 투명한 집은 단순한 사실주의적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벚꽃동산'의 인물들은 서로의 삶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에 있으면서도 정작 서로의 내면에는 닿지 못한다. 투명한 별채는 송도영을 비롯한 인물들의 내면처럼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한 자아를 상징하는 구조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끝내 허물어질 이 집은 인간의 불안정한 삶뿐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나날이 철거되고 사라지는 우리의 기억과 유산을 떠올리게 한다. 뉴욕에서는 ‘벚꽃동산’이 단순히 한 재벌가의 저택이 아니라, 럭셔리 콘도가 들어서면서 사라지는 오래된 건물과 그 안에 축적된 사람들의 기억으로 다가온다. 

 

한편, 하얀 계단이 지붕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형 저택은 프로이트의 이드(id)-에고(ego)-수퍼 에고(superego)를 연상시키는 구조물이기도 하다. 송도영과 황두식,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유리벽으로 에워싼 욕망에 닫혀있다. 누구는 과거를 붙잡고, 누구는 돈과 신분상승을 꿈꾸고, 누구는 사랑을 갈구하며, 누구는 떠나고 싶어하며, 누구는 더 나은 세상을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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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erry Orchard (*Curtain Call), Park Avenue Armory, NYC, 2026.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한 수족관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인물들은 서로를 훤히 바라보면서도 뿔뿔이 흩어진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각자의 욕망과 상처 속에 고립된 인간들이다. 투명한 벽은 소통을 가능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소외를 가시화한다. 급격한 계급 이동과 개발로 기존의 질서와 관계가 해체되는 가운데 이들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체호프가 포착했던 ‘사라지는 세계’는 사이먼 스톤의 서울에서, 그리고 오늘의 뉴욕에서도 다른 얼굴로 반복된다. 어쩌면 이 투명한 집은 현대 도시의 아노미를 들여다보는 거대한 수족관인지도 모른다.

 

인터미션에 스탭들이 검은 파편을 곳곳에 뿌렸다. 눈 내리던 날 해나의 생일 파티에서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폭발하고, 황두식은 저택 철거를 명령한다. 마지막 장면 불도저로 상징되는 나뭇잎 청소기에 휘말려들어가는 검은 파편들은 기억과 욕망 잔해일까? 2층 침실에 갇혀있는 컬러풀한 풍선은 박제된 그들의 욕망일까? 스탭에게 물어보니 그 검은 파편은 트래시백을 절단한 것이라고 했다. 

 

뉴요커들에게도 ‘벚꽃 동산’이 있었다. 1960년대 개발의 이름 아래 사라진 구 펜실베이니아 스테이션이다. 1910년 맥킴, 미드 & 화이트(McKim, Mead & White)가 보자르 양식으로 설계한 거대한 기차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 들어선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바라보며 올드 뉴요커들이 느낀 상실감은 이후 뉴욕의 역사적 건축물 보존운동을 촉발시켰다. 

 

이번 공연에서 뉴욕에서 살아온 관객의 눈에는 해나의 의상이 다소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았다. 해나는 엄마 송도영과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에서 살아온 재벌가 4세로 프린스턴대를 거쳐 NYU 영화과 대학원생이다. 그 해나의 배경이 의상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엄마와 별채에 도착하는 첫 장면의 의상은 해나라는 캐릭터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

 

파크 애브뉴 아모리느 약 1천 500석 규모의 큰 극장인 탓에 마이크를 통한 대사가 다소 아쉬웠다. 투명한 수족관 같은 무대가 만들어낸 밀도 높은 시각적 세계에 비해, 증폭된 목소리는 배우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오히려 드러냈다.

 

 

벚꽃 동산(The Cherry Orchard)

 

현대 서울 배경 스토리, 한국어 공연  9월 16일-26일 파크애브뉴 아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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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erry Orchard, 2024 ⓒ LG Arts Center

 

벚꽃 동산 The Cherry Orchard 

공연 일정: 9월 16일-26일 (월-목요일 오후 7시 30분, 금-토요일 오후 8시) 

파크애브뉴아모리: 643 Park Avenue@66th St. 

티켓: $45. 뉴욕한국문화원(KCCNY) 10% 할인 코드 CHERRYKCCNY (8/21까지 구매) 

https://www.armoryonpark.org/season-events/2026-season/the-cherry-orchard

 

 

*전도연-박해수 주연 체호프 원작 연극 '벚꽃 동산(The Cherry Orchard)' 뉴욕 공연(9/16-26)

https://www.nyculturebeat.com/?mid=Stage2&document_srl=4188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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