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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오디세이'와 미술 (2)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

 

스크린에서 뮤지엄으로, '오디세이' 클래식 찾기

예술-철학-권력, 어제-오늘-내일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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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brandt (Rembrandt van Rijn), Aristotle with a Bust of Homer, 1653,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G616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The Odyssey)'가 북미 지역 개봉(7/15) 이후 9월 13일 현재 세계에서 16억 8천4백만 달러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쥬라기 월드'를 제치고 유니버설 픽처즈의 114년 역사상 최고의 수입을 거둔 영화가 되었다. 놀란 감독을 비롯, 맷 데이먼, 샬리즈 테론 등이 홍보 차 내한한 후인 8월 5일 한국에서 개봉된 '오디세이'는 33일만에 1천39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은 북미(미국 & 캐나다), 영국, 중국에 이어 '오디세이'를 가장 많이 본 나라 4위에 랭크됐다. 

 

영화관의 불이 꺼진 뒤 찾아오는 문학적 갈증을 채우기 위해 붓으로 신화의 시대를 다시 쓴 거장들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다. 약 3천년 전 고대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는 수천년간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지난 칼럼 '영화 '오디세이' 열풍, 미술관으로 이어지다' 1편에선 그리스 도기와 부조 등을 찾아 메트뮤지엄, 펜뮤지엄, 그리고 보스턴뮤지엄이 소장한 유물을 소개했다. 수천년 전 흙을 빚어 만든 도기와 로마의 벽화엔 생생한 영웅의 숨결이 박제되었다. 

 

'오디세이아'가 남긴 불멸의 영감을 고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스크린에서 뮤지엄으로 이어지는 '오디세이 클래식 찾기', 그 두 번째 이야기는 아름답고도 치열한 회화의 세계다.

 

세기를 뛰어넘어 17세기 네덜란드 거장 렘브란트에서 18세기 스위스의 고전주의 여성화가 안젤리카 카프만, 그리고 19세기 상징주의 화가 아놀드 뵈클린의 붓터치도 오디세우스의 외로움과 시련을 재해석했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보스턴뮤지엄의 유럽회화 갤러리는 스크린 속 소음이 소거된 고요한 신화의 수장고다. 도자기 표면의 선에서 벗어나 캔버스 위에서 강렬한 색채로 피어난 '오디세이'와 회화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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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brandt (Rembrandt van Rijn), Aristotle with a Bust of Homer (right), 1653,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G616

 

 

금 목걸이를 착용한 아리스토텔레스가 호메로스의 조각 흉상을 사색하고 있다. 메트뮤지엄 유럽회화 갤러리 #616에 걸려있는 렘브란트(1606-1669)의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with a Bust of Homer, 1653)'는 수수께끼적이다. 렘브란트는 왜 호메로스와 아리스토틀을 한 캔버스에 담았을까? 

 

네덜란드의 위대한 초상화가 렘브란트는 파산하기 3년 전, 1653년 시칠리아의 부유한 귀족 돈 안토니오 루포(Antonio Ruffo)의 주문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다. 메시나의 부유한 미술 수집가던 루포는 유명한 인물들의 그림을 모으고 있던 중 렘브란트에게 '철학자의 반신상'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림 속엔 17세기 귀족처럼 호화로운 복장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위대한 시인 호메로스의 두상에 손을 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번쩍거리는 금사슬을 오른쪽 어깨에 두르고 있는데,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떨어지는 금사슬에 알렉산더 대왕으로 추정되는 펜던트가 달려 있다(사진 아래 중앙). 그렇다면, 왜 렘브란트는 호메로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대왕을 소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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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brandt (Rembrandt van Rijn), Aristotle with a Bust of Homer, 1653,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G616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그리스도교의 '성경'과 더불어 서양 문명의 근원으로 문학은 물론 철학, 교육, 미술, 음악, 언어, 정치 등 수많은 학문과 예술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리아스'는 그리스 신화 중 트로이 전쟁 전체 대신,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중심으로 하나의 행동을 선택한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10년간 모험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귀환과 정체의 발견을 중심으로 조직한 작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메로스로부터 이야기의 구조에 대해서 배운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에게 호메로스는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영웅의 행동, 명예,덕목을 배우는 교과서이기도 했다.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는 13살이던 왕자에게 아리스토텔레스를 붙여주어 교육받도록 했다. 그러면, 아리스토렐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무엇을 가르쳤나? 알렉산더는 원정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교정한 '일리아스'를 갖고 다녔다고 한다. 국가, 시민, 헌법 및 통치 형태를 분석한 '정치학'을 집필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통치자는 어떤 인간이어야 하는가 등 통치술, 윤리학, 그리고 자연과학 등을 알렉산더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Edward Sheffield Bartholomew, Blind Homer Led by the Genius of Poetry, 1851,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jpg

Edward Sheffield Bartholomew, Blind Homer Led by the Genius of Poetry, 1851,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G733  메트뮤지엄 갤러리733엔 눈 먼 호머가 '시의 천재'에 이끌려 가는 모습을 담은 부조가 있다. 비록 눈을 멀었지만,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던 위대한 작가의 모습이다. 

 

 

호메로스는 시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가이며, 알렉산더 대왕은 권력이다. 즉, 렘브란트는 예술과 권력, 그리고 명성에 대해 고찰한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을 그리던 1653년 렘브란트는 엄청난 명성을 얻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시기에 놓여있었다. 1639년 전성기 때 암스테르담의 대 저택을 빚을 들여 매입했다. 그러나, 고대 미술품에서 회화, 조각, 무기, 의상, 동전 등을 수집하느라 10년 후부터는 빚을 갚지 못했다. 게다가 실험적인 작품을 추구하면서 후훤자들이 떨어져나갔다. 때문에 돈과 명예, 예술적 자유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렘브란트 자신의 딜레마를 호메로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위인들에 빗대어 표현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 그림 속의 세 인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상징하는 시간성을 함축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그림은 1961년 메트뮤지엄이 당시 경매 사상 최고가였던 230만 달러에 구입해 화제가 됐다. 

 

 

*'오디세이'와 고대미술 (1) 메트·펜·보스턴뮤지엄, 클래식을 찾아서 

https://www.nyculturebeat.com/?mid=Art2&document_srl=4189939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호메로스 원작과 다른 점 10가지 -배너티 페어

https://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4187432

 

*NYT 모린 다우드, 뉴욕매거진 캣 장: 섹스 거세된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 혹평

https://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4187518&mid=Fil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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