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가 고갱을 위해 그렸던 '해바라기' 연작 이야기
반 고흐와 고갱, 해바라기로 맺어진 두 거장의 유대
필라델피아뮤지엄 '해바라기: 청색과 황색의 교향곡'전
Van Gogh’s Sunflowers
A Symphony in Blue and Yellow
June 6 - October 11, 2026
Philadelphia Museum of Art

Vincent van Gogh, Sunflowers, 1889, Philadelphia Museum of Art (left)/ Sunflowers, 1888, The National Gallery, London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1888년 8월 노란색과 파란색 배경을 바탕으로 토기 화분에서 넘쳐흐르듯 꽃혀있는 해바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당초 아를(Arles)에 빌렸던 집의 방 네칸 중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머물게될 베드룸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해바라기 연작에 빠져들었다. 반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해바라기는 다름 아닌 나의 것"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특별한 애정을 가졌다.
필라델피아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 청색과 황색의 교향곡(Van Gogh’s Sunflowers: A Symphony in Blue and Yellow, 6/6-10/11)에선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대여한 1888년 8월 완성작과 필라뮤지엄 소장품인 1889년 1월 완성작을 함께 전시 중이다.

Vincent van Gogh, Two Cut Sunflowers, 1987, Metropolitan Museum of Art
반 고흐의 '해바라기' 시리즈는 크게 파리 시절과 아를 시절 연작으로 나뉘며 총 10점이 전해진다. 파리 연작은 1887년 파리에서 그린 바닥에 놓인 해바라기 그림 4점으로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암스테르담 반고흐 뮤지엄, 크뢸러밀러뮤지엄, 베른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그가 1888년-1889년 아를의 노란 집에 살며 화병에 담긴 해바라기를 그린 유화 6점은 런던내셔널 갤러리, 필라델피아뮤지엄, 암스테르담 반고흐뮤지엄, 뮌헨의 알테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 노이에 피나코테크노이에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 그리고 도쿄 세이지시 손보미술관(SOMPO)에 1점씩 소장되어 있다. 한편, 아를 시절 그렸던 '해바라기' 1점은 일본 사업가 고토 마사키가 소장했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5년 공습으로 소실되었다.
반 고흐는 해바라기 외에도, 아이리스, 장미, 올리안더, 양귀비, 라일락, 카네기현, 글라디올러스, 모란, 국화 등 정물화와 아몬드 나무, 올리브 나무,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풍경화도 그렸다.

Vincent van Gogh, Yellow House, 1988, Van Gogh Museum, Amsterdam
반 고흐는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고갱을 아를로 적극적으로 초대했고, 동생 테오의 경제적 지원 속에 고갱이 10월 23일 아를에 도착하면서 약 2개월간의 공동생활이 시작됐다. 1888년 10월 23일 아를의 '노란 집'에 도착한 고갱은 반 고흐가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방에 걸어둔 해바라기 그림들을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고갱은 후일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그것은 진정한 반 고흐의 정수였다. 노란 바탕 위의 노란색 해바라기... 그것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반 고흐라는 인간 그 자체였다."
고갱은 반 고흐에게 "이 해바라기들은 자네의 완전히 독창적인 스타일이며, 그 어떤 화가의 꽃 그림보다 뛰어나다"며 극찬했다. 해바라기 연작에 매료됐던 고갱은 반 고흐가 파리 시절에 그린 초기 해바라기 정물화 두점을 자신의 작품과 교환하자고 요청했다.

Paul Gauguin, Vincent van Gogh Painting Sunflowers, 1888, Van Gogh Museum, Amsterdam
그리고, 그해 12월 고갱은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The Painter of Sunflowers)'을 그려 선물했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을 보고 "내 모습이 맞긴 하지만, 광기 어린 나의 모습이군"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 고흐와 5살 연상의 고갱은 초기에는 함께 야외 사생을 나가고 서로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등 예술가로서 끈끈한 동지애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차츰 예술적 견해차와 성격 대립으로 갈등이 심화되었다. 12월 23일 말싸움을 하다가 반 고흐가 자신의 귓볼을 자르는 사건이 발생했고, 고갱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파리로 돌아갔다.
이 두 달 남짓의 짧은 기간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지만, 두 거장이 서로에게 깊은 미학적 영감을 주었다. 이 기간 반 고흐는 '해바라기', '아를의 붉은 포도밭' 등 명작들을 쏟아냈다.

Paul Gauguin, The Night Café in Arles, 1888-89, Pushkin Museum, Moscow (left)/ Vincent Van Gogh, L'Arlésienne: Madame Joseph-Michel Ginoux (Marie Julien, 1848–1911), 1888, Metropolitan Museum of Art
고갱은 둘의 단골이었던 카페(Café de la Gare)의 지누 부인(Madame Ginoux)을 모델로 '아를의 밤 카페(The Night Café in Arles)'를 그렸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밤의 카페(The Night Café)'에 대해 "스스로를 파멸시키거나, 미치거나, 혹은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장소로 묘사했다.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 중 가장 추한 것 중 하나"라고 평하면서도, 충돌하는 적색과 녹색을 통해 "인간의 끔찍한 열정"을 표현하려는 시도였다고 썼다.

Vincent van Gogh, The Night Café in the Place Lamartine in Arles, 1988, Yale University Art Gallery
'밤의 카페'는 반 고흐에게 숙박비가 없거나, 술에 취한 부랑자들이 찾는 피난처로 보았다. 핏빛의 적색과 탁한 녹색, 유황빛 황색을 대비시켜 '불타는 용광로'와 같은 분위기와 절망감을 묘사했다. 그는 이런 컬러를 선택한 이유를 삶의 우울하고 황폐한 단면을 전달하기 위한 이질적인 색조 간의 '전투'라고 써 보냈다.

Vincent van Gogh, Les Alyscamps, 1988, Basil and Elise Goulandris Foundation, Athens, Greece (left)/ Paul Gauguin, Les Alyscamps 1888 Musée d'Orsay, Paris
포도밭에서 일하는 여성과 앞쪽에 시름에 잠긴 여성을 묘사한 '아를의 포도 수확/ 인간의 고뇌(Grape Harvest at Arles/ Human Miseries)', 아를의 고대 로마 공동묘지 터인 알리스캉(라틴어로 "극락의 들판")의 단풍과 고대 유적 산책로를 그린 풍경화 '알리스캉 연작 및 아를의 풍경(Les Alyscamps/ Landscape near Arles)', 공원을 산책하는 여성들을 대담한 구도와 강렬한 컬러로 표현한 '아를의 여인들(Arlésiennes/ Mistral)'도 이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2024-25 빈센트 반 고흐 글로벌 특별전 가이드: 서울, 대전, 도쿄, 오사카...암스테르담, 런던
*빈센트 반 고흐와 세자매: 안나, 엘리자베스, 빌레미나
*빈센트 반 고흐: 아이리스와 장미@메트뮤지엄, 2015
*뉴욕영화제 2018 화가 줄리안 슈나벨의 '영원의 문에서(At Eternity's Gate' ★★★☆
*위대한 음식 열정 <9> 빈센트 반 고흐: 감자와 커피
*미술계 최대의 미스테리: 반 고흐의 걸작 '가셰 박사의 초상'(3억 달러 추정)은 어디에?


그러면 고흐는 어떤 부류의 인간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계속 이어집니다. 전시장에 걸려있는 그의 그림 한점 한점은 따뜻함과 큰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해바라기, 씨뿌리는 사람(농부), 아몬드 꽃나무 등등) 그런데 실제로 인간 고흐는 괴팍하고 광적인 성격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과 인간 반 고흐가 너무 다른 느낌을 주기때문에 내가 고뇌를 하는 것같습니다.
이 감동적인 그의 그림들이 살아생전에 한점만 팔렸다니, 그러면 그때는 어떤 그림이 팔렸을까 하는 의문이 지워지질 않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