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호메로스 원작과 다른 점 10가지 -배너티 페어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 리뷰 <1> Vanity Fair
오디세우스는 교활한 지략가인가, 고뇌하는 전사인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영웅주의 너머 문명의 붕괴와 인간성 질문

'오펜하이머'로 오스카 7개 부문을 석권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IMAX 영화 '오디세이'(2026)/ 에밀리 윌슨 번역판 '오디세이아'(2017)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오디세이(The Odyssey)'가 7월 17일 개봉, 첫 주말 세계 73개국에서 2억6천4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북미 지역에서만 1억 2천450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으며, 세계의 아이맥스(IMAX) 스크린에서만 5천 200만 달러의 티켓을 판매하며 역대 최대 글로벌 아이맥스 개봉 주말 수입을 기록했다. 2024년 원자폭탄 개발자 전기 영화 '오펜하이머(Oppenheimer)'로 아카데미 작품, 감독상을 비롯, 7개 부문상을 석권한 놀란 감독의 블록버스터이자 아카데미 수상의 영광을 기대해봄직한 화제작이다.
영화는 고대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놀란 감독이 직접 각색했다. 원작은 약 3천년 전 그리스인들이 문자를 갖지 못했던 시대에 밤마다 횃불을 켜도 모여앉아 시인의 노랫가락으로 들었던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온 서사시다. 음유시인, 즉 시인이자 이야기꾼은 12,000행이 넘는 서사시를 청중 앞에서 며칠에 걸쳐 낭송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놀란의 영화에서는 래퍼 트래비스 스콧이 이타카 궁전의 음유시인 역을 맡아 원작의 운율인 6음보 운율에 맞춰 막대기를 두드리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스펙터클한 액션 어드벤처 판타지라면, 원작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인간의 영혼과 성장, 삶의 철학을 운율에 담아 노래한 종합 서사문학이다. '오디세이아'는 문학 장르상 서사시(Epic Poetry)로, 소설이나 영화처럼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Narrative)이면서도 노래하듯 읊조리는 운율과 형식을 갖춘 시(Poetry) 형식을 갖고 있다.
'오디세이아'는 또한, 영웅 모험담의 시초다. 외눈박이 거인, 마녀, 괴물 등 초자연적 존재들을 마주하고 극복하는 구성으로 현대 판타지 및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뼈대를 완성했다. 또한, 최초의 '거대한 사건 이후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Nostos)의 이야기이며, 오디세우스가 신분을 숨긴 채 이타카로 돌아와 아내를 괴롭히던 구혼자들을 차례로 처단하는 과정은 현대의 추적극이나 피카레스크(악인 처단) 복수극의 성격을 띤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소장 렘브란트 회화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얼굴을 크리스토퍼 놀란으로 대치한 이미지. Image by Gemini (from Rembrandt van Rijn, Aristotle with a Bust of Homer, 1653,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어떻게 차이가 날까? 배너티 페어(Vanity Fair) 잡지의 나타샤 오닐 기자가 2017년 영문판 '오디세이아(The Odyssey, W. W. Norton & Company)'를 번역한 고전학자 에밀리 윌슨(Emily Wilson)의 해설로 원작과 달라진 점 10가지를 지목했다. (*이 글은 배너티 페어의 오리지널 칼럼을 보완한 것이다.)
에밀리 윌슨의 '오디세이아'는 여성 번역가가 완역한 최초의 영어 번역본이며, 그리스 원문과 동일한 5음보 약강격으로 쓰였다. 윌슨은 명확하고 현대적인 표현과 직설적인 용어(예를 들면, 노예를 묘사하는 용어를 순화하지 않고 직접 번역)를 사용했다. 윌슨은 번역본을 "복잡한 남자에 대해 말해다오, 시여, 그가 어떻게 방황하고 길을 잃었는지 말해다오...(Tell me about a complicated man, muse, tell me how he wandered and was lost...)"로 시작하며, 오디세우스의 단순한 영웅주의를 넘어 도덕적인 모호함을 강조한다.
배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윌슨은 오디세우스가 부하들을 잃은 후 추구하는 영광은 "매우 모호한 종류의 영광"이라고 밝혔다. 놀란 감독의 영화에서 오디세우스의 기만과 약탈은 청동기 시대의 멸망을 예고하는데, 이는 탐욕스럽고 쇠퇴하는 제국에 대한 불길한 경고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 신들의 미움을 받은 자 오디세우스(Odysseus)
"Tell me about a complicated man, muse, tell me how he wandered and was lost when he had wrecked the holy town of Troy, and where he went, and who he met, the pain he suffered in the storms at sea, and how he worked to save his life and bring his men back home."
-Emily Wilson's translation-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분).
오디세우스(Odysseus)는 고대 그리스어 이름 '오두세우스(Ὀδυσσεύς)'에서 유래한 것으로 '미움을 받는 자' 또는 '분노하는 자'라는 뜻이다. 신들의 미움을 받아 고난을 겪는 그의 운명을 암시하는 이름이다. 오디세이아(Odysseia)는 주인공 이름 '오디세우스' 뒤에 '~의 이야기' 혹은 '~의 노래'를 뜻하는 그리스어 접미사(-eia)가 붙어 만들어진 것으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10년 동안 겪은 험난한 모험담에서 비롯된 '오디세이(Odyssey)'는 현대에 와서 단순한 여행이 아닌 '경험과 고난으로 가득 찬 길고 중대한 여정'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된다.
현대 독자들에게 '오디세이아'가 매력적인 이유는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정체를 명확히 규정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변신술에 능한 교활한 인물이다. 때로는 전략적인 속임수를 쓰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저 거짓말을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영화에서 교활한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지워버렸다. 대신, 그는 영광과 귀향이라는 고전적 주제와 이민, 군사적 침략, 그리고 다양하고 연결된 세상에서 문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현대적 문제들을 결합한 더욱 어두운 이야기를 엮어낸다.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분)는 누구인가?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천병희 번역 '오뒷세이아'(도서출판 숲, 2006)-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왕이자 도둑이며, 전사와 부하들을 잃은 지도자, 부재중인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는 헌신적인 남편이자 불륜을 저지른 남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가장 변치않는 특징은 그가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라는 점이다. 호메로스의 원작 속에서 그는 오랫동안 고생해 온 아버지 라에르테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속이고는 그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기까지 한다. 대개 오디세우스의 기만은 상대를 조종하려는 의도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테나(지혜의 여신, 젠데이아 분)와 님프 칼립소(바다의 여신, 샤를리즈 테론 분)가 그를 아끼는 이유는, 끊임없이 허구를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을 자신들과 유사한 지혜의 일종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남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수많은 경험을 겪은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자신의 기만적인 과거에 대해서는 훨씬 더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원작에서는 그가 배의 돛대에 묶인 채 세이렌(Siren)의 노래를 들을 때 정확히 어떤 내용을 듣게 되는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는 세이렌이 자신에게 이미 알고 있던 사실, 즉 자신이 진심으로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고 털어놓는다. 마침내 변장한 오디세우스가 궁전에서 부인 페넬로페(앤 해서웨이 분)와 재회할 때, 우리는 그가 트로이에서 자신이 저지른 기만으로 인해 빚어진 폭력 사태로 괴로워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놀란의 해석에서 그가 귀환을 두고 느끼는 복잡한 심경은 단순히 영웅으로서 환영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겪고 난 뒤 이타카를 이끌기에 적합한 인물인지에 대한 고뇌에서 비롯된다.
오디세우스의 모험: 괴물과 여신들
오디세우스의 항해 중 겪는 신화적인 만남들은 서사시에서 가장 상징적인 부분이지만, '오디세이아'의 대부분은 그 이야기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총 24권으로 이루어진 이 서사시의 처음 4권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나선 텔레마코스의 여정, 나머지 13권은 오디세우스가 마침내 이타카 해안에 도착한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처럼 호메로스 역시 회상 장면을 즐겨 사용했다. '오디세이아'의 모험 장면 대부분은 사실 오디세우스가 세련되고 매우 친절한 사람들인 페아키아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놀란 감독은 이러한 회상 장면을 없애고 페아키아인들을 삭제했다. 하지만, 영화 속 모험 장면들은 대체로 원작에 충실하다. 하지만, 몇가지 주요 차이점이 있다.
#바다의 여신 칼립소(샤를리즈 테론)

영화 '오디세이'에서 샬리즈 테론은 님프 칼립소 역을 맡았다.
호메로스 원작에서 트로이를 떠난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10년을 헤매다 그중 7년을 아름다운 여신 칼립소와 함께 외딴 섬에서 보낸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푹 빠져 그를 떠나보내지 않으려 한다. 그녀는 오디세우스가 매일 밤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하면 불멸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오디세우스는 마지못해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왜 그가 아내 페넬로페에게 돌아가고 싶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에밀리 윌슨의 번역에서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내 몸이 그녀보다 낫다는 걸 알아요"라고 말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여전히 늙어가는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어한다. 훗날 그가 파이아케스족의 공주 나우시카에게 말했듯이, "한집에 사는 두 사람의 마음이 조화를 이루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아테나가 개입하여 제우스를 설득했고, 제우스는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그를 풀어주라고 명한다.
하지만, 놀란의 영화에서 칼립소는 사랑에 빠져 상대를 붙잡아두는 포로 감시자라기보다는, 효과 좋은 약을 다룰 줄 아는 치료사에 가깝다. 오디세우스는 그녀가 건네는 연꽃(호메로스의 서사시 중 다른 대목에 등장하는 마취 효과가 있는 식물)을 먹고 고향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 연꽃은 오디세우스의 트라우마를 달래주는 치료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오디세우스가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다시 기억해냈을 때, 칼립소는 기꺼이 그를 보내준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빌 어윈)

영화 '오디세이'에서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무스
서사시에서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은 동굴 속에서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를 마주치자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폴리페모스는 부하 두명을 움켜쥐고는 "강아지처럼 바닥에 세게 내리쳐" "바닥을 뇌수로 흥건하게" 만드는 것으로 응수한다.
탈출하기 전,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니다(Nobody)'라고 말한다. 그래서 눈이 멀어버린 폴리페모스가 거인 동료들에게 '아무도(nobody)' 자신을 다치게 했다고 소리치면, 동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게 되된다. 하지만 배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폴리페모스를 조롱하며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힌다.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리페모스는 아버지에게 오디세우스가 절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혹은 적어도 모든 부하를 잃고 홀로 아주 늦게 도착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Francisco Goya, Saturn Devouring His Son, 1820, Museo del Prado, Madrid
그런데, 놀란의 영화 속에서 폴리페모스는 말이 별로 없다. 그에게는 키클롭스 동료들도 없으며, 영화 속에서 그와 오디세우스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웅이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니다'라고 속이는 그 유명한 일화도 빠졌다. 하지만, 키클롭스가 오디세우스를 따르던 부하들을 잡아먹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의 '검은 그림(Black Paintings)' 연작 중 하나인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Saturn Devouring His Son)'를 연상시킨다.
#라이스트리곤인(Laestrygonians)
원작 서사시에서 라이스트리곤인은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잡아먹는 또 다른 거인 식인종 종족이다. 놀란의 영화에서 이들은 중세풍 갑옷을 입고 칼로 오디세우스의 병사들을 베어 넘기는 거인들로 묘사된다. 그들은 로보캅처럼 보이기도 한다.
#키르케(Circe, 사만다 모턴)

Briton Rivière, Circe and the Friends of Ulysses, 1871,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마법의 힘을 지닌 여신 키르케(Circe)는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변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원작에서는 발 빠른 신 헤르메스가 오디세우스에게 키르케의 마법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줄 약초 물약을 건네준다. 헤르메스는 오디세우스에게 키르케가 부하들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려놓겠다고 맹세하게 한 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로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하되 키르케가 그의 남근을 잘라내지 못하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키르케는 부하들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려놓은 뒤 오디세우스를 극진히 대접했고,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이 일깨워주기 전까지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잊은 채 꼬박 1년을 그녀와 함께 머물게 된다.
한편, 놀란의 영화에서 사만다 모턴은 키르케를 오디세우스와 잠자리를 갖는 데는 관심이 없는, 대지의 기운을 간직한 마법사로 연기한다. 그녀는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에게 그들이 탐욕스러운 작은 돼지, 즉 그들의 '본성'을 지닌 존재임을 보여주는데 더 큰 관심을 두는 듯하다. 이는 탐욕을 주요 주제로 다루는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일치하며, 여기서 탐욕은 폭식의 형태로 나타난다.
대외 관계: 크세니아(Xenia), 이방인 호의(Xenophilia), 이방인 혐오(Xenophobia)

영화 '오디세이'에서 은빛 갑옷을 입은 군대로 등장하는 거인식인 부족 라이스트리고이언.
놀란의 영화에서 스파르타인들과 이타카인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침략할지도 모르는 '바다에서 온 사람들'을 경계한다. 이러한 불안감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서사시가 쓰인 시기(기원전 7-8세기)가 아니라 그보다 수백 년 앞선 청동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청동기 시대는 문자, 공학적 혁신, 인상적인 궁전 등을 갖춘 유명한 미케네 문명(초기 그리스 문명)이 번영하다가 수수께끼처럼 붕괴한 시기였다. 미케네 시대가 쇠락한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널리 부정되기는 했지만,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온 도리아인들이 미케네를 침략했다는 가설도 존재한다. 놀란이 묘사한 '바다에서 온 사람들'은 아마도 이 도리아인들을 모델로 삼았을 것이다.
에밀리 윌슨은 자신의 '오디세이아' 번역본 서문에서 이 시가 쓰일 무렵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중해 전역으로 여행과 무역(그리고 식민지 개척)을 확대하고 있었으며, 이는 곧 다양한 이방 문화와의 접촉을 수용하는 것을 의미했다고 설명한다. 도시국가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국제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크세니아(xenia)', 즉 '손님과 주인의 우정(guest-friendship)'에 의존했다. 이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가문들 사이에서도 대대로 이어지는 유대 관계를 뜻했다. 외국인 손님이라면—심지어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서 변장했던 모습처럼 남루한 차림의 초대받지 않은 거지라 할지라도—어디를 가든 환대와 식사, 목욕, 그리고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환대의 관습이었다. 그런 대접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그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묻는 절차가 이어졌다.
영화 '오디세이'는 크세니아(xenia)를 '제우스의 법(Jeus’s Law)'이라 칭하며, 이를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는 황금률의 의미로 함축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크세니아는 단순한 이타주의가 아니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여행자와 상인들이 위험천만한 지역을 평화롭게 오가며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다. 그리스인들은 크세니아가 제우스가 관장하는 신성한 법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이를 문화적·상업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신성한 계약으로 준수하게 했다. 어쩌면 그만큼이나 중요한 점은 이 관습이 위반될 경우 식민지 개척이나 해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Arnold Böcklin, Odysseus and Polyphemus, 1896, Museum of Fine Arts, Boston
호메로스의 서사시에는 실제로 바닷가에 사는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괴물, 여신, 마법사, 님프 등을 향한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이러한 환상적인 존재들에게 매력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는 일종의 '이방인에 대한 호감(xenophilia)'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님프 칼립소 및 키르케와 연인 관계를 맺고, 예상대로 세이렌의 노래에 매혹된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텍스트에는 깊은 불안감 또한 존재한다. 인간 여성과는 다른, 덜 가부장적인 규범에 따라 살아가는 이 이외의 여성들에게 빠져들어 그들의 방식에 동화되다 보면, 오디세우스 자신이 그들에게 잠식되어 그토록 필사적으로 되찾으려던 정체성마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이는 '타자(Other)'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오래된 공포의 또 다른 형태이기도 하다. 실제로 키클롭스, 라이스트리곤족, 괴물 스킬라가 그의 부하들에게 저지른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영화는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군사적 행위로 인해 느끼는 죄책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다룰 수 있는 내용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칼립소가 그에게 동반자가 되어주기는 하지만, 이러한 흥미로우면서도 위험한 매력을 충분히 담아낼 여유는 부족하다. 섹스 장면도 절제되어 있다. 비록 원작의 다채로운 탐구 요소 중 일부는 사라졌을지라도, 오디세우스가 겪는 지속적인 고뇌는 영화에 만족스러운 주제적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

영화 '오디세이'에서 페넬로페 왕비(앤 해서웨이 분)와 시녀 멜란토(미아 고스 분).
제우스의 법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와 아내 페넬로페에게 오디세우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페넬로페와 결혼하려는 구혼자들을 접대할 의무를 지워버린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크세니아(xenia)'가 환대를 받는 쪽이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주인이 손님을 잡아먹어서는 안 되듯이, 손님 또한 환영받는 기간을 넘겨 지나치게 오래 머물러서는 안된다. 페넬로페에게 구애하는 구혼자들이 바로 그런 행동을 저지르고 있다. 탐욕스러운 손님에 대한 처벌로 살해라는 방식은 가혹해 보일 수 있지만, 서사시 속에서 제우스와 아테나는 페넬로페의 오만한 구혼자들을 몰살하려는 오디세우스의 계획을 지지하고 신성한 힘으로 돕는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을 돕거나 해치기 위해 신들이 공모하는 천상의 장면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들의 개입이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을 살해한 행위를 윤리적으로 정당화해 줄까? 에밀리 윌슨은 자신의 번역본 서문에서 "'오디세이아' 속 신들은... 철저히 자기 이익을 좇는 존재들이다.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동기 또한 도덕적 법도를 수호하려는 일관된 의지보다는, 주로 그들 자신의 욕망이나 변덕, 기호에 따른 것"이라고 썼다.
목마, 시논, 그리고 트로이의 함락
영화 초반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란드 분)는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스파르타로 향한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존 번탈 분)는 자신과 오디세우스가 어떻게 트로이 목마의 뱃속에 함께 숨어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목마나 트로이 함락 장면을 직접적인 행동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도시의 몰락은 오직 그리스 병사들을 찬양하는 이야기의 형태로 회상될 뿐이다.
오디세우스의 가장 유명한 업적이 트로이인들을 속인 일인 만큼('트로이의 목마'), 놀란 감독이 해안가에 놓인 목마의 웅장한 모습으로 영화를 시작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목마는 반쯤 물에 잠겨 있고, 그리스 병사 시논(엘리엇 페이지 분)이 홀로 그 곁을 지키고 있다. 시논은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아이네이스'(Aeneis,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가 로마 건국의 기틀을 마련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서사시)에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오디세이아'에는 나오지 않는다. 시논은 트로이인들에게 목마가 신에게 바치는 선물이라고 거짓말을 하라는 임무를 맡았다가 결국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호메로스의 원작에서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위해 하데스(저승)로 가서 죽은 아킬레우스를 만난다. 이때 아킬레우스는 옛 전우인 오디세우스에게 죽은 자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지독하게 가난하더라도 살아있는 편이 낫다고 고백한다. 아킬레우스의 말은 비록 그 과정에서 부하들을 모두 잃는 한이 있더라도 무슨 수를 써서든 살아남겠다는 오디세우스의 결심을 오히려 굳히게 한다. 그러나, 놀란의 영화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우스 대신 시논을 마주하게 된다. 시논은 이타카의 전사들을 제대로 예우하지 못한 왕을 질책하며, 오디세우스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캐릭터다.

크로아티아 화가 벨라 치코시 세시야(Bela Čikoš Sesija,1864–1931)의 구혼자들을 죽이는 오디세우스, 1898
여자 노예들: "인간 최악의 고통은 집을 잃는 것"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읽으며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은 아마도 노예 여성들이 겪는 끔찍한 운명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노예제는 일상적인 현실이었으며, 누구나 포로가 되어 매매될 수 있었다. 고향을 되찾기 위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오디세우스와 돌아갈 집조차 없는 노예들 사이의 뚜렷한 격차가 드러난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에게 "인간이 겪는 최악의 고통은 집을 잃는 것"이라고 말한다.
원작은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던 무례한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했던 12명의 노예 여성에 대해 묘사한다. 오디세우스가 아내를 쫓던 남자들을 살해한 뒤, 이 노예들은 참혹하게 죽은 구혼자들의 피를 닦아내야만 했다. 그후 오디세우스는 그 여종들도 긴 칼로 베어 죽이라고 명령한다. 이때 왕자 텔레마코스는 하나의 밧줄에 그들 모두를 매달아 죽이는 더 잔인한 방법을 제안한다. 윌슨의 번역본엔 이렇게 나온다. "그리하여 소녀들은 목에 올가미가 걸린 채 나란히 매달렸고, 그 죽음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잠시 발을 버둥거렸으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화자(narrator)는 구혼자들과 잠자리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였을 노예 여성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디세이아'가 그들의 죽음을 잘못된 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번역가 윌슨은 "이 살해 행위는 영광을 위한 것(These killings are about glory)”라고 해설한다. 다른 남자에게 속했던 여자가 집안에 있어서는 안되며, 그런 존재는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가문 내에서 누릴 수 있는 영광과 통제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일종의 '명예 살인(honor killing)'인 셈이다. 그리고 아테나 여신도 이를 좋아한다.
맷 데이먼이 화면에서 무고한 소녀들을 살해하라고 지시하는 모습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놀란 감독이 그 장면을 사실상 생략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놀란의 각색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유일한 시녀는 멜란토(미아 고스 분)인데, 그녀는 안티노오스(로버트 패틴슨 분)와 밀통하면서 페넬로페를 배신하는 인물이다. 구혼자들에 대한 학살이 시작되자 멜란토는 도망치려 하지만, 페넬로페가 연회장 문을 닫아버린다.

The Odyssey of Homer 1725 Alexander Pope Translation
결말 The Ending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몇 차례의 '가짜 결말'이 등장한다. 대서사시는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과 노예들을 죽인 시점에서 끝나지 않으며, 페넬로페와 재회해 부부의 연을 다시 맺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영웅이 마침내 아버지와 재회하는 장면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는 구혼자 학살 소식이 퍼져 이타카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직전인 상황까지 이어진다. 그때 제우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아테나가 내려와 이타카 사람들에게 싸움을 멈추라고 명한다. 또한, 그녀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잊게 만든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도 영웅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에게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기 위해 '약탈 원정'을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서사시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놀란의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맷 데이먼 또한 배를 타고 떠나지만, 그가 여정에 나선 이유는 탐욕과는 거리가 먼 훨씬 더 고귀한 것이다. 그는 잃어버린 부를 되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갚으려한다. 영화는 그가 서쪽, 즉 세상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으로 끝난다. 그곳은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와 함께 마침내 전사한 부하들을 기릴 수 있는 장소다. 그의 이러한 참회는 영화 초반, 자신이 저지른 모든 폭력에 대해 후회를 표하는 놀란 감독 버전의 헬레네(루피타 뇽오 분)의 모습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이처럼 놀란의 각색은 원작 시와는 다른 질문을 던지지만, 그 깊이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놀란은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타인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나요? 특히 우리 자신이 너무나 많은 것을 취했을 때 말입니다."
*NYT 모린 다우드, 뉴욕매거진 캣 장: 섹스 거세된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 혹평
https://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4187518&mid=Film2
Nolan’s 10 Biggest Odyssey Updates
The filmmaker takes a bit of poetic license with Homer’s epic. Here’s a tour through the movie’s most notable changes from the source material, with bonus commentary from famed classicist Emily Wilson.
By Natasha O'Neill
https://www.vanityfair.com/story/the-odyssey-christopher-nolan-changes-from-homer
*율리시스(Ulysses)는 로마인들이 그리스 이름 오디세우스(Odysseus)를 라틴어(Ulixes)로 부르던 것이 영어권으로 넘어오면서 굳어진 이름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Ulysses, 1922)'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영웅 이야기를 20세기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으로 가져와 현대적으로 패러디한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