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여성 고정관념 뒤집은 아상블라쥬 아티스트 베티 사르(Betye Saar, 99) 별세
Betye Saar (1926-2026)
캘리포니아 아상블라쥬 아트의 선구자
오래된 물건의 영혼, 흑인 여성의 파워 주제

“The Liberation of Aunt Jemima” (1972)
몽환적인 기념품 상자 작품과 소총 등으로 무장한 이모 제미마(Aunt Jemima) 인형의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흑인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했던 캘리포니아의 선구적인 아상블라쥬(assemblage) 미술가 베티 사르(Betye Saar)가 2026년 7월 27일 LA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9세.
뉴욕타임스는 베티 사르의 부고에서 그녀를 인형, 가족 사진, 천 조각, 그리고 발견된 오브제들을 활용해 아상블라쥬 아트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전했다. 사르는 1960년대와 70년대부터 조지 헴스, 에드워드와 낸시 키엔홀츠, 존 아우터브리지, 노아 푸리포이와 함께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미술가였다.
사르는 남성 동료들과 달리 가정생활과 관련된 섬세한 직물, 흑인 여성의 몸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 그리고 깊은 영성을 작품에 접목시키는 것으로 널리알려졌다. 1970년대에 제작된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백인 아이들을 돌보는 흑인 여성, 즉 "마미"나 민스트럴 쇼 캐릭터에 구현된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맞서고 이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 이후 분노에서 영감을 받은 1972년 대표작 "앤트 제미마의 해방(The Liberation of Aunt Jemima)"에서 사르는 팬케이크 상자에 그려진 유명한 캐릭터인 앤트 제미마의 플라스틱 인형에 빗자루, 소총, 수류탄을 쥐여주며 흑인 권력 운동(Black Power Movement)의 상징들을 담았다.
1926년 7월 30일 캘리포니아주 와츠(Watts)에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베티 아이린 브라운(Betye Irene Brown). 은 당시 와츠는 로스앤젤레스에 막 편입된 상태였다. 엄마는 아프리카계, 아메리카 원주민, 아일랜드계 혈통, 아버지는 아프리카계와 촉토족(Choctaw) 혈통이었다. 그녀가 5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베티는 어머니와 함께 패서디나에서 성장했다.
재봉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일을 즐긴 베티는 학교 미술 수업이나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와 가족을 위한 선물을 자주 만들곤 했다. 패서디나 칼리지에서 도예, 일러스트레이션, 수채화, 미술사를 공부했으며, 1949년 UCLA에서 디자인 전공으로 졸업했다. 이후 판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보석, 생활용품, 축하 카드 등을 디자인하는 일을 했다.
사르가 아상블라쥬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어린 시절 할머니와 즐겨 찾던 와츠 타워(Watts Tower)를 본 후였다. 이탈리아 이민자 작가 사이먼 로디아(Simon Rodia)가 제작한 이 타워는 깨진 유리 조각, 타일, 도자기 파편 등을 콘크리트에 박아 넣는 방식으로 수십 년에 걸쳐 이 거대한 구조물을 직접 쌓아 올린 것이다. 1967년 패서디나 미술관에서 열린 조셉 코넬(Joseph Cornell)의 전시회도 그녀에게 영감을 주었다. 초현실주의적 분위기와 추억이 깃든 물건들로 가득 찬 코넬의 상자 작품들은 구슬, 편지, 깃털 등을 시적으로 조합해 놓았다. 코넬의 ‘마법 같은 작은 세계’에 매료되어 자신의 스타일을 찾게 된다.

히피들의 거주지였던 로렐 캐년(Laurel Canyon)에 살면서 사르는 동네 야드 세일, 중고품 가게, 벼룩시장 등에서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나이지리아, 세네갈, 멕시코, 아이티, 브라질 등을 여행하며 구입한 물건들도 수집품에 더해졌다. 모두가 미술의 재료가 되었다.
여성용 장갑과 브로치, 빛바랜 가족 사진, 자수 놓인 손수건 등은 그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다. 손이나 천체 이미지 또한 그녀가 즐겨 사용한 소재였는데, 이는 손금, 점성술, 타로 카드 읽기 등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사르는 “항상 오래된 물건에 힘이 깃들어 있다고 느꼈다. 그것들은 긴 시간을 견뎌 살아남았고, 이전 주인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 안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사르는 자신의 작품을 담고 구성하는 틀로 실제 창문 프레임을 사용하기 시작했니다. 먼저 프레임 안에 자신의 판화나 드로잉을 겹쳐 배치한 뒤, 그 위에 다른 오브제들을 더하는 방식이었다. 1990년대 후반엔 "더 새로운 무기와 더 강인한 태도"를 갖춘 '앤트 제미마'를 다시 등장시켰다. 빈티지 빨래판을 캔버스로 활용해 흑인 여성의 과거와 현재에 걸친 고된 삶을 탐구했다.
사르는 1952년 도예가 리처드 사르(Richard Saar)와 결혼 생활했으며, 남편은 2004년에 사망했다. 세 딸 중 앨리슨과 레즐리는 아티스트, 막내딸 트레이시는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26년 7월 28일 업데이트>
Betye Saar, Artist Who Upended Black Stereotypes, Dies at 99
Working with dolls, family photographs, fabric scraps and other found objects, she became a leading figure in assemblage art.
https://www.nytimes.com/2026/07/27/arts/design/betye-saar-dead.html
Betye Saar: Call and Response
흑인여성 작가의 오디세이
September 12, 2020 -January 31, 2021
Morgan Library & Museum
Betye Saar: Call and Response, The Morgan Library & Museum
미국에서 흑인으로, 여성으로, 또한 노년으로 살아가는 작가는 아마도 3가지의 굴레와 평생을 투쟁해왔을 것이다.
인종차별, 성차별, 그리고 나이차별까지...하지만 그 생생한 사적인 체험과 역사 증인일 듯한 94세 베티 사르(Betye Saar, 1926- )의 작품을 조명하는 특별전 '베티 사르: 요청과 반응'(Betye Saar: Call and Response)이 9월 12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모건 라이브러리&뮤지엄에서 열린다.

Betye Saar: Call and Response, The Morgan Library & Museum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3월 중순부터 문을 걸어 잠구었던 뉴욕의 미술관들이 지난 8월 말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을 비롯, 뉴욕현대미술관(MoMA), 휘트니뮤지엄 등이 조심스럽게 재개관했다. 맨해튼 한인타운 인근 모건 라이브러리도 지난 주말 노동절 연휴부터 이에 동참했다. 하지만, 베티 사르의 특별전 언론 프리뷰는 9월 9일 Zoom을 통해 진행됐다.
Betye Saar: Call and Response, The Morgan Library & Museum
캘리포니아 작가 베티 사르는 지난해 10월 MoMA의 재개관 때 특별전 '베티 사르: 흑인 소녀의 창가의 전설'(Betye Saar The Legends of Black Girl’s Window, 10/21-1/4, 2020)으로 소개됐다. 이번 모건 라이브러리의 특별전은 LA카운티뮤지엄(LACMA)의 동명 타이틀 특별전(2009/9/22-2020/4/5) 의 동부 순회전이다.
Betye Saar: Call and Response, The Morgan Library & Museum
'베티 사르: 요청과 반응'전에는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 스케치와 완성된 작품(아상블라쥬, 판화)의 연관성을 통해 창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재봉사의 딸이었던 베티 사르는 가죽 조각, 인형, 다리미판, 간이 침대, 새장, 쟁반 등 일상의 물건들을 픽업해 컬러풀하며, 드라마틱한 아상블라쥬로 완성한다. 벼룩시장에서 폐물을 수집하는 것을 즐긴 베티 사르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창틀은 마치 흑인, 여성이라는 장애 아닌 장애에 직면하며 살아와야 했던 작가의 삶을 반추하는듯 하다.
Betye Saar: Call and Response, The Morgan Library & Museum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뉴욕은 잭슨 폴락과 윌렘 드쿠닝의 추상표현주의로 풍미한 후 마크 로스코와 아그네스 마틴의 미니멀리즘을 거쳐 재스퍼 존스와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개념미술, 그리고 앤디 워홀의 팝 아트로 흘러갔다. LA의 베티 사르는 벼룩시장과 야드 세일을 누비면서 미국의 상업주의와 소비 문화 속에서 버려진 흑인의 정체성과 스테레오 타입의 모티프를 헌팅하며 작업했다. 그리고, 자신의 뿌리인 아프리카의 종교적인 부족적인 오브제를 탐구해 작업 속에 아상블라쥬로 용해했다.
Betye Saar: Call and Response, The Morgan Library & Museum
1926년 LA에서 태어난 베티 사르의 본명은 베티 아이린 브라운(Betye Irene Brown). 자라면서 잡다한 물건을 수집했으며, 수선하며 만드는 것을 즐겼다. 파사데마 시티칼리지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1947년 캘리포니아대(LA)를 졸업했다. 이후 캘리포니아대(롱비치)와 미영화협회(AFI) 등지에서 수학했다. 대학원 재학 중 리처드 사르와 결혼해 딸 셋을 두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