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메이커' '히트곡 제조기'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 94) 별세
Clive Davis (1932–2026)
뉴욕대 정치학과, 하버드 로스쿨 거쳐 컬럼비아 레코드 변호사로 시작
빌보드 차트로 히트곡과 사업 감각 연구, 노래는 "3분 3초간의 마법'

그는 재니스 조플린, 휘트니 휴스턴, 배리 매닐로우, 알리시아 키스, 제니퍼 허드슨, 어셔 등을 발굴해 스타로 만들었다.
그는 브루스 스프링스틴, 빌리 조엘, 카를로스 산타나, 로드 스튜어트, 에어로스미스, 핑크 플로이드와 함께 작업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대표곡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첫 싱글로 발매해 히트시켰다.
그는 악보는 볼 줄 몰랐어도, 다음의 스타나 히트곡을 찾을 때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그 '감'을 갖고 있었다.
전설적인 프로듀서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가 6월 22일 맨해튼 자택에서 호흡기 질환으로 눈을 감았다. 향년 94세.
뉴욕타임스는 그의 사망기사에서 뉴욕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1960년 컬럼비아 레코드의 변호사로 출발했던 그는 아리스타와 J 레이블, 소니 뮤직엔터테인먼트를 거치며 반세기 동안 스타 메이커로 활동하며, 무대 밖에서 대중에게 이름을 널리 알린 몇 안되는 프로듀서였다고 전했다.
데이비스는 음악의 문외한이었지만, 빌보드 차트를 연구하고, 히트곡의 비결과 비즈니스 감각을 키웠다. 그에게 노래, 히트곡은 '3분 30초간의 마법'이었다.
1932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클라이브 제이 데이비스(Clive Jay Davis)는 범죄다발 지역이었던 크라운하이츠에서 자랐다. 클라이브는 마를레네 디트리히 주연 영화 '상하이 익스프레스(Shanghai Express, 1932)'에 출연한 영국 출신 배우 클라이브 브룩(Clive Brook)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아버지는 전기 기술자이자 출장 넥타이 판매원으로 일했다.
뉴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정치학을 전공하던 중 부모가 11개월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퀸즈에 사는 누나 집에서 살게되는데, 부모의 상실은 "아무리 소중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더라도 언제든지 내게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회고록에 고백했다.

휘트니 휴스턴과 클라이브 데이비스. Photo: Arista
데이비스는 하버드 로스쿨 졸옵 후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지만, 지루하다고 느꼈다. 어느날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사내 변호사 자리가 나자 주저 없이 수락했다. 그는 일찌기 협상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다. 컬럼비아의 음반 우편주문 클럽과 관련된 연방 반독점 소송에서 승소했으며, 밥 딜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 젊은 스타들과 계약 협상도 성공적으로 성사시켰다. 초고속으로 승진한 그는 1967년, 컬럼비아 레코드의 사장이 됐다.
1967년 6월 몬터레이 국제 팝 페스티벌에서 지미 헨드릭스, 더 후, 그레이트풀 데드, 재니스 조플린 등의 공연을 보며 데이비스는 음악과 사업 모두에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히피 세대의 모습에 끌렸고, 록 음악의 엄청난 상업적 잠재력을 보았다. 그는 "등골이 오싹하고 팔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미래가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몬터레이 이후 그는 빅 브라더, 빌리 조엘, 브루스 스프링스틴, 닐 다이아몬드, 산타나, 시카고, 로라 니로, 에어로스미스 등 수많은 아티스트를 자신의 레이블로 스카웃했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1973년 공금을 아파트 개조와 아들의 유대인 성인식(바 미츠바)에 유용한 혐의로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해고된다. 이듬해 그는 경영난에 빠진 벨(Bell) 레이블을 인수해 '아리스타(Arista)'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배리 매닐로우, 패티 스미스, 루 리드, 멜리사 맨체스터 등의 라인업을 구축했으며 디온 워윅, 아레사 프랭클린을 영입했다. 1983년엔 디온 워윅의 사촌인 19세의 휘트니 휴스턴과 계약을 맺고, 1992년 영화 '보디 가드'의 사운드 트랙 "I Will Always Love You"를 반주없는 아카펠라로 녹음해 14주간 1위를 지키는 히트를 기록한다.
2013년 80세에 출간한 회고록 '내 인생의 사운드트랙(The Soundtrack of My Life)'에서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공개했다. 그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솔직함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행복과 성공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명백하다"라고 썼다. 2017년엔 다큐멘터리 '클라이브 데이비스: 우리 삶의 사운드트랙(Clive Davis: The Soundtrack of Our Lives)'가 제작됐다.
뉴욕대 티시 예술대학(Tisch School of the Arts) 내 음반제작 학과는 그의 이름을 따서 '클라이브 데이비스 음반제작 연구소(Clive Davis Institute of Recorded Music)'로 명명됐다.
*폭우로 중단 센트럴파크 홈커밍 콘서트 이모저모, 2021
https://www.nyculturebeat.com/?mid=Music2&document_srl=4045712
*뉴욕다큐영화제 리뷰 (2) 왜 그들은 케니 G를 혐오하는 것일까 'Listening to Kenny G'
https://www.nyculturebeat.com/?mid=Film2&document_srl=4050372
Clive Davis, Hitmaking Titan of the Music Industry, Dies at 94
He rose from a midlevel position at Columbia Records to become one of music’s most powerful executives, shepherding stars like Barry Manilow and Whitney Houston.
https://www.nytimes.com/2026/06/22/arts/music/clive-davis-dead.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