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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n Greenspan(1926-2026)

 

맨해튼 워싱턴하이츠에서 태어나 워싱턴 D.C.에서 눈감다

클라리넷 연주, 화가 조안 미첼-기자 안드레아 마첼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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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ident George W. Bush presents the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to Alan Greenspan, on November 9, 2005, in the East Room of the White House.  Photo: Shealah Craighead/ Whitehouse

 

 

거의 20년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1987-2006)을 지내며 '록 스타'처럼 널리 알려졌던 뉴욕 출신 경제학자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이 6월 22일 워싱턴 DC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0세. 

그린스펀의 부인이자 NBC 뉴스의 워싱턴 담당 수석 특파원 안드리아 미첼(Amdrea Mitchell, 79)은 사인이 파킨슨병 합병증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당대 최고의 경제정책 입안자이자 역사상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경제학자 중 한명인 그린스펀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공화당과 민주당을 아우르는 네명의 대통령(레이건-H.W. 부시-클린턴-W. 부시) 재임기간 동안 중앙은행을 이끌었다. 그의 재임 기간 상당 부분은 풍요의 시기와 겹쳤으며, 그는 냉전 종식 후 승승장구하던 미국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그는 낙관적이었고,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시장의 힘을 신뢰했으며, 기술의 힘에 매료되었고, 규제를 꺼리는 성향을 보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린스펀이 정책 수립과정에서 남긴 이념적 자취는 그의 재임 기간 중 부상한 세력들이 초래한 파괴적인 결과들과도 연관 지어지게 되었다고 평했다. 그린스펀의 정책은 은행 및 월스트릿에 대한 규제 완화, 자유무역으로 인한 미국 내 일자리 상실, 그리고 주식 및 주택 가격 거품에 대한 지속적인 우려 등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2006년 초 퇴임한 이후 특히 2008년 월 스트릿 위기와 주택담보 대출(모기지) 시장의 붕괴 위기, 그리고 그에 따른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비로소 그린스펀의 업적과 철학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 제기되었다고 NYT는 전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그가 금리를 인상하여 주택시장 거품을 사전에 차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으며, 다른 쪽에서는 그가 금융 시스템을 규제 없이 방치한 채 점점 더 위험한 관행을 도입하게 함으로써, 해로운 자유시장 근본주의를 조장했다고 비난했다.

 

때문에 그린스펀은 막대한 부가 창출되던 시기를 이끌었지만, 2008년 위기와 그에 따른 경제적·정치적 충격에 책임이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종종 거론되었다고 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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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n Greenspan and wife Andrea Mitchell, 2005. Photo: John Mathew Smith & www.celebrity-photos.com 

 

앨런 그린스펀은 1926년 3월 6일 맨해튼 워싱턴하이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루마니아계 유대인, 엄마는 헝가리계 유대인이었다. 아버지는 뉴욕의 주식 브로커이자 컨설턴트였다. 부모가 이혼한 후 앨런은 러시아 태생인 외조부모의 집에서 자랐다. 

 

조지워싱턴 고교를 다녔으며, 전설적인 색소폰주자인 친구 스탠 게츠(Stan Getz)와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해 클라리넷을 전공했지만 중퇴,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연준 의장으로 취임하던 1987년에 본인의 요청으로 철회되었다. 그 논문엔 급등하는 주택 가격과 그것이 소비지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으며, 심지어 주택 거품 붕괴까지 예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린스펀은 1952년 추상표현주의 화가 조안 미첼(Joan Mitchell, 1925-1992)과 결혼식을 올렸으나, 10개월 후 무효가 됐다. 1970년대엔 앵커우먼 바바라 월터스(Barbara Walters, 1929-2022)와도 데이트를 했다. 1984년엔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기자 안드레아 미첼과 사귀기 시작했다. 이들이 1997년 4월 결혼식 때 그린스펀은 71세, 51세였다. 그리고, 주례는 연방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Ruth Bader Ginsburg, 1933-2020)였다. 

 

 

*메트뮤지엄 '서사적 추상화'전 여성작가들 (8) 조안 미첼(Joan Mitchell)

*'인터뷰의 여왕' 바바라 월터스(Barbara Walters) 

*여성&성소수자 권리 옹호 휴머니스트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1933-2020)

*오페라를 사랑했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Ruth Bader Ginsburg, 1933-2020)

 

 

 

Alan Greenspan, Fed Chairman Through Prosperity and Crisis, Dies at 100

The pre-eminent economic policymaker of his time and a skilled political operator, he favored market-friendly stances that would later come to be associated with destructive financial forces.

https://www.nytimes.com/2026/06/22/us/alan-greenspan-dea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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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6.06.24 23:01
    앨런 그리스펀 전 연준의장의 별세가 많은 생각을 자아냅니다.
    100세 까지 장수했다는 게 부럽습니다.파킨슨병으로 별세를 했지만 암에 비하면 고통이 훨씬 덜 했을거고, 아름다운 언론인 부인이 100세까지 곁을 지켜준 것도 부럽습니다. 그리고 정말 부러운 것은 명문 줄리아드 음대에서 클라리넷을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음악도가 경제학을 공부해서 연준의장까지 지냈으니 그의 생애는 잘 조화된 작품을 연상시킵니다.
    수명이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흔하지 않아서, 나도 그때까지 살까하고 고개를 갸우뚱 해봅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