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보브(Carol Bove)의 구겐하임 회고전은 존 체임벌린(John Chamberlain)의 여성 버전인가?
메이저 뮤지엄의 재정 압박, 메가 갤러리의 스폰서쉽
스타 작가 키우는 거대 화랑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
Carol Bove
March 5–August 2, 2026
Guggenheim Museum, NYC

Carol Bove, Guggenheim Museum, NYC.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지금 맨해튼 구겐하임뮤지엄에서 첫 미술관 회고전을 열고 있는 캐롤 보브(Carol Bove, 1971- )는 거대한 강철 조각과 종이 콜라쥬, 빈티지 책 아상블라쥬로 주목을 끌어왔다. 스케치 없이 즉흥적으로 작업하는 보브의 강철 조각은 구겨지고, 휘어지고, 채색되어 거칠음 대신 부드럽게 다가온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자란 캐롤 보브는 브루클린 레드훅에서 작업해왔다.
보브의 25년간의 작업을 조명하는 회고전 'Carol Bove'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원형 홀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최근부터 과거로 플래시백하는 역 연대기순(Reverse Chronology)로 구성되었다. 아래층엔 거대하게 뒤틀린 스테인레스 스틸 '콜라쥬 조각과 알루미늄 패널 신작들이, 위로 올라가면 초기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실, 깃털, 비즈 등으로 제작한 초기 오브제 설치작과 섬세한 드로잉이 자리한다. 결국 위로 올라갈수록 물리적 형태가 사라지고 빛과 영혼만 남는 듯한 '상승(Ascension)'의 경험을 준다. 이는 구겐하임 로톤다가 가진 본연의 종교적·영적 공간감을 극대화하는 영리한 연출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John Chamberlain, installation view, Dia Beacon, New York. © John Chamberlain/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Bill Jacobson Studio, New York
캐롤 보브 뮤지엄 데뷔 회고전은 2012년 같은 장소, 구겐하임에서 열렸던 존 체임벌린(1927-2011)의 회고전 'John Chamberlain: Choices'을 연상시킨다. 마침 업스테이트 뉴욕의 디아 비컨(Dia Beacon)에서 체임벌린 조각전 'Iconic Sculptures by John Chamberlain'(6/13- )이 열리고 있다.
고철을 압축해 제작한 체임벌린의 조각이 거칠고, 남성적이라면, 보브의 강철 조각은 매끄럽고, 여성적이라고나 할까. 체임벌린처럼 보브도 대담한 색상으로 조각을 공간에 그려진 '3차원의 회화'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그렇다면, 보브는 체임벌린으로 대표되는 전후 미국의 마초적인 강철조각 전통을 부드럽고, 화려한 색채로 전복한 셈이다.

Carol Bove, Guggenheim Museum, NYC.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그러나, 체임벌린은 실제 부서진 자동차 고철을 사용했다. 누군가의 추억과 사고의 순간이 냉동된,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남겨있다. 곳곳에 녹슬은 흔적, 용접 자국도 그대로 드러낸다. 찌그러진 강철 파편들이 빽빽하게 뭉쳐진 밀도 높은 덩어리는 추상적이다. 그래서 잭슨 폴락이나 윌렘 드 쿠닝같은 당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거친 붓질을 금속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체임벌린은 'Big E' ''Memo to Mozart' 'Dancing in the Dark' 'Pineapplesurprise' 등 조각에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단어들 조합해 붙였다.

Carol Bove, Guggenheim Museum, NYC.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반면, 캐롤 보브는 새 공업용 강철 튜브를 스튜디오에서 대형 압축기로 구기거나, 수집한 고철을 혼합해서 배합한다. 컬러는 반짝이는 에나멜 도색, 빛을 흡수하는 벨벳 느낌의 자동차 페인트를 칠해 극도록 정제된 마감을 보여준다. 보브는 현대적 기술과 세련된 가공을 통해 강철의 강인함을 우아하게 절제된 기하학적 형태, 미니멀리즘의 계보를 잇고 있다.
보브는 구겐하임 회고전을 앞둔 올해 3월 맨해튼 5애브뉴에 있는 아파트를 350만 달러에 매물로 내놓았다. Curbed.com에 따르면, 워싱턴스퀘어파크 인근의 4베드룸, 2배스룸으로 보브가 2021년 290만 달러에 매입했었다. 보브는 브루클린 레드훅에 있는 19세기 주택을 전남편인 아티스트 고든 테리(Gordon Terry)에게 매각했다. 현재 레드훅에 1만5천평방피트 규모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다.

https://www.metmuseum.org/exhibitions/facade-commission-carol-bove
보브가 '작가 정신 속의 체임벌린'을 인정하는 만큼 그의 작품세계는 오리지널하다고 평할 수 있을까?
캐롤 보브는 2021년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위임으로 건물 정면 외벽에 스테인레스 스틸과 알루미늄 원반으로 구성된 조각 시리즈 '강령술도 소용없다(The séances aren’t helping)'를 전시한 바 있다. 당시 데이빗 즈워너 갤러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후원했다.
그런데, 2023년 보브는 또 다른 글로벌 메가 갤러리 가고시안(Gagosian)으로 전격 이적했다. 가고시안은 리처드 세라, 존 체임벌린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의 유산을 관리하거나 대표해온 갤러리다. 보브가 그 혈통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번 구겐하임 회고전에 가고시안이 주요 후원사로 지원하고 있다.

Carol Bove, Guggenheim Museum, NYC.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가고시안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즈음해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회고전의 핵심 후원사로 세계 가고시안 지점 11곳을 베우고, 허스트의 점 그림(Spot Painting) 전시를 열어 대대적인 글로벌 판매 캠페인을벌였다. 이에 대해 미술계는 뮤지엄이 상업 갤러리의 거대한 마케팅 쇼케이스장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지만, 결과적으로 허스트의 마켓 파워를 확인하고, 미술관과 갤러리 모두 관람객과 상업적 이득을 챙긴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Jeff Koons: Retrspectiv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2014.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2014년 휘트니뮤지엄은 매디슨애브뉴의 구 건물을 마감하며 제프 쿤스(Jeff Koons) 회고전을 열었다. 당시 쿤스를 대표하던 래리 가고시안은 후원자 상단급에 이름을 올리며 억만장자 컬렉터들에게 초고가 신작들을 세일즈하는 추진력으로 활용했다. 가고시안은 이어 간판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를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Château de Versailles)에서 열며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조각의 운송, 설치 및 보험료를 전적으로 책임지다시피 했다. 이로써 이들의 조각을 '지상 최고의 자산'으로 브랜딩할 수 있었다. 이는 미술관을 넘어 국가적 기념물 공간까지 메가 갤러리의 자본이 침투한 사례로 꼽힌다.

Carol Bove, Guggenheim Museum, NYC.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파워 갤러리들이 막대한 전시 비용과 도록 발간 비용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소속작가들을 뮤지엄급으로 키우는 스폰서십(sponsorship)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 중 하나다. 오늘날 미술관들은 만성적인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메가 갤러리가 작품 운송비, 설치비, 보험료, 카탈로그 제잡비 등 수십-수백만불에 달하는 비용을 대면서 '전시를 밀어주고', 미술관은 비용 부담 없이 블록버스터 전시를 열어주며 갤러리 작가에게 불멸의 권위를 달아준다. 아트뮤지엄이 갤러리 작가의 거대한 쇼룸, 플랫폼으로 기능하고있는 것이다.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유럽 미술관과 달리 기부금과 티켓 수입에 의존하는 뉴욕의 메이저 뮤지엄들은 물가상승과 미술품 가격의 폭등으로 재정 압박이 극에 달했다. 캐롤 보브 전시처럼 수십톤짜리 강철조각을 운송하고, 구겐하임의 나선형 경사로에 설치하며, 수억원의 보험료를 감당하는 것은 미술관 자체의 예산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파워 갤러리들은작가들에게 제작비용을 대출해주며 작품을 독점한다. 때문에 갤러리와 뮤지엄간의 갑을 관계가 형성됐다. 이러한 이해충돌(conflicts of interest)로 전시 후엔 작품가격이 몇배로 치솟는다. 결국 갤러리는 기부금을 내고 몇배의 상업적 이익을 챙기는 격이며, 금융시장으로 치면 이는 전형적인 '내부자 거래(insider trade)'와 다름 없다.

Carol Bove, Guggenheim Museum, NYC.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오늘날 미술관의 이사회(Board of Trustees)가 학자나 아티스트가 아닌,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나 자산가들로 채워져 있는 이유는 그들이 수집한 작가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미술관의 전시 기획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작가 다양성은 말살되고, 돈이 되는 스타 작가나 메가 갤러리의 지원을 받는 작가들만 미술관을 독점하게 되면서, 자본이 없는 신진 작가, 실험적인 작가, 혹은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들은 미술관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결국, 관람객들은 돈으로 검증된 매끄럽고 안전한 상품만을 미술관에서 소비하게 된다.
메가 갤러리와 메이저 미술관의 관계는 이제 단순한 '기부'를 넘어섰다. 미술관은 예산 부족을 해결하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메가 갤러리의 돈과 스타 작가를 빌리고, 가고시안은 그 대가로 미술관이 보증하는 '기관 회고전 프리미엄'을 작가에게 입혀 2차 시장인 아트페어와 프라이빗 세일즈에서 수배의 이익을 회수하는 완벽한 비즈니스 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본의 권력과 공생의 관계에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Carol Bove, Guggenheim Museum, NYC.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라쉬드 존슨: 심오한 사색가들을 위한 시(Rashid Johnson: A Poem for Deep Thinkers)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 젊은 그들: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알렉스 카츠 구겐하임 회고전 'Alex Katz: Gathering', 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