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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선인장 (161) 졸혼 시대 

 

백년가약(百年佳約) 대신 십년가약(十年佳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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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와인도 한 잔씩 하자.” 

 

맨해튼 허드슨 야드(Hudson Yards) 쇼핑몰에서 친구와 만났다. 우리는 쇼핑을 마치고 식당에 들어갔다. 

“대낮부터 술? 까짓 것 좋아. 밥 먹고 집에 갈 일만 남았는데.” 친구가 흔쾌히 동의했다. 

 

아기 머리통만 한 와인잔 밑에 깔린 검붉은 와인을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한 모금 들이켠 친구가 말했다.

“정말 너무 한 것 아니야. 한 사람하고만 평생 산다는 것이. 10년마다 갱신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니까.”

 

나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내 말이 남편이 아무리 좋아도 지루해. 동굴에 갇힌 느낌이야.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친구가 턱을 괴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얼마 전, 남편에게 '나와 사는 것이 지루하지 않아?'하고 물었더니 '지루하지 않다'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더라고. 그 느낌 알아?”

 

나도 칼칼한 목에 검붉은 와인을 들이붓고 응했다. 

“알고 말고 나도 마찬가지야. 꼭 남편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변화가 필요해. 며칠 전, 큰 맘 먹고 남편에게 ‘나와 헤어지면 나보다 더 젊은 여자와 살 수 있어 좋을 텐데?’ 말하니까. 서류 정리하는 것도 귀찮고. 새 여자를 어떻게 믿고 돈 벌어다 줄 수 있냐며 그나마 모은 재산 사기당할 것이 두려워서 싫대. 다들 결혼하면 그냥 그렇게 사는 거래. 

 

 

친구가 반색하며 말하기를,

“그러니까 내 말이 법으로 10년마다 결혼 갱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기회를 줘야 한다니까. 안 그래? 그러면 따지고 싸울 필요 없이 헤어진 남편과도 친구 관계로 마음 편히 자유롭게 살 것 아니야. 법이 문제야. 법이 사람을 꼼짝달싹 못 하게 프레임 안에 가둬 놓는다니까. 아! 한국엔 졸혼이 있다는데. 굳이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살면서 서로의 생활을 참견하지 않고 재산도 나누지 않는. 너무 좋은 아이디어지?.”

 

내가 마지막 남은 붉은 와인을 입에 털어 넣고 시계를 들여다봤다.

“저녁 지을 시간이다. 집에 가서 밥이나 하자. 이 인간 더러운 성질 내기 전에. 한국 남자들은 왜 배만 고프면 짜증 내는지? 야만인도 요즘처럼 먹을 게 지천인 세상에서는 안 그런다는데.”

 

친구도 화들짝 놀라며, 

“어머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니? 저녁밥 할 시간이 충분치 않아. H-마트에 들려서 밑반찬 사 가자.”  

 

 

친구와 나는 32가 K-타운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그리고 각자 남편이 좋아하는 찬거리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결혼 25년을 넘기면 성공한 삶'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 울타리를 향해 터벅터벅 김빠진 발걸음을 옮겼다.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https://sooimlee3.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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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6.04.06 09:06
    이수임씨의 십년가약을 잘읽었습니다. 가끔 수임씨의 수필에는 어떤 글에도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실려서 희로애락을 자아냅니다. 한명과 평생을 사는 거 지루하지 않냐 십년가약을 법제화하는게 어떠냐는 친구와의 대화는 나의 결혼생활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60여년을 같이 살면서 이혼, 졸혼. 가출 등을 왜 생각을 않했겠어요? 그러나 이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는 걸 느끼면서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이혼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른 문제는 경제였습니다. 돈 없이 이혼해서 혼자 산다고 할때 그 초라한 꼴이 탁 눈에 들어와서 "아냐"하고 지워버렸습니다. 그러면 돈을 엄청나게 받고 이혼을 한다? 아니야, 보다는 생각을 좀 해보자고 했습니다. 부모가 다르고 성이 다른 두 남녀가 함께 산다는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쉽다 어렵다란 단답이 아니고 쉽다+어렵다를 합한 거니까 무엇이라고 하면 되는지 정답이 생각나질 않습니다. 이러면서 세월이 흐르고 머리가 파뿌리가 되면서까지 사나 봅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