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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aphael: Sublime Poetry

천사처럼, 왕자처럼 살았던 천재, 라파엘로의 '숭고한 시'

 

March 29–June 28, 2026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하늘은 예술을 정복하려고 미켈란젤로를 보냈지만, 라파엘로는 예술뿐만 아니라 예절도 다스리도록 세상에 내려보냈다."

-조르조 바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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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Sublime Poetry, March 29–June 28, 2026.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트로이카였던 라파엘로(본명 Raffaello di Giovanni Santi,1483–1520)의 대규모 특별전 '라파엘로: 숭고한 시(Raphael: Sublime Poetry)'가 3월 29일부터 6월 28일까지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우르비노에서 태어나 페루지노를 사사하던 시절,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를 흡수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피렌체 시절, 그리고 로마 교황청에서 보낸 마지막 10년까지 화가, 소묘가, 디자이너, 건축가로서 성공을 거둔 뒤 37세로 요절한 르네상스 천재의 삶과 예술 전반을 조명한다. 세계 미술관과 개인 소장가  60여곳에서 대여해온 드로잉, 회화, 태피스트리, 장식 미술품 등 200여점이 선보인다.  

 

전시 큐레이터는 2017년 메트의 블록버스터 미켈란젤로 드로잉전 'Michelangelo: Divine Draftsman and Designer'를 기획했던 카르멘 밤바흐(Carmen Bambach), 라파엘로 전시 준비에 7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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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The Virgin and Child (The Niccolini-Cowper Madonna), 1508,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사실 메트뮤지엄의 라파엘로 컬렉션은 빈약하다. '마돈나와 성인들과 함께 왕좌에 앉은 아기 예수(Madonna and Child Enthroned with Saints, 1504)'와 '겟세마네의 고뇌(The Agony in the Garden, 1504)', 그리고, 드로잉 '루크레티아(Lucretia, 1508-10)' 등 세점이다. 반면, 워싱턴 DC의 내셔널갤러리는 10여점에 달한다. '라파엘로: 숭고한 시'는 루브르, 브리티시뮤지엄(대영박물관), 워싱턴 DC 내셔널갤러리, 런던 내셔널갤러리, 마드리드 프라도뮤지엄, 피렌체 우피치갤러리, 바티칸뮤지엄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대여해온 작품들를 선보인다. 

 

한편,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선 2020년 라파엘로 사망 500주기를 기해 특별전 'The Credit Suisse Exhibition: Raphael'을 기획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후인 2022년에 열렸다. 이 전시도 라파엘로의 회화, 소묘 뿐만 아니라 건축, 고고학, 시, 조각, 태피스트리, 판화, 공예품을 위한 작업까지 90여점을 소개했다.   

 

 

라파엘로 산치오의 여정 

 

#우르비노 시절 스승은 페루지노

 

"나는 12살 때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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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Portrait of a Young Boy (Presumed to be a Self-Portrait), ca. 1500. Ashmolean Museum, Oxford.

 

라파엘로 산치오 다 우르비노(Raffaello Sanzio di Urbino)는 1483년 4월 6일 이탈리아 마르케 지방의 우르비노에서 태어났다. 우르비노는 용병 출신인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가 1444년부터 1482년까지 공작으로 통치하면서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아버지 조반니 산티(Giovanni Santi)는 우르비노 시인이자 궁정 화가로 제단화와 초상화를 그렸다. 라파엘로는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부터 예술, 문학, 시에 둘러 싸여 자라며 안목을 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8살 때 어머니가 여동생을 출산하다가 사망하고, 11살 때는 아버지까지 잃었다. 고아가 된 라파엘로는 아버지의 화실을 물려받게 된다.

 

17살 무렵엔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1446–1523)의 공방에 들어가 도제 생활을 시작했다. 페루지노는 유화 기법을 일찍이 도입한 선구자였고, 교황 식스토 4세의 의뢰로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그리며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었다. 그는 페루지노로부터 원근법과 공간 구성, 부드러운 색채와 빛 처리, 서정적이과 우아한 인물 묘사를 배웠다. 4년간 스승의 화풍을 완벽하게 흡수한 라파엘로는 '마스터'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360년만에 모인 콜로나 제단화(Colonna Altarp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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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Madonna and Child Enthroned with Saints (part of Colonna Alterpiece), ca. 1504,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500년부터 1507년까지 라파엘로는 마르케, 움브리아, 토스카나 지역을 오가며 대형 제단화와 소규모 종교화를 제작했다. 페루자의 산안토니오 수녀원은  라파엘로에게 예배당을 위한 제단화를 의뢰했고, 걸작 '콜로나 제단화(Colonna Altarpiece)'가 탄생하게 된다. 중앙에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의 우아한 모습과 그를 둘러싼 성인들의 묘사한 그림을 미술사학자들은 '성스러운 대화'라 부른다.

 

상단 반원형엔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은 천사들에 둘러싸인 하느님, 하단엔 성인들과 그리스도의 고난을 묘사한 5점의 작은 그림이 있다. 라파엘로가 사망한 후 탁발 수녀들은 이 제단화를 해체해 미술시장에 팔아넘겼다. 이후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 프랑스의 오를레앙 공작, 그리고 로마의 콜로나 가문이 차례로 소유하다가 1663년경 모두 해체되어 흩어졌다.

 

1901년 철도재벌 J. 피어폰트 모건(*모건 라이브러리)이 반원형 패널과 성스러운 대화를 묘사한 주 패널을 200만 프랑에 매입했고, 1916년 그의 아들이 메트뮤지엄에 기증했다. 이번에 영국 덜위치미술관, 런던 내셔널갤러리, 보스턴 이사벨라스튜어트가드너뮤지엄에서 나머지 패널들이 모이게 된 것이다. 

 

 

#피렌체 시절: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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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The Holy Family with Infant Saint John the Baptist (The Madonna of the Rose), ca. 1517-18, Museo Nacional del Prado, Madrid

 

1503년 피렌체에선 르네상스 라이벌 레오나르도(1452-1519, 67세)와 미켈란젤로(1475-1564, 88세)가 대결을 펼쳤다. 피렌체 정부가 두 거장에게 시뇨리아 궁전 대회의장 벽면에 각각 앙기아리 전투(레오나르도)와 카시나 전투(미켈란젤로) 벽화를 의뢰했던 것이다. 당시 51세의 레오나르도는 말과 사람들의 격렬한 움직임을 명암법을 강조해 그렸고, 28세의 미켈란젤로는 인체의 역동적인 근육을 극대화한 구도로 그렸다. 그러나, 둘다 미완성으로 끝나게 된다.  

 

라파엘로는 1504년 당대 라이벌의 격전장, 피렌체로 이주했다. 여기서 4년간 머물면서 31년 연상의 레오나르도와 8년 연상의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배웠다. 레오나르도로부터는 인물 구도, 명암 대조법(스푸마토 기법), 색조 처리 방식을 배웠으며, 미켈란젤로로부터는 인체 해부학적 지식, 근육의 표현, 극적이 포즈 등을 익혔다.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거장들의 테크닉을 흡수해 자신만의 우아하고, 균형잡힌 화풍으로 승화시키게 된다. 

 

 

#바티칸의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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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The Virgin and Child with the Infant Saint John the Baptist in a Landscape (The Alba Madonna), ca. 1509-11,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1508년 라파엘로는 교황 율리오(줄리어스) 2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갔다. 교황은 당시 건축은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 1444-1514), 조각은 미켈란젤로, 그리고 회화는 라파엘로에게 맡겼다. 거대한 비전과 막대한 예산을 갖춘 후원자들을 위해 일하게 된 것이다. 교황들은 선대 교황을 능가하고자했고, 예술가들도 경쟁자들을 뛰어넘고자 했다. 율리오 거처와 함께 시스티나 성당을 장식할 일련의 프레스코화 제작을 당시 불과 25세였던 라파엘로에게 맡곁다. 프레스코 경험이 전무했던 라파엘로를 지목한 것은 우르비노 출신이었던 성베드로 대성당(Basilica of Saint Peter)의 브라만테의 추천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혹자는 원래 라파엘로의 스승인 페루지노가 맡았으나, 교황이 라파엘로의 화풍을 선호해 낙점되었다고 주장한다. 

 

라파엘로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미켈란젤로는 이미 3년 동안 율리우스 2세를 위해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고 있었다. 교황의 도서관 벽화를 작업을 맡은 라파엘로의 회화 기법은 당시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가 자신의 화풍을 모방했다고 생각했고, 두 거장 사이엔 경쟁심이 불타올랐다. 이에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에서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심술맞은 철학자 헤라클리토스를 그렸다.   

 
"라파엘로는 단지 위대한 화가가 아니다. 그는 자연 그 자체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화가들의 왕자'가 된 라파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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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Portrait of Baldassarre Castiglione, 1514-16, Musée du Louvre, Paris

 

라파엘로는 로마에서 생애 마지막 10여년을 교황의 총애를 받는 화가로 보내며 "화가들의 왕자(prince of painters)"로 칭송받게된다.  바티칸 궁전의 '르 스탄체(Le Stanze, 방)' 벽화 중 가장 먼저 작업한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엔 인간의 지식과 창의성을 상징하는 철학, 예술, 문학, 음악을 주제로 4면을 장식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원근법과 완벽한 구도로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신학의 조화를 상징한 걸작 '아테네 학당(The School of Athens)'이 대표적이다.

 

신과 성인들이 하늘에서, 교회 지도자와 신학자들은 땅에서 성체의 신성함을 논의하는 '성체 논의(Disputation of the Sacrament)',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파르나소스 산을 중심으로 신들과 예술가들의 모임을 묘사한 '파르나소스(The Parnassus)', 그리고 자애, 신앙, 희망과 더불어 용기, 지혜, 절제의 덕목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신학적 덕(The Cardinal Virtues)'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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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Sublime Poetry, March 29–June 28, 2026.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엘리오도로의 방(Stanza d'Eliodoro)'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로부터 영향을 받아 극적인 조명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는 그림이다. '보르고 화재의 방(Stanza dell'Incendio del Borgo)'은 공방 제자들이 완성했다. 라파엘로는 공방에 한때 50여명의 조수를 거느리고 작업한 것으로 전해진다. 

 

'르 스탄체'는 벽화를 넘어서 웅장한 공간감을 연출하며, 공간을 극대화해 르네상스 회화의 교과서적인 사례가 됐다. 16세기 초 로마 교황청이 추구했던 인문주의적 가치와 교회의 권위를 가장 높은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라파엘로가 프레스코화를 남긴 사도 궁전의 교황의 방은 현재 '라파엘로의 방(Stanze of Raphael/ Raphael's rooms)'으로 불리운다.

 

라파엘로는 또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수석 건축가로 재직하며 '갈라테이아의 로자(Loggia of Galatea)'를 작업하면서, 율리오 2세와 후계자인 레오 10세를 비롯 교황청 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라파엘로의 친구이자 작가, 외교관, 사상가였던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Baldassare Castiglione)의 초상화는 티치아노, 렘브란트, 루벤스, 마티스의  찬사를 받았던 그림이다. 루브르뮤지엄 소장품으로 메트뮤지엄의 전시에서 볼 수 있다.  

 

 

#건축가, 고고학자 라파엘로

 

라파엘로의 재능은 회화, 프레스코화, 드로잉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514년 브라만테가 세상을 떠나자 라파엘로는 신축 대성당인 성 베드로 대성전의 수석 건축가로 임명되었다. 그는 빌라와 무대 장치를 설계하고 소네트 시를 집필하는가 하면, 고대 로마의 예술과 기념비적 건축물 연구에 깊이 매료되어 몰두했다.

 

또한, 고대 유물(주로 대성당 건축 자재용)의 활용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았고, 이후에는 고대 비문이 새겨진 모든 발굴 대리석을 관리하는 책임까지 맡았다. 또한, 레오 10세로부터 명울 받아 로마의 고대 건축물들을 조사하고 도면을 작성하기도  했다. 

 

 

#여인의 초상/ 라 포르나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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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Portrait of the Nude Fornarina (La Fornarina), ca. 1520,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di Palazzo Barberini-Palazzo Corsini, Rome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처럼 독신이었지만, 애인은 여러면 두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오랜 관계를 지속한 연인은 빵집 딸 마르게리타 루티였다. 1518년경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초상화 '라 포르나리나(La Fornarina)'의 모델이다. 라파엘로는 여인의 팔을 감싼 띠에 자신의 이름(Raphael urbinas)까지  남겼다. 이그림은 라파엘로가 사망했을 때 그의 작업실에 있었다. 로마 바르베리니 궁전 내 국립고대미술관(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은 이번 메트뮤지엄 전시에는 오지 않았다. 

 

그는 1516년경 울리오 데 메디치 추기경(훗날 클레멘스 7세 교황)의 의뢰로 '그리스도의 변모(The Transfiguration)'를 수년간 그리고 있었다. 마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의 거룩한 변모를 묘사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미완성으로 끝나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침울하고 우울한 성격이었던 반면, 라파엘로는 온화하고, 매력적인 성품을 지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작품 의뢰인들과 관계도 좋았으며, 조수들에게도 훌륭한 리더였다. 1520년 라파엘로가 사망한 후엔 그가 신임했던 조수 줄리오 로마노, 지안프란체스코 페니와 라파엘리노 델 콜레가 콘스탄티누스 홀의 프레스코화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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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van Tieghem, after Raphael, Christ’s Charge to Peter (from the Second Edition of the Acts of the Apostles Tapetry Series)/ Saint Paul and Saint Barnabas at Lystra (from the Second Edition of the Acts of the Apostles Tapestry Series), Late 1540s or early 1550s, Patrimonio Nacional, Colecciones Reales, Madrid, Spain

 

 

#37세 거장, 로마 판테온에 묻히다

 

1520년 4월 6일, 라파엘로는 자신의 37번째 생일날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는 심한 고열을 동반한 질환에 2주간 시달렸다. 역사가들은 라파엘로의 사인으로 폐렴, 말라리아, 과로로 인한 탈진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의사들이 과도한 방혈로 증상을 악화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화가이자 미술 비평가였던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미술가 열전(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 1550)'에서 라파엘로의 죽음을 '과도한 성관계'였다고 암시했다. 

 

라파엘로는 유언에 따라 로마 판테온 신전에 안치됐다. 그는 임종 2주 전에 유품을 정리하면서 판테온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건물"이라 칭송하며, 죽으면 그곳에 묻히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 교황 율리오 2세가 판테온 안장을 허락했다. 그리고, 장례식은 교황까지 참석하며 성대하게 열렸다. 그날은 마침 성금요일(Good Friday)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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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The Vision of Ezekiel, ca. 1515-16, Gallerie degli Uffizi, Florence

 

"보통 같으면 하늘이 오랜 세월을 두고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은총과 귀중한 선물들을 때로는 단 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안겨주는 때가 있다. 우르비노의 라파엘로가 바로 그런 경우다..... 하늘은 예술을 정복하려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이 세상에 보냈지만 라파엘로는 예술뿐만 아니라 예절도 다스리도록 세상에 내려보냈다..... 라파엘로는 과거 예술가들과 달리 인간 정신의 갖가지 미덕, 즉 예의, 근면, 우미, 겸손, 그리고 모든 부도덕과 결점을 상쇄할 만한 착한 성품을 간직했다. 하늘로부터 축복받은 라파엘로는 단지 하나의 인간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이면서 다만 영생을 하지 못하는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알맞을 것이며,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업적만 가지고도 하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라파엘로 덕택으로 예술의 방법도, 색채도, 창의력도 모두 하나가 되어 이와 같이 최고도의 완성에 도달했으므로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며, 그를 능가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화가로서 생활한 것이 아니라 왕자처럼 살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라파엘로를 따르는 사람들도 지상에서 명성을 얻을 것이며, 그의 생활을 본받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포상을 받을 것이다."

- 조르조 바사리, '미술가 열전'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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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Sublime Poetry, March 29–June 28, 2026.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Raphael: Sublime Poetry

Lenders to the Exhibition

 

Austria

Vienna, Albertina

 

France

Lille, Palais des Beaux-Arts

Montpellier, Musée Fabre

Paris, 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Beaux-Arts de Paris)

Paris, Fondation Custodia-Collection Frits Lugt

Paris, Musée du Louvre

Paris, Petit Palais, Musée des Beaux-Arts de la Ville de Paris

 

Germany

Berlin, Staatliche Museen zu Berlin, Kupferstichkabinett

Frankfurt am Main, Städel Museum

 

Hungary

Budapest, Museum of Fine Arts

 

Italy

Bergamo, Fondazione Accademia Carrara

Bologna, Pinacoteca Nazionale di Bologna

Brescia, Pinacoteca Tosio Martinengo e Fondazione Brescia Musei

Città di Castello, Pinacoteca Comunale di Città di Castello

Florence, Gallerie degli Uffizi

Florence, Musei del Bargello

Milan, Museo Poldi Pezzoli

Naples, Museo e Real Bosco di Capodimonte

Parma, Galleria Nazionale e Complesso Monumentale della Pilotta

Perugia, Galleria Nazionale dell’Umbria

Rome, Accademia Nazionale di San Luca

Rome, Galleria Borghese

Rome, Gallerie Nazionali di Arte Antica di Palazzo Barberini-Palazzo Corsini

Urbino, Convento di San Francesco d’Assisi

Urbino, Galleria Nazionale delle Marche

Venice,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Museo e Fondazione Querini Stampalia

 

Netherlands

Amsterdam, Rijksmuseum

Haarlem, Teylers Museum

 

Spain

Madrid, Museo Nacional del Prado

Madrid, Patrimonio Nacional, Colecciones Reales

 

Sweden

Stockholm, Nationalmuseum

 

United Kingdom

Chatsworth, The Devonshire Collections

Edinburgh,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Holkham, The Earl of Leicester and the Trustees of the Holkham Estate

London, The British Library

London, The British Museum

London, Dulwich Picture Gallery

London, The National Gallery

London, Royal Institute of British Architects

London, The Victoria & Albert Museum

Oxford, The Ashmolean Museum

Oxford, Governing Body of Christ Church

Windsor, His Majesty King Charles III/The Royal Collection

 

United States

Baltimore, Walters Art Museum

Boston, 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

Cleveland, The Cleveland Museum of Art

Los Angeles, J. Paul Getty Museum

New Haven, Harvey Cushing/John Hay Whitney Medical Library, Yale University

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The Morgan Library & Museum

Philadelphia,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Pittsburgh, Carnegie Museum of Art

Washington, D.C., National Gallery of Art

Williamstown, Sterling and Francine Clark Art Institute

Worcester, Worcester Art Museum

 

Vatican City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Musei Vaticani

 

Private Collections

Madrid, Abelló Collection

New York, Dr. Stephen K. and Janie Woo Scher Collection

New York, Anonymous (2)

Switzerland, Anonymous

 
 

*미켈란젤로의 코가 부러지지 않았더라면...

*미켈란젤로 드로잉전@메트뮤지엄 (11/13-2/12. 2018)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뉴욕 오다@오큘러스 사진전 Up Close: Michelangelo's Sistine Chaple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드로잉전@메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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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6.04.02 10:31
    꽤 오래전에 루브르 박물관을 갔었습니다. 명화며 도자기며 엄청나게 많은 보화들이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평생을 두고 보아도 모자람을 절감했습니다. 단체로 다니는 여행이다 보니까 쫒아 가기가 바빴어요. 대강 훑어보면서 지나가는데 한 그림 앞에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 서있어서, 우리도 거기에 멈추어 섰습니다. 겨우 인파를 뜷고 그 그림앞에 섰는데 그 그림이 모나리자였습니다. 거기서 시간을 너무 보내고 나니까 발길이 급해졌습니다. 라파엘로의 그림은 꼭 봐야한다고 해서 걸어걸어 가서 봤습니다. 포근하고 따뜻한 품속에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모상을 보면서 천사의 얼굴이 이것이다고 단정했지요. 라파엘로가 미남에 왕자풍의 면모를 지녔다는 걸 컬빗을 통해 알았습니다. 제목은 모르지만 라파엘로의 회화를 많이 감상했습니다.
    37살에 요절하지않고 좀더 오래 살았으면 더 많은 작품을 남겼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