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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6.02.02 10:52

(766) 이수임: 결혼할래? 유학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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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선인장 (160) Missed Connection 

 

결혼할래? 유학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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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라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엉뚱한 기차를 탔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기다리면 새로운 곳에 도착한다. 오히려 그런 여정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더 나은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한다. 기차에 오르지 않으면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 기차를 놓쳤다면 다음 기차라도 타고 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기대하지 않은 새로운 경험을 한다. 

 

서울에서 나는 결혼을 무척이나 하고 싶었다. 키도 작고 몸도 약해 선뜻 나와 결혼하겠다는 남자가 없었다. 중매쟁이를 통해 만난 의사인 남자 쪽에서 내가 아파트 한 채를 얹어야 저울추가 평행하다며 아파트를 요구했다. 

 

“너 아파트 한 채를 얹어 의사와 결혼 할래? 아니면 그 돈으로 유학 갈래?”

아버지는 내 진심을 캐내려는 듯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유학 갈래요.“ 

“그럴 줄 알았다. 오히려 키 큰 미국 남자들은 키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네 짝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아냐. 결혼을 못 한들 어떠냐. 자유롭게 살아라.”

 

 

아버지로부터 독립해서 롱아일랜드 있는 아델파이 대학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첫 땡스기빙, 사나흘 계속해서 눈이 내렸다.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학교 식당 문도 닫혔다. 음식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나는 3일을 굶고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아버지 나 집에 돌아갈래요. 도저히 여기서 살 수 없어요.”

“그래라. 당장은 올 수 없으니, 눈이나 그치면 와라.”

 

눈이 그치고 밥을 먹고 정신을 차리자, 등록금도 냈는데 학기는 마치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뉴욕에서 견디기 힘들 때마다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돌아가겠다고 울었다. 

 

“그래 정 힘들면 돌아와라. 그런데 너 뉴욕까지 갔는데 맨해튼에는 가봤니? 주말에 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만 해도 배울 점이 많다. 맨해튼은 구경하고 돌아와야지.”

 

맨해튼 한복판을 쏘다니다 센트럴파크에 들어갔다. 호숫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자연을 만끽하며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그들처럼 자유롭고 멋지게 살고 싶었다. 서울에 돌아가는 것을 미루고 학교를 맨해튼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에게 공부 마치고 돌아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서울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마다 뉴욕을 사랑하도록 유도하며 안심시키곤 하셨다. 비록 서울에서 결혼이라는 목적지의 안전한 기차를 타지 못하고 돌아 돌아 먼 길 여정 속에서 고생했지만,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는 올 수 있었다.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남편을 쳐다봤다. 아니, 아니, 아직도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https://sooimlee3.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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