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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in in Egypt

로댕과 이집트 조각, 무언의 대화

 

November 19, 2025-March 15, 2026

ISAW: 15 East 84th St. N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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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in in Egypt, Study of the Ancient World at New York University.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처럼 방대한 콜렉터였다. 마티스는 아프리카 조각, 모로코와 알제리 민속 공예품, 아시아 도자기, 중세 및 르네상스 미니어처를 사들여 아틀리에에 비치해 컬러와 형태를 실험하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마스크, 조각, 스페인 민속공예품, 이베리아 반도의 고대 조각 등의 콜렉터였다. 아프리카 미술품은 피카소의 입체주의(Cubism)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로댕은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조각과 파편에서 중세, 아시아 민속품 등을 수천점 수집해 조각 연구와 창작을 위해 자신의 컬렉션을 활용했다.

 

오귀스트 로댕(François Auguste René Rodin, 1840-1917)의 이집트 유물에 대한 열정을 탐구하는 전시 '로댕의 이집트(Rodin's Egypt)가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인근 뉴욕대 고대세계연구소(ISAW, Study of the Ancient World at New York University)에서 열리고 있다.  이집트 유물은 로댕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까? 11월 19일부터 내년 3월 15일까지 계속되는 '로댕의 이집트'에선 그가 수집한 이집트 조각과 유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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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in in Egypt, Study of the Ancient World at New York University.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이 전시는 로댕의 이집트 컬렉션과 그의 작품을 병치함으로써 고대와 근대가 만나며, 이집트의 무명 조각가와 로댕이 대화를 하는 형식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어떻게 로댕이 이집트 미술의 형태적 요소를 흡수, 재구성했는지를 탐구한다. 

 

전시 작품 60여점 중 대부분은 파리의 로댕 미술관(Musée Rodin)에서 대여해왔으며,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몇점을 빌려왔다. 이 전시는 파리 로댕미술관의 큐레이터 베네딕트 가르니에(Bénédicte Garnier)가 기획했다. ISAW는 고대문명간의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연관성을 연구하는 뉴욕대 산하의 대학원 교육센터로 전시는 무료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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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in in Egypt, Study of the Ancient World at New York University.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로댕은 어떻게 이집트 유물을 수집했나?

 

로댕이 활동하던 19세기 후반 유럽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이후 고고학적 발굴이 활발해지면서 이집트 문화에 대한 열광(eyptomania)이 풍미했다. 로댕은 컬렉터였다.  이집트 유물, 그리스-로마 유물, 중세 미술품, 아시아와 원시 조각 등 생애 수집한 총 6천여점의 컬렉션 중 이집트 유물이 1천여점에 달한다. 

 

그가 이집트 유물을 본격적으로 사들인 것은 조각가로서 명성을 얻은 후인 1890년대부터다.  초기에 이집트 소장품은 대부분 작은 크기였다. 이후 파리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골동품 가게들을 드나들었고, 친구들과 팬들로부터 유물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로댕은 직접 이집트를 방문한 적은 없었다. 아르메니아 출신 골동품 상인 조셉 알투니안(Joseph Altounian)의 로댕의 특사 역할을 했다. 로댕의 소장품 중 많은 유물들의 출처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하지만, 로댕은 1970년 유네스코가 유물불법거래 방지법을 발표하기 훨씬 전 국가에 기증해 반환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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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in in Egypt, Study of the Ancient World at New York University.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고대 미술은 로댕의 영감

 

"나는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는다. 나는 재발견할 뿐이다. … 나는 그리스인들을 모방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에게 고대 조각상을 남긴 사람들의 정신상태에 자신을 몰입시키려고 노력한다. … 학교에선 그들의 작품을 모방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방법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로댕의 노트 (Rodin: the man and his art,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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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in in Egypt, Study of the Ancient World at New York University.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로댕은 "고대는 나의 청춘이다(Antiquity is my youth.)"라 말하며, 고대 문명의 사상과 미학에 대한 존경과 감탄을 드러냈다. 브리티시뮤지엄(대영박물관)에선 2018년 '로댕과 그리스 미술(Rodin and the Art of Ancient Greece)'을 주제로 특별전을 열었다. 그리고, 2022년 파리의 로댕 미술관은 '이집트의 꿈(Dream of Egypt)'를 타이틀로 400여점을 소개하는 전시를 했다. 

 

그는 고대 이집트 조각가들이 인체를 표현하는 방식, 즉 선, 윤곽, 패턴, 단편적인 형태, 단순화, 그리고 기념비적인 표현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이집트 조각의 형태, 비례, 단순화된 선, 파편의 힘, 신체 표현의 정직성 등을 자신의 조각 언어에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흡수했다.  

 

로댕의 이집트 컬렉션은 전신상, 반신상, 토르소에서 부조(relief), 묘제 장식(funerary motifs), 제례용 기물, 직물 등에서 파편까지 다양했다. 로댕은 이집트 미술에서 고정된 정면에서도 살아있는듯한 동적인 감각,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형태에 매료됐고, 자신의 작품에서도 평면적 윤곽을 강조하며, 단순화하고 추상적으로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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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in in Egypt, Study of the Ancient World at New York University.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로댕의 이집트' 하이라이트 (Rodin's Egypt) @ISAW, N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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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사원형 석상 vs 로댕의 '사유(La Pensée, 1902)'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로댕은 고대 이집트의 블록/사원형 석상(naophoric or block statue)에서 영감을 받아 연인이었던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을 모델로 '사유(La Pensée, 1902)'를 제작했다. 몸은 덩어리이며, 팔은 몸에 밀착되어 있다. 폐쇄적인 실루엣에 움직이지 않고, 머리는 정교하지만, 몸은 원석의 미완성 상태다. 인물이 돌에서 막 떠오르는 순간같다. 로댕은 "예술 작품은 이미 대리석 덩어리 안에 존재한다. 난 단지 필요없는 부분을 깎아낼 뿐이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을 보고 "어서 말을 해!(Parla!)"라고 외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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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넥타네보 1세 입상 vs 로댕의 토르소 Torso of a young woman with arched back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넥타네보 1세의 입상은 팔, 머리, 다리가 없는 파편화된 왕의 신체지만, 권력, 영원성과 균형을 상징한다. 로댕은 여인의 머리, 팔, 다리를 제거하고, 휘어진 등과 복부로 긴장감을 표현했다. 이로써 '완전한 신체=의미'라는 서구의 고전 규범을 깨고, 부분이 전체보다 더 강한 존재감을 가진다. 볼륨과 균형이 전부다. 파편이 아니라 완결된 조형 언어로 근대조각의 파편 미학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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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걷는 남자(L’Homme qui marche)  vs  이집트 사제의 입상 Striding Statue of the Priest Pa-inmu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머리 없는 조각, 보행을 통해 보이는 인간성. 몸은 전체일 필요가 없다. 이미 충분히 말하고 있다.

로댕과 고대 이집트 사제의 걷는 조각이다. 사제의 입상은 정면성을 유지한 채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딛는다. 그의 걷기는 실제 이동이라기보다 지위, 존재, 영속성의 선언이다. 로댕의 '걷는 남자'는 머리도, 팔도 없이 비틀어진 몸에 팽팽한 자세로 걷는다. 불균형 속의 전진이다. 로댕이 이집트 조각에서 배운 것은 얼굴 등 형태가 아니라 중심과 리듬으로 살아나는 원리로 보인다.  

로댕의 '걷는 남자'는 고립되고 취약한 인간을 표현한 자코메티의 '걷는 남자(L’Homme qui marche, 1947-60)'와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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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발자크 최종 습작(Balzac: Final Study) vs 이집트, 사제 입상 Striding statue of a priest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고대 이집트 사제와 프랑스의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 이집트 사제는 팔을 몸에 밀착하고, 옷자락은 돌과 하나가 되어 단단하다. 사제는 개인이 아니라 질서의 육체화로 해석된다. 로댕의 발자크 최종 습작에서 외투는 신체를 삼켜버리고, 해부학적 디테일은 거의 사라진다.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다. 이집트의 사제가 외부 질서로 몸을 봉인한다면, 발자크는 사유와 창작이라는 내부의 에너지로 존재감을 부풀린다. 이로써 로댕은 내면을 가진 인간, 근대적 개인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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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Statute of Ankh​konsu presenting an image of Osiris  vs 로댕의 절망(Le Désespoir)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웅크린 자세의 두 조각. 고대 이집트의 조각은 안크혼수(아문레 사원의 문지기)가 무릎을 꿇고 풍요와 부활의 신 오시리스의 형상을 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 조각은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구조물이다.​로댕의 '절망'은 머리를 다리를 감싸고 있는 팔 사이로 파묻은 사람의 모습을 묘사했다. 신도, 구원도 없는 한 인간의 절망 상태다. 

 

 

댕은 이집트 조각으로부터 정면성(frontality), 블록성(block form), 파편의 자율성, 미완의 힘, 그리고 인간 형상의 비서사성을 흡수했다. 근대 조각의 시조로서 로댕은 훗날 콩스탕탱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그리고 헨리 무어(Henry Moore), 바바라 헵워스(Barbara Hepworth),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와 리처드 세라 (Richard Serra)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 추상조각에 영향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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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ée Rodin.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파리 로댕 미술관(Musée Rodin)

 

1893년 로댕은 파리 외곽 뫼동에 있는 빌라데브리앙(Villa des Brillants)을 구입했다. 1900년경엔 이 시골집을 방대한 소장품으로 가득 채워 마치 박물관을 연상시켰다. 1909년경, 로댕은 아예 미술관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가르니에 큐레이터에 따르면, 로댕은 1910년에서 1914년 사이 로댕은 이집트 미술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품게 되었고, 이는 파리에 미술관을 설립하는데 있어 그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로댕은 과거 예술과 자신의 작품 사이의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백과사전적인 미술관을 만들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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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thedral (1908), Musée Rodin.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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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tes of Hell (1880-1890), Musée Rodin.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로댕은 1908년부터 장 오베르가 설계한 파리의 비롱 호텔(*당시 호텔은 귀족의 호화 저택에 붙여졌다, 1732)을 작업실로 사용했다. 1911년 프랑스 정부는 로댕미술관을 설립하기 위해 비롱 호텔을 매입하게된다. 로댕은 정부에 반 고흐, 모네, 르누아르 등의 그림을 기증하면서 비롱 호텔과 빌라데브리앙을 미술관으로 만들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1919년 개관한 로댕 미술관은 '생각하는 사람' '키스' '지옥의 문' 등 조각 6천6백점, 드로잉 8천점, 사진 8천점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매년 70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https://www.musee-rodin.fr/en

 

 

Study of the Ancient World at New York University
15 East 84th St. New York
Wed-Sun 11am-6pm, Fridays 11am-8pm. Closed Mon & Tues
212-992-7800
https://isaw.ny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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