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K 손녀 타티아나 슐로스버그(35), 뉴요커지에 말기 혈액암 투병 칼럼 기고
"엄마의 비극, 평생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사촌 로버트 F. 케네디 Jr. 복지부 장관 맹렬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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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혈액암으로 투병 중인 존 F. 케네디의 손녀 타티아나 슐로스버그(Tatiana Schlossberg, 35)가 할아버지의 암살 62주년 기념일을 기해 뉴요커지(The New Yorker)지에 칼럼을 기고했다. "내 피와의 싸움(A Battle with My Blood"를 제목으로 한 이글에서 캐롤라인 케네디(67)의 딸 타티아나는 희귀 혈액암인 급성 골수형 백혈병(acute myeloid leukemia)으로 지난 18개월간의 험난했던 치료 여정, 가족들의 지원과 치료법을 찾기 위한 종양 전문의의 노력을 전했다. 이와 함께 사촌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펼치고있는 나라와 자신의 건강을 위협하는 정책 결정에 대해 맹렬히 비난했다.
1년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타티아나 슐로서버그는 호주와 일본 대사를 지낸 엄마 캐롤라인 케네디가 겪어온 슬픔에 한 챕터를 더하는 케네디 가문의 비극이다. 1963년 11월 22일 JFK가 암살당했을 때 캐롤라인은 다섯살이었다. 삼촌 로버트 F. 케네디도 5년 후 암살당했다. 남동생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1999년 38세에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타티아나는 이처럼 가족에 얽힌 오랜 비극의 역사에 자신의 병으로 엄마가 또 다시 슬픔에 잠겼다고 고백했다. 타티아나는 엄마의 고통을 덜해지기 위해 평생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 왔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슐로스버그는 1990년 맨해튼의 와일코넬 메디컬 센터에서 디자이너 에드윈 슐로스버그와 캐롤라인 케네디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퍼웨스트사이드에서 언니 로즈, 남동생 잭과 함께 성장했으며, 1996년 삼촌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결혼식에서 플라워걸을 맡았다.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교지 '예일 헤럴드'의 편집장이 됐다. 2014년 옥스포드대에서 미국역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 뉴욕타임스의 섬머 인턴, 메트로 섹션 기자를 거쳐 2017년까지 과학 및 기후 담당 기자로 일했다. 이후 환경보호주의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왔다. 2019년 '눈에 띄지 않는 소비: 당신이 모르는 환경적 영향(Inconspicuous Consumption: The Environmental Impact You Don't Know You Have)'를 출간했다. 2017년 마사즈 비냐드에서 예일대 동창인 비뇨기과 의사 조지 모란과 결혼, 2022년 아들 에드윈, 2024년 딸을 낳았다.
다음은 뉴요커 칼럼을 요약한 것이다.
내 피와의 싸움(A Battle with My Blood)
내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런 일이 나에게, 그리고 내 가족에게 일어날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글: 타티아나 슐로스버그 Tatiana Schlossberg
나의 짧은 경험으로는, 죽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기억나기 시작한다. 사람, 장소, 그리고 뜬금없는 대화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고, 그 기억은 멈추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와 뒷마당에서 머드파이를 만들어 그 위에 촛불과 미니 성조기를 꽂고 성조기에 불이 붙는 모습을 공황 상태에 빠져 지켜보던 모습을 본다. 대학시절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지 며칠 후, 보트슈즈를 신은 남자친구가 미끄럼을 타다가 눈 웅덩이에 빠졌다. 난 그와 헤어지고 싶었고, 그래서 숨이 막힐 때까지 웃는다.
아마도 지금 나의 뇌는 나의 삶을 다시 재생하고 있는 것 같다. 난 말기암 진단을 받았고, 이 모든 기억들이 사라질 것이니까. 아마도 새로운 기억을 만들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리고 내 안의 어떤 부분이 모래알을 헤집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24년 5월 25일, 뉴욕 컬럼비아-프레스비테리언 병원에 도착한 지 10분 후, 아침 7시 5분에 딸 아기가 태어났다. 남편 조지(George Moran)와 나는 그녀를 꼭 껴안고 바라보며 신생아의 모습에 감탄했다. 몇 시간 후 의사는 나의 혈액 수치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의 백혈구 수치는 정상 수치(마이크로리터당 4천-1만1천개)보다 훨씬 많았다(13만1천개). 진단 결과, 인버전 3라는 희귀 돌연변이를 가진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었다. 이 병은 주로 고령 환자에게서 발견되었다. 혈액암은 그라운드 제로(9/11 사이트)의 응급 구조대원들에게 흔한 병이었으며, 의사들은 내게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물었다. 나는 9/11 당시 6학년으로 뉴욕에 살았지만, 그 현장을 방문한 것은 몇년이 지난 후였다. 나는 노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난, 막 서른네살이 되었다.
난 그들이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진단 전날 난 임신 9개월이었고, 수영장에서 1마일을 수영했다. 아프지도 않았고, 아프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사실 난 내가 아는 사람중 가장 건강한 사람 중 하나였다. 센트럴파크에서 규칙적으로 8-10마일을 뛰었고, 백혈병 및 림프종협회 기금 마련을 위해 허드슨강을 3마일 수영한 적도 있다....난 저녁 식사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친구들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 주는 것을 좋아했다. 뮤지엄과 연극을 보러 다니고, 직장에서 크랜베리 주스를 마시며 뛰어놀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들과 돌봐야 할 신생아가 있었다. 이런 삶이 나의 삶이 될 수는 없었다.
이후 컬럼비아-프레스비테리언 병원에서 5주를 보내면서 낯설고 슬픈 감정 속에서 유머를 찾으려 애썼다.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대리로 뮌하우젠 증후군(*Munchausen syndrome: 꾀병 환자.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자해로 타인의 관심과 동정을 끌려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내가 그들의 표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누구보다 제가 더 재밌다고 생각했던 농담이었다. 나중에 내가 대머리가 되고, 넘어져서 얼굴에 찰과상을 입었을 때, 나의 농담은 내가 망가진 볼드모트(*Voldemort: '해리 포터'의 악당) 라는 것이었다.
결국 내 아세포(blast-cells: 혈액 세포의 초기 성숙 단계에 있는 미성숙 세포)가 감소했고, 집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치료는 미국 최대 규모의 골수이식 센터 중 하나인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M.S.K.)으로 이관되었다. 가정 항암 치료 후 나는 더 강력한 독극물(poison)을 투여받기 위해 M.S.K.에 입원했다. 언니(Rose Schlossberg)가 줄기세포를 기증해 이식수술을 받았다.
혈구 수치가 회복되고 언니의 세포가 치유되어 나의 몸이 변화하기를 기다렸다. 난 언니의 바나나 알레르기를 물려받을지, 아니면 그녀의 성격을 물려받을지 궁금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해서 스카프를 두르고 다녔다. 며칠 후, 입안에 염증이 생겨 말도 못하고 삼킬 수도 없었다. 음식은 혀에 묻은 먼지처럼 변했다.
남편 조지는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 의사와 보험사 직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병원 바닥에서 잠을 잤다. 내가 스테로이드를 맞고 화를 내며 슈웹스 진저에일(Schweppes ginger ale)은 싫고 캐나다 드라이(Canada Dry)만 좋아한다고 소리쳐도 화를 내지 않았다. 아이들을 재우러 집에 갔다가 저녁을 가져오곤 했다. 모든 사람이 의사와 결혼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아주 좋은 생각이다. 그는 완벽하다. 그런데 이렇게 친절하고 재밌고 잘생긴 천재를 만나 함께했던 멋진 삶을 계속 할 수 없게 되어 너무 속상하고 슬프다.
부모님과 형제자매들도 지난 1년 반 동안 거의 매일 내 아이들을 키우며 내 병실에서 함께해 주었다. 내가 고통받는 동안에도 그들은 흔들림 없이 나의 손을 잡아주었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고통과 슬픔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셨다. 비록 매일 그들의 고통을 느끼고 있지만, 이것은 정말 큰 선물이었다. 평생 동안 난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좋은 학생, 좋은 누나, 좋은 딸이 되려고 노력했고, 엄마를 보호하고 절대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엄마의 삶과 우리 가족의 삶에 새로운 비극을 더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2024년 7월 호주 대사 재직 말기 조 바이든 대통령, 캐롤라인 케네디 대사와 가족. 왼쪽부터 동생 Jack Schlossberg, 엄마 Ambassador Caroline Kennedy, President Joe Biden, 타티아나 Tatiana Schlossberg, 사촌 이모 Sydney McKelvy. Photo: Australia Embassy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에서 50일간 입원해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식 수술로 회복되었지만, 면역체계가 완전히 마비되어 어린 시절에 맞았던 모든 예방 접종을 다시 맞아야 했다. 암을 억제하기 위해 새로운 항암 화학요법(chemotherapy)을 시작했지만, 재발했다. 이식 담당 의사는 내 돌연변이가 있는 백혈병이 "재발하기 쉽다"고 말했다. 1월엔 특정 혈액암에 효과가 입증된 면역요법인 CAR-T 세포 치료(CAR-T-cell therapy)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병원 창밖은 항상 어두웠다. 나는 추가로 케모테라피를 받았다.
CAR-T 치료 후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Cytokine Release Syndrome, CRS: 면역 시스템이 특정 원인에 의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다량의 사이토카인을 혈류로 방출하면서 전신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질환. 발열, 저혈압,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을 유발하며 심하면 장기 부전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 발생했는데, 염증이 극에 달해 고유량 산소 없이는 숨을 쉴 수 없었다. 폐는 체액으로 가득 찼고, 간은 좋지 않았으며, 저는 끊임없이 중환자실에 가야 할 위기에 처했다. 몇주 후, 퇴원하게 됐을 때 체중이 20파운드(9kg) 줄었지만, 증상이 호전되었고 의사들은 결과에 만족해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다른 여러 환자들보다 상태가 좋았다는게 믿기 어려웠지만 집으로 돌아갔다.
4월 초에 두 번째 이식 수술을 받으러 다시 입원했다. 이번에는 혈연관계가 없는 기증자로 태평양 북서부(Pacific Northwest) 출신의 20대 남성이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포틀랜드 나무꾼이나 시애틀 테크 전문가를 상상했다. 어느 쪽이든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퇴원했다가 다시 재발했고, 또 다른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몇주간 입원을 두번 더 했는데, 몇주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사이에 10파운드(4.5kg)가 더 줄었다. 처음엔 새로운 세포가 오래된 세포를 공격하는 이식편대숙주질환(Graft versus host disease, GVHD)에 걸렸고, 9월말엔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pstein-Barr virus, EBV)로 신장이 망가졌다. 몇주 후 퇴원해 집에 왔을 땐 다시 걷는 법을 배워야했고, 아이들을 안아올릴 수 없었다. 다리 근육은 쇠약해졌고, 팔은 뼈만 남은 것 같았다.
최근 임상시험 때 의사는 나에게 1년 정도 더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내 눈꺼풀 안쪽에 얼굴이 영원히 박혀있는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아들은 기억을 조금은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아마 사진이나 이야기로 기억을 혼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딸아이를 제대로 돌볼 기회는 없었다. 이식수술 후 감염 위험 때문에 기저귀를 갈거나 목욕을 시켜주거나 젖을 먹일 수도 없었다. 그녀가 태어난 지 거의 반년이 지났는데, 난 딸과 헤어졌다. 내 딸이 나를 정말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내가 세상을 떠난 후 내가 그녀의 엄마라는 사실을 느끼고 기억할지 모르겠다.
한편, 수십년간 수백만달러의 정부자금으로 개발된 CAR-T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나의 사촌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 지명 및 인준을 받고 있었다. 내가 치료를 받는 동안 그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민주당 소속이었다가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한 그는 주로 나와 우리 직계 가족들에게 수치스러운 존재였다. 2024년 8월, 그는 선거 운동을 중단하고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 트럼프는 의료에 대해 "바비가 마음껏 뛰어놀게 놔둘 것(let Bobby go wild)"이라고 말했다. 엄마(캐롤라인 케네디)는 상원에 편지해 그의 인준을 막으려 했고, 남동생(Jack Schlossberg)은 몇달 동안 그의 거짓말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병원 침대에서 바비가 의학, 공중 보건, 정부에서 일해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논리와 상식에 반하여 인준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내가 의지했던 의료 시스템이 긴장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편 조지를 포함한 컬럼비아대학교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 심지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컬럼비아 대학교는 트럼프 행정부가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혐의에 맞서 벌인 캠페인의 첫 번째 표적 중 하나로 5월에는 연방기금 삭감으로 연구원 180명을 해고했다.) 조지가 직장을 바꾼다고 해도, 난 기저 질환이 있는 상태였기에 보험에 가입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바비는 백신에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나는 특히 다시 백신을 맞을 수 없게 되어 수백만 명의 암 생존자, 어린아이, 노인들과 함께 평생 면역 체계가 약화된 상태로 살아가게 될까 봐 걱정했다. 바비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은 없다"고 말했다. 바비는 백신이 나오기 전에 소아마비로 마비되거나 사망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바비가 특정 암 치료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인 mRNA 백신 연구 예산을 거의 5억 달러나 삭감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세계 최대 의학연구 후원기관인 미국립보건원(NIH)의 연구비도 수십억 달러 삭감했고, 예방적 암 검진을 권고하는 의학 전문가 위원회를 해임하겠다고 위협했다. 수백 건의 N.I.H. 연구비와 임상 시험이 취소되어 수천 명의 환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난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의 백혈병 및 골수 연구기금이 우려됐다. 내게 유일한 완치 기회였던 임상 시험들이 걱정됐다.
만일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의 계획은 바다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었다. 바다의 파괴뿐 아니라 바다가 제공하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이다. 내가 복용하는 항암제 중 하나인 시타라빈이 카리브해에 서식하는 해면동물인 텍티테티아 크립타(Tectitethya crypta) 덕분에 생겨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발견은 1959년 이약을 처음 합성한 캘리포니아 대학교(UC) 버클리 캠퍼스의 과학자들이 이루어냈는데, 그들은 거의 확실히 정부 지원금에 의존했을 것이다. 바비가 이미 지원금을 끊은 바로 그 자금 말이다.
나의 아들은 엄마 작가이고 지구에 대해 쓴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아파왔기 때문에 아들에겐 내가 환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딸아이가 있다. 불꽃처럼 곱슬거리는 빨간 머리는 셀처를 한 모금 마신 후 눈을 가늘게 뜨고 이가 빠진 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대부분은 지금 이 순간, 난 아이들과 함께 살고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현재에 충실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기에, 추억이 떠오르고 사라지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너무 많아서 마치 나와 아이들이 동시에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끔은 이 추억을 영원히 기억할 거라고, 죽어서도 기억할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곤 한다. 명백히,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죽음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해줄 사람도 없으니, 나는 계속 기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A Battle with My Blood
When I was diagnosed with leukemia, my first thought was that this couldn’t be happening to me, to my family.
By Tatiana Schlossberg
November 22, 2025
https://www.newyorker.com/culture/the-weekend-essay/a-battle-with-my-blood


35살의 젊은 나이에 희귀병으로 삶을 마감하고 있다니 안타깝습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돈, 명예, 집안, 인물, 아들과 딸까지 낳았으니, 모든걸 다 가졌습니다.
그런데 치료가 불가능한 희귀한 혈액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의사인 남편과 유명한 의사들이 백방으로 치료를 하는데도 못 고치는 걸 보면 의술의 한계를 느낍니다.
세간에서는 케네디가의 저주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법석인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대 의술로는 못 고치는 병이 걸려서 죽는데, 저주를 받아서라고 몰아부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사려됩니다.
앞으로 의학이 더욱 더 발전하여 치료가 불가능한 희귀병도 고칠 수 있는 특효약과 의술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타티아나의 어린 아들과 겨우 몇달밖에 안된 딸이 가엽네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