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하이츠 오두본 테라스 이야기 (1) 철도갑부 상속자의 사랑과 야망
Audubon Terrace Historic District Stories <1> The Hintington Family
철도갑부 아들 아처 헌팅턴 미히스패닉소협회 창립
조각가 부인 안나 하이얏 헌팅턴의 기마상 '엘 시드'

오두본 테라스의 미히스패닉소사이어티 건물 건녀편 광장에 설치된 '엘 시드' 조각.
맨해튼 워싱턴하이츠(Washington Heights)는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남으로 155스트릿, 북으로 뉴저지로 이어지는 조지워싱턴 브리지 인근 182스트릿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168스트릿의 뉴욕-프리스비테리안병원(NewYork-Presbyterian) 단지가 중심부에 있는 워싱턴하이츠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이민자들이 몰려사는 지역이기도 하다.
202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워싱턴하이츠 주민의 2/3가 히스패닉계다. 45%가 도미니카공화국계, 6%가 멕시코계, 5%가 푸에르토리코계였다. 히트 뮤지컬 '해밀턴(Hamilton)'의 린 마누엘 미란다(Lin-Manuel-Miranda)가 무명시절 작곡한 뮤지컬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의 배경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미란다는 푸에르토리코계다.

A historic image of Audubon Terrace (*date unknown), Photo: Hispanic Society Museum & Library
워싱턴하이츠 남단 155스트릿에는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위용이 마치 유럽의 고도시에 와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브로드웨이와 리버사이드드라이브의 한 블럭을 차지하는 단지는 '오두본 테라스 역사지구(Audubon Terrace Historic District)'로 불리운다. 20세기 초 건축된 보자르와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8채로 이루어진 오두본 테라스는 1979년 뉴욕시 랜드마크, 1980년엔 미 국가사적지로 등재됐다. 건너편엔 트리니티교회 묘지(Trinity Church Cemetery), 지하철 (1)의 스탑이 2 블럭 북쪽 157스트릿이다.
오두본 테라스는 1904년 남태평양철도(Southern Pacific Railroad) 가문의 상속자이자 학자인 아처 밀턴 헌팅턴(Archer Milton Huntington, 1870-1955)이 사촌인 건축가 찰스 P. 헌팅턴에게 의뢰해 지어졌다. 이름은 조류학자이자 화가로 이 지역에 부지를 소유했던 존 제임스 오두본(John James Audubon)에서 따왔다.
필자의 뉴욕이 생활 30년이 가까이 되어가지만, 오두본 테라스에 가본 것은 단 세번이다. 최근 오랜만에 미히스패닉소사이어티 뮤지엄 & 라이브러리에 가보았다. 오두본 테라스의 웅장한 건축미, 아처 헌팅턴의 열정, 그리고 프란시스코 고야의 걸작 회화 '알바 공작 부인' (1797)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Audubon Terrace Historic District Stories <1> The Hintington Family
철도 재벌 헌팅턴과 그의 두번째 부인 아라벨라

왼쪽부터 철도 재벌 콜리스 헌팅턴, 그의 두번째 부인 아라벨라 헌팅턴, 오두본 테라스 단지를 설립한 아들 아처 밀턴 헌팅턴.
아처 밀턴 헌팅턴은 당대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와 어깨를 겨루는 철도 갑부 콜리스 포터 헌팅턴의 양자였다. 1884년 콜리스 헌팅턴은 부인이 죽은 후 오랫동안 연애해온 서른살 연하의 미녀 아라벨라 워샴(Arabella Worsham Huntington)과 결혼을 서둘렀다. 하지만, 평판이 두려워 브루클린하이츠의 헨리 워드 비처 목사에게 1천5백불을 주고 자신의 거실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바로 유럽으로 신혼 여행을 갔다가 몇달 후 귀국해 비처에게 또 1천5백불을 주고 공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헌팅턴은 재혼과 함께 그녀의 열네살 짜리 아들 아처 워샴을 입양한 셈이지만, 친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처는 철도사업에 관심이 없었다. 이에 콜리스는 자신의 사업을 조카인 헨리 E. 헌팅턴에게 물려주게 된다. 1900년 콜리스 헌팅턴 사망 후 부인과 아들 아처는 약 5천만 달러 이상을 상속받았다. 그리고, 1913년 아라벨라는 동갑내기 헨리 E. 헌팅턴과 결혼했다. 아라벨라는 콜리스와 결혼 전에도 그의 도움으로 MoMA 후문 54스트릿의 맨션에서 호화롭게 살았으며, 결혼 직후엔 존 D. 로커펠러에게 팔았다.
아라벨라 헌팅턴은 결혼 후 미술품을 수집했다. 소장품에는 렘브란트의 '호메로스의 흉상을 든 아리스토텔레스'(현 메트뮤지엄 소장),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루트를 든 여인'(현 메트뮤지엄 소장) 등이 포함됐다. 1924년 사망 후 그녀의 컬렉션은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샌프란시스코 미술관(구 레종도뇌르 궁전), 헌팅턴 도서관 등지에 기증됐다. HBO 드라마 '길디드 에이지(The Gilded Age)'의 리빙스턴 여사는 아라벨라 헌팅턴을 모델로 한 캐릭터로 알려졌다.
미술관과 스페인 문화를 사랑한 아처 헌팅톤

Archer Milton Huntington, painting by José María López, ca. 1930. Mezquita, The Hispanic Museum and Library
한편, 아들 아처 헌팅턴은 그 시대 지성인이자 문화광이었다. 그는 인문학과 시에 관심이 많았던 엄마 아라벨라의 영향을 받았다. 아처는 개인교사를 두고 그리스어, 라틴어, 영국 역사, 프랑스 역사와 문학 등을 배웠고, 멕시코, 쿠바, 스페인 등 외국여행으로 견문을 쌓았다. 1882년 열두살 때 유럽 여행 중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파리 루브르뮤지엄을 방문한 것은 그의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었다. 열두살의 아처는 일기에 썼다.
"카탈로그를 다 읽은 후에야 치대로 갔다. 나는 뮤지엄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뮤지엄 안에서 살고 싶다."
아처는 1895년 고모의 딸인 헬렌 맨체스터 게이츠와 결혼했다. 헬렌은 스페인어에 능통하고, 히스패닉 문화에 열정적인 시인이었다. 이들은 1914년 미지리협회의 프로젝트를 위해 독일로 갔다가 러시아 스파이로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뉘른베르크의 감옥에 3일간 구금되었다. 부자들의 삶에 스릴감을 보탰다.
그러나, 헬렌은 영국의 배우이자 극작가인 할리 그랜빌 바커와 바람을 피워 20여년간의 결혼에 종지부를 찍게된다. 호리호리했던 아처는 1918년 이혼 후 우울증에 빠졌다. 폭식과 과로로 비만해진 아처는 1921년 한 파티에서 조각가 안나 본 하이얏을 만나 2년 후 결혼에 이른다. 아처는 53세, 안나는 47세였다. 헬렌과 할리(H & H)와 아처와 안나(A & A)의 결합은 운명이었을까?
아처 헌팅턴은 1955년 커네티컷주 베델에서 85세로 눈을 감았다. 헌팅턴의 지도 아래 미히스패닉소사이어티는 200여권 이상의 논문을 출판했다. 그는 예일대,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마드리드대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고, 스페인의 주요 왕립 아카데미, 라틴아메리카국립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그가 창립에 기여한 톨레도의 엘그레코 뮤지엄(카사 델 그레코), 바야돌리드의 카사 데 세르반테스 등 뮤지엄의 운영위원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스페인의 샤를 3세, 알폰소 12세, 알폰소 10세 등의 훈장을 받았다.
오두본 테라스, 건축 양식의 향연

브로드웨이에 면한 이 건물(I)은 아메리칸인디언뮤지엄 건물이었다가 로어맨해튼으로 이전했고, 현재 미히스패닉소사이어티가 사용 중이다.
아처 헌팅톤은 서른네살인 1904년, 미히스패닉소사이어티(Hispanic Society of America)를 창설했다. 그는 미문예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 미화폐학회(American Numismatic Society)를 후원했으며, 히스패닉소사이어티와 미지리학회(Geographical Society)를 오두본 테라스에 들여왔다. 이후엔 조각가 부인 안나 하이얏 헌팅턴(Anna Hyatt Huntington)과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브룩그린 가든 조각센터(Brookgreen Gardens)와 버지니아주에 세계 최대의 해양박물관 마리너즈 뮤지엄(Mariners' Museum)을 창설했다.

A – formerly American Geographical Society, now Boricua College
B – Hispanic Society Library
C – Church of Our Lady of Esperanza
D –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 Auditorium
E –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 (AAA&L)
F – New entrance link
G – formerly American Numismatic Society, now AAA&L Annex
H – Hispanic Society of America
I – formerly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now Hispanic Society
<Wikipedia>
오두본 테라스는 건축물의 향연이다. 아처의 사촌 찰스 P. 헌팅턴이 미화폐학회(1907, G), 미지리학회(1911, A)와 에스페란자성모교회(Church of Our Lady of Esperanza, 1912, C)를 맡았다. 보자르 건축 거장 스탠포드 화이트(맥킴, 미드 & 화이트)의 아들 로렌스 G. 화이트(Lawrence Grant White)가 미인디언박물관(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1922, I-현 히스패닉소사이어티 건물 일부)과 에스페란자성모교회의 증측(1924)을 지휘했다.

에스페란자성모교회(C) Photo: Wikipedia
이어 맥킴, 미드 & 화이트의 윌리엄 M. 켄달이 앵글로-르네상스 양식으로 미문예아카데미(1923, E) 건물을 지었으며, 이 건물의 오디토리움과 갤러리(1930)는 로어맨해튼 울워스 빌딩(Woolworth Buidling, 1913)의 카스 길버트(Cass Gilbert)가 설계했다.
히스패닉소사이어티 본관 건너편 광장엔 스페인의 국민영웅 '엘 시드(El Cid)'의 기마상이 있다. 찰턴 헤스턴과 소피아 로렌 주연 안소니 만 감독의 동명 영화(1961)로 널리 알려진 엘 시드(본명: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다. 이 동상은 아허 헌팅턴의 부인 안나 하이얏 헌팅턴이 제작한 것이다.
조각가 부인 안나 하이얏 헌팅턴의 '엘 시드'

아처 헌팅턴의 두번째 부인인 조각가 안나 하이얏 헌팅턴의 '엘 시드' 기마상. 현재 공사 중이다.
히스패닉소사이어티 본관 건너편 광장엔 스페인의 국민영웅 '엘 시드(El Cid, 1923)'의 기마상이 있다. 찰턴 헤스턴과 소피아 로렌 주연 안소니 만 감독의 동명 영화(1961)로 널리 알려진 엘 시드(본명: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다. 이 동상은 아처 헌팅턴의 부인 안나 하이얏 헌팅턴(본명 Anna Vaughn Hyatt, 1876-1972)이 제작한 것이다.
미국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한 게 1920년, 여성 미술가로 성공을 꿈꾸기 어려웠던 20세기 초 안나 하이얏은 공공 조각으로 이름을 날렸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릿지에서 태어난 안나 본 하이얏은 하버드대 동물학 교수 아버지와 수채화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해부학에 관심을 갖고 동물원과 서커스를 돌며 관찰한 덕분에 동물 조각에 탁월했다. 뉴욕으로 이주해선 브롱스 동물원을 드나들며 공부했다. 뉴욕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수학했으며, 미국립디자인아카데미와 미조각협회 회원이 됐다.
안나 하이얏 헌팅턴, 1921
1915년 프랑스 영웅 잔다르크 (Joan of Arc)의 탄생 500주년을 맞아 맨해튼 리버사이드 드라이브(93스트릿)에 세울 기마상을 제작하게 된다. 잔다르크 조각을 위해 미화폐학회 학자 J. 샌포드 살터스(J. Sanford Saltus)가 제작비 3천5백달러(현재 가치 약 1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오프닝엔 토마스 에디슨의 부인인 조각가 미나 에디슨(Mina Miller Edison) 등 고위인사들이 참가했으며, 안나 하이얏 헌팅턴은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된다.

리버사이드 드라이브 93스트릿의 잔다르크 동상. Photo: Wikipedia
아처 헌팅턴과 결혼한 하이얏은 오두본 테라스에 기마상 '엘 시드'(1927)를 비롯, 1944년까지 여러 점의 조각을 제작 설치했다. 1927년 하이얏이 결핵에 걸리자 부부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렐스인렛에 수천에이커 땅을 매입해 미 최초의 공공 조각정원 아탈라야 앤 브룩그린 가든(Atalaya and Brookgreen Gardens)을 오픈했다. 그리고, 하이얏의 작품 전시를 시작으로 조각을 매입해 컬렉션을 불려나갔다. 하이얏은 특히 여성 작가들의 조각 수집에 열정적이었다.
84세 무렵엔 쿠바의 애국자이자 소설가인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1853-1895) 기마상을 제작해 센트럴파크 남단에 설치했다. 앤 하이얏 헌팅턴은 1973년 97세로 사망해 브롱스 우드론에 묻혔다.

오두본 테라스에 자리했던 학회와 뮤지엄은 뿔뿔이 흩어졌다.
세계 최대 규모의 지도를 소장한 미지리학회(1851 설립)는 위스콘신대 밀워키 캠퍼스로 이전했으며, 건물은 사립대인 보리쿠아 칼리지(Boricua College) 캠퍼스가 됐다. 미인디언박물관(1916 설립)은 스미소니언뮤지엄협회로 통합되어 2004년 워싱턴 DC 내셔널몰에 개관했으며, 1990년 맨해튼 남단 알렉산더해밀턴 커스텀하우스로 이전했다. 이 건물은 현재 미히스패닉협회 뮤지엄&라이브러리에서 사용하고 있다. 미화폐학회(1858 설립)은 2008년 다운타운 배릭스트릿으로 이전했으며, 현재 미문예아카데미의 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남은 건물은 미히스패닉소사이어티가 확장해 사용 중이다.
Audubon Terrace Historic District
3718 Broadway @155th St.
*워싱턴하이츠 오두본 테라스 이야기 <2> 미히스패닉협회 소장 고야의 '알바공작 부인'
*뉴욕 남미식당 (2) 도미니카 공화국: 말레콘(Malecon)과 통닭 구이, 2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