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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블루스의 제왕(The King of the Blues)' B.B. 킹(B. B. King, 1925-2015)이 세상에 태어난 지 100주년, 세상을 떠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미씨씨피주 인디아놀라에는 B.B. 킹 박물관(B.B. King Museum and Delta Interpretive Center)에선 B.B. 킹을 추모하는 행사를 연다. B.B. 킹이 자랐던 인디아놀라의 박물관은 1천4백만 달러의 건축비가 투여되어 2008년 9월 개관했다. B.B. 킹은 2015년 5월 14일 89세로 별세 후 이 박물관에 묻혔다. 

 

 

July 31 - August 2

제 22회 Jus 블루스 음악상 시상식 22nd Annual Jus Blues Music Awards

 

August 14 @ 2:00 pm - 3:00 pm

NELA Awards (B.B. King Proclamation)

 

September 4

B.B. King Day (100 Years of B.B. King)

 

September 4 @ 7:00 pm - 11:00 pm

First Thursday Jam Session

 

September 5 @ 11:00 am - 12:00 pm

Blues Marker Unveiling

 

September 6

Community Day Festival at the Museum

 

September 13 @ 7:00 pm - 11:00 pm

B.B. King Hologram Experience at Historic Club Ebony

 

September 14

B.B. King’s Club Family Parade

 

September 16 @ 10:00 am - 6:00 pm

B.B. King’s Birthday Party WITH Cake!

https://bbking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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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 킹의 본명은 라일리 B. 킹(Riley B. King). 1925년 미씨시피 델타 면화농장 베어크릭의 소작농 아들로 태어났다. 네살 때 엄마가 재혼하면서 킬마이클로 이주해 외할머니에게 키워졌으며, 이후 인디애놀라에서 성장했다. 소년시절 침례교회의 가스펠 성가대에서 노래했으며, 목사에게 첫 세 화음을 배웠다. 1941년 아칸소주 헬레나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미씨시피 델타 블루스' 프로그램이 첫 방송됐다. 킹은 농장 휴식시간에 이 프로그램을 들으며, 기타를 독학했다. 

 

이후 트랙터 운전사로 일하면서 가스펠 싱어즈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에서 복무하고 제대 후 테네시 주 멤피스로 가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게된다. 이후 가수 겸 DJ로 활동하며 '빌스트리트 블루스보이(Beale Street Blues Boy)'라는 별명을 얻어 훗날 '블루스 보이(Blues Boy)'로, 결국엔 'B. B. King'으로 불리우게 된다. 여기서 블루스 뮤지션 T본 워커(T-Bone Walker)를 만나 엘렉트릭 기타리스트를 꿈꾸게 된다. 

 

1949년 킹은 로스앤젤레스 RPM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녹음을 시작했다. 자신의 밴드 B.B. 킹 리뷰(B.B. King Review)를 결성해 워싱턴 DC, 시카고, LA, ㄷ트로이트, 세인트루이스 등지에서 공연했다. 1952년 발표한 "3 O'Clock Blues"로 빌보드 R&B 차트 1위를 기록한 후 "You Know I Love You", "Woke Up This Morning", "Please Love Me", "When My Heart Beats Like a Hammer", "Whole Lotta' Love", "You Upset Me Baby", "Every Day I Have the Blues", "Sneakin' Around", "Ten Long Years", "Bad Luck", "Sweet Little Angel", "On My Word of Honor", "Please Accept My Love" 등을 히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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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가 치솟으며, 1956년엔 342회의 콘서트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 킹은 70대까지도 연간 200회의 공연을 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1969년엔 롤링스톤스의 미국 투어 오프닝 무대에 올라 록 청중에게 어필했다. 1970년엔 "The Thrill is Gone"으로 팝과 R&B 차트에 오르고, 그래미상 최우수 R&B 남자 보컬 공연상(Best Male R&B Vocal Performance)을 석권했다. 롤링스톤 잡지는 이곡을 역대 가장 위대한 노래 500 중 183위에 선정했다. 

 

킹은 1980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그리고 2014년엔 '리듬앤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11년 롤링스톤은 킹을 역사상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 중 6위에 선정했다. 

 

2014년 투어 중 고혈압과 당뇨병 합병증으로 마지막 8회 콘서트가 취소됐다. 2015년 5월 14일 라스베가스에서 뇌졸중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로 수면중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멤피스로 운구되어 빌 스트리트를 따라 브라스 밴드의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의 연주와 함께 행진했다. 그리고 고향 인디애놀라에 있는 B.B. 킹 박물관에 안치됐다. <2025. 7. 17.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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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 is Gone.

'블루스의 전설' 'King of Blues' B.B. 킹이 5월 14일 라스베가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2013년 뉴욕의 블루스 페스티벌에서 B.B. 킹이 기타 루실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가까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진정 행운이었다. <업데이트, 2015.5.15. >

 

The King Plays the Blues 

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July 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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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 King at the 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2013.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블루스의 전설’ B.B. 킹(B. B. King, 87)이 뉴욕에 떴다. B.B. 킹은 10일 브룩필드 플레이스(Brookfield Place, 구 월드파이낸셜센터) 플라자에서 열린 제 3회 로우다운 허드슨리버 블루스 페스티벌(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무대에 올랐다. 
‘블루스의 대부’는 해탈한 뮤지션 그 자체였다. 그는 백 밴드의 호위 속 앉아서 깁슨 기타 ‘루실’을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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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 King at the 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2013
 
 
 
킹은 이날 감미로운 ‘You Are My Sunshine’에서 'Three O'clock Blues' 'Everyday I Have the Blues' 그리고 히트곡 ‘Rock Me Baby’까지 영혼을 두드리는 연주로 때로는 폐부를 찢듯이 절규하며, 뉴요커들을 위안했다. 황혼의 B. B. 킹은 허드슨강 속으로 지는 한여름의 노을 아래서 청중과 눈을 맞추며 농담을 풀어 놓는 정다운 이웃집 할아버지의 모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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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 King at the 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2013
 
사실 B. B. 킹을 처음 본 것은 1990년 경 서울에서 열린 팔리아먼트 수퍼밴드 콘서트(Parliament Superband Concert)에서였다. 호암아트홀이었는지, 예술의 전당이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B. B. 킹, 레이 찰스, 다이안 슈어 등 수퍼 뮤지션들이 양담배 홍보대사로 한국을 찾았었다.
 
타임스퀘어에 B.B. 킹 블루스 클럽 & 그릴이 있으니, B.B. 킹을 자주 볼 수 있겠지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킹 오브 블루스'는 지금도 연간 100회 이상 투어 콘서트를 열고 있다. 어쩌다 자신의 클럽에서 연주할 경우 티켓을 비쌀 뿐더러 금방 매진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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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 King at the 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2013
 
 
 
2009년 주간 ‘타임’은 B. B. 킹을 역사상 위대한 기타 연주자 100인 중 3위에 선정했다. B.B. 킹은 블루스, 재즈, 스윙, 팝 등을 믹스한 독특한 스타일로 연주해왔다. 에릭 크랩턴, 조지 해리스, 지미 페이지, 그리고 제프 벡 등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이 B.B. 킹을 롤 모델로 꼽는다. 이외에도 존 메이어, 밥 말리 등이 영향을 받았다.
 
그는 70대까지도 연간 250-300회 연주하는 에너지와 열정을 과시하고 있다. 87세인 지금도 그는 사흘에  한번 꼴로 무대에 오른다. 이 날의 오프닝 무대는 존 쿠거의 허스키 보이스를 연상시키는 영국 출신 온 블루스 밴드 ‘제임스 헌터 식스(James Hunter Six)’가 이끌었다.  
11일엔 ‘라 밤바’의 로스 로보스(Los Lobos)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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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 King at the 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2013
월드파이낸셜센터 플라자(새 이름 브룩필드 플레이스 플라자)에서 무료로 열린 제 3회 로우다운 허드슨 블루스 페스티벌. 지난해엔 버디 가이(Buddy Guy)가 무대에 올랐다.
 
 

B.B. King Plays the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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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 King at the 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2013
 

“내가 노래할 땐, 마음으로 연주한다. 내가 노래를 중단하는 순간,  나는 루실(Lucille)에 의해 노래하기 시작한다.”
 "When I sing, I play in my mind; the minute I stop singing orally,  I start to sing by playing Luc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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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 King at the 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2013

☞ B. B. King(1926- )

 
1926년 9월 16일 미씨시피주 버클레어 인근 면화농장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태어났다. 본명 라일리 B. 킹.(Riley B. King). 네살 때 아버지가 가출하고, 엄마는 재혼하면서 외할머니에게 아들을 맡겼다. 
 
교회의 합창단원으로 가스펠을 부르면서 자란 소년은 열두살 때 15불을 주고 기타를 샀다. 열여섯살 때 트랙터 운전사로 일하면서 페이머스 세인트 존 쿼텟과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1946년 기타리스트 부카 화이트를 따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10개월간 협연했다. 이후 아칸사의 웨스트멤피스 라디오 WDIA에 출연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WDIA에 가수 겸 DJ로 일하면서 빌 스트릿 블루스 보이(Beale Street Blues Boy)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블루스 보이’로 줄였다가 마침내 ‘B. B.’를 이름으로 쓰기 시작한다. 여기서 티-본 워커(T-Bone Walker)의 연주를 듣고, 전자 기타에 매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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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 King at the 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2013
 
1971년 ‘스릴은 가버렸지(The Thrill Is Gone’로 최우수 R&B 남성보컬상을 수상한 이래, 15회 이상 그래미를 받았다. 그리고, 198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예일대 명예박사학위(1977), 블루스 명예의 전당(1980), 록큰롤 명예의 전당(1987), 국가 공훈예술메달(1990), 케네디센터훈장91995), 대통령 자유의 메달(2006), 브라운대학교 명예박사(2007)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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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 King at the 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2013

♣루실 이야기 Lucille Story 

1949년 한겨울 스물세살의 뮤지션 B. B. 킹은 아칸소주의 트위스트에 있는 한 댄스홀에서 연주하게 되어 있었다. 
그 날 밤 두 남자가 술을 먹다 몸 싸움을 시작해 술에 불이 붙어 홀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밖으로 도피하고, B.B. 킹도 빠져나왔다. 잠시 후 30불 주고 산 깁슨 기타(ES-355 모델)를 홀 안에 두고 온 걸 깨달은 킹은 서둘러 들어가 기타를 갖고 나왔다. 
 
그날 밤 싸우던 두 남자는 모두 사망했다. 다음 날 킹은 두 남자가 ‘루실’이라는 이름의 여인을 두고 싸움이 붙은 걸 알게됐다. 그리고, 기타 이름을 ‘루실’이라고 지었다. 여인을 두고 다투다가 목숨을 잃은 두 남자의 어리석음을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1968년 ‘루실’을 작곡해 동명의 앨범에 수록했다. 1980년 깁슨 기타는 B.B. 킹 루실 모델을 시판하기 시작했다. 
2005년 비비 킹의 80회 생일을 맞아 80대의 깁슨 루실을 내놓았다. 타임스퀘어의 B.B. 킹 블루스 클럽 안엔 ‘루실즈 그릴(Lucille’s Grill)’이 라는 이름의 작은 블루스 카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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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bbkingblues.com

♣비비킹 블루스 클럽 & 그릴

1991년 멤피스의 빌 스트릿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블루스 클럽을 오픈했다. 3년 후엔 LA의 유니버시티 워크에 두번째 클럽을 론칭했다. 그리고, 2000년 뉴욕 타임스퀘어에 B.B. 킹 블루스 클럽했다. 이후 커네티컷의 폭스우드 카지노(2002년), 플로리다 올란도(2007)와 웨스트팜비치(2009), 라스베거스 미라지 호텔(2009) 오픈하며, 블루스 클럽 체인이 됐다. 그러나, 타임스퀘어 클럽은 2018년 문을 닫았다. http://www.bbkingblu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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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 King at the 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2013
 
B.B. 킹은 연주 전에 기타 피크(pick)을 뿌리고, 끝난 후에도 청중에게 보너스 기념품을 던졌다. 나도 하나 건졌다. 콘서트 후엔 조수가 보살리노 모자와 재킷을 입혀준다. 그리고 블루스 킹은 무대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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