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의 아웃사이더' 귀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Painting His World'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6/29-10/5)
인상파의 아웃사이더 귀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Painting His World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June 29 - October 5, 2025)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February 25 - May 25, 2025)
Musée d'Orsay, Paris (October 8, 2024 - January 19, 2025)

Gustave Caillebotte, Paris Street; Rainy Day, 1877,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프랑스 인상주의의 아웃사이더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의 작품세계를 탐구하는 특별전 'Gustave Caillebotte: Painting His World'이 6월 29일부터 10월 5일까지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파리 오르세미술관(Musée d'Orsay, Paris: 10/8, 2024-1/19, 2025), 로스앤젤레스 게티미술관(J. Paul Getty Museum, 2/25-5/25, 2025)d에서 이어지는 순회전이다.
오르세미술관의 전시 타이틀은 '남자 그리기(Peindre les hommes)', 게티미술관도 '남자 그리기(Painting Men)'였지만,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의 전시 제목은 '그의 세계를 그리다(Painting His World)'로 바뀌었다. 이유는? 파리 전시 때 카유보트를 '동성애자화'하는 오염된 시도라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LA 게티 전시에선 '남성성, 형제애, 동성애적 사회성'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게 다룬 전시로 호평받았다. 카유보트의 명작 '비오는 날의 파리 거리'(1877)를 소장한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는 '남자'보다 '그의 세계'로 정치적으로 안전한 제목을 선택했다.

Gustave Caillebotte, Young Man at His Window, 1876, Getty Museum, LA
당대 인상주의 화가들이 산책하는 여인들, 발레리나, 목욕하는 여인이나 찰나적인 자연풍경을 묘사한 반면,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동료 스포츠맨, 동네를 거니는 부르주아들, 노동자들에 관심을 두었다. 그리고, 동료 인상파 화가들보다 사실주의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밀레와 쿠르베, 드가나 모네의 초기 작품처럼 사실주의에 더 가깝다.
그는 고군분투하는 가난뱅이 화가가 아니었다. 부르주아 화가였다. 하지만, 부유층의 게으름에 저항하며 조정(rowing), 세일링, 요트 제작과 정원 가꾸기에도 열정적이었다. 그의 뱃놀이 그림에는 유희보다 보트 타기의 고된 노동이 담겼다. 그는 아들, 형제뿐만 아니라 동료, 친구들을 모델로 그렸다. 자신의 집, 창문 옆이나 발코니, 소파 등 친밀한 장소와 욕조에 있는 남성들과 도시의 풍경을 종종 캔버스에 담았다. 이 전시엔 카유보트의 회화, 종이작품, 사진 등 120여점이 소개된다.

Gustave Caillebotte, Self-Portrait, 1892, Musée d’Orsay, Paris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1848년 파리 포부르-생드니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문의 군수직물사업을 물려받은 판사였고, 첫째, 둘째 부인의 죽음 후 세번째 결혼에서 귀스타브와 두 아들을 두었다. 그의 가족은 1860년부터 파리 남쪽의 예레스 별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귀스타브는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따라 법대에 간 귀스타브는 변호사 자격증을 받았으며, 엔지니어 공부도 했다. 1870년 보불 전쟁(프랑스-프로이센/독일)에 징집되어 세느강기동대에 복무했다. 제대 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에콜데보자르에 들어가 사실주의 인물화가 레옹 보나(Léon Bonnat)에게 배웠다. 보나의 제자들로는 알리 툴루즈-로트렉, 존 싱거 사전트, 토마스 이킨스, 조르쥬 브라크, 에드바르트 뭉크 등이 있다.

Gustave Caillebotte, Man at His Bath, 1884, Museum of Fine Arts, Boston
1874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2년 후 동생 르네, 1878년엔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났다. 귀스타브는 사진작가 남동생 마르시알과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된다. 카유보트는 자신의 돈을 르누아르, 모네, 마네와 피사로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구입하고, 전시를 후원했다. 때때로 인상파 그룹전에 참가했지만, 부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을 팔 필요가 없었다. 또한, 당시 유행하는 여인들의 그림을 추구하지 않고, 남자들도 그릴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카유보트는 세형제 사이에서 자라 남학생들만 있던 법대와 미대에 다녔고, 인상파 그룹의 화가들도 남자들이었다.
그는 1876년 제 2회 독립파들의 살롱(Salon des Indépendants)으로 미술계에 데뷔했다. 그해 제 3회 살롱에 출품한 '마루 연마공들(Floor Scrapers/ Les Raboteurs de Parque, 1875)'는 윗옷을 벗은 근육질 남자들이 땀흘리며 마룻바닥을 대패질하는 장면을 담았다. 이 그림은 1년 전 아카데미데보자르 후원의 살롱전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저속하다'며 거부당한 작품이었다. 당시 미술계에선 코로나 밀레처럼 존경받는 화가들이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그린 농민들의 모습은 용인했지만, 노동자 계층은 거부했다.

Gustave Caillebotte, Floor Scrapers, 1875, Musée d’Orsay, Paris
그들의 땀 범벅이 등은 니스 페인트처럼 반짝이며, 지금의 시각으로는 남성의 관능미를 찬미한 것처럼 보인다. '목욕탕의 남자(Man at His Bath, 1884)' 또한, 르누아르나 드가의 몽환적인 여성 목욕 장면이 아니라 욕조에서 막 나온 남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타월로 몸을 닦고 있지만, 드러난 살이 더 많으며, 엉덩이도 관능적이다. 때문에 카유보트의 남성 그림은 '섹슈얼리티'의 렌즈로 초대하는듯 하다.
카유보트는 생전에는 화가보다 아트 컬렉터로 널리 알려졌다. 1876년 처음으로 모네의 그림을 구입했고, 동료 화가들의 작업실 임대료를 지불하기도 했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주로 구입했고, 조르쥬 쇠라나 폴 고갱, 상징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사지 않았다. 그는 특히 루브르뮤지엄이 마네의 논쟁을 일으킨 '올랭피아'(1863)을 구입하도록 설득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뿐만 아니라 우표도 수집해 그의 컬렉션이 영국 도서관(British Library)에 소장되어 있다. 그는 드가처럼 사진 수집에 열정적이었다. 동생 마르시알도 사진작가였다. 사진의 앵글과 일본 판화의 영향으로 기울어진 배경과 높은 시점이 종종 나타난다.

Pierre-Auguste Renoir,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1881,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1881년 34세의 카유보트는 세느강변 프티-제네빌리에르의 자택에서 그림 대신 정원 가꾸기, 요트 제작, 세일링에 전념했고, 동생 마르시알과 르누아르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카유보트는 르누아르의 '보트 선상 파티의 점심(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1881)' 속에 모델(오른쪽 하단 밀짚모자 쓰고 앉은 남자)로 나왔다.
1894년 카유보트는 자택 정원에서 일하다가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11살 연하 하층계급 출신의 샤를로트 베르티에와 오랜 관계를 유지했으며, 사후에 거액의 연금을 남겼다. 유산 집행인은 르누아르였다.

Gustave Caillebotte, Boating Party, about 1877–78, Musée d’Orsay, Paris
카유보트는 1876년 남동생 르네 사망 후 자신도 요절할 것으로 생각하고, 20대에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는 피사로(19점), 모네(14점), 르누아르(10점), 시실리(9점), 드가(7점), 세잔(5점), 마네(4점) 등 받애한 컬렉션을 수집했다. 유언에는 그가 소장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자신의 컬렉션이 현존작가들을 전시하는 뤽상부르 궁전과 루브르뮤지엄에 전시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당시 미술계에서 인상파는 천대받았고, 프랑스 정부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유산 집행자인 르누아르와 협상 끝에 38점을 뤽상부르 궁전으로 가져가 인상파 화가 최초로 공공장소에서 전시하게 된다. 나머지 29점(드가 작품 1점은 르누아르가 집행자 자격으로 소유)도 프랑스 정부에 제공되었다가 거부되었다. 마침내 1928년 프랑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가져가려했지만, 동생 마르시알이 거부했다. 남은 작품 중 세잔의 '휴식하는 목욕객(Bathers at Rest)'은 필라델피아의 반즈파운데이션으로 팔려갔고, 카유보트의 그림 49점은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게 됐다.
그중 가장 유명한 '비오는 날 파리 거리'는 1955년 미 자동차회사 대표 월터 크라이슬러가 구입했다가 1964년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 팔았다. 이 회화는 BBC의 1980년 다큐멘터리 '100점의 위대한 회화(100 Great Paintings)'에서 23위에 선정됐다. https://www.artic.edu




인상파하면 모네, 마네, 르노와르 등등 화가들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이들 화가들의 그림은 빛과 색채가 잘어울려서 보는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절로 느끼게 합니다. 이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도 아웃사이더가 있다는 걸 컬빗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리고, "파리의 거리, 비 우는 날"이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작품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르노와르나 마네 드가와 같은 인상파들이 그린 거겠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올려주신 카유보트가 그린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을 보면서 작가가 사실주의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카유보트를 알게돼서 감사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