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



조회 수 10753 댓글 1

Leonard Alan Lauder (1933–2025)

 
메트뮤지엄에 10억불 가치 입체파 81점 기부
에스티로더 '화장품업계의 GM' 모토로 경영
 
001.JPG

2014년 10월 14일 'Cubism: The Leonard A. Lauder Collection' 언론 프리뷰에서 레오나드 로더씨가 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의 CEO이자 아트컬렉터였던 레오나드 A. 로더(Leonard Alan Lauder, 1933–2025)가 6월 14일 맨해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레오나드 로더는 엽서부터 피카소까지 다양한 미술품을 수집했다. 특히 큐비즘(입체파) 전문 컬렉터로 알려진 로더는 2013년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 파블로 피카소(34), 조르쥬 브라크(17), 후안 그리(15)와 페르낭 레제(15)의 작품 81점을 기증했다. 메트뮤지엄은 2013년 로더의 약 10억 달러 가치에 달하는 입체파를 주제로 한 특별전 'Cubism: The Leonard A. Lauder Collection'을 열었다. 로더의 입체파 컬렉션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쥬 미술관, 파리 퐁퓌두센터의 소장품에 비견될 정도로 중요하다고 평가됐다.  
 

 

IMG_0648.JPG

2014년 10월 'Cubism: The Leonard A. Lauder Collection' 플래카드가 달린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전경. 

 
그의 어머니는 뉴욕시 퀸즈 코로나에서 유대계 헝가리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조세핀 에스터 멘처(Josephine Esther Mentzer, 1908-2004)다. 그녀는 어릴 적 잦은 피부 트러블을 겪은 후 저자극성 화장품을 개발해 1946년 남편 조셉 로더와 에스테로더 컴퍼니를 창립했다. 
 
1933년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레오나드 로더는 브롱스 과학고 졸업 후 펜실베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학위를 받았다. 해군에 입대해 중위로 제대한 1958년 어머니 회사 에스티 로더에 입사했다. 그는 이어받아 여러 브랜드를 론칭, 고급 백화점과 유럽, 아시아, 미주 지역의 미개척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로더는 2020년 출간된 회고록 '내가 지키는 회사: 아름다움 속 나의 삶(The Company I Keep: My Life in Beauty)'에서 자신의 꿈은 에스티 로더를 여러 브랜드, 여러 제품 라인, 그리고 다국적 유통망을 갖춘 화장품업계의 제너럴모터스(GM)으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썼다. 
 

 

IMG_0767.JPG

2014년 10월 14일 전시 프리뷰에서 레오나드 로더와 토마스 캠벨 메트뮤지엄 관장.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1972년 사장이 된 로더는 최고경영자(CEO, 1982-1999)를 거쳐 회장(1995-2009), 명예회장(2009- )를 역임했다. 평생 약 115억 달러의 개인재산을 축적해 2024 포브스지의 억만장자 82위에 올랐다. 
 
로더가 미술품 수집에 흥미를 느낀 것은 여섯살 때였다고 한다. 처음 5센트짜리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엽서를 산 후 수집에 대한 열정을 품기 시작했다. 결국 로더는 석판화와 빈티지 사진, 전쟁과 역사적인 사건의 이미지가 담긴 예술 엽서까지 총 12만5천장에 달하는 엽서를 수집해 대부분을 보스턴미술관에 기증했다. 지난해 뉴욕시박물관(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은 로더가 소장한 250여점의 엽서, 장식미술, 패션, 사진, 그림, 건축 모형을 선보이는 특별전 'Art Deco City: New York Postcards'를 열었다. 
 
 
artdeco.jpg

'Art Deco City: New York Postcards',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2024

 
1959년 에블린 하우스너와 결혼, 윌리엄과 게리를 낳았고, 부인은 2011년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2015년 사진작가 주디스 글릭먼과 결혼했다. 주디스는 로더의 친구였던 쇼핑센터 재벌 남편 알버트 글릭먼이 2013년 파킨슨병으로 사망한 후 독신이 됐다. 이들은 2015년 재혼했다.  그의 11세 어린 남동생 로날드 로더는 미 국방부에서 근무한 후 오스트리아 대사를 거쳐 독일-오스트리아 전문 미술관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를 창립한 아트 컬렉터이기도 하다. 
 
 
00111.JPG

입체파 회화가 걸린 레오나드 로더의 자택 사진. 

 
로더는 뮤지엄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유방암 및 알츠하이머 연구, 그리고 기타 문화, 과학, 사회공헌 활동에도 수억원을 기부했다. 첫번째 부인 에블린은 뉴욕의 메모리얼슬론케터링센터에 유방암센터(Evelyn H. Lauder Breast Center at 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를 설립했다. 
 
레오나드 로더는 억만장자였지만, 검소한 인물이었다. 그는 2004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비누 조각을 쓰고, 종이 클립을 재사용하며, 메모지의 뒷면을 활용한다....아이를 대공황에서 구해낼 수는 있지만, 아이를 대공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몇년 전에 카네기홀 인근 카네기홀 다이너에서 식사를 하면서 영수증을 꼭 챙겨가는 모습을 보였다. 
 

 

큐비즘 탐구 <1> 메트뮤지엄 레오나드 로더 입체파 컬렉션 특별전(10/20-2/16, 2015)
 
화장품 재벌의 위대한 집착이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 고귀한 컬렉션을 선사했다.
 
지난해 4월 메트뮤지엄에 자신의 입체파(큐비즘, Cubism) 컬렉션 78점을 기증하기로 약정하며 세계 미술계를 놀라게했던 레오나드 A. 로더(Leonard A. Lauder) 에스테로더 명예회장이 30여년간 집요하게 구입해온 작품들이 10월 14일 언론에 공개됐다. 레오나드 로더 회장은 약조 이후 3점을 더 구입해서 총 81점을 기증했다. 그의 나이도 81세다.
 
 
 
IMG_0785.JPG

2014년 10월 14일 전시 프리뷰에서 토마스 캠벨 관장, 레오나드 로더,  공동 큐레이터 에밀리 브라운과 레베카 라비노.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오는 20일 공식 개막될 '큐비즘: 레오나드 A. 로더 컬렉션(Cubism: The Leonard A. Lauder Collection)'전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조르쥬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 후안 그리(Juan Gris, 1887–1927), 그리고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 1881–1955) 등 입체파 4인방의 회화, 조각, 드로잉 등이 소개된다. 
 
큐비즘을 창시한 피카소(34점)와 브라크(17점)을 비롯, 입체파 화가 그리(15점), 레제(15점) 등 1906년부터 1924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들로 메트뮤지엄의 취약한 근대미술 컬렉션을 확충시킬 주요 작품들이다.
 
 
파블로 피카소(34) 조르쥬 브라크(17) 후안 그리(15) 페르낭 레제(15)

메트뮤지엄 레오나드 로더 입체파 4인방 컬렉션 특별전

 

Cubism: The Leonard A. Lauder Collection

October 20, 2014-–February 16, 2015@The Met Museum

 
IMG_0684.JPG

Cubism: The Leonard A. Lauder Collectio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14

 

에스테 로더의 장남인 레오나드 로더 명예회장은 6살 때부터 엽서를 수집했고, 일주일에 수차례 MoMA를 드나들면서 영화에 탐닉했던 문화광이었다. 유펜(UPENN)의 와튼스쿨과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굴지의 에스테 로더를 경영하면서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로더 회장이 주목한 것은 당시 미술시장에서 별 인기가 없었던 큐비즘 작품들이었다. 로더 회장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술로 이후의 미술계를 지배한 입체파에 매료됐다. 로더 회장은 "입체파는 흥미롭고, 복잡하다. 나는 모든 입체파 회화에 단서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고 밝혔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주도한 큐비즘은 전통적인 원근법을 거부하고, 다양한 앵글로 대상을 포착하면서 미술의 개념을 확장했다. 이후 미래파, 다다, 초현실주의, 추상미술주의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로더 회장은 1976년 두점을 구입한 후 입체파 4인방 피카소, 브라크, 그리, 레제를 집중해서 찾아다니면서 소장품을 늘려나갔다. 
 
 IMG_0660.JPG

 

IMG_0801.JPG

Cubism: The Leonard A. Lauder Collectio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14

 
로더 회장은 언젠가 자신의 컬렉션을 메트뮤지엄에 기증하기로 마음 먹고, 뮤지엄 레벨의 작품을 사들였다. 그의 컬렉션이 잠시 갤러리에 걸렸다가 창고로 들어가기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 뉴욕의 메트뮤지엄을 루브르, 브리티시뮤지엄보다 더 나은 세계 최고의 뮤지엄으로 업그레이드하는데 박차를 가하기 위해 10억 달러 가치에 이르는 81점을 메트에 선물한 것이다. 
 
로더 회장은 14일 기자회견에서“큐비즘은 20세기의 입구이며, 이후 미술에 등장한 모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메트뮤지엄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뮤지엄 중의 하나라고들 하지만, 내게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뮤지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IMG_0837.JPG

 

IMG_0671.JPG

Cubism: The Leonard A. Lauder Collectio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14

 
이로써 메트뮤지엄은 MoMA, 구겐하임뮤지엄, 휘트니뮤지엄이 주력해온 근현대 미술품 컬렉션을 확충하면서, 20세기 미술에 전환점을 갖게 됐다. 메트는 다운타운으로 이주하는 휘트니가 내년 매디슨애브뉴 건물을 장기 대여해 현대미술 전문 갤러리로 활용할 계획이다. 
 
 
?
  • sukie 2025.06.21 21:37
    억만장자하면 떠오르는 것이, 호화로운 yacht에서 저명인사들과 유명 배우들을 초청해서 파티를 하는 장면이 었습니다. 아트 컬렉터가 있는건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수가 아니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인 에스티로더의 명예회장이 아트콜렉터라는 사실에 존경심이 우러나옵니다.
    6살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어서 엽서부터 피카소까지 다양한 미술품을 수집했으니 그의 아트 컬렉터의 면모를 엿볼수 있습니다. 꾸준히 엽서를 수집해서 12만 5천장의 엽서를 보스톤 미술관에 기증했다니 놀랐습니다. 메트뮤지움에 무려 10억불 상당의 입체파 그림 81점을 기증하였다니 그가 우러러 보입니다. 이런 분이 있기에 더 나은 세상이 이루어 지고 있나봅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