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24 '비디오 아트의 대부' 백남준과 후예 8인방
33 Keys to Understanding the Korean Wave, Hallyu #24 Nam June Paik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24 '비디오 아트의 대부' 백남준과 후예들
*독자 안내
NYCultureBeat의 [포커스] 섹션에 게재된 칼럼은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BTS, 기생충, 그리고 오징어 게임을 넘어서』(2023, 지성사) 출간 이전에 연재한 것입니다. 책의 전체 내용은 총 33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어판 도서는 다음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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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 June Paik 1983, Photo by Young-kyun Lim
"레오나르도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누아르처럼 다채롭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폴락처럼 폭력적으로,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TV 화면 캔버스를 만들기를 원했다. "
-백남준, 1969-
인간이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는지, 언제부터 조각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태고적의 일이다. 하지만, 비디오 아트(video art)의 탄생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비디오 아트는 1963년 3월 백남준(Nam June Paik, 1932-2006)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백남준은 1956년부터 독일 뮌헨대와 쾰른대에서 건축, 음악사, 철학 등을 공부하면서 미국의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 독일 아티스트 조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 등을 만나 반예술 운동 플럭서스(Fluxus)에 참가했다.
백남준은 1963년 3월 독일의 서부 도시 부퍼탈(Wuppertal)의 파르나스 갤러리(Galerie Parnass)에서 중고 TV세트 13대 모니터에 강렬한 광학적 무늬가 튀어나오는 작업으로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을 열었다. 이것이 '아시아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가 선보인 최초의 비디오 아트였다.
이듬해 백남준은 뉴욕으로 이주했다. 당시 뉴욕 미술계는 추상적 표현주의와 팝아트가 풍미했다. 큐레이터들은 외국인 아티스트들에 관심이 없었다. 백남준은 자조적으로 '황색의 위험분자(yellow peril)'라고 부르기도 했다. 백남준은 "난 가난한 나라에서 온 가난한 남자였다. 그래서 사람들을 매 순간 즐겁게 해주어야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Nam June Paik, Electronic Superhighway: Continental U.S., Alaska, Hawaii, 1995,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1965년 10월 4일 백남준은 세계 최초의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인 소니 포타팩(Sony Potapak)을 구입했다. 소니 포타팩이 집으로 배달되자마자 택시를 타고, 뉴욕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6세(Pope Paul VI)의 카 퍼레이드를 가까이서 촬영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그리니치 빌리지의 '카페 아 고고'(Café a Go-Go)에서 친구들과 모여 20분짜리 테이프를 보여주었다. 그날은 뉴욕에서 비디오 아트가 탄생한 날이었다.


백남준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고조선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나라의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인물, 세계적인 인물을 둘을 내세우라고 하면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과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인 백남준 아티스트를 꼽겠다고 망설임없이 생각했습니다. 백남준씨는 비디오 아트라는 쟝르를 불과 반세기전에 만들어서 세상을 놀라게한 예술가고 아무도 몰랐던 비디오 아트 분야를 인류와 세상에 알린 개척자이고 예술가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분야는 다르지만 이 시대에 하나 나올까말까한 천재임을 확신했습니다. 그가 한국인이라는 게 우리에게는 영원히 빛나는 자랑입니다. 저는 60년대 후반에 백남준씨가 첼리스트인 무어에게 연주를 하면서 웃옷을 벗게하는 사진을 타임지에서 보고 놀랬었습니다. 비디오 아트가 탄생하는 과정임을 아주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의 7인의 후계자중에 조앤 조나스, 피피로티 리스트라는 여성들이 있어서 눈길이 끌립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