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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앱티드 감독 다큐멘터리 '63 UP' ★★★★

1964년 일곱살, 그들은 지금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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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UP" by Michael Apted


우리는 오늘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Keeping Up with the Kardashians)' '서바이버(Survivors)'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등 리얼리티 TV 전성기에 살고 있다. 55년 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4년 영국의 맨체스터 지방 TV 방송국 그라나다에서 획기적인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영국 다양한 계층의 7살 짜리 어린이 14명을 인터뷰한 프로그램 '세븐 업 (7 UP)'이다. 이후 7년마다 14, 21, 28, 35, 42, 49, 56, 63 UP까지 7년마다 이 아이들의 성장을 담은 UP 시리즈가 나오게 된다. 어린이들의 꿈, 질풍노도 청춘의 야망, 결혼과 가족의 탄생, 이혼과 중년의 고뇌, 사회 비판, 그리고 은퇴와 질병과의 투쟁하는 유명인사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담겼다. '세븐 업'은 리얼리티 쇼의 뿌리가 됐고, 휴먼 다큐멘터리의 모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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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7 UP의 조사원에서 시작, 7년마다 '63 UP'까지 14인의 이야기를 담아온 마이클 앱티드 감독.

      

1964년 당시 마이클 앱티드(Michael Apted) 감독은 법대를 갓졸업한 22세의 청년이었다. '세븐 업'의 조사원으로 시작한 앱티드는 '14 Up'부터 꼭 7년마다 그라나다 방송국으로 돌아가 1964년 어린이들을 인터뷰해 삶의 변화를 담아왔다. 그 와중에 할리우드로 진출, 씨시 스페이섹 주연 '광부의 딸(Coal Miner's Daughter, 1980)', 시고니 웨버 주연 '안개 속의 고릴라(Grillias in the Mist, 1988)', 조디 포스터 주연의 '넬(Nell, 1994)', '007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 1999)' 등 다양한 장르를 연출해왔다. 그리고, 약속대로 UP 시리즈의 제 9화 '63 UP'로 복귀, 2019 뉴욕영화제에서 상영했다. '63 UP'이 11월 27일부터 맨해튼 필름포럼(Film Forum)에서 상영중이다. 이어 12월 6일 LA 랜드마크 뉴아트(Landmark Nuart)에서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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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Series


'세븐 업' 시리즈는 원래 2000년 영국의 모습을 가늠하기 위한 것으로 계급사회와 태생이 성공에 끼치는 영향을 탐구할 프로젝트였다. 제작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이자 제수이트(Jesuit, 카톨릭 남자 수도회)의 격언인 "7살 아이를 주면, 성인을 보여주겠다"(Give me a child until he is 7, and I will show you the man.)를 실험하고자 했다. 우리 말에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말은 7살 짜리 어린이를 보면, 어떤 성인이 될지가 보인다는 의미로 어린 시절의 배경이 인성은 물론 인생의 향방에 끼치는 영향을 강조한다. 


1964년 '7 UP'에 출연한 어린이들은 런던 이스트엔드 빈민가 소년 4명, 보육원 소년 2명, 사립학교 소년 3명, 기숙사학교 아이 2명 등 14인이다.  UP 시리즈는 아직도 왕실이 존재하는 영국의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수직상승이 얼마나 가능한가를 탐구했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 상류계층과 성공이 제한된 하류계층 출신 어린이의 삶을 고찰한다. 한편, 한국의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 수저계급론과 함께 최근 화제가 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이나 할리우드 영화 '조커(Joker)'는 첨예한 계급갈등을 묘사한 픽션이다.



56up.jpg 56 UP


# 활달한 소년 토니(TONY)는 7살 때 꿈이 경마장의 기수(jockey)였다. 세차례 경마대회에 출전한 후 기수를 포기하고, 택시기사가 된다. '42 UP'에서는 혼외정사를 고백했다가 후회하고, 엑스트라 배우(주로 택시기사 역)로도 아르바이트하고, 동네 축구 심판을 하며 인생을 즐긴다. 우버와 경쟁해야하는 처지지만, 그로부터 55년 후 지금은 스페인에 별장을 두고 손자 손녀들과 평화롭게 살고 있다.


# 기숙사 학교를 다니며 '파이낸셜 타임즈'를 읽는다고 말했던 소년 앤드류(ANDREW)는 캠브릿지대에 진학했고, 변호사가 됐다. 결혼 후 두 아들을 두었고, 스키 여행을 다니며 중년의 행복을 만끽한다. 시골집을 일본식 정원처럼 꾸미고, 은퇴를 준비 중이다.  

    

# 런던 이스트엔드 빈민촌 출신 소녀 수(SUE)는 24세에 결혼했다가 이혼한 후 싱글맘이 됐다. 여행사를 거쳐 퀸메리칼리지의 행정직원으로 일하며, 오토바이광인 애인 글렌과 20여년째 동거 중이다. 취미로 연기를 하고, 생일 때는 애프터눈 티를 즐기며 추억을 만들기를 즐기고 있다. 



63-up.jpg 7 UP


# 농부의 아들인 닉(NICK)은 7살 때 "여자 친구 있냐?"는 질문에 대답을 거부한 진지한 소년이었다. 그는 옥스포드를 거쳐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핵물리학을 전공한 후 교수로 정착했다. 이혼 후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미국 여성과 재혼했다. 그에게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곳"이다. 행복을 찾은 지금 그는 안타깝게도 후두암과 투병 중이다. 


# 기숙사학교에 다니던 7살 브루스(BRUCE)의 소망은 아프리카 로디지아에 있는 아빠를 보는 것이었으며, 선교사가 꿈이었다. 소년은 옥스포드 졸업 후 수학교사가 됐고, 35세엔 방글라데시까지 가서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늦게 동료 교사와 결혼했고, 아직도 감정표현에는 서툴다. 아이들과 뉴욕 여행에서 스태튼아일랜드 페리를 타고, 타임스퀘어와 하이라인을 걷고, 카츠 델리에서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들 돕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결혼 후엔 가족이 우선이 된 것이 달라진 점 중의 하나다.    


# 이스트엔드 출신 재키(JACKIE)는 21 UP에선 결혼했고, 세 아들을 낳았지만 이혼에 이른다. 그녀는 마이클 앱티드 감독이 "여자들에게 결혼과 가정 이야기만 질문한다"며 성차별적이라고 비난했다. 남자친구는 교통사고로, 바위처럼 의지했던 아버지는 치매로 세상을 떠났다. 재키는 관절염으로 장애 보조금을 받으며 스코틀랜드에서 살고 있다. 7살 때와 변하지 않은 것은 수다스럽다는 점이다. 바닷가의 등대가 우리 인생에서 길잡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듯 하다.



seven-up-rich-boys1.jpg 7 UP


# 7살 때 꿈이 우주비행사였던 리버풀 출신 피터(PETER)는 28 UP에서 마가렛 대처 정부를 비난한 후 언론의 '공산주의자' 공격을 받아 UP 시리즈를 3회 중단했다. 그리고, '56 UP'에는 자신의 밴드를 홍보하기 위해 컴백했다. 피터는 1964년은 동성애자, 낙태가 불법이었고, 흑인과 아이리쉬 금지가 공공연하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지금은 더 관용스럽고, 평화로운 시대인 셈이다. 그는 부인과 록밴드에서 연주하고, 간간이 소설을 쓰고 있다. 


# 수, 재키와 같은 빈민촌 출신 린(LYNN)의 꿈은 울워스 마켓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19세에 결혼한 후 두딸을 낳았다. 딸들도 대학에 가지 않고 결혼했다. 린은 이동도서관에서 일하다가 어린이 도서관에서 27년간 일했다. '63 UP'을 위해 마이클 앱티드가 찾아갔을 때 린은 5년 전 사망한 후였다. UP 시리즈 출연자 중 첫 사망자가 된다. 학교 측은 도서관을 린의 이름으로 명명했다.   

 

# 폴(PAUL)과 사이몬(Symon)은 보육원에서 살았던 친구들이다. 벽돌공으로 일했던 폴은 호주로 이민했고, 결혼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됐다. 백인 엄마,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사이몬은 아버지를 모른다. 냉동실 소시지 담당으로 일했던 사이몬은 첫 결혼에서 5자녀, 두번째 결혼으로 2자녀를 낳았다. 그는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한다. 그리고, 위탁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기르고 있다. 사이몬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시간이 치유해준다고 믿는다. 폴과 사이몬 부부는 영국과 호주를 오가며 우정을 다지고 있다.  



7plus7_the_up_series.jpg 7 UP


# 상류계층 출신 존(JOHN)의 아버지는 9세에 사망했고, 불가리아계 엄마는 그를 사립학교에 보냈다. 옥스포드대 졸업 후 변호사가 되어 전 불가리아 주재 대사의 딸과 결혼, 자선단체를 이끌고 있다. 은퇴를 생각하며, 상류사회와 브렉시트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다. 

 

# 발레를 하던 소녀 수지(SUZY)는 부모가 조기 이혼한 트라우마가 있다. 16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파리로 가서 변호사와 결혼, 자식을 낳고 테라피스트로 일한다. '21 UP'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UP 시리즈가 어리석다"고 비판하면서도 충성심 때문에 56 UP까지 출연했다가 63 UP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 가장 파란만장한 인물은 닐(NEIL)이다. 7살 때 닐은 명랑쾌활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이었다. '21 UP'에서 닐은 애버딘대를 중퇴한 홈리스였고, 공사장에서 일했다. '35 UP'에선 스코틀랜드 의원으로 일하며, 판토마임에도 출연했다. '42 UP'에선 친구 브루스의 아파트에서 얹혀살다가 '49 UP'에선 자유민주당 지방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63 UP의 닐은 정신질환의 재발을 두려워하는 이혼남으로 프랑스 전원주택에서 살며, 평신도로 설교도 하고 있다. 


# 오리지널 '7 UP'의  소년 찰스(CHARLES)는 자신이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며 출연을 거부했다.



63.jpg 0up3.jpg Up Series


1956년생 열네명의 7살부터 오늘 63세까지를 인생항로를 담은 다큐멘터리 '63 UP'은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다. 우리의 삶은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이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직조되는 여정이다. 다큐멘터리 'UP 시리즈'는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가 아니라 보통 어린이들의 7살 '순수의 시대'부터 시작해 삶의 진화과정을 추적해준다. 어떤 어린이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가족은 사랑이 식으면서 해체되고, 행복에 다다른 것 같지만 병마와 싸워야 한다. 사람마다 선택하는 길은 달라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대로를 우리 모두 걷고 있는 것이다. 


'UP 시리즈'는 한국의 수저계급론을 상기시킨다. 과연 인생의 성공은 태생 순일까? 성적은 행복순일까? 행복은 무엇으로 평가될까? 이 영화는 또한, 각자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는 계기가 된다. 만일 내가 다른 길로 갔더라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도 밀려온다. 또한 그때,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페이스북의 사이버 관계가 아닌 그 옛날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도 솟구친다.  


2004년 뉴욕타임스는 줄리아드 음대 1994년 졸업생들의 10년 후 실태(Juilliard Effect Ten Years)를 특집으로 보도했다. 음악계에서 일하는 행운의 졸업생도 있지만, 보험회사 판매원, 비서, 세금보고 준비사, 티파니의 다이아몬드 등급사가 되기도 했다. 전공을 살려서 밥 먹고 산다는 것은 행운이다.  


마이클 앱티드 감독은 출연진(남 10: 여 4)로 여아의 비율이 낮았던 것에 대해 크게 후회했다. 대신 할리우드에서 씨시 스페이섹, 시고니 위버, 조디 포스터 주연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UP 시리즈의 출연진은 카메라 앞에 서오면서 사생활의 일부를 포기해야 했다. 제작팀은 '56 UP' 출연한 이들에게는 1만-2만 파운드의 출연료와 흥행 수당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장장 55년간 프로젝트를 꼬박꼬박 실현해온 마이클 앱티드 감독이 건강해서 UP 시리즈 10화(70세), 11화(77세), 12화(84세)...까지 계속 만들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63 UP
November 27-December 12, 12:30pm, 3:20pm, 6:20pm, 9:15pm
Film Forum: 209 W Houston St,
https://filmforum.org/film/63-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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