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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Matisse in the 1930s 

1930년대의 앙리 마티스@필라델피아뮤지엄

 

*Philadelphia Museum of Art, October 19, 2022–January 29, 2023  

Paris, Musée de l’Orangerie, February 27, 2023–May 29, 2023  

Musée Matisse Nice, June 23, 2023–September 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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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isse in the 1930s, Philadelphia Museum of Art

 

'색채의 미술사'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1930년대 작품 활동을 조망하는 특별전 '1930년대의 마티스(Matisse in the 1930s)'가 필라델피아뮤지엄(Philadelphia Museum of Art), 파리 오랑주리뮤지엄(Musée de l’Orangerie), 니스 마티스뮤지엄(Musée Matisse Nice)에서 순회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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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isse in the 1930s, Philadelphia Museum of Art

 

세 뮤지엄이 공동으로 기획한 '1930년대의 마티스'엔 세계의 미술관과 개인 컬렉터에서 대여해온 회화, 드로잉, 조각, 다큐멘터리 사진 및 영화 등 약 140점이 소개되고 있다. 마티스는 이 시기 컷페이퍼 작업을 시도했으며, 자신의 작업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다. 그는 이젤, 장식화, 조각, 판화, 드로잉, 삽화집 등 다양한 매체로 활동반경을 넓혔다. 

 

전시는 필라델피아뮤지엄의 매튜 에프론(Matthew Affron) 큐레이터, 파리 피카소뮤지엄의 세실 드브레이(Cécile Debray) 회장, 그리고 니스 마티스뮤지엄의 클로딘 그라몽(Claudine Grammont) 디렉터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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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The Dance II, 1932. Barnes Foundation, Philadelphia

 

1930년 61세가 된 마티스는 국제적 명성을 누렸지만, 창작에서 슬럼프에 빠졌던 시기였다. 그즈음 필라델피아의 컬렉터 알버트 C. 반즈(Albert C. Barnes, 1872-1951) 박사의 의뢰로 벽화 'Dance'를 작업하게 된다. 반즈 박사는 1912년 파리를 방문해 거트루드 스타인과 동생 레오로부터 마티스의 그림 2점을 구입했다. 당시 미국에서 마티스의 작품은 왜곡된 해부학과 비자연주의적 색채로 조롱받던 시기였다. 하지만, 반즈 박사는 마티스에 매료되어 자신의 모더니즘 컬렉션의 핵심으로 정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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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isse in the 1930s, Philadelphia Museum of Art

 

마티스는 반즈 박사의 초청으로 필라델피아 외곽 메리온의 오리지널 반즈파운데이션(Barnes Foundation) 메인홀에 3폭의 벽화 'The Dance II, 1932-33)를 그렸다. 당시 3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니스의 스튜디오에서 반즈파운데이션의 벽화 작업을 할 때 마티스는 대나무 막대기와 목탄을 사용했다. 다큐멘터리에는 마티스가 작업 중 애견이 노니는 장면이 포착됐다.

 

그즈음 마티스는 스위스 출판사의 의뢰로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1842-1898)의 시집 '포에지(Poesies, 1932)'의 삽화를 그렸다. '포에지'는 뉴욕공립도서관에도 소장되어 있으며, 2013년 알재단의 투어에서 시집을 볼 수 있었다. 

 

 

마티스의 뮤즈: 리디아 델렉토스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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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Pink Nude, 1935, from Matisse in the 1930s, Philadelphia Museum of Art

 

1933년 봄 반즈파운데이션 벽화 작업을 완성한 후 마티스는 슬럼프에 빠졌다. 그러다가 자신의 조수 리디아 델렉토스카야(Lydia Delectorskaya)를 모델로 그리기 시작했다. 러시아 출신 리디아는 12살 때 고아가 되었고, 러시아 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피신해 소르본대에 입학해 의학을 전공할 계획이었지만, 등록금이 없어서 포기하고 니스로 이주했다. 당시 프랑스 리비에라 해안은 미국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랄드, 가수 에디트 피아프, 조세핀 베이커 등이 겨울 휴양지로 살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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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Yellow Odalisque, 1937, Philadelphia Museum of Art Collection

 

1932년 마티스가 40세 연하의 리디아를 만났을 때 부인 아멜리는 건강이 악화됐고, 리디아는 마티스의 조수가 되었다가 아멜리의 간호를 맡기도 했다. 마티스는 금발에 백색 피부의 리디아를 '얼음공주'라 불렀다. 리디아는 1935년에야 마티스의 모델이 되어 이후 약 90여점의 회화와 100여점의 드로잉에 등장한다. 첫 그림은 '핑크 누드(Pink Nude/ Large Reclining Nude, 193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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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dia and Matisse by Henri Cartier-Bre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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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Woman in Blue, 1937. Philadelphia Museum of Art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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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isse in the 1930s, Philadelphia Museum of Art

 

리디아는 마티스의 모델 관리, 딜러 계약, 작품 판매, 갤러리 등 아멜리의 역할을 이어받아 스튜디오를 군대처럼 운영했다. 이에 아멜리는 마티스에게 리디아를 해고하지 않으면, 40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낼 것이라고 위협했다. 마티스는 아멜리를 선택했고, 쫒겨난 리디아는 권총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남았다. 1939년 결국 아멜리는 마티스를 떠났고, 마티스는 리디아를 다시 불렀다.

 

리디아는 1941년 마티스가 암 수술을 한후 페이퍼컷 작업을 할 때도 그의 곁을 지켰다. 마티스는 1954년 볼펜으로 리디아의 초상화를 그린 다음날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리디아는 마티스가 사망할 때까지 모델, 뮤즈, 비서, 스튜디오 매니저, 간호원, 동반자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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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isse in the 1930s, Philadelphia Museum of Art

 

이후 리디아는 마티스의 유산을 관리하고, 전시를 조직하며, 마티스 고향 카토-캉브레시 뮤지엄 설립을 도왔다. 리디아는 마티스가 그녀에게 남긴 90여점을 러시아의 에르미타쥬 뮤지엄과 푸시킨 뮤지엄에 기증했다.  리디아는 회고록 2권을 집필했으며, 1998년 87세로 사망했다. 그녀는 "앙리 마티스의 셔츠를 내 옆에 묻어주세요"라고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마티스 작품 59점을 소장하고 있는 반즈파운데이션은 '1930년대의 마티스'전에 맞추어 자그마한 마티스 드로잉전을 1월 29일까지 연다. https://www.barnesfounda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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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isse in the 1930s,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Museum of Art

2600 Benjamin Franklin Parkway, Philadelphia, PA 

https://www.philamuseum.org

 

 

*마티스의 레드 스튜디오 Matisse: The Red Studio @MoMA, 2022

*마티스 Cut-Outs@MoMA

*샤갈과 마티스의 대화@유니온처치의 스테인드글래스

*뉴욕공립도서관 희귀본 컬렉션을 찾아: 말라르메&마티스

*마티스는 어떻게 색채의 마술사가 됐나@메트뮤지엄

*볼티모어미술관 콘 자매의 마티스 컬렉션

*몽클레어미술관(NJ) 마티스와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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