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유명 지휘자들이 인민복을 즐겨 입게 됐을까?
레오나드 번스타인 1958년 뉴욕필서 '네루 재킷' 첫 시도
어떻게 지휘자들이 '인민복'을 즐겨 입게 됐을까?
네루 재킷을 입은 지휘자 사이먼 래틀(왼쪽부터), 얍 판 츠베덴, 마린 알솝.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콕을 하면서 인터넷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로열 오페라 등 클래식 콘서트를 보곤 했다. 그러면서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콘서트홀 객석과는 달리 온라인으로는 친절한 카메라가 지휘자의 등보다는 얼굴을 더 자주 보여준다. 그런데, 왜 많은 서양의 지휘자들이 '인민복'을 입게 되었나 궁금해졌다.
뉴욕필의 얍 판 츠베덴(Jaap Van Zweden), 베를린필의 사이먼 래틀(Simon Rattle), 워싱턴내셔널심포니의 지안안드레아 노세다(Gianandrea Noseda) 등 서양의 마에스트로들이 종종 긴 꼬리가 달린 블랙 턱시도에 흰 나비 넥타이의 연미복(tailcoat) 대신 인민복, 즉 마오쩌둥 수트(Mao Suit)를 즐겨 입는가 의문이었다.
예전에 한국의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의 차이나칼라 교복 차림,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상징같은 인민복이 어떻게 클래식의 세계로 들어갔슬까? 그런데, 조사해보니 지휘자들의 그 복장은 '마오 수트'가 아니라 '네루 재킷(Nehru Jacket)'이었다. 인도의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의 이름을 딴 재킷이다.
#마오 수트와 네루 재킷
1954년 네루와 마오가 북경의 인도대사관에서 만났다. 네루 재킷은 원래 무릎까지 내려오며, 마오 수트는 박스형이다. 칼라 모양과 포켓 수도 다르다.
마오 수트는 사실 마오쩌둥(모택동, 1893-1976)이 아니라 청나라 멸망 후 중화민국의 초대 임시 대총통이었던 손문(쑨원, 1866-1925)이 즐겨 입었던 제복이다. 손문은 유럽의 사냥복에서 힌트를 얻어 일상생활에 편한 디자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옷은 손문의 별명이었던 중산(中山, Zhōngshān)을 따서 중산장(中山裝)이라 불리우기도 했지만, 마오쩌둥과 문화혁명으로 유명해졌다.
마오 수트는 바지까지 한세트다. 마오 재킷은 박스형에 차이나 칼라, 단추 5개, 주머니가 상하좌우로 4개, 소매에 단추 3개가 달렸다. 디자인이 무척 상징적이다. 5개 단추는 행정, 입법, 사법, 고시, 감찰권의 5개 정부부서, 소매의 단추 3개는 손문이 내세웠던 민권, 민생, 민족의 삼민주의를 상징한다. 또, 4개의 주머니는 예/의/염/치(禮義廉恥), 호주머니의 단추 각 4개는 공민의 4대 권리(선거, 파면, 입법, 투표권)을 의미하며, 이음새가 없는 뒷면은 중국의 평화통일의 의미가 담겼다.
한인 예술가로는 박서보(Park Seo-Bo) 화백과 사진작가 김아타(Kim Atta)씨가 각각 2008년과 2006년 뉴욕에서 열린 자신의 전시회에 네루 재킷을 입었다.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한편, 네루 재킷의 기원은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는 재킷이 아니라 긴 쿠르타(인도의 전통 남자 복장) 위에 입는 짧은 셔츠였다. 영국이 약 200년간 인도를 지배하면서(1757-1947) 인도인들의 의생활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 1889-1964)는 1889년 부유한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나 15살 때 영국으로 유학, 케임브리지대에서 법률을 전공한 후 귀국했다. 변호사로 일하다가 마하트마 간디에게 감명되어 인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47년 인도 독립 전까지만 해도 네루 재킷을 입은 인도인은 상류계층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독립 후엔 인도 남성들의 필수 복장이 됐다.
사실 네루가 입었던 재킷은 무릎까지 오는 긴 재킷이었으며, 지금 널리 알려진 모던 네루 재킷을 실상 입지는 않았다. 그가 사망한 후에야 '네루 재킷'이 널리 상업화했기 때문이다. 네루 재킷은 영국의 신사복(tailored suit jacket)과 유사하면서도 디자인에서 차이가 있다. 몸에 딱 맞고, 옷깃이 높이 올라가 곡선의 차이나 칼라(Mandarin collar/standing collar)로 이어지고, 포켓은 왼쪽 가슴팍에 1개만 달려있다. 네루 재킷은 마오 수트와 달리 아무 바지를 입어도 좋다.
#레오나드 번스타인의 유니폼 혁명
1958년 뉴욕필 음악감독 레오나드 번스타인이 선보인 새 유니폼(좌)/ 1880년 주세뻬 베르디가 파리에서 '아이다'를 지휘하는 모습
어떻게 지휘자들은 연미복과 턱시도, 일명 '펭귄 수트(penguin suit)' 대신 네루 재킷을 즐기게 됐을까?
뉴욕필하모닉의 음악감독(1958-1969)이었던 레오나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은 첫 시즌 패션의 변화를 시도했다. 1958-59 시즌 매주 목요일 콘서트는 그에게 고통이었다. 리허설이라 하기엔 너무 세련됐고,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 콘서트에 비해 매가리가 없었다. 그런 콘서트에서 자신이 연미복을 입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에 번스타인은 가벼운 유니폼을 고안하게 된다.
번스타인은 1958년 10월 목요 콘서트에 새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다. 엄숙한 검은색보다 약간 옅은 회색에 차이나 칼라(band collar)로 단추가 목까지 잠기는 재킷을 입고 지휘대에 올랐다. 단원들도 같은 복장이었다. 뉴욕타임스의 해롤드 숀버그는 뉴욕필 단원들의 새 유니폼에 대한 반응을 전했다.
"아스터 호텔의 벨보이처럼 보인다."
"밴드 마스터처럼"
"우주 생도처럼"
"장개석처럼" ...
번스타인의 혁명적인 유니폼은 오케스트라 뿐만 아니라 초대 지휘자들까지도 반발심을 불러 일으켰다. 베를린필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과 런던심포니의 존 바비롤리(John Barbirolli, 1899-1970)는 뉴욕필을 지휘하면서 이 유니폼을 입는 것을 거부했다. 각계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도 절반만이 찬성했다.
끝내 번스타인은 1959년 1월 마지막 목요 콘서트 시작 전에 유니폼 착용을 중단한다고 발표하게 된다. 이로써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와 '캔디드(Candide)'의 작곡가이자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의 패션 아이디어는 뉴욕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네루 총리와 JFK 정상회담
1961년 백악관을 방문, JFK와 재키 케네디의 영접을 받은 네루 총리와 딸 인디라 간디(좌)/ 1962년 인도를 방문한 재키 케네디와 네루 총리.
하지만, 미국은 10년 후 '차이나 칼라'로 대표되는 이 네루 재킷을 수용하게 된다. 번스타인이 시대를 앞서갔던 것이다.
1961년 11월 백악관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자와할랄 네루 인도 수상의 만남이 TV로 중계되면서 미국인들은 '네루 재킷'에 호감을 갖게된다. 이듬해 3월엔 재클린 케네디가 인도를 방문해 네루 총리의 저택에 머물렀다. 마침 인도 주재 미대사관이 수리 중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네루 총리는 당시 재키에 흠뻑 빠졌으며, 둘간의 밀애 소문도 있었다. 패셔니스타 재키의 인도 방문은 네루와 함께 LIFE지에 컬러 화보로 대서특필됐다.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 '살인번호'(1962)에서 숀 코네리/ 1965년 뉴욕 셰이 스태디움 콘서트에서 포켓이 두개 달린 네루 재킷을 입은 비틀즈.
1962년 제임스 본드 시리즈 '살인번호(Dr. No)'에서 007 숀 코네리와 악당 과학자 닥터 노(제임스 와이즈먼 분)가 둘다 네루 재킷을 입고 등장한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록밴드 비틀즈(The Beatles)는 뉴욕의 셰이 스태디움에서 5만5천여명의 팬들 앞에 섰다. 폴, 존, 조지, 링고는 그날 피에르 가르댕(Pierre Cardin)이 디자인한 네루 재킷을 입고 연주했다.
1968년 네루 재킷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워싱턴포스트는 2월 "1968년은 스탠드업 칼라(차이나 칼라)의 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미 백화점과 쇼핑몰에서는 네루 재킷을 앞다투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네루 재킷과 지휘자들
발레리 게르기예프(왼쪽부터),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지안안드레아 노세다
지휘자들이 전통적으로 입어온 연미복(tailcoat)은 원래 유럽에서 승마나 행군시 걸리적거리는 코트의 앞자락 없애 만든 정장이라고 한다. 한편, 턱시도(Tuxedo)는 1880년대 뉴욕주 턱시도파크 컨트리 클럽의 사교계 신사들이 연미복에서 꼬리를 생략해 간소화한 정장이다.
네루 재킷을 즐겨 입는 지휘자로는 뉴욕필하모닉의 얍 판 즈베덴, 베를린필하모닉의 사이먼 래틀,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의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워싱턴내셔널심포니의 지안안드레아 노세다, 전 보스턴심포니의 세이지 오자와 등이 있다. LA필하모닉의 구스타프 두다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발레리 게르기예프도 종종 네루 재킷 차림으로 지휘봉을 잡는다.
지휘자들은 양팔을 지속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깨에 융통성이 있어야 하며, 신축성 있고, 주름이 생기지 않는 소재가 좋다. 또한, 뜨거운 조명 아래서 땀을 잘 흡수하는 안감이어야 한다. 그래서 지휘자들은 맞춤으로 제작한다. 레오나드 번스타인의 경우는 지휘 중 무대 조명으로 땀을 방지하기위해 아예 등이 없는 셔츠를 입기도 했다.
여성 지휘자들. 아누 탈리(좌-우), 조안나 카네이로, 조앤 팔레타, 장한나, 사라 이오아니데스, 바바라 하니간, 성시연, 수잔나 말키, 마린 앨솝.
https://wophil.org
그러면, 여성 지휘자들은 어떤 복장을 해야할까?
오케스트라의 보스로서 마에스트라들은 펭귄 수트를 고수할 필요가 없다. 컬러는 여전히 음악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블랙이지만, 패셔너블하게 입을 수 있을 것이다. 아누 탈리(Anu Tali)는 금발에 포니테일, 조안나 카네이로(Joana Carneiro)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조앤 팔레타(JoAnn Falletta)는 네루 수트에서 목이 파인 칼라와 단추를 장식한 샤넬 룩의 재킷이 주목을 끈다.
첼리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장한나(Han-na Chang)씨는 블랙재킷 안에 파인 블랙 혹은 화이트 톱에 목걸이 차림, 성시연(Shi-Yeon Sung)씨는 턱시도와 드레시한 러플 셔츠가 주목을 끈다. 한편, 2014년 런던의 BBC 프롬(BBC Proms) 축제 118년 역사상 처음 지휘봉을 잡은 여성으로 기록된 마린 앨솝(발티모어심포니 지휘자)은 네루 재킷을 비롯, 컬러풀한 패턴의 옷도 입고 연단에 오른다. 이듬해 프롬 콘서트에서 수잔나 말키(Susanna Malkki)는 블랙 실크 셔츠 위에 턱시도 단추를 풀어 헤치고 지휘했다.
2000년 이후 뉴욕의 법률회사나 월스트릿 증권회사의 드레스 코드가 완화된 것처럼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지휘자들의 전통 복장이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연미복과 턱시도에서 해방되어 블랙 실크 셔츠나 노 타이에 블랙 재킷 등 캐주얼 트렌드로 변화하고 있다.
#지휘자들과 패션
클래식 연미복 차림의 지휘자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좌)/ 리카르도 무티.
네루 재킷이건, 마오 수트이건 서양의 지휘자들이 아시아 지도자들의 파워 수트를 수용한 것이 흥미롭다. 그러면, 지휘자 당사자들은 복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꼬리가 달린 턱시도는 편안하다. 충돌하지 않고, 팔에 여유가 있다."
-마이클 틸슨 토마스(전 샌프란시스코심포니 지휘자)-
"연주용 턱시도 티셔츠는 피부에 달라붙지 않는다. 말러 교향곡이나 오페라를 한시간 지휘하면서도 축축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데이빗 잇킨(전 에이빌린 필하모닉 지휘자)-
"나는 맞춤으로 차이나 칼라와 단추가 목까지 오며, 전통적인 연미복 스타일을 겸비한 옷을 입는다."
-존 액스로드(세빌리아 로열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자)-
"셔츠의 경우 나는 부드러운 나폴리 스타일의 숄더를 즐긴다. 왼쪽 흉곽 아래 이름 이니셜이 박혀있다. 하지만, 콘서트용 셔츠는 왼쪽 팔꿈치로 방해되지 않는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복장은 청바지와 재킷(블레이저)다."
-앨런 길버트(전 뉴욕필하모닉 지휘자)-
"패션의 선택은 내가 누구인지를 반영한다. 나이, 세대, 스타일 감각이 항상 표현된다... 콘서트마다 다른 복장이 좋을 것 같다. 토요일 밤 콘서트에선 데이트의 밤일테니까 연미복같은 격식있는 정장이 적합하다. 그러나, 정오의 가족 콘서트는 보다 캐주얼하게 입거나, 지역사회 콘서트는 더 캐주얼하게 갈 수 있다. 지난 가을 팝업 콘서트에서는 모두들 밝은 색상을 입기로 했고, 청중은 좋아하는 연주자들을 쉽게 고를 수 있어서 기뻐했다. 대성공이었다."
-야닉 네제-세갱(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지휘자)-
인민복의 유래를 올려주셨네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아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로나가 집콕을 강요하고 있지만 매일 컬빗이 유익한 정보와 지식을 보내줘서 오히려 차분하게 책을 읽는 기분입니다.
인민복은 넥타이를 맬 필요가 없고 간단해서 바쁜 일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적격으로 보입니다. 인민복이라는 명칭보다는 정치인 교복이라고하는 게 어울릴듯 합니다. 인구대국인 중국 모택동과 인도의 수상이 입었으니까 세계 인구의 거의 반이 이 인민복을 알게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도 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재건복으로 인민복을 입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Elaine-